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901화 (901/956)

내부자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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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이 옷을 갈아입고 연습실에 들어서니 웬일로 남자 애들 셋이 먼저 와서 청소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누나.”

“왔어요?”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에게 손을 살짝 들어보이고는 왜 이렇게 일찍 온 거냐고 물었다.

“아, 그게요.”

바닥을 닦던 대걸레를 옆에 끼고 머리를 긁던 연준이 대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데 다른 한쪽에서 기자재들을 정리하던 근표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숙소 분위기가 조금 그래서요.”

“숙소가?”

“데뷔조가 정해졌거든요.”

‘데뷔조’가 정해졌다는 말에 보민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정해졌어?”

“응. 그래서 지금 남자 숙소 분위기가 예민해.”

자신과 상관없는 세상의 이야기라도 하는 듯 무심하게 말하는 근표. 하지만 그 속이 정말 편안할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데뷔조가 정해졌으면 분위기가 좋아야 하는 거 아냐?”

“그게···.”

연준이 말이 없는 두 형을 쳐다보며 말을 얼버무렸다.

****

데뷔조가 남자 조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만 나왔을 뿐 확정 멤버는 발표되지 않았었다. 이유는 회사에서 데뷔시킬 아이돌의 컨셉을 정확히 잡지 못한 탓이었다.

데뷔 아이돌의 컨셉을 정한다는 건 의외로 어려운 문제였다. 현 가요계에서 대세를 이루는 컨셉을 무조건적으로 따라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컨셉을 지향한다한들 멤버들이 그 컨셉을 소화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니까. 반대로 현재 소속된 멤버들의 구성에서 소화할 수 있는 컨셉을 지정해도 그게 만약 현 가요계에 먹힐지 확신할 수 없다면 이 역시 문제가 된다.

때문에 지난 봄 내내 신인개발팀과 A&R팀은 매일매일이 회의의 연속이었다. 정확히는 예전부터 이어지던 회의였지만, ‘웅녀 프로젝트’ 발표 후 더욱 심화된 회의였다.

“현재 톱 아이돌로 꼽히는 그룹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두운 회의실 한 벽을 비추는 프로젝트의 불빛 아래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한 남자 아이돌 그룹 여럿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역시 특화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데뷔 때부터 전 멤버들에게 특화된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 캐릭터를 통해 대중의 호기심과 호응을 이끄는 전략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유효한 전략이라고 보입니다.”

다시 한번 화면이 전환되고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화면에 나타난 세 그룹의 멤버들은 모두 댄스에 특화된 멤버로서 기존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일반적인 댄스 실력을 상회한다는 이미지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여느 전문 댄스팀의 댄서들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데뷔 초기부터 마케팅과 홍보, 그리고 각종 방송에서 묘사되는 형태에 따라 이미지를 특화시킴으로서 성공적으로 부각된 캐릭터들이라는 평가입니다.”

이번엔 다른 남자 아이돌들이 화면에 등장했다.

“앞서의 멤버들이 부여받은 이미지는 분명 효과적이었습니다. 대중들이 아이돌에게 바라는 특정 이미지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의 캐릭터였고 때문에 성공적일 수 있었던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보다 더 전문화된 캐릭터를 요구합니다. 이는 아이돌 그룹 전반에 걸친 상향 평준화의 영향도 있습니다. 해서 지금은 앞에 보이는 아이돌들이 주목받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앞의 세 아이돌 멤버들은 모두 고차원적 창작 안무가 가능한 멤버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자기 타이틀의 안무를 직접 창작하였다고 합니다.”

“퍼포먼스 전문의 컨셉을 밀자는 건가요?”

“아닙니다. 지금은 좀 더 진화된 컨셉을 밀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멤버들은 이전에 소개된 아이들보다 훨씬 유명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들은 직접 자작곡을 쓰고 프로듀싱까지 해서 유명해진 아이들입니다. 대중은 이들이 쓴 자작곡으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수익을 버는지에 관심을 보이지만, 동시에 다재다능한 아이돌이라는 이름표에 호감을 표시합니다. 즉, 현재의 아이돌은 단순히 춤 잘추고 노래 잘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깁니다. 스스로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돌, 특히 그 컨텐츠가 기존에 없던 신선한 컨텐츠일 때 더욱 열광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말하자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의 그룹이라는 컨셉이죠?”

“아이돌에 특화된 재능입니다. 공부를 잘한다거나,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하는 정도의 재능은 아이돌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하니까요. 아, 혹시 앨범 재킷 정도를 스스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면 모를까. 하지만 그보다는 댄스나 작곡 등에 특화된 아이돌의 컨셉이 대중에게 더 먹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좋은 분석입니다. 동의하는 부분이고요. 하지만 문제가 있네요.”

잘 차려입고 멋있는 포즈를 한껏 취한 채로 있는 아이돌 멤버들의 사진 옆에 우두커니 서서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대리를 보며 팀장은 들고있던 펜의 꼭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우리 애들 중에 그런 재능을 가진 애가 있던가?”

A&R 팀의 대리는 팀장의 반대편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신인개발팀 직원들을 바라보며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답은 바로 나오질 않았다.

“있어요?”

팀장이 건너편을 바라보며 묻자, 신인개발팀의 대리가 뒤늦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없다네?”

“······.”

“팀장님.”

이번에는 건너편에서 조용히 프리젠테이션을 지켜보던 신인개발팀장을 불렀다.

“네?”

A&R팀장은 엄지로 찌푸린 미간을 살살 문지르며 물었다.

“가능성이 있어요?”

신인개발팀장은 A&R팀장보다 경력이 낮은 후배였다. 이곳에서야 함께 입사한 동기지만, 과거의 경력을 존중해주는 의미로 존대하고 있던 상황. 때문에 신인개발팀장은 대답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문제인 것은 질문 그 자체였다. 사실 아이들의 춤이나 노래 실력에 대한 평가는 기존의 월말 평가로 꾸준히 체크하고 있었으니 잘 알지만, 그 아이들이 꽃피울 미래의 가능성을 어떻게 점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것은 평가 대상도 아니었고, 그것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줄 여유도 없었는데.

하지만 여기서 모른다고 답하면 ‘무능한’이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요, 아는 척이라도 하기엔 근거가 없다. 때문에 팀장은 시선을 피하는 자신의 팀원들을 빠르게 훑은 뒤 A&R팀장이 ‘원하는’ 답을 주었다.

“당장은 무리입니다.”

“당장은?”

되묻는 질문에 팀장은 어금니를 한번 강하게 물었다가 답했다.

“올해 데뷔를 목표로 하는 상황에서 불확실한 가능성에 투자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깁니다.”

‘불확실’에 강세를 주어 답하니 A&R팀장은 고개를 한번 주억거리고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네.”

“전에 말했을 텐데? 이상만 잔뜩 키워서 말하지 말고 현실적인 제안을 하라고. 그걸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하나? 다른 회사들은 바보라서 그런 걸 안 해? 없다잖아? 그런 애들이?”

“저기 여기 있는 이 친구도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는 자신이 자작곡을 만들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작곡을 하면서 재능을 찾았다고···.”

“찾았다고 누가 그래? 본인이? 그걸 믿어?”

“······.”

“회사에서 인터뷰 때 쓸 말 다 골라주고 찾아주는 거 몰라서 순진하게 그래? 너 혹시 우리 애들 나중에 인터뷰할 때 나몰라라 하려고 미리 밑밥 까는 거야? 응?”

“아닙니다.”

“아닌데 왜 그래? 머리가 안 돌아가? 며칠 안 재웠다고 머리가 멈춰? 그냥 푹 쉴래? 자상한 팀장 노릇 좀 해 줄까?”

“아닙니다.”

팀장이 다그치기를 그만하고 가만히 노려보고 있자 앞에 선 발표자는 물론 주위에 앉은 사람들까지 가시방석에 앉은 것마냥 불편함을 느꼈지만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팀장은 앞에 놓인 자료철을 찢어서 구겼다.

“···다음.”

회의실 불이 켜지고 대리는 책상에 둘러앉은 팀원들과 신인개발팀에게 허리 숙여 사죄한 후, 어깨를 움츠린 채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누굽니까?”

조금 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팀장이 부르자, 허겁지겁 나온 또 다른 팀원이 창백한 얼굴로 USB를 노트북에 끼우고 발표를 준비했다.

“부탁인데 제발 창의적인 발표 좀 합시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하면서 사람 열불 채이게 하지 말고. 네?”

불이 꺼진 관계로 발표자의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린 땀은 들키지 않았다.

A&R팀장의 짜증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본인이 간부 회의에 들어가면 지금 앞에 나선 이들 못지 않게 구박을 받아야 했으니까.

“아직도 컨셉 안 잡혔어요?”

“우리 데뷔 언제까지 하기로 했었는지 잊었어요?”

“처음에 자신 있다고 소리치지 않았어요?”

팀장도, 팀원도 멘탈이 가루가 될 지경이 되도록 몰렸던, 고된 봄이었다.

그리고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 즈음, 간부회의에서 A&R팀장의 확정 발표가 있었다.

“완벽한 아이돌입니다.”

간부회의에서 팀장이 그렇게 발표를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시큰둥했다.

“전에 하나 물어봅시다. 지금 시장에 있는 아이돌들 중에 완벽하지 않은 아이돌은 몇 팀이나 됩니까?”

비꼬는 듯한 질문이었으나 팀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냥 완벽한 아이돌이 아닙니다. 그전에 앞서, 우리 회사의 모토가 뭐였습니까? 회사와 아티스트 간의 조화였잖습니까? 회사는 아티스트를 완벽히 지원하고, 아티스트는 회사를 완벽히 신뢰하는, 그런 회사를 만들자는 것. 저는 그 모토가 마음에 들어 이 회사에 들어오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모토가 바로 우리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장은 상석에 앉은 대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발표를 이어나갔다.

“다른 시장의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간단히 핸드폰을 예로 들어보죠. 예전에는 이 핸드폰을 만들던 메이커가 여럿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물론 아직도 세계 여러 곳에 메이커들이 있습니다만, 시장에서 인정하는 메이커는 단 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각 메이커의 제품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제품 자체로만 따지면 출시된 시점에서 가장 완벽한 제품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동시에 각 제품들은 메이커 사의 특성을 100% 드러내며 완벽히 구별되는 차별성을 보입니다. 요컨대 이 제품은 이래서 이 회사의 제품이라는 게 소비자들에게 나타난다는 이야깁니다.”

핸드폰을 예로 들었더니 사람들의 주목도가 다소 올라갔다. 속으로 한숨을 쉬는 팀장. 머릿속으로 다음에 이어질 말들을 열심히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이돌 시장도 살펴보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3대 기획사라 일컬어지는 곳의 아이돌을 살펴보면 각 회사마다의 차별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사실 저희보다 대중들이 더 민감하게 그 부분을 캐치해냅니다. 때문에 저는 저희 아이돌 역시 그런 점이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 아이돌은 D&D엔터의 아이돌이라는 특성이 부각되어야 한다는 것. 그게 저희의 주 컨셉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요?”

“네, 물론 여기까지 들으시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현재 아이돌 시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을 제외하면 다들 비슷비슷하거나 혹은 이도저도 아닌 성격의 양산형 아이돌들만 나오는 실정이니까요. 포인트는 바로 이겁니다. 양산형 아이돌. 저희는 절대 양산형이 아니라는 것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어떻게요?”

“처음에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거 기억하십니까? 아티스트의 성공은 70% 이상은 회사의 몫이라고. 저는 90%까지 끌어올려볼까 합니다. 철저히 회사의 방침에 따라 완벽히 통제된 아이돌을 만드는 것입니다.”

“통제요?”

“통제란 단어에 부정적일 수 있겠지만,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그만큼 완벽한 육성계획에 따라 나온 아이돌이라고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완벽한 군무, 완벽한 가창, 거기에 완벽에 가까운 재담까지 겸비한 아이돌. 어중간한 실력이라 적당히 묻혀가는 멤버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게다가 저희 회사는 조건이 좋지 않습니까? 뛰어난 안무팀과 작곡팀을 보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경영본부장이 딴지를 걸었다.

“그건 다른 대형 기획사도 비슷하지 않나요?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저희 회사보다 더 좋은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말이죠.”

“감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신생입니다. 한 번의 데뷔로 가요계 최정상을 차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아무런 브랜드 파워도 가지지 못한 회사의 아이돌이 데뷔 직후 최정상으로 올라간 사례는 없을뿐더러, 올라가더라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대신 저희는 그런 대형기획사의 아이돌들과 유사한 위치에 가장 빠르게 근접할 아이돌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팀장의 설명에 대훈이 마이크를 잡았다.

“좋습니다. 현실이라 하니 감안하죠.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설명으로는 처음의 취지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그리고, 그 완벽함이라는 것도 과연 어떻게 추구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고요.”

“때문에 부탁드리는 것은, 데뷔를 늦추기를 조심스럽게 제의하고자 합니다.”

“그건···.”

“지금부터 새로 커리큘럼을 짜야 합니다. 데뷔조를 확정하고 이 데뷔조를 완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 팀에서 제시한 기준에 적합하도록 연마시켜야 합니다. 어중간해서는 어떤 컨셉을 밀더라도 성공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작곡팀과 안무팀에서 저희를 많이 지원해주셔야 합니다.”

회의 결과, 대훈은 A&R팀장의 의견을 존중해주자는 다수결에 따르게 되었다. 이로서 A&R팀장은 전보다 더 큰 권한으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데뷔조 멤버가 확정되었다.

기존의 남자 연습생 6명에서 한 명이 빠진 5명으로 최종 확정. 그리고 그 5명은 다시 새로운 커리큘럼에 따라 연습을 받게 되었으며, 작곡팀은 데뷔까지 정식 음원으로 채택될 수 있는 곡을 6곡 이상 작곡하도록 권유받았으며, 안무팀은 각 곡에 대한 안무를 빠르게 창작하여 연습생들을 훈련시켜야 했다. 곡과 안무는 A&R팀의 감수 결과에 따라 보류 혹은 철회될 수 있으며, 만약 기일 내에 합격점을 받는 곡 혹은 안무가 창작될 시 보너스가 지급될 수 있도록 협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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