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80화 (880/956)

어느 별에서 왔니(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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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생활이 시작되면서 연습생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 같이 숙소로 향했다.

무려 48평형 아파트에 8명이 함께 사는데, 참관하기 위해 왔던 부모들이 놀라서 입을 벌릴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연습생들에게 이 정도로 투자하는 곳은 저희 회사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 회사를 믿고 맡겨주세요, 라는 매니저의 부연 설명은 불필요했다. 안방을 포함해, 방만 3개에다가 화장실이 세 개나 되니 8명이라 하더라도 싸울 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일단 이 숙소는 여기 8명이, 그리고 윗층에는 A반의 남자 연습생들이 사용합니다. 이는 내년 특화반이 편성되어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고, 다만 향후 데뷔조가 결정되면 조정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숙소를 준비하며 인테리어까지 싹 새로한 탓에 여느 새집보다 좋다.

“우리 집보다 좋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좋은 것도 익숙해지면 둔해지는 법. 레슨에 지쳐 집에 돌아오면 넓은 거실과 깨끗한 주방, 뷰가 좋은 베란다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텅 빈 냉장고를 괜히 열었다 닫고나면 곧장 침대로 향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면 찬장도 열어보고, 코드 뽑힌 밥솥도 열었다 닫고, 싱크대 아래도 확인한다.

“그만해라. 그런다고 뭐가 나오니?”

잠들기 전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거실에서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반복하고 있던 시율의 지적에 시화가 돌아보았다.

“배 고파요, 언니.”

“그러지말고 너도 와서 이거나 해.”

다리를 양 옆으로 짝 벌리고 상체를 바닥에 붙이듯 눕는 시율을 바라보던 시화가 고개를 흔들었다.

“더 배고파질 것 같은데요.”

“이게 다이어트 효과도 좋고, 잠도 잘 오게 하는 운동이란다.”

“너무 안 먹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은데요?”

“정 배고프면 물 마셔.”

“물 마시면 밤에 깰 수도 있잖아요.”

그때,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며 욕실에서 나오던 슬기가 징징대는 시화에게 한 마디 했다.

“벌써부터 그러면 어쩌려고 그래? 나중에 데뷔하고 나면 지금보다 더 심할텐데.”

“데뷔는 데뷔고, 지금은 지금이죠. 게다가 전 이제 겨우 16살이란 말이에요. 한창 먹고 클 나인데. 힝.”

“어쩌겠니? 니가 선택한 길인데.”

슬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으로 들어가고, 동시에 다른 방의 문이 열리며 지윤이 얼굴을 드러냈다. 나 지금 피곤해 죽겠어, 라는 얼굴로 거실과 주방을 보며 눈썹을 모았다.

“안 자고 뭐하니들?”

“이제 잘 거예요. 스트레칭만 하고요.”

“너도 지독하다. 하루종일 찢고 뛰고 달렸는데 또 해?”

“레슨 때 하는 거랑 이거랑은 다르죠. 언니도 하세요. 하고나면 개운해요.”

“됐다. 난 잘 거야. 그리고 막내야? 한밤 중에 왜 이렇게 징징대? 엄마 보고 싶어?”

“그런 거 아녜요.”

“알아, 아닌 거. 자.”

언제부터 들려 있었는지 몰라도 손에 들고 있던 걸 시화에게 던지는 지윤. 시화는 엉겁결에 두 손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받았다.

“어? 언니?”

조그만 초코파이 하나. 손바닥만한 초코파이 하나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조용히 좀 해라. 자는 애들 다 깨겠다.”

“저 먹어도 돼요?”

“먹으라고 주는 거야.”

“언니는요?”

“내가 먹을 거였으면 너 주겠니? 가방 안에 있길래 혹시 나중에라도 먹을 일 있을까 싶어 뒀던 건데 너 먹어.”

“고맙습니다.”

거실에 앉아 있던 시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윤을 보았다. 그 모습에 지윤이 너도 줄까, 라고 물었다.

“아뇨, 전 괜찮아요. 그런데 걸리면 어떻게 해요?”

“걸리면 걸린 사람 책임이지. 난 모른다. 내 손 떠난 거야. 그치?”

“네, 전부 제가 책임질게요.”

이미 포장지가 뜯어진 초코파이 반쪽이 시화의 입에서 분쇄되고 있었다.

“입 다물고 먹어. 못 생겨 보여.”

“뭐 어때요? 우리끼린데.”

“내가 보기 싫어.”

시율이 눈을 흘겨도 기분이 좋아진 시화는 히죽 웃을 뿐이고, 지윤은 조용히 먹고 자라는 말만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소소한 행복이 함께하는 숙소 생활이었다.

이른 아침, 갑자기 현관문에 설치된 도어락에서 소리가 났다.

띠리리, 들어올 사람이 없는데 문이 열린다면 십중 팔구 매니저다.

“신발 정리 좀 하라니까.”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신발들을 툭툭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선 매니저는 마침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는 지윤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다들 아직 자고 있는 거야?”

지윤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거실 벽에 달린 시계로 눈을 돌리니 이제 막 짧은 시침이 6을 지난 시점이었다.

“오늘 무슨 일 있나요?”

“일은 아니고, 긴급히 결정된 일이 있어서.”

도대체 무슨 일이 결정되었기에 아침 6시부터 잠을 깨우러 온단 말인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마주 선 매니저의 평온한 얼굴을 보면 별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난 위에 애들 깨우러 가볼테니까 네가 애들 깨워서 준비해.”

“무슨 준비요?”

“나갈 준비. 음, 한 시간 뒤에 이 앞으로 차가 올 거니까 그때까지 모두 외출 준비하도록 하고.”

“옷은요? 뭐 입어야 돼요?”

“옷? 그냥 밖에 추우니까 두껍게 입고 나오면 돼.”

“다른 거 준비할 건 없고요?”

“응. 없어.”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돌아서 나가버리는 매니저였다.

“이럴거면 그냥 핸드폰 쓰게 해주지. 문자로 전해주면 서로 편하잖아?”

투덜거리는 슬기에게 머리를 말리던 보민이 대꾸했다.

“미련 갖지 말자. 미련 남으면 자기만 손해야.”

헤어 드라이어기도 인당 하나씩 있으면 좋겠지만 방 마다 하나씩만 두고 사용하게 해 두었다. 때문에 마치 화장실 순번을 정하듯 드라이어도 순번을 정해서 사용했고, 지금은 슬기가 보민의 다음을 예약한 상황이었다.

“핸드폰 없으니까 답답해서 그러지.”

“다른 회사는 회사 들어가자마자 폰 취소시킨다더라.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몇 달이라도 쓸 수 있게 해줬잖아?”

보민은 그나마 머리가 길지 않은 편이라 그나마 빨리 끝나지만, 슬기는 머리가 꽤 긴 편이었고, 때문에 슬기 다음으로 헤어 드라이어를 쓸 수 있는 채린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두 언니들과 한참 나이차가 나는 채린은 아무 말도 못한다.

사실, 화장실 순번에서 이미 밀린 채린이라 보민이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때, 여전히 욕실에서 씻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이. 계속 쓰게 해주면 좀 좋아? 이럴 때도 편하게 단톡으로 메시지 남기면 서로 민망할 일 안 생길 테고.”

한편, 일찍 준비를 끝내고 거실에 나와있는 이들도 있었다. 시화와 경빈은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시답잖은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둘 모두 아직 고등학생인지라, 별 거 아닌 말에도 헤픈 웃음이 터져나왔다.

“니들 준비는 다 끝나고 노는 거야?”

지윤이 머리를 빗으며 묻자,

“준비 별로 할 거 없다면서요?”

말인즉 이미 나갈 준비가 끝났다는 시화의 대답이었다. 시화는 아름과 둘이서 방을 쓰는데, 아무래도 두 사람이다 보니 세 사람이 쓰는 방보다 준비가 빨리 끝날 수 있었다. 더구나 아름이 시화를 배려해 먼저 씻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해서, 지금 숙소 내에서는 가장 먼저 준비를 끝내고 거실에서 노닥거리던 시화였다.

“어? 저기 저 차 아니에요?”

잠시 거실 창으로 밖을 보던 경빈이 손가락질했다. 시화가 냉큼 달려가 유리에 코를 박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건가? 우리 어디 여행 가는 건가봐요?”

“갑자기 이 시점에? 무슨 여행을 이렇게 예고없이 떠난대?”

“서프라이즈 같은 거 있잖아요?”

“혹시 엠티 가는 건가?”

“엠티요? 와, 엠티! 꼭 가고 싶었는데.”

시화와 경빈의 대화가 이어지던 와중에 지윤이 물었다.

“엠티가 뭔지는 아니?”

“펜션 같은 데 가는 거 아니에요?”

순진한 얼굴을 한 시화의 대답에 지윤이 피식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펜션가서 놀고 먹는 게 엠티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나중에 크게 실망할 거다.”

“왜요? 다른 거도 해요?”

직접 가서 경험해야 알지, 라는 모호한 말로 대답을 얼버무리고 돌아서는 지윤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즈음, 매니저가 다시 등장했다.

“준비 다 했어? 다 했으면 다들 내려가서 차 타. 지금 앞에 관광버스 큰 거 와 있거든? 그거 타면 된다.”

“저희 어디 가요? 놀러 가요?”

“놀러는 무슨. 일단은 타. 타고 나면 이야기 해줄게.”

“뭐 챙겨갈 건 없어요?”

“너희들이 뭐 따로 챙길 게 필요해?”

“화장품 같은 거요.”

“예쁘게 꾸며도 봐줄 사람 없다. 그냥 나와.”

“자, 다들 탔지? 안 탄 사람 손. 없지? 없으면 자 집중.”

마치 짠 것처럼, 아니 짜지 않아도 남녀칠세부동석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는 애들처럼 A반은 오른쪽, B반은 왼쪽에 앉아서 매니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은 회사에 가지 않는다. 무슨 뜻인고 하니, 오늘은 레슨이 없다는 소리다.”

“우와!”

“조용조용. 미리 말해두는데, 관광 버스 내에서 고성방가는 범죄다. 그러니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해야 하고, 왠만하면 그냥 자는 걸 추천한다. 좋지?”

“그래서 오늘 뭐 하는데요?”

“오늘 우리는···.”

****

“봉사활동이요?”

“네. 봉사활동.”

사업기획본부장의 말에 신인개발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갑자기요?”

“갑자기 그렇게 됐는데, 사실은 시은의 컴백과 함께 우리 회사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바로 인지도. 사실 회사의 인지도야 소속 아티스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 자연히 올라갈 문제라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 회사의 이미지가 너무 좋지 않은 쪽인 거 같아서요.”

“저희는 피해자 아닙니까?”

영상제작부 부장이 목소리를 높이자 기획본부장은 동의한다는 듯 눈을 맞춰주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피해자라고 해도, 대형 기획사 대표에게 찍힌 회사라는 이미지가 좋지는 않잖아요? 게다가 한껏 위탁 교육생을 받기로 여기저기 소문 냈었는데 그게 다 파토가 나버렸으니, 더욱 이미지가 좋지 않죠. 불안하게 여겨진다 이겁니다. 그래서 이런 이미지를 쇄신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시은의 팬덤 측에서 겨울 봉사활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아이디어가 난 거죠.”

“팬덤과 함께하는 봉사활동 말인가요?”

“일단은 회사에 좋은 이미지를 씌울 찬스라는 생각이 컸다는 걸 부정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번 기회에 시은의 팬덤에게도 우리 회사가 시은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이라는 걸 알려줄 필요도 있고요. 동시에 봉사활동에 참여할 우리 회사 직원들, 특히 새 연습생들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기도 하고요.”

“연습생들을 외부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너무 급작스러워서···. 준비가 덜 된 연습생도 있지 않습니까?”

계속된 질문과 걱정에도 본부장은 다 생각해뒀다는 듯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실력이나 그런 걸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우리 회사에 이런 연습생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 그리고 연습생들의 외부활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타 회사와 다르다는 차별점을 강조할 수도 있지요. 또 나중에 이 일이 어떻게 입을 탈지 모르겠지만, 분명 연습생들에게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봉사활동을 겸한다면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겠죠.”

“의도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급작스러운 기획이라 아이들이 당황하진 않을지 모르겠네요.”

“이번 기획이 아무래도 시은의 팬덤이 진행하기로 한 봉사활동과 함께한다는 것이기에 그쪽에서 정한 스케줄을 저희 회사 위주로 옮기는 건 문제가 있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쪽의 스케줄에 저희가 맞추는 게 보기도 좋겠죠. 우선은요. 나중에, 그러니까 내년부터는 회사 차원에서 먼저 스케줄을 잡고 역으로 팬덤에게 제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만, 올해는 이렇게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연습생들을 비롯 직원들의 양해를 구해야 할 문제겠네요. 어쨌든,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훈에게로 돌아온 발언권에 대훈은 신중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 마이크를 가까이 하고 답변했다.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럼 일단 기획대로 연습생들은 참여한다 치고, 사원들도 모두 참여하는 건가요?”

“모두 참여하면 좋겠지만, 일정이나 여러 가지 사정상 어려울 겁니다. 그쪽에서도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리면 부담스러워 할테고요.”

“그럼 각 부서별로 지원자를 뽑을 예정입니까?”

“지원자로 하면 조금 그럴 수 있으니까, 그냥 부서별로 2명씩 차출하는 게 어떻습니까? 12에서 14 정도가 될테니 인원도 충분하리라 봅니다.”

대훈은 주위를 돌아보며 본부장의 제안에 찬성하는지 거수로 확인하자고 제안했고, 거수결과 압도적인 찬성표를 받아 ‘봉사활동’이 결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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