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75화 (875/956)

어느 별에서 왔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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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대중의 관심으로 먹고 사는 직종에 있는 이들은 관심이 줄어드는 순간 그들의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 그래서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와 지나친 관심과 집착에 환멸을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이고 그마저도 버티지 못한다면 차라리 다른 직종으로 변경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카메라 앞에서 미소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시도 때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팬들의 환호와 사인 요청에 웃으며 화답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사람이다. 스트레스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지칠 수밖에 없고, 지치면 더 이상의 에너지를 생성시키지 못하니 자연히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다른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적당한 휴식의 배정이 필수다.

그런데 이게 또 문제다. 연예인들이 과연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 하고, 시선 속에서 늘 웃어야만 하는데, 그 피곤함을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는가?

그래서 대부분이 그렇듯, 시은 역시 휴일에는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막아두고 TV도 끈 채, 이불 속에서, 혹은 쇼파 위에서 웅크려 시간을 보낸다.

“그것 말고 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어때?”

하루 종일 자거나 혹은 눈을 떠도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만 있는 시은을 보다 못한 매니저의 잔소리에도 시은은 꿈쩍하지 않았다.

“매일 하는 일이 생산직인데, 뭘 또 생산해?”

“네가 무슨 생산직이야? 공순이야?”

“가끔 언니 쓰는 단어가 되게 옛날 말인거 알아? 요즘 누가 공순이란 단어를 써?”

면박을 주고 대답한다.

“노래를 만들고 기쁨을 주고, 웃음을 만들어 팔잖아? 그게 생산직이 아니면 뭔데?”

“헛소리 그만하고 좀 일어나. 운동이라도 해.”

“피곤해.”

그렇게 매니저와 투덕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시은에게는, 결국 집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당연히 매니저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물었다.

“집에 갈까?”

막상 회사에서 나오긴 했는데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언제나 그랬듯 집과 회사가 아니면 딱히 갈 곳이 없는 시은이었다. 애써 쇼케이스 준비로 스타일링까지 끝낸 마당에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는 아쉽지만, 그렇다고 달리 갈 곳이 있는가.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집으로 돌아가면 더 속상할 것만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고, 누구도 자신의 속상함을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 편이 없는 세상 같다.

갈 곳이 없어 감옥같은 집에 돌아가야 하다니. 억울하고, 속상하고, 참담하다.

“다른 데 갈 데 없을까?”

“어디?”

깜빡이가 깜빡거리는 소리만 들려온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시은을 흘깃 쳐다본 매니저는 손가락으로 핸들을 툭툭 쳐보지만 그녀 역시 딱히 답이 없다. 어딜가도 주목받을 시은이다. 선글라스에 마스크는 택도 없다. 행여 SNS에 사진이라도 올라오면 나중에 무슨 이야기가 덧붙여져서 말이 나올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디로 갈까?”

시은의 물음에 이제 매니저가 난감해졌다. 자신의 경우도 사실 시은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처지도 아니고, 팬이라고 달라붙어 사인을 바라는 이도 없지만, 연예인과 한몸처럼 지내니 휴일이라고 달리 가는 곳이 없었다. 기껏해야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화장을 위해 백화점에 가서 화장품을 고르거나, 일년에 한 두 번 입을까 말까 한 옷을 사러 쇼핑을 다니는 게 전부다.

“남자친구랑 놀이공원엘 가지 않을까?”

갑자기 ‘남자친구’가 왠 말인가. 스스로도 이해 못 할 답을 불쑥 꺼내놓고 당황해하는 사이, 시은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

“나나 언니나 그쪽과는 거리가 멀지 않아?”

“나는 야···, 니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내가 왜 남자 친구가 없는데? 너 때문이잖아? 하루 24시간 보필하느라 등이 휠 정돈데 언제 남자를 만나서 사귀고 그러냐?”

“언니가 무슨 24시간 같이 있어? 나 일 없을 때는 언니도 일 없잖아?”

“야, 니가 일 없다고 나도 한가한 줄 알아? 니가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는 동안, 나는 여기 저기 다니느라 얼마나 바쁜데. 관계자들 만나서 스케줄 잡아야 하지, 또···.”

“그걸 언니가 하나? 회사에서 다 잡아주는 건데?”

“나도 회사에 속한 몸이거든? 나도 스케줄 잡을 때 같이 따라가기도 하거든? 니 스타일리스트들 관리도 내가 하거든? 회사에서 서류 업무도 봐야 하고, 할 거 무진장 많거든?”

“알았어, 언니 일 많아. 일 무지무지 많아. 아이고, 불쌍한 우리 언니. 나 때문에 시집도 못 가고.”

“알면 잘 해. 그리고···나는 그렇다쳐도 너는 왜 남자 친구 안 사귀는데?”

“나도 바쁘거든? 남자 만나고 있을 시간도 없고, 괜히 만났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한 건 나거든?”

“내가 보기엔 넌 남자한테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애.”

여기서 ‘나도 남자한테 관심 많거든? 남자 좋아하거든’이라고 항변하면 이상하려나?

다시 말이 없어진 두 사람. 여전히 깜빡, 깜빡. 차량 안에서 깜빡이만 울린다.

****

골프장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에 광식의 머리가 흩날렸다. 해도 그리 뜨겁지 않고 술기운에 더위를 느껴 일부러 모자를 벗고 나왔더니 엉망이 돼버렸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여기에 왜 왔나?”

여기 온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게 있느냐는 질문이었는데, 단유는 대답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이사님이 여기에 계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왔죠.”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고?”

나무 인형처럼 무감각한 표정으로 되묻는 단유.

“그 전에 제가 어떻게 정 대표님이 배후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를 먼저 물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물을 생각이야. 내친김에 둘 다 말해보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채로 바라보는 광식을 단유 또한 살피다 물었다.

“제가 알게 된 이유를 듣고 싶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뭐?”

“제가 이사님이 오늘 발표되기로 한 곡의 발매를 막은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게 이사님에게 의미가 있습니까?”

“말 돌리지 말고!”

버럭 언성을 높이는 광식. 뭔가 끈질기게 대답을 요구하는 단유와의 대화가 답답하고 화가 났다. 누구도, 심지어 이 대표도 자신에게 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하지 못한다. 감히 누가 자신에게 이런식으로 추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광식을 추궁할 권리를 가진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 온 이유는, 짐작하시겠지만 방금 드린 질문의 내용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벌어진 비정상적인 사태를 바로 잡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이 사태를 부른 이사님을 찾아뵙는 수밖에 없었죠. 과연 이사님이 왜 이런 일을 벌이신 건지, 그리고 가능하면 오늘 일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눠보자는 생각으로 찾아왔습니다.”

“하, 미친 녀석.”

단유의 말에 광식은 조소를 날렸다.

“우선 제 이야기부터 드리죠. 제가 소개드린 직함으로 일하게 된 건 고작 한 달여 정도입니다. 바꿔말하면 아직 이곳 연예계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고 돌아가는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어떤 일이 정상이고, 어떤 일이 비정상인지 판단할 정도는 됩니다. 당연히 오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죠. 그런데 가장 궁금한 건 왜 이사님께서 이런 지시를 내리셨나 하는 겁니다. 이유를 알면 해결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해결? 지금 이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그런 문제가 아닙니까?”

삭막한 광식의 얼굴이 삭풍에 더욱 굳어졌다.

푸른 잔디를 골프화로 짓이기며 단유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는 광식.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아하니 꽤나 마음이 상한 모양이다.

“확실히 젊은 사람이라서 그런가, 꽤 저돌적인 면이 있구만.”

단유의 위아래를 훑는 시선에 못마땅함이 가득하다.

“막무가내는 아닙니다.”

“조금 전 옆에 있던 사람이 누군지 아나?”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합니까?”

“누군지 알면서 감히 이러는 것이야? 뒷생각은 전혀 안하나 보지? 자네가 이렇게 나오면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나? 꽤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뒷생각이란 표현이 혹시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걱정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충분히 고려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비웃음 섞인 입꼬리가 올라가는 광식에게 단유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신데요.”

협박이 먹혀들지 않으니 광식의 목소리가 슬슬 올라간다.

“나랑 말장난이나 하자는 건가?”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으르렁대는 광식에게 단유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단유의 얼굴을 노려보던 광식은 짧게 헛바람을 뱉으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하긴 잘못하면 자네가 투자한 돈이 허공에 날아갈까봐 노심초사한 거겠지.”

“그깟 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 그저 이 일을 벌이신 이유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돈이 중요하지 않아? 듣던 것 이상으로 돈이 많은가 보군.”

“돈은 벌면 되니까요.”

“하!”

탄성인지 웃음인지, 혹은 비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뱉은 후 광식은 단유를 날선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유는 다시 한번 상대에게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분명하게 상기시켰다.

“전 되도록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고자 합니다. 항상 문제는 서로 간의 이해가 엇갈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엇갈림은 얼마든지 대화로 풀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은 이성이 있으니까요. 서로가 이성적으로 서로의 이해를 파악하고 그 사이의 간극을 좁히면 대부분의 문제 상황은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더러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이다. 아니, 그보다는 예전 한강 공원에서 벌어졌던 일을 재현하고 싶지 않다는 단유의 의지다.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끔은 그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가정해본다. 만약 그와 ‘대화’가 가능했다면, 그런 참사는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당시 그런 해결 수단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를 분석해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령 단유 본인도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휘발성 강한 감정―분노에 휩싸였던 것도 있을 테고, 상대와의 짧은 대화에서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상대가 스스로 가진 힘에 취해 이성적이지 못했다는 이유가 컸다고 판단했다. 너무 강한 힘은 때때로 이성을 마비시키곤 하니까.

그래서 조용히 바랐다. 부디, 눈앞에 사내는 적어도 이성적이기를.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말로 잘 풀어서 서로가 윈윈하는, 소위 상생의 길을 찾으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졌던 때가.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니 꼭 그렇진 않다는 걸 깨닫게 되더군. 간극이라. 좋은 표현이야.”

광식은 입가를 매만지며 잠시 시선을 아래로 흘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단유를 바라볼 때, 그의 눈에 기이할 정도로 섬뜩한 빛이서렸다.

“종종 사람들이 말하지. 사람은 평등하다고. 과연 그럴까?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평등하지 않아. 키가 큰 사람과 키가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과 날씬한 사람,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은 결코 평등하지 않지. 혹 그저 다를 뿐이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이 사회는 키가 큰 사람, 날씬한 사람, 잘 생긴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거든. 거기서 이미 다름은 ‘계급화’되어 나뉘게 돼. 그뿐인가? 전통적으로 계급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힘’이지. 힘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요즘은 좀 더 발전했지.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광식은 냄새를 맡듯 코를 쭉 내밀며 단유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자네에게도 냄새는 나. 똑똑하고 돈이 있고 잘 생긴 사람. 그래서 한때 그런 생각을 했어. 자네도 충분히 ‘우리’가 될 수 있겠다고. 알겠나? ‘우리’라는 테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아닌 사람과 ‘우리’ 사이에 있는 간극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겠나?”

손가락 하나가 펼쳐져 단유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런데 지금보니 자네는 아직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군. 그말인즉슨, 자네는 아직 ‘우리’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뜻이야.”

“제가 그 ‘우리’에 포함되어야 하나요?”

“‘우리’와 ‘우리’가 아닌 사람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구별되는지 알면 그런 소린 못할 거야.”

“어떻게 구별되는데요?”

“우리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고, 우리가 아닌 이들은 명령을 듣는 사람들이지.”

“······.”

“우리는 권리를 누리고, 우리가 아닌 이들은 재주를 부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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