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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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오늘 뮤직비디오랑 신곡 공개되는 건 다 알고 있지?”
“네.”
“혹시라도 그 때문에 흥분해서 레슨 때 집중 못 하는 사람 있다는 소리 들리면 즉시 조치할 테니까, 알아서들 잘해.”
“이제 10분 남았는데, 같이 안 보실래요?”
“이 녀석들아,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 같아? 지금도 사무실에 할 일이 쌓였어.”
매니저는 바닥에 놓여 있는 노트북을 힐끔 바라보고는 혀를 찼다.
“고작 자기 얼굴 몇 번 나왔는지 확인이나 할 요량이면서. 알아서 잘들 해. 문제 생기면, 알지?”
별 위협도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경고성 발언을 해 둬야 아이들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매니저는 검지와 중지로 아이들을 훑어준 뒤, 연습실을 나가고 연습생들은 다시 노트북 앞으로 조르르 달려갔다.
“미치겠어. 나 막 심장 떨려.”
“매니저님 말씀처럼 얼굴이나 잠깐 나오고 말 건데 왜 이렇게 떨리지?”
“나중에 우리 데뷔할 때는 진짜로 심장 터지는 거 아냐?”
“심장 터져 죽는 한이 있어도 무대에 한 번은 오르고 죽어야지.”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로 남은 시간을 채우다, 드디어 1시가 되었다. 이전부터 계속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며 혹시나 미리 나오지 않았을까 확인하던 지윤은 버튼을 연타하면 로딩을 재촉했다.
“언니, 잠깐만 기다려봐요. 사람들이 몰려서 늦는 걸수도 있어요.”
“우리 노트북이 구려서 그런 거 아닐까?”
“여태 잘만 됐는데 뭘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하지만 기다려도 뮤직비디오가 나오지 않았다.
“뭐지?”
“검색 해봐요.”
검생창에 시은의 이름을 써넣고 검색해 봐도 시은의 예전 무대 영상이나 뮤직비디오만 있을 뿐이었다. 가장 최신 영상도 3일 전에 올라온 행사 무대 편집 영상.
“뭐 잘못된 거 아냐?”
지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잘못되다니? 뭐가?”
“그야, 저도 모르죠. 그냥 이렇게 안 나올 리가 있나 싶어서.”
“우리가 시간 잘 못 알고 있었던 거 아닐까?”
“그랬으면 아까 실장님이 알려주셨겠죠.”
“실장님도 잘못 알고 있었다던가.”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이미 전부터 공개 예정 시간이 알려졌었는데, 우리가 한꺼번에 잘못 알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그 사이 시간은 1분을 지나 5분을 넘어 10분에 다다르지만 여전히 동영상이며 신곡의 공개는 없었다.
“진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이맛살을 찌푸리며 지윤이 고개를 들었고, 마침 아름과 눈이 맞았다. 비록 아름은 뮤직비디오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개될 뮤직비디오에 대해 관심이 없진 않아서 늘 끼고 있던 이어폰도 빼고 공개 예정 시간 전부터 지윤의 옆에서 함께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무슨 일일까요?”
비단 지윤만의 궁금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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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나와? 아직?”
“네.”
할 일이 많아서 바쁘다던 매니저도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향해 목을빼고 바라보고 있었지만, 역시 동영상은 물론이고 음원 사이트에도 신곡이 나오지 않는 사실에 당황해하고 있었다.
“팀장님, 혹시 아시는 거 없으십니까?”
“나도 모르지. 위에서도 아무 말 없었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사무실 직원 한 명이 전화를 받더니 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님, 회의실로 오시라는데요.”
이 시간, 팀장 호출이 여간 심상치 않다. 더구나 공개가 되기로 한 신곡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니 위에서도 비상이 걸렸나보다 싶은 생각을 누구나 할 수밖에 없었고, 팀장은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집어들며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문자 줘’라고 말한 뒤 사무실을 떠났다.
남은 신인개발팀 직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누군가 해주길 바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모두 같은 표정일 따름이다.
신인개발팀 뿐만이 아니라 사내 거의 대부분 부서에서 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현재 사내에서 가장 윗선이라 할만한 이들이 모인 회의실은 그보다 더했다.
“하아.”
대표인 대훈의 미간 사이에 새겨진 깊은 골은 부장급 직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훈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대표마저도 지금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한 탓이다.
긴 한숨을 토해낸 대훈은 이마를 신경질적으로 긁더니 시선을 돌려 사내 법무팀 강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방법이 없습니까?”
“방법이 없진 않죠. 그런데 이를 법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고, 설령 법적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상대 쪽에서 적당한 핑계를 대면 오늘 일에 대한 보상은 받을 길이 없다는 게 문제죠. 더 큰 문제는, 지금 당장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죠.”
그때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호출받은 팀장 및 부장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진즉에 회의실에 자리 잡고 있던 이사급 임원들의 면면을 살피며 허릴 숙여 인사한 뒤 빠르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짐작하며 회의실로 왔을 테니, 지금의 분위기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짐작대로의 발표가 나왔다.
“오늘 신곡 공개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누구도 선뜻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와중에, 단유가 물었다.
“왜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던 대훈이 단유를 한 번 보고 마른 세수를 한 뒤 입을 열었다.
“일단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따로 연락을 취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하아, 시은의 전 기획사에서 음원 출원을 막은 것 같다고 합니다.”
“네?”
신곡 발표 당일, 음원 출원을 막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신인개발팀장이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가 얼른 입을 막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 벌어진 일은 충격적인 일이었으니까.
아티스트, 아이돌이 전 기획사와의 마찰로 활동에 지장을 받는 일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흔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드문 일도 아닌 일이었다. 워낙에 복잡한 계약으로 얽히고설키는 바닥이라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일이었고, 공공연히 보도되지 않더라도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 현실이 남일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벌어졌다는 점에서 놀라고, 더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시은이라는 점에서 또 놀라며, 더욱이 그 마찰이 벌어진 시점이 신곡 발표 당일이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게다가 대표의 표정을 보건대, 그 역시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이 자신들과 별반 차이가 없던 것 같다는 점에서 또 놀라고 마는 팀장들과 부장들이었다.
“그런데 제가 잘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원래 이렇게 갑자기 공개를 막을 수 있는 겁니까? 상식적으로는 음원 출원 중지라는 조치를 취하기 이전에 저희 쪽으로 해당 조치에 관련된 사실을 우선 적시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단유가 강 변호사를 보며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대훈이 했다.
“그게 맞는 말인데, 이게 또 항상 법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고, 상황도 꽤 많이 꼬인 상태예요.”
이를 아득 물고 대답하는 대훈이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지 전 기획사가 음원 출원을 막았다는 표면적인 이유만 들으면 놀랍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고 생각할 수도 있다. ‘판매 금지 가처분신청’과 같이, 이제는 워낙 언론에서 많이 언급된 탓에, 일반인들도 거의 다 아는 그런 법적 조치를 취했겠거니 판단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일전에 시은 씨랑 계약을 할 때, 당연히 전 기획사와의 계약 종료에 관해 저희 법무팀에서 확실히 확인했었고,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건들은 모두 깔끔히 정리한 상황입니다. 아니, 상황이었습니다. 소소하게 남아 있던 행사 건이라든가, 그런 건 우리 쪽에서도 협조해서 깔끔히 털도록 했고요. 수익 정산과 관련된 부분도 깔끔하게 정리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니 지금 전 기획사 운운하는 건 사실 저희로선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강 변호사의 설명에 대훈이 말을 가로챘다.
“그런데 말이죠, 이 전 회사라는 곳이 3대 기획사 수준의 영향력이 큰 회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전 기획사가 무슨 힘으로 음원 사이트며, 해외에 본점을 두고 있는 동영상 사이트에 공개를 막을 힘이 있냐는 것입니다.”
그야 법원에서 내준 명령서만 들고 가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강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닌 게, 만약 그렇다 해도 그걸 지금까지 모르게 진행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런 문제라면, 저희도 법적 당사자가 되니까 저희에게도 미리 고지가 되었어야 하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거든요? 기습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인데, 모종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나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종의 힘이요?”
이때 대훈이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바드득 이를 갈았다.
“이 일의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어요.”
갑자기 음모론?
“음모론 따위가 아닙니다. 믿을 만한 사람한테서 조금 전에 연락이 왔어요. 아무래도 밉보인 것 같으니까 조심하라고.”
“누구한테 밉보였다는 거죠?”
대훈은 바닥을 뚫을 듯이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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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합니다. 네, 네. 그럼요, 이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죠. 아시죠? 제가 은혜는 배로 갚는다는 거?”
은혜는 배로 갚지만 원한은 제곱의 제곱으로 갚는 성격이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 통화를 종료한 사내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자식이 어디 쉽게 배 채우려고. 이 바닥이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란 말이야.”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선배로서 교훈을 내리고자 친히 힘을 쓴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자신과 같은 레벨로 놀려는 꼴이 하도 같잖아서 아주 얕은 수를 썼을 뿐이었다.
지금쯤 그쪽은 발칵 뒤집혀 졌으리라. 그리고 대훈이, 그놈은 잔뜩 얼굴을 구기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지. 하지만 제깟 놈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돈만 있으면 다 될 줄 알았겠지만, 택도 없는 소리. 이 바닥은 돈만으로 굴러가는 곳이 아니다. 물론 돈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바로 ‘인맥’이다.
그에겐 없고, 자신에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내, 광식의 힘이었다.
“정광식 사장, 그놈이 뒤에서 일을 꾸미고 있어요.”
대훈이 대표로 재직하기 전, 매니저로 있을 때 그가 속했던 회사의 사장. 유진의 현 소속사 대표.
단유는 일산의 모 스튜디오 주차장에서 만났던 그 사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대훈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던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기시키며 물었다.
“어쨌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살피면, 불법이란 거잖아요? 우리한테 고지도 되지 않은 채 법 집행이 이루어져서도 안 되고. 설령 그 부분을 제하더라도 이렇게 강제로 집행이 되면 그것 역시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나요?”
단유의 말은 법적인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겠냐는 상식적인 질문이었다.
“문제가 뭐냐면, 이게 비공식적인 루트로 알아낸 사실이란 점입니다. 음원사이트도, 동영상 사이트도 공식적으로 지금 상황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점이니, 정말로 법적 조치를 단행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말이 안 되는데요? 법적 조치를 단행한 게 아니면 어떻게 공개를 막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처음에 말씀드릴 때, 전 기획사에서 음원 출시를 막은 것 같다, 고요.”
강 변호사의 사무적인 대답,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
“현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음원과 뮤직비디오의 공개가 막혔고, 우리 측에서 그 부분에 대해 진상을 알고자 전화를 했더니, 상대 쪽에선 정확한 대답을 피하며, 잠시 보류가 되었다고만 했습니다. 이마저도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니, 차후에 다시 검토를 해봐야 할 부분이나, 어쨌든 당장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좀 더 정확한 사유를 듣고자 알아본 바, 대표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법적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고, 그래서 저희 법무팀이 법원은 물론이고 해당 건에 대해 어떤 법집행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이윤 나오지 않았나 보군요.”
강변호사는 오른손 앞에 두었던 검은 화면의 핸드폰을 살짝 들어보였다.
“여기서 대표님은 저희와 달리 아시는 분이 많으시니까, 따로 알아보신 모양이신데, 여기서 좀 전에 말한 그런 법적 조치가 단행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답이 전부였습니다.”
“정광식, 그 새···, 아무튼 그 사람이 벌인 일입니다.”
단유가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시죠?”
“조금 전에 저한테 뜬금없이 문자를 날렸거든요. 고생해, 라고. 지금 이 일을 모두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제가 아는 광식이란 사람은 충분히 이런 일을 짧은 시간 내에 해낼 수 있는 파워를 가진 노···사람이거든요.”
전화기를 너무 세게 쥐는 것이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손가락이 하얗게 변해버린 대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