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72화 (872/956)

호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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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이야기를 사람 많은 이런 곳에서 한다는 게 온당치는 않다. 사실 확인이 된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몇 개의 단서만을 조합하여 사실인냥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대훈은 자신의 추리에 확신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지금의 상황이, 연예계 바닥부터 굴러왔던 과거를 되짚어봐도 접하기 힘든 일이라는 점이며, 동시에 ‘광식’이라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적어도 ‘자기 사람’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해도 상관이 없다 여겼다.

“그 인간이라면 이런 질 나쁜 장난을 치고도 남을 이거든.”

그리고 나름 이 바닥에서 밥 빌어먹고 사는 이들이라면 광식이란 이가 얼마나 포악한 사람인지 대충은 들어 알고 있을 터였다.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상대가 갑 중 갑이라는 방송국의 PD여도 반드시 본때를 보여준다는 식으로 막나가는 인물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단유만 그 이야기에 반응하지 못했다. 단유도 정광식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어떤 폭력을 행사했었는지도 보았고, 그와 직접 대면하여 말을 섞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유추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와 지금 벌어진 일의 배후로 지목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해서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광식은 업계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인물 중 하나다.

“행실은 개차반이고 평판은 시궁창 찌거기만도 못한 인간이죠.”

대훈은 그렇게 광식을 평가했다.

“사람은 보통 이기적입니다. 아니 이기적이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야 이타적인 사람을 훌륭하다 평가하겠지만, 보통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선순위를 둔다면 자기 자신, 자기 식구를 챙기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100%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놈,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놈은 이기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녀석이에요. 보통 자기 회사에 속한 아티스트나 직원들을 자기 식구라고 해서 챙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놈에겐 식구가 없습니다. 자기 밑에 있는 이들은 모두 노예 취급입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그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배운 적 없는 단어일 거예요.”

그에게 숱하게 맞으며 알게 된 그의 본성이리라.

“심지어는 자기 회사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협박도 서슴지 않습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이죠. 실제로도 그 때문에 회사에서 나가지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에 붙들려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의 눈에 들지 못한 이들은 푸대접이나 받으며 아무런 지원도 못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뜨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지원 자체를 끊어버리죠. 돈이 아깝다고요.”

협박, 이란 표현을 제외한다면 사실 어느 정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닌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예로 생산성 높은 상품에 투자하고, 생산성이 낮은 상품은 생산 라인 축소 혹은 철거를 선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사람을 공산품에 비교할 순 없는 일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싶었다. 물론 머리로 이해만 할 뿐 정서적으로 동의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런데 보통 그런 성격을 가진 이라면 사업에 실패하거나 인맥이 좋지 않아 사장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야 할 텐데, 오히려 그의 사업은 늘 승승장구입니다. 기이할 정도로 말이죠. 한때는 그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사람이 돈을 벌려면 저래야 하나보다. 저런 사람이 성공을 하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등을 처먹고 사나 보다. 저러고도 벌을 받기는커녕, 목소리 떵떵거리며 건물이나 늘리고 있으니 성공하려면 저렇게 살아야 하나보다, 생각할 때도 있었죠.”

대훈은 얕은 숨을 들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건 아니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렇게 성공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저런 식으로 성공하고 싶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 주제에, 그러니까 당시 일개 매니저였던 주제에 그에게 충고나 조언을 할 위치나 됩니까? 그래서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그 회사를 나올 때도 말이죠. 그런 생각 하잖습니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래, 너는 그렇게 살아라. 그렇게 살면서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살아라. 그리고 다시는 보지 말자. 우연히 보더라도 아는 척 하지 말자. 아는 척해도 무시하자. 그런데 오늘은 생각이 좀 다르게 드네요. 저렇게 성공해서 우리 같은 회사를 엿 먹이는데 힘을 쓰는 경우라면 그냥 지켜만 봐선 안 되겠다고. 비록 싸울 힘은 없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선 안 되겠다고 말입니다.”

단유에게 설명을 하듯 말을 늘어놓았지만, 회의실에 모인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결코 이번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대표로서 선언하는 것이었다.

“지금 그의 행실에 대해 성토해봐야 무의미한 일입니다.”

묵묵히 있던 경영지원팀장이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대훈이 감정에 휩쓸려 제대로 회의를 진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팀장의 주도로 회의의 주제가 잡혔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긴 마찬가지였다. 법무팀의 강 변호사가 법적 조치를 위해 벌써 손을 썼지만 단시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보긴 어렵다고 선언한 마당이다. 법적인 수단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무슨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가?

“우선 유튜브 쪽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국내 회사도 아닌데, ‘그’ 사람의 영향력이 그렇게 절대적일 리는 없지 않습니까?”

홍보팀장의 질문에 경영지원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트가 문제가 아니라, 해당 뮤직비디오를 퍼블리싱하기로 한 쪽이 문제를 삼은 겁니다. 거기서 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니 문제인 거죠.”

제휴를 맺은 공식 퍼블리셔는 꽤 유명한 곳이고, 작은 기획사 정도의 입김으로 좌지우지되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곳이 뮤직비디오 공개를 막았다고 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럼 우리가 단독으로라도 공개를 해 버리죠.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음원과 동시 공개는 무리니까요. 아, 그런데 혹시 말입니다. 저희 음원 발표일이 뒤로 미뤄진 것도 혹시 관련이 있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경영지원팀장과 대훈 사이를 오갔다.

사실 최초 음원 발표일은 이틀 전이었고 시간도 오후 6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거의 대부분 음원들이 6시에 풀리는 추세에 따른 것이었고, 그 시간대가 퇴근이나 하교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맞물려 가장 많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불가피한 서버 문제로 6시 공개가 어렵다는 말과 함께 오후 1시라는 애매한 시간대로―일방적으로―변경되고, SNS를 통해 미리 신곡 공개 시간을 고지하고 ‘두근거린다’는 말을 남겼던 시은을 당황케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마케팅 팀과 해당 유통사 간의 소소한 마찰은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합의를 봤었는데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계시겠지만.”

경영지원팀장의 침중한 어조에 사람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오늘 오후 6시에 예정된 시은 씨의 쇼케이스 문제는 어떻게 할지, 혹시 의견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시죠.”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

“씨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언뜻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가는 외모지만, 실은 꽤나 감수성 짙은 ‘진짜 여자’라는 걸 시은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여자’의 성격을 가진 그녀가 매니저라는 직을 수행하면서 조금씩 입이 걸어지고, 차분했던 성격이 불같은 성격으로 변하는 걸 오랫동안 함께 하며 지켜보았다. 그걸 탓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녀가 매니저라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여자로서 거친 남성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어적인 변화임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욕은 좀 삼가지? 언니?”

침 튀기며 욕하는 매니저를 바라보는 게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대신해 욕을 입에 담는 것임을 모르진 않지만.

“욕이 안 나오게 생겼니? 내 살다살다 별의 별꼴을 다 본다 싶어. 씨발, 도대체 우리가 지들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우리가 무슨 돈을 떼어 먹었어, 아니면 쪽박을 차게 했어? 돈을 벌게 해줬으면 해줬지, 못 해 준게 어딨어? 무리하게 스케줄 잡는 것도 이해해주고 같이 상생하자고 해서 이해해준 게 얼마야? 근데,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나와? 감히 지들이?”

“됐어, 언니. 그만해.”

“그만하긴 뭘 그만해? 야, 너 누구야? 너 시은이야, 이시은. 천하의 이시은. 대한민국 스타 이시은. 대한민국에서 너 모르는 사람 없고, 대한민국의 날고 긴다는 가수들 중에서도 탑이야, 탑.”

“에이, 오버하지 마.”

“오버는? 개뿔, 무슨 오버야?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 시은이 아냐고. 설마 지 친구 중에 시은이란 이름 가진 이가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 이름 듣자마자 네 얼굴 떠올릴거다. 그런 너야. 너. 그런데 그런 너를 이런 식으로 물 먹여? 그 개새끼가?”

못 말리겠다는 듯 시은이 고개를 흔들자, 매니저는 더욱 광분했다.

“넌 화도 안 나니? 어떻게 그렇게 냉정할 수 있어?”

턱을 괴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던 시은이 그 상태로 입을 오물거렸다.

“내가, 냉정해 보여?”

“아냐?”

“아냐.”

“···본인이 아니라니 아닌 거겠지만, 그래도 영 반응이 없잖아?”

“그럼 언니처럼 날뛰어야 정상인가?”

“당연하지! 지금 화를 안 내면 그건 비정상이야, 비정상.”

“나도 화 났어. 단지 언니처럼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화 났어?”

“그럼. 오늘 모처럼의 신곡이고 나름대로 열정을 쏟은 앨범인데, 그 긴 시간의 노력과 열정이 한순간에 휴지 조각이 될 위기인데 화가 안 나겠어?”

라고 말하는 시은의 대꾸는 그 의미와 달리 조용하고 평온해, 언뜻 들으면 마치 오늘의 화창한 날씨를 예보하는 캐스터의 그것처럼 들렸다. 그런 시은의 모습이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거칠게 긁어대는 매니저였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뭐래?”

“어?”

이어지는 시은의 물음에 매니저가 잠깐 머뭇거렸다. 시은이 돌아보자, 매니저는 ‘에이 씨, 몰라’라고 투덜대더니 핸들 위에 턱을 얹으며 대답했다.

“회사라고 지금 당장 답이 있나. 아까 연락 왔을 때는 일단 기다려보라고는 하는데, 내가 봤을 때 지금은 답 없어.”

“그렇지? 그래서 내가 이러는 거야. 답 없는 상황에서 혼자 날뛰어 봐야 에너지만 낭비할 뿐인걸.”

턱을 괴지 않은 손을 들어 검게 선팅된 창문을 천천히 문질렀다. 그런다고 창의 검은 선팅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괜히 뽀드득거리는 소리와 창 유리에 피부가 끌리는 질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안 올라갈 거야?”

“올라가 봐야 뭐해? 딱히 들을 말도 없고, 듣고 싶은 말은 나오지도 않을 거고.”

답 없는 동정과 위로 따위로 신세를 한탄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매니저가 ‘천하의 이시은’이라며 허세를 부린다고 탓했지만, 솔직히 시은 역시 그 정도의 자부심은 있었다. ‘천하의’ 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내에서는 탑’이라는 자부심. 혹은 자존심.

그 자존심을 값싼 동정심과 맞바꾸고 싶지 않았다.

“우리 어디 갈 데 없나?”

“지금 어딜 가? 회사에서 기다리면서 대책을 세워야지.”

“대책은 위에서 세우는 거고. 힘없는 가수가 무슨 수로 대책을 세우냐? 아니면 우리 언니가 대책을 세우려나?”

그 말에 매니저도 입을 다물었다. 매니저와 가수가 동시에 입을 다물자 기분 나쁜 정적이 차 안에 한동안 흘렀다.

그때였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돌아갔다.

“어?”

이런 곳에서 볼 거라고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인물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시은이 잠시 망설이다 문을 열어주자,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던 단유가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아, 마침 회사를 나가려다 주차장에 차가 대어 있길래, 혹시나 하고 와 봤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차를 빼서 다른 곳으로 갈 걸 하는 생각을 하며 시은은 표정을 고쳤다.

“어디 가시나 봐요?”

“네, 잠시 일 좀 보러요.”

“재무이사님도 외근이 있으신가 봐요?”

“음, 업무 외적인 일이요.”

모르긴 몰라도, 지금 회사 안은 비상이 걸렸을 터인데 업무 외적인 일로 외근을 나간다? 어쩐지 상대에게 느꼈던 첫인상의 호감이 조금씩 내려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은은 그런 티를 내지 않으며, 되려 웃음을 지었다.

“바쁘시네요.”

“그리 바쁘진 않아요.”

그와 가졌던 술자리에서도 느꼈지만, 뭔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대답과 반응들이 나온다. 만약 지금이 평온한 일상 중의 한 때라면, 역시 유쾌하게 웃으며 받아들였을 테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수 없는 상황. 시은은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수고하세요.”

그런 그녀에게 단유가 대답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면 곧 원래대로 될 겁니다.”

응? 무슨 말인가, 물으려던 때에 단유는 다시 목례를 하고는 등을 돌렸다. 돌아서서 멀어지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다가 시은은 그를 붙잡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볼까 차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매니저에게 말했다.

“언니, 일단 아무데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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