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81화 (881/956)

어느 별에서 왔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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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한참동안 도로 위를 달렸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던 아이들은 실내 히터에서 나오는 훈훈한 바람의 덕택에 부족함 잠을 청할 수 있었지만, 매니저는 핸드폰으로 자잘한 스케줄들과 임무 보고 등을 하느라 벌개진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했다.

자잘한 수다 소리라도 들린다면 모를까, 모든 연습생들이 수면 마취를 한 것마냥 조용히―더러 코고는 소리도 들린다―잠에 취한 마당에 매니저가 살펴야 할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고속도로 위에 오르면 신경이 곤두서는 직업병이다.

따뜻한 실내 공기 때문에 혹시라도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분도 노곤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해서 틈틈이 살피지만, 운전기사는 왼쪽 쪽창을 열고 찬바람을 맞으며 운전하고 있어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긴 프론데.’

그 역시 이 바닥에서 꽤 경력을 쌓았을 테니 히터 바람 따위에 잠에 취하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모른다. 언제나 방심은 위기를 부르는 법이니까.

그래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노곤함은 자신만 느끼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말을 걸자니 도리어 방해가 될까 걱정이 되고, 자연히 그의 시선은 핸드폰으로 향한다.

단톡방에서는 이제 막 회사에서 출발한 사원들의 메시지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몇 십분 전부터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조용하다. 아마 그들도 연습생들처럼 잠에 취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

손가락을 밀어 앞에 나온 이야기들을 살폈다. 전체적으로 피곤하다는 이야기들이 더러 있는 편이었는데, 직접적으로 불만을 꺼내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매니저가 보는 단톡방은 회사 간부도 볼 수 있는 단톡방이다보니 조심스러운 게 아닌가 싶었다. 연습생들에게야 여느 간부보다 무서운 매니저지만, 회사에서는 그도 고작 사원에 불과했다. 사원으로서 회사의 이번 기획을 보자면, 입술을 삐죽 내밀고 불만을 터뜨려도 할 말이 없을 기획이었다.

지난 월평 때도 그랬지만, 주말에 사원을 부르는 회사는 아무리 좋은 대접을 해줘도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위 쉴 권리를 달라는 것인데, 특히 회사 특성상 주말 출근이 잦을 수밖에 없는 회사다 보니 특별히 업무과 관련되지 않은 이상 이런 날은 집에서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만도 했다.

만약 주말 출근에 따른 특별 수당이 혹할 정도로 크지 않았다면, 정말 불만이 이어지면서 퇴사를 결심하는 사원이 생길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혹은 그저 회사가 돈이 넘치도록 많은지, 주말 출근에 따른 수당이 꽤 짭짤한 수준이라 불만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수익 사업 하나 맡으려고 열을 올리면서도 돈은 어디서 이렇게 펑펑 나오나?’

싶을 정도였다. 뭐, 그런 고민은 간부들의 몫이고 매니저처럼 일반 사원들은 그저 주는 돈 감사히 받고 그만큼 일하면 그만이다.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게 느껴져 매니저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직 도착한 것은 아니고 차가 밀리면서 속도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말 아침에 고속도로가 막히는 상황.

‘사람들 참 부지런들 하네.’

물론 저 중에서 일하러 일터로 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주말을 맞아 어디론가 놀러가는 사람들이겠지. 휴일을 보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

부럽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냐 하면, 매니저는 차라리 방구석 침대에 콕 박혀 죽은 듯 자는 게 부러운 쪽이다.

****

목적지에 도착한 버스가 긴 트름같은 소리를 내며 멈췄다. 저도 모르게 잠깐 졸았던 모양인지 매니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이런.’

얼른 벨트를 풀고 일어서 돌아보니, 이미 몇몇 애들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욕먹을 짓을 한 것도 아니지만, 괜한 죄책감을 느끼며 매니저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언제까지 잘 거야? 일어나.”

곧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길지 않은 시간 좁은 버스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탓에 몸이 꽤 굳어버린 모양이다.

매니저는 아이들이 깨어나는 모습을 살피다 피식 웃음이 새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시화야, 넌 거울부터 봐야겠다. 기껏 꽃단장 했는데 거기 침자국 뭐냐?”

지적받은 시화가 놀라며 입주위를 두 손으로 가리는데 주변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옆을 돌아보며 서로의 상태를 확인해주는 모습이다.

사실 숙소에서 아이들을 억지로 깨워 먼저 향했던 곳은 이곳이 아니라 미용실이었다. 단체로 메이크업을 맡겨 꾸민 뒤에야 다시 버스에 올라 이곳으로 향했던 것이라 새벽에 보았던 아이들과 지금은 많이 달랐다. 달라야 했는데, 자느라고 엉망이 된 녀석도 보이니 절로 혀를 차게 만든다. 자라고는 했지만, 조심하지 말란 말은 안 했으니까.

“자, 다들 모자 쓰고.”

단체복과 단체 모자까지 맞춰 통일성을 갖추게 하고 난 뒤에야 버스에서 내리니, 차가운 강바람이 연습생들을 환영하듯 불어닥쳤다. 성대한 환영인사가 너무 부담스러웠던지 몸을 돌리며 피하는 모습들이다.

그러거나말거나 매니저는 아이들을 기다리게 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매니저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그쪽에서도 한 사람이 나와서 인사를 건넸다.

“D&D 엔터테인먼트 되십니까?”

“네.”

“아,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환경정화활동 행사의 책임을 맡은 강주환 실장이라고 합니다.”

매니저는 내민 손을 잡으며 자신을 소개한 후, 자신들 뒤에 곧 다른 직원들도 추가로 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알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연락 받았습니다.”

“네.”

“오늘처럼 추운 날에는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 이렇게 회사 차원에서 참석해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 저쪽의 시은 씨 팬클럽과 동반 참석이신거죠?”

“네, 그렇습니다. 저쪽 사람들인가요?”

매니저는 강 실장이 가리킨 쪽을 훑으며 물었다.

“저기도 지금 사람들이 다 온 게 아니라고 하는데, 아직 행사 시작까지 시간이 남았으니까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네. 일단 시작은 30분 후에 할 예정인데, 그때까지 다른 분들도 도착하시겠죠?”

“아마 곧 도착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자유롭게 계시다가 행사 시작하면 저기 공터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그때 다시 한번 공지는 해드릴 겁니다.”

강 실장은 다른 참석자들 참석 현황도 살펴야 한다며 먼저 자리를 떠났고, 매니저는 뒤에 선 아이들을 불러 시은의 팬클럽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잘 꾸며진 아이들이 단체로 뒤를 따르니 절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동시에 시은의 팬클럽에서도 반응을 보였다. 무리 중에 섞여 있던 ‘포동포동’한 외모의 여자가 성큼 나와 매니저를 반겼다.

“혹시 D&D 엔터?”

“네. D&D 엔터 진도준 실장이라고 합니다. 그쪽은?”

“안녕하세요. 저는 강희주라고 하고요, ‘은실이’ 회장을 맡고 있어요.”

“아,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시은 언니는 소림 언니가 계속 매니저를 맡기로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아, 저는 여기 이 아이들의 매니저로 인솔자 자격으로 참석한 겁니다.”

“아, 그렇구나. 혹시 연습생들?”

“네. 저희 회사에서 키우는 연습생들입니다.”

“와, 역시 연습생들이라 뭔가 일반인과 다른 포스가 있다고 느꼈는데.”

그래봐야 새벽에 잠에서 덜깬 애들을 헤어샵에 데려가 손을 본 것일 뿐인데, 빈말이라도 효과가 없지 않은 반응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 데뷔일이 정해졌나요?”

“아뇨. 아직은 열심히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렇구나. 혹시 나중에라도 데뷔일 정해지시면 귀뜸해주세요. 언니 후배들인데 저희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게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아뇨. 오늘도 원래 저희끼리 하려던 거였는데 이렇게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나와주셔서 저희가 더 고맙죠. 일개 팬클럽을 이렇게 챙겨주시는데, 저희 언니도 많이 지원해 주실 거죠?”

“제가 뭐라도 되는 자리에 있질 않아서 확답은 못해드리지만, 저희 회사는 소속 아티스트들을 위해 최고의 지원을 약속했다는 것만 알려드리죠.”

그러자 팬클럽 회장이 배시시 웃음을 짓는데, 썩 자연스럽게 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모양인데, 역시 그 일을 생각하면 ‘최고의 지원’이란 말이 무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일 이후에 회사 차원에서 행했던 일들은 분명 ‘최고의 지원’을 위한 노력이었음을···, 아무리 강조한들 무슨 소용이랴. 일개 매니저가 할 말은 아니다. 담당도 아닌데 말이다.

“약속드리면 되죠.”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매니저가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단유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어? 이사님?”

설마하니 이사가 올 줄은 몰랐고, 더욱이 단유가 이런 자리에 참석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단유는 가볍게 목례를 한 후, 팬클럽 회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D&D 엔터테인먼트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는 김단유라고 합니다. 그쪽 분이 강희주 씨 되시나요?”

“네? 네.”

다소 얼떨떨해하는 반응. 매니저는 그 반응을 이해했다. 처음 단유를 본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은 저런 반응을 보이더라. 회사에서도 몇 번 봤던지라. 이 상황에서 괜히 뿌듯해하면 이상한 거겠지? 그런데,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놀랍지? 라고 묻고 싶은 치기. 매니저는 스스로 떠올린 생각이 웃겨 저도모르게 입꼬리가 흔들렸다.

“제가 대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은 씨를 위해 최선의 지원을 해줄 용의가 있다는 것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저희 진 실장님 말씀따라 저흰 소속 아티스트들의 성공을 최대한 뒷받침해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네, 네.”

매니저 앞에서는 술술 잘만 이야기하던 회장이 왜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하는지. 매니저는 입꼬리를 슬쩍 매만지며 뒤를 돌아보니, 회사에서 함께 출발했다던 직원들이 도착해서 연습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사님, 그런데 어떻게···?”

“아, 들어보니 취지가 좋은 행사인 듯 해서요. 대표님도 오시고 싶어 하셨지만, 급한 스케줄이 있어 아쉽게도 참석은 못 하시게 되었는데 그래서 저라도 와서 자리를 채우자는 생각으로 왔죠. 괜찮죠?”

“괜찮다니요? 영···.”

‘영광’이라는 단어를 쓰려다 문득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너무 아부를 떠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가 제가 어렸을 때 살던 곳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라 옛 생각도 나고 그래서요.”

“여기가요?”

“네. 저기 저쪽으로 더 내려가면 나오는 도시인데, 어릴 때 거기에서 살았어요.”

“저기가··· 인평시던가요?”

“네.”

“아, 이사님 고향이 저기구나.”

단유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

“에, 지금부터 태인강 둘레길 워킹캠페인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역대 행사 중 가장 추운 날임에도 역대 최대 인원이 모인 기록적인 날이라 어떤 의미로 가장 따뜻한 날입니다. 부디 오늘 이 행사를 위해 모인 모든 분들이 다같은 마음으로 따뜻함을 느끼시며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만일에 있을 부상이나 건강에 주의하시고, 혹 불편하거나 몸에 문제가 있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저희 운영팀에게 말씀해주시면 즉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봉사 활동이라고 해서 잔뜩 긴장했던 연습생들은 행사 취지와 활동 내용을 듣고는 굳었던 얼굴을 펼 수 있었다. 강 주변으로 형성된 둘레길을 걸으며 혹시라도 보이는 쓰레기를 주우며 환경 정화 운동을 하는 것이 오늘의 활동이었다. 만약 쓰레기가 보이지 않으면 그저 운동삼아 걷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단지 차가운 겨울 강바람만이 장애물일 뿐이었다.

“언니, 저기 사진 찍는다고 오래요.”

시화는 잠시 딴 곳에 시선을 두고 있던 아름을 불렀다. 본격적으로 둘레길에 나서기 전에 지역 행사 취재를 위해 참석한 신문사에서 보도용 사진 촬영을 요구했는데, 특히 연예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은 좋은 화제거리였다. 당연하게도 회사에서는 이런 기회를 거절할 리 없었다.

아름에게 팔짱을 끼며 끄는 시화의 모습을 보며 매니저는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띄었다. 룸메이트로 지내며 부쩍 친해진 시화와 아름이었다. 가장 막내인 시화라 가장 맏인 아름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붙임성 좋은 시화는 아름을 잘 따랐고, 연습실에서 딱딱하기만 하던 아름도 시화에게 살갑지는 않아도 말없이 잘 배려해주는 편이었다. 룸메이트를 정할 당시에 잠깐 고민했었던 매니저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뒤에 좀 더 활짝 웃어주실래요? 아, 좋아요. 다들 예쁘고 멋져요.”

사진기사의 능청스러운 멘트에 남녀 연습생들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몇몇은 매니저의 눈치를 살피며 포즈를 짓다가도 어색함에 그냥 손가락을 들어 브이자를 짓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 매니저 역시 덩달아 미소를 짓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단유도 자신과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음을 발견했다.

“어? 근데 이사님. 왜 여기 계세요? 저기 같이 가셔야죠.”

“괜찮아요. 저는.”

“아니, 이사님이 빠지시면 어떡합니까? 회사 얼굴이신데.”

“회사 얼굴은 저 연습생들이고요. 그리고 저는 사진 찍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예의상 거절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찍기 싫다는 듯 손바닥을 내밀며 거절 의사를 표현하는 단유였다.

“실장님은 저기 가서 찍으셔야죠.”

“아니, 그래도 이사님이···.”

“저 신경쓰지 마시고, 가서 찍으세요. 한명이라도 더 많이 나와야죠.”

매니저는 머리를 긁적이다 손짓하는 연습생들의 확인한 후 양해를 구하고 얼른 뛰었다. 직원들이 서 있는 중간에 서려다 아이들이 매니저를 부르고 직원들도 연습생들 사이로 미는 바람에 억지로 끼게 된 매니저는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브이자를 만들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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