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96화 (896/956)

고난의 행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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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작은 연습생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통합반이라는 이름으로 남녀로만 구분하여 나뉘었던 것을, 이제는 뮤지션 그룹과 액터 그룹으로 세분하여 반을 편성하게 되었다. 즉, 남자 뮤지션, 여자 뮤지션, 남자 액터, 여자 액터로 반을 편성한 것이다. 다만 남자와 여자 액터 그룹은 합동 클래스로 수업을 동시에 받는 반면, 뮤지션은 남녀 클래스를 구분하여 레슨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기존의 남자 A반이 사용하던 연습실은 액터 클래스의 전용 공간으로 이용되고, 여자 B반이 사용하던 연습실은 뮤지션 클래스의 남녀 그룹이 각각 허락된 시간에 사용하도록 조정되었다.

뮤지션 클래스는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차피 통합반 때부터 남녀로 구분했었고, 뮤지션 클래스로 재편된 뒤에는 이전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레슨을 위해 보컬, 안무, 거기에 교양까지 추가하여 커리큘럼을 작성하였기에 서로 부딪힐 일도 없었고, 적당히 공간을 나눠쓰면서 연습을 진행시킬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반면 액터 클래스는 남자 연습생과 여자 연습생을 한 공간에 두고 함께 레슨을 받게끔 하면서 약간의 마찰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마찰이라 표현했으나, ‘미연에 방지했어야 할 불의의 사고’라고 표현해야 옳겠다.

그러나 다행인지 재편 이후 한 달에 접어든 클래스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조금 서먹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트레이너와 매니저들이 군기를 확실히 잡은 탓인지 아이들은 다른 쪽으로 눈돌릴 틈이 없었고 레슨에 따라가기 바빴던 나머지 젊은 혈기 정도는 가뿐히 억누를 수 있었다.

정작 문제는 뮤지션 클래스에서 나왔다.

****

“올해 D&D엔터테인먼트의 첫 아이돌그룹을 런칭하기로 했다.”

“우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반짝이는 아이들. 남들이야 2년, 3년, 길게는 5년 넘게도 한다지만 실제로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데뷔를 기다리는 일은, 아무리 들어오기 전에 각오를 했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매니저의 발표에 흥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진짜 데뷔하는 거야?”

“와, 나 심장 떨려.”

발표를 위해 섰던 매니저는 안중에도 없이 들떠서 떠들기 시작하는 아이들. 매니저는 헛기침으로 주목을 끌었다.

“흠흠, 아직 말 안 끝났다?”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매니저에게로 향하고, 매니저는 그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쳐가며 반응을 즐기다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 월평 평가들을 모두 종합해서 판단한 결과, 데뷔를 준비시켜도 문제가 없으리란 평가를 내렸고, 그래서 다음 달부터 데뷔 멤버들은 특별한 커리큘럼에 따라 준비를 하게 된다. 아마 지금까지보다 더 힘들고 더 가혹할 것이라 예상해도 충분할 거다.”

얼마나 힘들든, 얼마나 가혹하든, 그것이 데뷔라는 과실로 이어진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자신이 있다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 앞에서 매니저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데뷔 예정인 이들은 데뷔 보류 멤버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포기하는 멤버 혹은 수준 미달로 탈락하는 멤버가 생길 수도 있을 거다.”

계속된 엄포에 연습생들은 조금씩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불현 듯 매니저의 발언에서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그러나 매니저의 이야기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만약 어떤 사유로 데뷔 예정 멤버의 탈락이 결정되면, 즉시 보류된 멤버들 중에서 충원하는 게 원칙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 인원을 추가 모집하여 충원할 수도 있다. 즉 데뷔 멤버는 데뷔 전까지 매우 가변적으로 운용될 예정이고, 때에 따라서는 데뷔일을 늦추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즉, 회사 운영 방침에 따라 차후 여러 가지가 변경될 소지가 있음이고, 그러니 혹시라도 데뷔 예정인 이들도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길 바란다. 이상.”

아이들은 좀 전과 달리 떠들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떠도는 질문들을 입 밖으로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궁리하던 중, 매니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질문 있는 사람?”

“실장님!”

“응.”

“저희 모두 데뷔하는 건 아닌가요?”

매니저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려 보이며 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마음 같아서는 그냥 너희들 모두를 데뷔시키고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가장 큰 문제는 너희들의 실력이 천차만별이고 일부는 좀 더 연습을 해야만 하는 이들도 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회사의 문젠데, 사실 이건 너희들이 알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알아두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이야기해줄게. 까놓고 말해서,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투자되는 돈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런데 데뷔를 위해서 특별한 커리큘럼을 짜고 거기에 신곡과 앨범, 의상과 인력 등을 추가로 조직한다면 어마어마한 경비의 소요가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돈이 많이 든다는 소리고,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돈은 더 들어간다는 이야기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 그렇게 가난한 회사는 아니야. 이 정도 설비의 연습실을 갖추고 자체적으로 강사진을 운영할 정도의 회사는 많지 않다는 거, 너희도 대충은 알거 아냐? 하지만 그것과 데뷔를 위한 투자는 또 다른 거니까. 게다가 시장의 트렌드도 고려하면 현실적인 제안과 타협해야 하는 거고. 그런 이유로 너희 모두의 데뷔는 어렵다는 결정이다.”

“그럼 데뷔조는 누군데요?”

매니저는 앞에 앉은 아이들의 얼굴에 떠오른 조바심을 눈치챘다. 매니저로서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만, 역시 매니저로서 그들을 통제해야 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위에서 결정한 데뷔 그룹은···.”

말끝을 늘리는 매니저. 가장 중요한 발표임을 직감한 아이들이 숨 쉬는 것도 잊은 것마냥 소리를 죽이고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일단 보이그룹으로 결정되었다.”

****

“남자 아이돌 그룹이요?”

단유가 물으니 신인개발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시장 수익성을 고려하면 남자 아이돌이 여자 아이돌보다 좋다는 게 크게 작용했어요. 하지만 그보다도 아이들의 실력이라든가 발전 속도 등을 고려해볼 때, 여자 아이들보다는 남자 아이들이 훨씬 좋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실제로 지난 월평 때도 남자 아이들이 평균 점수가 높았고요.”

“그런가요. 여자 연습생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는데요?”

“어쩔 수 없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두 그룹을 모두 데뷔시킨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한 그룹만 전폭 지원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니까요.”

“이해합니다.”

시은이라는 가수 한 명을 지원하기 위해서 각 부서에 비상이 걸렸던 것이며, 몇몇 부서에서는 지원요청까지 들어올 정도였던 상황을 며칠 전까지 지켜 봐왔기에, 단유는 팀장의 말을 십분 이해했다.

“대표님도 꽤 기대를 많이 하고 계시니까 결코 실패는 없어야 하죠. 그러니 지금부터 데뷔 때까지 거의 죽을 힘으로 달려야 할 상황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저희 팀원들, 아마 제대로 잠도 못 잘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저희가 좋은 성과 내면, 부디 저희 쪽에 보너스 좀 많이 몰아주세요. 아시죠? 원래 신인개발팀이 가장 일 많이 하는 거?”

“팀장님 왜 그러세요? 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으려고 했는데, 신인개발팀보다 저희 A&R 팀이 더 고생하는 거 몰라서 그러세요?”

“듣고 있었어? 에이, 그쪽 고생하는 거 잘 알지. 하지만 신인 그룹 데뷔잖아? 애들 한명 한명을 갈고 닦아야 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신경 써야 하는지 자기도 알거 아냐?”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도 섭섭합니다. 컨셉부터 곡, 안무 다 저희가 준비하는 겁니다?”

“두 분 다 잘 알겠습니다. 굳이 그렇게 생색내지 않으셔도, 성공만 한다면 충분히 보너스는 지급될 겁니다. 하지만 두 분 다 잠깐 착각하시는 게 있는데, 보너스 지급 결정은 제가 내리는 게 아니라 대표님이 하시는 겁니다.”

“알죠, 그런데 보너스 금액 산정은 이사님이 하시잖습니까? 그러니까 잘 부탁드린다는 얘기죠. 보상이 클수록 의욕도 커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충분히 고려하죠. 그런데 지금 보너스를 논의하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김칫국 마시지 말란 말이시죠? 하하, 압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 표명입니다.”

단유는 어색하지 않게 웃음을 지으며 화답했다.

“기대하겠습니다.”

“근데, 팀장님.”

“응?”

“아까 말입니다, 김 이사님한테 너무 들이대신 거 아닙니까?”

“그렇게 보였어?”

“네.”

팀장은 멋쩍게 턱을 긁으며 침음을 흘리다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내가 좀 경박했던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 나 참. 원래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닌데, 이상하게 김 이사님 앞에서는 좀 그렇게 되네. 솔직히 어쩔 수 없잖아? 이 회사의 실소유주라는 말이 있는데.”

“저도 들었는데요, 그거. 그 소문 진짭니까?”

“거의 99%는 확실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나중에 주식회사로 변경되면 명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김 이사님이 이게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공 이사님 알지? 공 이사님이 원래 청담에서 잘 나가는 자산관리 센터장이었다는 건 들었지? 그런데 그 공 이사님이 관리하던 VIP가 바로 김 이사님이었다는 말이 있어.”

“정말요?”

“나도 건너건너 들었지만, 꽤 신빙성이 있다나 봐.”

“잠깐, 그럼 지금 대표님은요?”

“지금 대표님이 뭐?”

“아니, 김 이사님은 뭐하러 직접 대표직을 안 맡고 지금 대표님을 세웠냐는 거죠?”

“그거야 둘 사이의 문제니까 모르지. 하지만 바지사장 같은 건 아닌 거 같애. 지금 회사 돌아가는 걸 보면 그렇잖아? 대표님의 권한에 일절 손대지 않으시고, 오직 자기 일만 하시잖아?”

“눈 가림 같은 건 아니고요?”

“재무팀 애들 이야기만 들어도 딱 답이 나오는데 눈가림은 무슨. 김 이사님이 장부 한번 뒤지고, 지난 회기 분까지 모두 훑은 뒤로 재무팀 애들이 딴 눈을 못 판다잖아? 보통 FM이 아니라고.”

“어쨌든, 김 이사님한테 잘 보이는 게 중요하단 말씀이시네요?”

“내 생각은 그래. 아직은 김 이사님이 자기 라인을 만드는 모습은 없지만, 재무 이사직을 맡은 거며 지난번에 회사 내부 사정 파악을 핑계로 감찰 비슷하게 돌아다녔던 거며···. 정황을 봐서는 슬슬 자기 라인을 만들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 아직은 간만 보는 중이시겠지만, 이럴 때 잘 보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은 거지.”

“그렇군요.”

“그러니까 자네도 한눈 팔지 말고 내 뒤만 잘 따라 와.”

“아유, 무슨···제가 한눈을 판다고.”

팀장과 팀원의 소소하고 다정한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하지만 단유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회사 곳곳에서 발생하는 중이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직장 상사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는 경우는 회사가 성장할 분위기를 탔을 때 잘 나타난다. 다시 말해, D&D 엔터테인먼트는 순항중이라는 소리다.

****

“실적만 나온다면 금상첨화겠지요.”

대훈은 결제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

“지난 분기와 비교할 것도 없이, 지난해 전부를 합쳐도 이달 수익에 못 미칠 정도라니, 확실히 이 바닥은 성공이 전부고, 결과가 모든 것을 설명해요.”

소파에 앉아서 대훈을 기다리던 단유는 그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네요. 사원들의 분위기도 한층 업이 된 느낌이고요.”

“그렇게 느껴지죠?”

대훈은 털털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걸이에 걸린 감색 코트를 집어 손에 들고 나갈 준비를 하는 대훈을 보며 단유도 몸을 일으켰다.

“올여름 전까지 신입 그룹 데뷔만 성공적으로 이뤄낸다면 정말로 우리 회사, 성공적으로 자리 매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충분히 성공적입니다.”

겨울 동안 나윤을 비롯해 여러 명을 영입하는데 성공한 D&D 엔터는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소소하게 수익을 올리는 중이었다. 겉으로야 크지 않아 보이는 움직임이지만, 재무상으로 확연히 플러스가 늘어나는 중이니 단유로서는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지금은, 비유를 하자면 비수기에요. 방송계도 4월이 되어야 본격적인 개편에 들어가거든요? 그 주기에 맞춰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지금은 단지 준비 기간에 불과해요. 그리고 지금 제대로 준비해서 들어가야 올해가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는 거고. 그러니 지금 당장의 실적에 희희낙락할 순 없어요. 기다려봐요. 4월 개편 후 어떻게 달라지나.”

“기대해 보겠습니다.”

단유의 옆에 선 대훈이 단유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게 다 김 이사님 덕분입니다.”

“제가 뭘요.”

“김 이사님이 곁에서 도와주신 덕분이죠.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빈말이라도 고맙습니다.”

“빈말이라뇨? 이거 참, 진심을 몰라주시니 섭섭하네요. 안 되겠어요. 제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저녁 성대하게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거꾸로 된 거 아닌가요? 제가 대표님을 대접해야 하는 거 같은데?”

“그런 건 일일이 따지지 말자고요. 제가 기분이 좋아서 대접하고 싶다는데 누가 말려요?”

대훈이 앞서 대표실의 문을 열고는 단유를 향해 손짓했다. 단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열린 문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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