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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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완벽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설명하면 흠이 없다는 이야기다.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외모, 완벽한 경기, 완벽한 솜씨, 완벽한 요리 등등. 나열하면 끝도 없이 나올 수 있다. 요컨대 ‘완벽’이란 수식어는 언제 어디에나 쓰일 수 있으나, 쓰임의 조건은 까다롭다.
왜냐하면 완벽해 보이는 그 무엇도, 가까이서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반드시 하나 이상의 흠이 발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세상에 100% 무결함의 완벽함이란 게 가능한가?
단언컨대 그것은 불가능이다.
“그러니 ‘완벽’이란 컨셉에 너무 매몰되지 마세요. 누구도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함을 기대하지도 않으니까.”
시계 바늘이 똑딱거리는 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조용한 회의실.
“단지 최대한 완벽에 가깝도록 만들어야죠. 100%는 안 되더라도 90%, 아니 95%, 99% 정도가 되도록 말이에요.”
콧김을 세게 내뿜기도 조심스러워 입을 반쯤 흘리고 숨을 흘린다.
“99%면 이미 100%에 준하는 거 아닐까요?”
“그렇게 최대한 노력하자는 의미입니다. 아시죠? 무슨 뜻인지?”
A&R 팀장은 서류를 툭툭 쳐서 정리한 뒤 일어섰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팀장을 배웅한 창모는 도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작곡팀 동료가 머리를 박박 긁으며 물었다.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형? 계속 듣고 있었는데도 이해가 안 되네.”
“결론은 무슨. 그냥 완벽한 곡을 만들란 소리였지.”
고개를 뒤로 최대한 꺾고 천장을 바라보는 창모. 흰색 천장이 꽤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완벽한 곡이란 게 무슨 의미냐는 거죠. 차트 1위할 곡을 만들라는 거예요, 아니면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음악을 만들라는 거예요?”
“만들라고 하면 만들 수는 있고?”
“못 만들죠. 만들 수 있었으면 제가 여기 있겠어요? 이미 BMA(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받은 트로피로 탑쌓기 놀이하면서 유유자적하고 있었겠죠.”
“···니가 아직 여유가 있나보다. 그런 농담이나 할 정도면. 난 지금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마찬가지거든요.”
두 사람은 말없이 회의실 시계 돌아가는 소리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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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이 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그 어떤 멋있는 옷이라도 옷을 착용한 사람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 자칫 외모지상주의적 발언이 될 수 있으나, 패션이라 함이 단지 옷 그 자체만으로 평가되지 않다는 것은 주지해야 한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이렇게 말했다.
“패션은 조화다.”
때문에 계절에 맞는 옷, 장소에 어울리는 옷이 나뉘는 것이고, 그 옷을 입는 모델에 따라 또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계절에 맞지 않으면, 장소에 어울리지 않으면, 그리고 그 옷을 걸친 사람이 옷과 맞지 않으면 패션은 완성될 수 없다는 뜻이다.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이야깁니다. 노래도 마찬가집니다. 계절은 물론이고, 노랫말이며, 퍼포먼스며 고려해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게다가 제 아무리 좋은 노래를 뽑아낸다 해도 막상 아이들이 소화를 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완벽이라는 컨셉에 대해 창모가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저런 사정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건 저희도 압니다.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소화를 못해 망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신인개발팀장이 A&R팀장의 눈짓을 받고 마이크를 잡았다.
“어떻게요?”
창모가 물으니 팀장은 힘을 주고 답했다.
“어떤 하드한 난이도의 노래라도 부를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킬 겁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창모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기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가요계에 가창력 논란 같은 건 생기지도 않았을 겁니다. 물론 연습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도 애들 실력은 들어봤으니 알지만, 그게 한 두 해 연습한다고 극복될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런데 제가 알기론 이번 해 데뷔가 목표 아니었나요?”
그러자 이번엔 A&R팀장이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건 일단 지난 회의 때 보류가 되었습니다. 우선은 컨셉에 맞게 아이들을 좀 더 육성시킨 후 데뷔하는 쪽으로요.”
시간은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뉘앙스였지만, 그런다고 걱정이 줄 리 없다.
“그래도 어렵습니다.”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겁니다. 저희들도요. 하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것도 크겠죠.”
시종일관 A&R팀장은 여유로운 자세로 창모의 반박들에 답했다.
“불가능이 무슨 뜻인지는 아시죠?”
“푸른 장미의 예전 꽃말이었다죠?”
“하아,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가장 상석에 앉은 대훈을 향해 뭔가 말해보려 했지만, 대훈은 A&R팀장에게 대답을 미뤘다.
“자, 일단 정리하죠. 이번 프로젝트는 모두 함께 진행하는 겁니다. 작곡팀, 안무팀, 그리고 신인개발팀 모두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작곡팀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들어도 감탄이 나올만한 곡이 나와줘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곡에 누가 봐도 헉소리 날 정도의 퍼포먼스가 섞여야 하고요. 좋은 곡과 멋있는 퍼포먼스에 뛰어난 아이돌이 3박자를 갖춰야 비로소 ‘완벽함’이라는 컨셉이 완성되는 겁니다.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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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고 있어요? 김 이사님?”
돌아보니 나윤이 또 생글생글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걸어올 때 일부러 소리 나지 않게 오는 거야?”
“아닌데? 네가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못 들은 게 아니었을까?”
단유는 냉장고를 가리켰다.
“내가 음료수를 고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는 거야?”
나윤이 고개를 쑥 내밀어 냉장고 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각기 다른 브랜드의 음료들을 콕콕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어떤 오렌지를 마실까? 이 오렌지를 마시고 빈 병을 여기 두면 가져다 줬던 사람이 되게 좋아하겠지? 아니면 이 오렌지를 마실까? 이 오렌지도 매일 가져다주는데 아마 이 오렌지 주스를 가져다주는 사람은 마음씨가 좋은 사람일 거야. 항상 유통기한이 넉넉한 음료수를 가져다주니까 부담 갖지 말란 뜻일지도 몰라. 아니면 이걸 마셔볼까? 유통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걸 가져다 넣는 사람은 분명히 부지런한 사람일 거야. 매일 아침마다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받아오는 게 분명해. 얼굴도 예쁠까?”
“···뭐 하는 거야?”
“네가 하고 있었을 생각. 아니야?”
“아닌데?”
“아니면 말고.”
“그런데 이 오렌지가 매일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
“지난번에 너랑 마셨던 오렌지 주스가 이 브랜드였거든? 기억 안 나?”
“브랜드를 보고 고르진 않았으니까.”
“아, 무심도 하여라. 가져다준 사람의 정성은 생각지도 않나 봐. 그 사람이 알면 되게 섭섭해할 거야.”
나윤은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연기를 하더니, 단유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하나 마셔도 돼?”
“마셔.”
“땡큐.”
똑딱이 뚜껑을 따고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들이키는 나윤을 바라보았다. 한 모금에 반병 분량이 사라졌다.
“갈증이 많이 났었나 봐.”
“아랫층에서 목 좀 풀고 왔거든. 오랜만에 발성 연습했더니 열이 많이 나네.”
“웬 발성 연습?”
“그냥 처음에는 발음 연습이나 하려고 했던 건데, 막상 개인 연습실에 들어가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서 간만에 노래 좀 몇 곡조 뽑았어. 나 정말 오랜만에 노래 부른 건데.”
“오랜만에?”
“마지막 무대가 4년인가 5년인가 됐어. 그 이후로는 노래방도 잘 안갔어.”
“왜?”
“노래부르기가 싫더라고. 괜히 초라해지는 느낌?”
이라고 하는 것치곤 목소리는 어둡지 않았다. 일부러 밝은 척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옛날 일이니까, 라는 식이었다.
“좁은 연습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 기억 나지?”
단유가 고개를 끄덕이자 싱긋 웃으며 단유의 팔을 툭툭 두드린다.
“그때도 너 덩치 꽤 컸었던 거 같은데, 그 좁은 연습실에 같이 있었네?”
단유는 얼굴이 달아오른다는 느낌에 얼른 음료수 병을 낚아챘다. 고개를 쳐들고 남은 음료수를 모두 입안으로 쏟아 넣었다. 다시 고개를 내렸을 때, 나윤은 장난기 많은 눈빛으로 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뭐하는데?”
“뭐하긴. 보다시피 음료수 마시려고 와 있었지.”
“그래? 난 또. 오다 보니까 회의실에서 무슨 회의 같은 거 하는 중인 거 같던데, 너만 나와 있으니까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단유는 휴게실 옆에 붙어 있는 회의실을 보며 말했다.
“아마 프로젝트 관련 관계자 회의일 거야.”
“넌 관계자 아냐?”
“실무 회의 같은 건데, 난 단지 재무이사일 뿐이니까.”
“니 입에서 ‘난 재무 이사’라는 말을 들으니까, 꽤 멋있다?”
“······.”
“한 번 더 해봐.”
“왜 그래? 민망하게.”
피식 웃던 나윤이 화제를 바꿨다.
“밥 먹자. 약속 있어?”
“아니.”
“그럼 나가자.”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빈 병을 분리수거용 통에 넣었다.
“스케줄 있냐고 안 물어보네?”
“있었으면 여기 오지 않았겠지.”
“학습 효과는 있구나.”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연습실을 나오던 연습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던 아이들이 단유와 나윤에게 인사했다.
“밥 먹으러 가나 봐요?”
나윤이 묻자, 근표가 고개를 씩씩하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같이 먹으러 갈래요?”
나윤의 제안에 아이들은 멈칫하며 우물쭈물했다. 그래도 되는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 듯했다.
“괜찮아요.”
아름이 대답했고, 나윤이
“같이 가요. 우리 이사님 돈 많아요.”
라고 재차 제안했다.
“나?”
“밥 사줄 수 있지? 아까워?”
단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럴 리가.”
“근데요, 있잖아요?”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경빈. 보민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러 입을 막았지만, 나윤은 생긋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말해봐요. 뭔데요?”
“그게요.”
우물쭈물거리며 단유의 눈치를 살피는데, 누구라도 뭘 묻고 싶은 지 알 수 있는 표정과 태도였다.
“우리 두 사람 무슨 관계냐고?”
“혹시나 해서요.”
세 명의 소녀는 물론, 세 명의 소년들도 은근히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이다.
“아무 관계 아니에요.”
라고 답하려는 단유의 입을 찰싹 때리며, 나윤이 대답했다.
“친한 사이?”
“친한 사이요?”
“네. 너무 친해서 대하기 어려운 사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대답이 무슨 뜻인지 몰라 소년과 소녀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나윤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내가 물어봐도 돼요?”
“네? 네.”
“연습생들이잖아요? 연습생 생활, 할만해요?”
어렵지 않은 질문인데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미루느라 눈치 싸움이 펼쳐졌다.
“괴롭히는 사람은 없어요?”
재차 이어진 질문에 아름이 나서서 답했다.
“네.”
단유는 점원을 불러 메뉴를 주문했다. 이 식당에는 점심 때 파는 메뉴가 하나뿐이어서 고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구나. 나 때는 괴롭히는 사람 많았는데.”
“누구였는데요?”
이야기꾼이라도 된 듯 나윤이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연습생들 관리하던 실장님. 사람은 참 좋은데, 괴롭히기도 많이 해서 되게 미워했었거든요. 성격은 좋았어요. 밖에서 그냥 만나면 사람 좋구나 생각할 정도로 인상도 좋고, 다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연습실 안에서만 사람이 조금 변하는 것 같더라고. 지금 실장님은 안 그러시죠?”
“저희도 조금 괴로울 때가 있었어요.”
보민이 손뼉을 치며 끼어들었다. 나윤이 시선을 맞춰주자 보민도 나윤의 표정을 닮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지금은 덜한데 예전에 다이어트 시킨다고 체중계 들고 오실 때는 좀 괴롭다는 생각도 했어요, 솔직히. 언니도 그랬잖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아름의 대답에 깊이 공감한다는 듯 나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연습생 때는. 그래도 괴로운 건 괴로운 거고.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몸무게 잴 때는 정말 괴롭더라니까.”
“저희는 이틀에 한 번씩 재고 그랬어요.”
이번에는 경빈이 고자질을 했다.
“이틀에 한 번?”
“지난 겨울에요.”
“힘들었겠다.”
“진짜 그때는···말도 못 해요.”
갑자기 다이어트라는 주제로 공감대를 형성한 여자들의 이야기에 끼지 못한 단유와 소년들은 말없이 가게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메뉴가 나올 때쯤에는 어느새 선배와의 대담이라는 형식으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데 다양한 소재와 주제들로 이루어져 소년들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옛 기억 속 나윤이 떠올랐다. 데뷔에 목말랐던 소녀. 우연한 기회로 데뷔에 이르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와 무관하게 벌어진 잡음들로 마음고생하던 나윤. 데뷔 후 평탄하게 성공가도를 달릴 것 같았으나 결국엔 혼자가 되고 말았던 나윤. 그 외로움을 제대로 달래주지 못했던 자신과, 스스로 일어나 보겠다고 마음을 다잡던 소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 소녀는 확실히 성장했음이 분명하다. 어린 연습생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끌어들여 리드하는 나윤에게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