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910화 (910/956)

결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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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신의 삶이 생각한 대로 술술 풀리기만 한다면 어떨까? 어떤 장애물도 없이 순탄하게, 위기 없이 생각한 대로 모두 이루어지는 삶이라면, 그래서 어떤 도전욕도 생길 틈이 없는 삶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분명 지루해 죽을 거야.”

“왜 지루할 거라고 생각해?”

인간의 삶이란 도전의 연속이고, 선택의 계속이다. 어려운 도전 과제를 접하고 그 과제를 풀었을 때의 희열감은 다른 무엇에도 비견하기 어렵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하며 다양한 기회비용을 따지며 신중한 선택이 필요할 때, 그 순간에 받는 스트레스와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겠지만, 그 순간을 극복하고 최상의 결과를 얻었을 때 얻는 보상 또한 작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번지 점프를 하거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이유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극한의 스릴과 공포를 극복하는 순간 느끼는 찰나의 희열을 맛볼 수 있으니까.”

단유는 마주 앉은 나윤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근데 그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도전해 볼 마음 없어?”

“무슨 도전?”

“롤러코스터.”

“롤러코스터?”

“응.”

“밑도 끝도 없이 롤러코스터, 라고 한 마디 뱉으면 어떻게 이해하란 거야?”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너 천재잖아?”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롤러코스터 타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면 없어.”

“왜?”

“왜, 라는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선 정리부터 해. 인간의 삶이 도전의 연속이란 명제에 대해서는 수긍하지만, 그 명제로부터 롤러코스터 타자라는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해. 그건 논리적 비약이니까. 내가 천재란 소리는 아니지만, 다른 어떤 천재라도 비논리적 연역의 추론이 가능한 사람은 없다고 봐, 난.”

“비약이니, 연역이니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냐.”

“왜?”

“듣는 사람 머리 아파.”

“······.”

“그래서 왜 롤러코스터를 안 타겠다는 거야?”

“그 전에 왜 롤러코스터를 타야 한다는 건지, 그것부터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말했잖아? 우리는 도전으로부터 희열을 느낀다고. 알았어, 그렇게 쳐다보지 마. 일단 이유는 두 가지야. 하나는, 네가 매일 집과 직장만 다니는 것 같아 보여서. 지루하지 않아?”

“안 지루해.”

“두 번째는, 우리 둘이 같이 놀이 공원에 간 적 없잖아? 한 번 같이 가면 재밌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니라 누나야.”

“내가 왜? 나 롤러코스터 탈 수 있어.”

“그 말이 아니라, 누나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갈 수 있냐는 문제야.”

“왜 못가?”

“연예인이잖아?”

“그건 유명한 연예인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지, 나 같은 쩌리는 괜찮아. 내 얼굴 아는 사람 별로 없을걸?”

“얼마 전 회의 때 들은 바로는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들의 인지도가 소폭 올랐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있었대. 누나도 우리 회사 오고 나서 5개월 정도 열심히 했잖아? 아마 밖에 나가면 누나 얼굴 아는 사람들 많아졌을걸?”

“에이, 그건 아니다. 아는 사람은 거의 드물고 대부분은 어디서 봤더라, 하는 정도지.”

“곧 있으면 광고도 찍을 거잖아? 그러면 더 밖에 돌아다니기 힘들어질걸?”

“광고?”

“응? 몰랐어?”

“못 들었는데? 나 광고 들어왔어?”

“응.”

“넌 어떻게 알았어?”

“나, 이 회사 이산데?”

“아, 그렇네. 그래서 같이 갈 거야, 말 거야?”

“둘이서만 가는 건 좀 위험한데.”

“뭐가 위험해? 내가 널 잡아 먹기라도 한다니?”

“그런 뜻이 아니고, 어쨌든 누나도 이제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뜻이지.”

예전에 둘레길 정화 활동을 갔을 당시와는 다른 상황이다. 그때는 누가 오해를 하더라도 단유나 아름의 사이에 딱히 문제가 있을 만한 여지가 없었고, 이후로도 생길 일이 없으니 별 상관이 없었다지만, 나윤과는 그리 편하게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단유는 괜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매니저 오빠랑 다 같이 가면 되지.”

그건 그거대로 위험하다. 소속 연기자와 임원이 따로 놀이 공원 데이트(?)를 즐겼다는 사실이 사내로 소문이 퍼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까다롭네.”

툴툴대는 나윤이었지만, 그녀의 입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

나윤이 정말로 단유와 놀이공원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서 같이 가자고 했던 건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후로 거짓말같이 나윤의 스케줄이 빡빡하게 채워졌기 때문이다. 광고를 시작으로 케이블 TV와 지상파 예능에도 얼굴을 비추게 되었고, 그 와중에 인터넷, 라디오 등의 매체에서 나윤을 찾게 되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서포트 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고, 나윤 스스로가 준비를 잘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따라온 결과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수동적으로 대본에 따라 인터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분위기를 유도하여 방송 분량을 많이 확보하는 점도 제작 PD들에게 좋은 점수를 얻었고, 그녀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대중들에게도 조금씩 어필이 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녀를 찾는 곳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했고, 구르는 돌처럼 점점 더 그녀의 스케줄은 많아져서 이제는 얼굴보기가 힘들어질 정도가 되었다.

나윤 개인에게는 일이 많아지는 만큼 소득도 많아지고 덩달아 인지도도 올라가니 앞으로의 방송 활동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경사는 나윤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단유가 언급했듯, 회사 소속 연예인들의 활동이 조금씩 늘어났다. 지난 몇 달간 영입한 연예인들의 서포트에 회사가 큰 노력을 기울였던 탓인지 회사 자체의 이미지도 성장했다. 몇몇 연예인들은 먼저 매니지먼트 계약을 문의하기 위해 연락을 해 올 정도였으니까.

회사가 외형적으로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모양새긴 하니 모두 잘 풀리고 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언제나 성장은 내외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법이다.

“하반기 인사 충원은 이렇게 가는 겁니까?”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경영본부장에게로 향한다.

“네. 아무래도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거의 2배에 가까운 인원이 필요합니다만, 그렇게 했다간 수익 마진률이 제로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 정도로 조정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회의 전에 배포된 보고서에 각 부서별 필요 모집 인원이 산정되어 있었다.

“그럼 이렇게 진행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대답은 인사팀장에게서 나왔다. 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장으로 넘겼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애초 계획했던 웅녀 프로젝트는 현실적인 이유로 프로젝트 마감일이 뒤로 미뤄지고, 작곡팀이나 안무팀이 자신들의 창의성을 한계까지 시험받고 있는 중인데다 프로젝트의 주인공 격인 연습생들이 전에 없던 독한 레슨에 허덕이고 있지만 프로젝트 자체는 순항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나윤의 말처럼, 모든 것이 생각대로, 계획대로 순탄하게만 흐르면 지루할까봐 일부러 시험을 낸 것인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

데뷔가 예정된 남자 그룹팀에는 따로 매니저가 배정되었다. 해서 현재 연습생 그룹에는 총 3명의 매니저가 배정된 셈이 되었다. 남자 데뷔조 관리 매니저 1명과 뮤지션 클래스 매니저 1명, 그리고 액터 클래스 매니저 1명이다. 그리고 이들을 총괄하는 실장이 있었는데, 이전 통합반을 관리하던 진 매니저가 정식으로 진급하여 직함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진 실장은 휴게실에서 가지고 온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새끼 매니저들이 올린 보고서를 살피는 중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각 연습생들의 레슨 진도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실력의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실력이 늘지는 않은 채 격자가 줄어든다면 문제겠지만, 상향 평준화가 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다만 문제는 연습생들의 체력이었다. 레슨의 시간 및 난이도가 부쩍 올라간 탓에 데뷔조 연습생들의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였다. 특히 메인보컬로 삼으려 했던 연습생의 경우 지금보다 더 무리하면 성대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의견이 보고서에 실려 있었다.

단순히 피지컬적인 문제가 아니라도, 체력이 부족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집중력 저하는 레슨의 효율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래 전에야 연습생들에게 데뷔의 성공을 미끼로 근성을 요구했다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연습생들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의미보다 트레이닝 시스템의 효율상 체력의 보존이 필수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서 무조건 피지컬의 소모를 요하는 레슨만 주구장창하기 보다는 곁가지로 다양한 교양 클래스를 더하고 있다.

예를 들면, 스피치와 악기 연주, 랭귀지 클래스 등을 통해 각 연습생들의 재능을 계발하여 향후 활동 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레슨이 이어지다보면 체력 소모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보컬 트레이닝이나 안무 트레이닝과 같이 체력 소모가 심한 레슨 시간을 상대적으로 줄이는 것이 중요했다.

“실장님?”

생각에 잠겨 있던 실장이 고개를 들자 뮤지션 클래스를 담당하던 매니저가 노크하고 있었다.

“왜?”

“저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난감한 얼굴을 하고 다가온 그가 말했다.

“시율이가 퇴사하고 싶답니다.”

“응?”

진 실장은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자신이 아는 시율이라면 슬기와 보민 못지 않게 독기 가득하고, 성공에 대한 열정이 꽤 강했던 아이였다. 게다가 자신보다 어린 경빈이나 채린, 시화 등을 잘 챙겨 여자 연습생들의 ‘허리 라인’에서 꽤 믿음직한 연습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언니 라인에 있는 여자 애들과 나이 차가 조금 있어서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나름 리더쉽도 가진 연습생,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퇴사를 원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왜?”

“이유는 저도 잘···.”

“안 물어봤어?”

“아뇨, 그, 물어보긴 했는데, 그냥 힘들어서 그렇다고 하니깐···.”

“아우, 진짜. 너는··· 너 이 새끼야. 그게 말이라도 하냐?”

“죄송합니다.”

“5년, 아니 3년 전이었으면 너 빳다행이었어. 세상 좋아진 걸 감사해라.”

“죄송합니다.”

“시율이 어딨어?”

“숙소로 갔습니다.”

“···그냥 가게 놔뒀어?”

“일단 힘들어 보이길래···.”

입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지려는 걸 억지로 참느라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진 실장의 얼굴을 새끼 매니저는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진 실장은 새끼 매니저를 대동하고 우선 연습실로 향했다. 시율에게 가기 전에 아이들을 단속할 요량이었다.

“애들 어딨어?”

“지금 레슨실을 데뷔조가 쓰고 있어서 아마 각자 개인실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진 실장은 가까운 개인실의 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작은 소음이 들리고 곧 문이 열렸다.

“실장님?”

진 실장을 보고 얼른 고개를 숙이는 이는 슬기였다.

“너 혼자야?”

진 실장의 물음에 슬기 뒤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는 채린이었다. 채린의 눈에 어린 눈물 자국을 보니 이미 다들 동요하고 있는 모양이다.

“뭐 들은 거 있어?”

슬기만 밖으로 데리고 나와 물으니, 슬기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시율이 자기 속 이야기를 잘 하지도 않고 힘들어도 힘든 티를 잘 내지 않는 아이여서 몰랐다고.

“들어가서 채린이나 달래. 그리고 너는 쓸데없는 생각 마. 알았지?”

슬기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개인실로 들어갔다.

다른 개인실에도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아이들을 단속한 뒤 나온 진 실장은 곧장 숙소로 향했다.

비밀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 진 실장은,

“윤시율!”

소리쳐 불렀다. 그러자 방에서 꼬물거리며 걸어나오던 시율이 실장을 보고 말없이 허리를 굽혔다.

“앉아봐.”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앞에 시율을 앉힌 실장은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

“말해 봐. 무슨 이유가 있으니까 그만두고 싶다고 한 거 아냐?”

“···힘들어서요.”

“내가 널 모를 것 같아? 너랑 나 1년을 같이 했다. 1년, 솔직히 한 사람을 알기에 충분히 긴 시간은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가 보통 사이냐? 너희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지냈던 나야. 니가 그냥 힘들다고 그만둘 리 없다는 거,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러니까 말해 봐. 무슨 문제인지.”

시율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고, 진 실장은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침묵이 이어지던 중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시율이었다.

“저 이제 19살이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시간이?”

“데뷔해서 활동할 시간이요.”

틀린 말은 아니라 진 실장도 바로 대꾸할 수는 없었다. 확실히 최근 아이돌 시장에서 19살이라면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었다.

“왜 시간이 없어? 니 나이 때 데뷔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바로 데뷔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 사실 그게 제일 큰 문제라 하겠다. 현재 회사의 방침상 데뷔조는 남자 그룹으로 정해졌고, 때문에 여자조는 무기한 보류된 상태라 봐도 무방했다. 남자 그룹이 데뷔하고 바로 여자조를 출격시킬 수도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 자체의 여력이 없다. 시율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시율이 가볍게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 아님을 깨달은 진 실장은 하아,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싸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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