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별에서 왔니(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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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아니라 한여름 타들어가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느낌으로, 입술이 바싹 말라가는 아름이었다. 햇볕을 피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걸으니 흡사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걸음이 무겁다.
“왜 그래요?”
“네?”
“죄지은 사람 마냥.”
‘죄’. 아름은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과연 나는 죄를 지었던가? 말도 안돼.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한 게 없잖아?
아침에 일어나 지금에 이르는 동안 입을 열고 뱉었던 말이 무엇 무엇이었는지 모조리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은 몇 마디 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시화와 함께 있는 동안 나눴던 짧은 대화 뿐이었으니, 그 대화를 복기해도 실수를 했거나 혹은 죄책감을 느낄 만한 대화는 없었다.
그런데, 왜 잘못했다는 느낌이지?
“쓰레기 찾고 있었던 거예요.”
“자기 몫은 다한 거 같은데요?”
단유가 손가락으로 아름의 손에 들린 묵직한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아름은 자신의 것과 정반대로 텅 비어있는 단유의 비닐봉지를 눈짓하며 되물었다.
“이사님은 쓰레기 안 주우세요?”
“누가 너무 열심히 주우니까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은 주울 게 없더군요.”
“잘 찾아보면 있을 거예요.”
“네, 그런 게 있는지 잘 보는 중이에요.”
하지만 아름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왠지 단유가 쓰레기 대신 자신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만 같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을까? 버스에서 내렸을 때부터? 시화와 같이 걷고 있을 때? 슬기가 자신을 쳐다보던 것도 보았을까?
무심코 슬기 쪽을 바라보니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지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어깨춤을 추는 슬기와 그 무리들이 눈에 담겼다.
“부러워요?”
“네? ···뭐가요?”
단유는 다 안다는 듯 턱으로 슬기네를 가리켰다.
“아닌데요. 부러워할 게 뭐 있어요?”
“그래요? 지금 저길 바라보는 눈빛이 어쩐지 외롭게 느껴져서 물어본 거예요.”
“···조용히 걷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제부터 조용히 걷죠. 쓰레기도 찾아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닫는 단유의 모습이 정말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알면서 모른 척. 일부러 자신을 곯리려 하는 것이야. 내가 무슨 장난감이야? 이사면 다야?
그 뒤로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단유는 여전히 빈 봉지를 손가락에 낀 채로 걷기만 할 뿐.
신경이 쓰였다.
“왜 쓰레기 안 주우세요?”
“안 보이네요. 제 눈에는.”
아름은 뭐라도 찾을 심산으로 길 옆을 샅샅이 훑어보지만 단유의 말마따나 앞서 걷던 이들이 모두 주워버린 모양인지 좀처럼 쓰레기랄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단유가 옆에 있는 게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이사님이 여기 계시면 안 되지 않아요?”
“왜요?”
“그러니까···, 혹시 이상한 소문이 날 수도 있잖아요.”
“무슨 소문이요?”
“회사 연습생이랑 무슨 관계 아니냐는 소문이요.”
당돌하다 여기진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단유에게는 조금 강하게 말해야 그를 당황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이 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네?”
“만약 아름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회사 연습생이랑 이상한 관계 아니냐는 소문이 난들, 그게 사실이 되려면 연습생인 아름 씨를 위해 제가 무슨 혜택이라도 줘야 할 텐데, 제가 아름 씨에게 어떤 혜택도 제공하지 않는다면 아름 씨와 저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별 의심을 안하게 될 거 같은데요?”
“예?”
“두 가지 경우로 볼 수 있죠. 저랑 아름 씨가 이타적인 계산 없이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제가 아름 씨에게 그 어떤 종류의 물질적 혜택 혹은 후원을 하지 않더라도 아름 씨는 불만을 갖지 않을 테고 저 역시 굳이 아름 씨에게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으니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갈 거래는 없을 겁니다. 거래 없는 순수한 관계라면 다른 사람들이 저나 아름 씨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어지죠.”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경우는 언제인가.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경우, 혹은 자신의 가치관이 침범당하는 경우일 테다. 요컨대 타인의 이득으로 인해 자신의 손해가 가시화되는 경우라든가, 타인이 이득을 얻게 되는 과정이 온당치 못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그럴 때 사람들은 상대의 단점을 꼬집거나, 실패를 비웃거나, 혹은 그냥 상대가 ‘나쁘다’는 것을 강조하려 든다. 그것으로 자신의 침해된 권리를 다수의 동조를 통해 회복하거나, 온당한 ‘가치관’을 수복하여 자신이 ‘바른’ 사람임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이다.
“만약 아름 씨와 제가 실제로 암묵적인 거래를 하고 서로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관계라면, 그때는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는 거지만 우린 그런 관계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린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오해받을 수 있잖아요?”
“글쎄요? 앞서 말한 것처럼 거래가 있다면 문제겠지만, 전 아름 씨에게 그런 거래를 제안할 마음이 없고, 설령 아름 씨가 제게 거래를 제안해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습니다. 만약 거래 없는 관계라면 오해가 아니라 사실이니 역시 문제가 없지만, 우린 그런 관계가 아니잖아요? 이렇게 함께 걸으면 혹시 의심을 살 순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아무 관계도 아니었구나, 밝혀질 일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아름은 단유가 너무 자기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너무 세상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야기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난다는 말 있잖아요? 아니 그것보다 이사님은 평판은 신경 쓰지 않으세요? 회사 직원들에게 연습생들에게 찝적대는 이사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절 걱정해주시는 줄 몰랐네요.”
“이사님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절 걱정하는 거예요. 나중에 데뷔했을 때 이상한 소문이 돌면 안 되잖아요?”
아름의 말에 단유는 물끄러미 아름을 쳐다보았다. 아름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단유는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데뷔할 수 있어요?”
“······.”
단유의 물음에 아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데뷔했을 때,를 단정적으로 말씀하시길래 여쭤본 거예요. 데뷔할 수 있어요?”
“······.”
“회사의 입장에서야 모든 연습생들이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모습이 보기 좋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좀 어렵지 않을까요? 지난 월평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 시은 씨의 뮤직비디오에 연습생 5명만 출연 가능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단지 우수한 평가를 받은 연습생들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 그런 면도 없진 않지만, 보다 더 큰 문제는 돈과 시간이에요. 억지로 연습생들을 모두 출연시키는 것도 가능은 했을 거예요. 하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되는 뮤직비디오는 대중에게 어필해야만 하고, 대중들에게 선보일 영상을 허접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정확한 기획과 적확한 예산 운영에 따라 제작하는 거고, 그에 따라 인원을 조정하니 연습생 5명이라는 한계치가 설정된 거예요. 데뷔도 마찬가지죠. 막말로 데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가능하죠. 지금 회사라면, 아니 어느 회사라도 가능하죠. 하지만 단지 데뷔만 하면 끝이 아니잖아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데뷔시켰을 때 돌아올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회사로서는 아무나 데뷔시킨다는 옵션은 절대 선택할 수 없어요. 충분히 단련된 연습생을 무대 위로 올려 엔터테인먼트적 성공과 수익을 돌려받아야만 하죠. 자, 충분히 설명된 거 같으니 다시 묻죠. 데뷔할 수 있어요?”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름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을 충족시켜 데뷔하는 것이 꿈인 아름이다. 그러나 단유가 언급한, 뮤직비디오에 출현도 못 했다. 정해진 데뷔 인원수는 없지만 쟁쟁한 후보들이 곁에서 연습하고 있는 상황에 그들보다 낫다고 확언할 수 없는 아름은, 차마 데뷔할 수 있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말문이 막힌 아름의 처연한 표정을 보던 단유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 이 길,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을 거예요. 인적이 드물어 잡초가 우성했을 길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길을 만들었어요. 왜요? 단지 여기 보이는 경치가 좋으니까? 그럴 리가요. 그럼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그런 목적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이렇게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벌이며 전국에서 사람을 불러모으는 걸 보면, 단지 주민들을 위해서만 만든 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아름도 충분히 단유가 어떤 답을 말하려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수익 사업인 거죠. 어느 지역에서 이런 사업을 일으켜 지역 경제 부흥에 성공했다더라. 성공한 케이스는 복제되기 마련이죠. 우후죽순으로 생긴 수많은 둘레길들, 들어봤죠? 그런데 전국에 여러 둘레길들이 과연 모두 성공적이었을까요? 아니였어요. 지금 이곳은 그나마 캠페인이라도 하지만, 어떤 곳은 그런 캠페인을 벌일 예산도, 관심도 부족해서 황폐화되기도 했대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관심 없이 그저 걸을 뿐인 사람들을 보던 단유가 다시 아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 이 길을 만들 때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지도 몰라요. 여기는 경치도 좋으니까 분명히 성공할 거라고.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과연 경쟁력이 있나요? 글쎄요. 당장 이 길을 걷고 있는 동안에도 의문이 드네요. 과연 나중에 다시 이 길을 찾게 될까? 어쩌면 전국의 사람들이 한 번씩만 방문해도 지역 경제 부흥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런 일이 과연 쉽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할 테고, 지금과 같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관리와 보수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겠죠. 바꿔 말하면 지속적인 예산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이야긴데, 문제는 그런 예산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예상했던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겠죠.”
아름은 강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해가 중순을 지나쳐가는 즈음이다. 반짝이는 강물과 푸른 숲. 처음에 가졌던 신선한 느낌은 한 시간여의 산책이 이어지는 동안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처음, 연예인을 목표로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을 때의 아름은 데뷔만 바라봤고, 분명 데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지 자신이 얼마나 빨리 데뷔하느냐의 문제였다. 빨리 데뷔해서 정산을 받고 그 돈으로 집에 도움도 주고 자기 이름으로 된 집도 얻고 차도 사고 넉넉한 삶을 영위하는 꿈을 꿨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함께 하는 동료와의 갈등은 데뷔만 하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경쟁력이 있던가?’
단유는 물었다.
‘데뷔를 하고도 잊혀지는, 그런 무명의 연예인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런 두려움도,
“데뷔할 수 있어요?”
질문 앞에서는 무의미한 고민이다.
“혼자서는 이 길을 만들 수도, 꾸준히 관리할 수도 없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져야 하고, 그러고도 더 많은 현실적, 물질적인 지원이 이어져야만 이 둘레길은 살아남겠죠.”
단유는 그렇게 말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무엇을 추상적으로 지시하는지 아름은 이해했다.
그래서 눈물이 나려했다.
“죄송해요, 이사님.”
“뭐가요?”
“제가 너무 어리석었던 것 같아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그것도 그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리세요. 깨끗한 길을 걷는데 방해가 될 뿐일 테니까.”
“···네.”
한참을 더 걸었다. 여전히 단유의 손에는 텅 빈 비닐봉지만 들려 있었고, 아름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고맙습니다.”
뜬금없이 아름이 입을 열어 말했다. 단유가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니,
“생각해보니까 이사님은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셨던 거 같아요. 잠깐 오해한 적도 있었는데, 사실 이사님이 착한 분이셨던 거였어요. 오해해서 죄송하고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오해예요. 전 그저 제가 다니는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을 뿐인걸요. 아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회사가 잘 돼야 돈을 벌 수 있거든요.”
아름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사님은 어쩐지 다른 사람들이랑 생각하시는 게 조금 다른 거 같아요.”
“그럴 리가요. 전 굉장히 평범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말씀하시는 거나 행동하는 걸 보면 평범하진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가끔 오해를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그럴 리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