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70화 (870/956)

호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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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갈 때는 신나게 나가더니 들어올 땐 울적한 표정이 되어 돌아온 지아를 보며 창모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본인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예의는 아니다 싶어,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곡 나오고 반응을 보는 건 오후에 해도 되니까, 일단 지금은 하던 공부부터 합시다. 오케이?”

“네.”

지아의 대답에 창모는 손뼉을 짝 치며 설명을 시작했다.

“자, 어제 하던 곡부터 살펴보자고. 어제 여기, 벌스(verse)까지 했지? 벌스 이후부터 코러스가 들어가는데, 여기까지 계속 빡빡하게 진행했잖아? 그리고 다음 코러스 부분도 소프라노 음역대가 같이 포함되니까 계속 이런 템포로 음악이 진행되면 짧은 길이에도 귀가 피곤해질 수 있다고. 그래서 여기의 패드들을 모두 빼버리는 게 내가 쓰는 방법이야. 길지는 않지만, 짧은 순간 악기들이 빠져버리면 오히려 다음 싸비에 더 집중력이 올라가지.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잘 안 될지도 모르겠는데,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랑 비슷해.”

설명을 이어가던 창모는 한 템포 쉬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잠깐 쉬어주는 타임을 가져주면 과연 다음에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게 만들잖아? 공포영화 같은 데서도 봤지?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뭔가 나올 것 같다는 암시를 주는 컷씬이 들어가면 관객들은 숨죽이고 긴장하게 되잖아? 알지? 대중음악에서도 이런 방식은 꽤 유용해. 비록 3, 4분의 짧은 곡이라도 그사이 사이에 이런 포즈(pause)를 넣어주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니까 잘만 쓰면 꽤 쓸만한 테크닉이야.”

“클래식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 거 같은데요?”

“클래식과 다른 점은 있는 듯 없는 듯 미묘한 간극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거지. 대략 3분여의 곡에서 포즈가 길어버리면 오히려 흐름이 끊겨. 길고 웅장한 클래식의 곡에서 사용하는 포즈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자, 들어봐. 아예 패드를 잘라버리면 이렇게 들려.”

약간의 조작 후 들려준 곡은 어딘가 어색한 느낌.

“그리고 다음.”

악기를 빼버리되, 보컬의 잔향이 남도록 리버브를 조작하니 자연스럽게 다음 패드 라인에 기록된 코러스와 이어지며 부드러운 느낌이다.

“확실히 차이가 많이 나네요.”

“누차 이야기하지만, 음악은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만드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 나 혼자 신나서 이것저것 다 집어넣으면 오히려 노이즈가 돼버려. 대화를 한다는 느낌으로, 대신 상대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상대의 반응을 고려하면서 곡을 만들어야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거야.”

“네.”

“그런 의미에서 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결이 다르다고 봐. 가끔 클래식을 들으면 졸린 이유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곡이 전하는 느낌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거든. 마치 난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할 테니까, 넌 닥치고 들어, 라는 느낌. 반대로 대중가요는 이런 느낌이야. 내가 이런 일을 겪었어, 혹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 넌 어때? 동의해? 공감할 수 있다면 같이 느껴보지 않을래, 라고 묻는 느낌.”

너무 주관적인 해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또 그리 틀린 답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클래식에 대한 해석이야 그렇다쳐도, 대화를 하는 것처럼 곡을 만들라는 창모의 의견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뭐니뭐니해도 요즘은 소통의 시대 아닌가? 무조건 내 말만 하기보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배려하며 말을 꺼내야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아는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다. 울적해졌다. 과연 조금 전 대화에서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인가, 단유인가.

“딴생각 중인가 봐?”

“네? 아뇨. 듣고 있어요.”

“듣지만 말고 직접 만져봐. 지금 이렇게 만드는 건 나만의 방식이고, 다른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템포를 유지하니까. 너한테도 너만의 방식으로 곡을 채우고 연결하는 법이 필요해.”

우선 작곡을 하는 법부터 배우고, 다음에 대화를 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겠다. 지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난 창모의 자리로 다가가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하는 이유가 뭐지? 작곡을 배우기 위해서. 왜 작곡을 배울까? 작곡가로 성공하기 위해서. 성공이 목표인가?

그렇다. 비단 자신뿐 아니라 세상 사는 사람들 모두 성공을 꿈꾼다. 옆에서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팔을 괴고 바라보는 창모는 성공한 작곡가인가?

선생님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창모 정도면 나름 성공한 축이라 봐도 되지 않을까? 회사에서 연봉이나 인센티브를 얼마나 받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작곡가들의 주 수입원이라 하는 저작권료를 생각해보면 부족함이 뭔지 모를 정도의 수익을 얻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가 이루어낸 성공의 비결을 바로 곁에서 배울 수 있게 된 지금의 자신은 행운아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리고 이런 행운을 가지게 해준 것이 바로 단유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는 평생 고마워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에게 불만이나 모욕을 느낀다하면 잘못된 일일까? 어쩌면 그가 한 말대로 도가 지나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니까.

“뭐해? 집중 안 해? 여기 싱크(sync)가 나갔잖아?”

지아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얼른 마우스를 움직였다. 자신은 지금 학원을 다니는 게 아니라 회사를 다니는 것이다. 창모는 강사도 아니고, 직장 상사이다. 그가 귀한 시간을 내서 가르쳐주는 데 딴 생각이라니.

“죄송합니다.”

얼굴을 붉히며 지아는 속으로 자신을 욕했다. 정신 빠진 년. 이러니 욕먹어도 싸다.

****

평소의 지금이라면, 학교에 가 있을 연습생들을 제외한 이들이 연습실에 모여 가볍게 몸을 풀고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몸을 푸는 대신 바닥에 둘러앉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도 아직 못 봤어?”

“응. 안 보여주더라고.”

3일 전 퇴원한 보민은 집에서 하루를 쉬고는 바로 다음 날 회사에 나왔다. 통원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연습을 계속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자마자 나온 보민이었다.

“그래도 부럽다. 뮤직비디오라니.”

그녀가 병원에 있는 동안 월말 평가가 무사히 치러졌다. 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치러진 월말 평가에서 A반 4명, B반 5명의 연습생들이 뮤비 출연 자격을 얻었다.

처음에는 채린의 경우처럼 최고 평가를 받은 단 한 사람만 출연이 될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으나, 뮤직비디오의 컨셉이 바뀌면서 다수가 출연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다만 평가 성적에 따라 출연 횟수나 역할의 비중에 차등이 있었으나, 출연이 결정된 연습생들 중에 불만을 가지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출연권이 늘어나면서 최상위 평가를 받지 못함에도 출연하게 되었으니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지난 한 달간의 땀과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서는 충분하다 여겼다.

그리고 그렇게 출연이 결정되었던 연습생들 중에는 동갑인 슬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거야.”

슬기는 입꼬리를 내리며 아쉬워하는 보민을 토닥였다.

“다음 언제?”

“음, 데뷔 뮤비?”

“그랬으면 좋겠다.”

꿈과 같은 데뷔. 그 꿈을 위해서 보민은 한 몸 불사르기로 마음먹은 참이었다.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얼마나 이곳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때문에 아직 신체적으로 완벽한 컨디션이 아님에도 이렇게 나온 것이고.

그래도 그렇게 아팠던 탓에 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이 마음에 든다며 히죽 웃는 보민이었다.

“다이어트 캠프에 다녀온 거 같지 않아?”

여전히 병색이 사라지지 않은 보민의 익살에 슬기는 풋, 웃음을 터뜨려 환영했다.

“이제 20분 남았다.”

뮤직비디오가 나오기로 예정된 시간은 정확히 오후 1시. 보통은 전날 0시 땡, 하면 공개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뮤비 공개는 애매하게도 오후 1시로 결정되었다. 무슨 사정이 있나 보다, 추측해보지만 자세한 사정은 알 길이 없었다. 그게 뭐든 무슨 상관일까. 공개만 된다면야.

지윤이 시간을 확인하자, 흩어져 있던 몇몇이 엉덩이를 끌며 슬금슬금 모였다.

“나오자마자 막 조회수 올라가는 거 아니에요?”

지서가 지윤의 곁에 붙어서 함께 노트북 화면을 보며 물었다.

“그렇겠지. 시은 선배 팬이 많으니까.”

연습 때 사용하는 노트북을 가져와 동영상 사이트를 열고 의미 없이 새로 고침을 계속하고 있는 지윤이었다.

“1시간 만에 천만 찍으면 대박일 텐데.”

“에이, 그건 무리다. 보이 그룹도 1시간 만에는 불가능이야.”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죠.”

지윤은 또 한 번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고 화면이 로딩되는 것을 보는데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들어 올리니 아름이 연습실을 나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 아름과 슬기는 단 한마디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서로를 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좁은 공간에서 피할 곳이 있을 턱이 있나. 그런데 놀랍게도 둘은 지켜보는 사람들이 조마조마할 정도로 부딪힘 없이 지난 두 달여를 보냈다.

슬기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시율이나 경빈, 채린이나 시화에게 장난도 치고, 지윤이나 지서에게 다가와 고된 연습에 대한 가벼운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마치 그날의 일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아니 아예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단지, 그녀의 행동반경 속에 아름이 포함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름. 그녀는, 지윤이 보기에는, 여전히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충격이었을까? 따지면 지윤도 그녀와 부딪혔었다. 그러나 슬기와 달리, 지윤은 아름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윤은 아름과 기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아 했으니까. 누구와도 소모적인 감정 싸움은 하고 싶지 않은 지윤이었기에 아름과도 별일 없었다는 듯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슬기는 지윤과 달랐고, 슬기에게는 지윤이 미처 이해하지 못한 이유로 아름과의 갈등을 풀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두 사람이 완전히 갈라지게 된 계기는, 역시 뮤직비디오 때문이리라. B반의 연습생은 총 9명, 그중 입원으로 평가를 받지 못한 보민을 제외하면 8명. 그중에서 5명이 출연했으니, 출연하지 못한 이는 3명. 그중에 아름이 속해 있었다. 반면 슬기는 당당히 출연이 결정되었고, 그런 사정이 두 사람의 거리를 더욱 크게 벌려놓았다.

슬기는 당당했고, 아름은 더욱 기가 죽은 모습이다. 지윤이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차라리 누군가 매니저에게 이야기해서 반을 옮기던가 하면 좋지 않을까 싶지만―그리고 그 누군가는 거의 아름일 확률이 높지만―아름이나 슬기나 모두 매니저에게 그런 사정을 토로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불편한 감정과 거리와는 별개로, 두 사람 모두 레슨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했고, 때문에 일상에서는 크게 문제가 벌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다른 연습생들도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돼버린 상황이다.

다시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고, 당연히 아름일 거라 생각했던 지윤은 등장한 인물이 매니저임을 알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다들 모여봐.”

이미 모여 있었지만, 매니저 앞으로 도열하란 뜻이기에, 노트북을 뒤로하고 총총 뛰어갔다.

“급식이들 빼고 다 있지?”

학교에 가 있는 어린 동생들을 통칭하는 표현이 어느새 ‘급식이’로 자리를 잡았다.

“아름 언니 잠깐 화장실 갔는데요.”

지윤이 대답했다. 정말 화장실에 간 건지, 아니면 비상구 계단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렇게 둘러댔다. 그런데 마침 문이 열리며 타이밍 좋게 아름이 들어왔다. 지윤은 아름에게 작은 손짓으로 오라고 일렀고, 아름은 매니저에게 목례를 한 후 지윤의 옆으로 다가왔다.

매니저는 모두를 한 번 훑은 후 입을 열었다.

“공지했던 대로 다음 주 월요일, 현 연습생들은 합숙소 생활을 시작한다.”

이미 지난 주에 나온 이야기였다.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소린데, 그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이라면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나쁜 점이라면 부모님이 24시간 제공하던 편의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거부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합숙소에서 다 같이 모여서 생활하게 되면 아무래도 힘든 게 많을 거야. 특히 어린 급식이들 중에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니 너희들의 역할이 크다. 너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합숙소 생활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지윤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 슬쩍 옆을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아름과 슬기도 같은 공간에서 24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인데, 과연 사자와 호랑이를 같은 우리에 넣어두면 어떻게 될까?

누가 사자이고 누가 호랑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다음 주면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직접 볼 수 있을 거란 걱정을 잠시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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