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65화 (865/956)

호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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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이유는 단순했다. 같이 연습하는 동료들과 함께 갈 것인가, 아니면 따로 갈 것인가. 만약 간다면 다 같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분위기에서 같이 가자고 하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늘 이와 같은 일로 고민하는 일이 많다. 모두가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고민의 상당수는 해결된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다보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도 어떤 이에겐 전혀 당연하지 않은,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정도가 되버린다. 그리고 시율은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듯, 행동 양식도 다르다. 시율의 고민을 들은 시화는 그게 뭐 대수냐며 벌떡 일어서더니 뒤로 돌아서서는 연습실에 남아있던 아이들에게 외쳤다.

“오늘 보민 언니 병문안 같이 가실 분?”

모두의 시선이 시화에게로 쏠렸다.

“오늘?”

“네.”

시율이 꺼내기 힘들어했던 말을 시화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뱉었고, 어린 동생이지만, 시율은 시화의 그런 모습이 당당해보였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별개로,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도 사람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그런 말을 할 때는 아니지 않냐’는 둥의 반응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걱정스레 묻는 이는 있었다.

“오늘은 좀 무리 아니니?”

홀로 앉아 있던 지윤이 물었다. 역시 그렇지, 라고 생각할 찰나.

“왜요?”

시화가 물었고,

“오늘 레슨 끝날 때 쯤이면 면회 시간도 끝나 있을걸?”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중환자실이 아니면 상관없으려나? 그래도 밤 늦게 끝날 텐데, 집에는 어떻게 가려고?”

“그런가? 그럼 언제가 좋아요?”

“일단 나중에 실장님한테 물어보고 다 같이 가는 게 좋겠지.”

“아, 실장님한테 물어봐야 하는구나.”

단체 행동을 하든, 개별 행동을 하든, 연습생 신분으로 있는 동안에는 되도록 매니저에게 선보고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중에···내가 실장님한테 물어볼게, 그때 정하자.”

“네.”

별 큰 내용은 아니었지만, 병문안 이야기를 한 덕인지 연습실 내의 싸늘했던 분위기가 조금 가신 느낌이었다. 목소리 큰 지윤과 당당한 시화 덕이다. 시율이나 채린이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 시율은 다시 맞은 편에 앉으며 ‘저 잘했어요?’라는 표정을 짓는 시화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편, 연습실을 나갔던 아름은 복도 중간 즈음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당장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혼자 있고 싶은데 막상 이 건물 안에서 혼자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일과 중에도 탈의실에는 가끔 연습생들이 들리니 그곳엔 가기 어렵고, 결국 드라마, 영화에서 걸핏하면 주인공들이 화장실 구석칸에 들어가 질질 짜던 모습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지만, 때마침 화장실 쪽에서 나오는 A반 남자 연습생들의 모습을 보고 잠시 주춤거렸다.

고개를 숙였지만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누나’라고 부르며 인사도 건네던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라도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지 아름이 풍기는 까닭모를 어둠의 기운에 지레 말문을 닫은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는 체 하지 않고 지나가주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묻지 않아줘서, 괜찮냐고 위로해주려 하지 않아줘서 고마웠다.

화장실 구석 칸이 비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좌변기 위에 주저앉으니 서글퍼졌다. 왜 이런 꼴이 된 것인가, 스스로가 한심하고, 자신을 몰아붙이던 슬기에 대한 적개심이 상승했다.

앞으로 뒤로 꽉 막힌 칸막이 안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려하니 이보다 초라할 수 없고, 앞으로 남은 시간, 남은 미래 얼마나 더 초라해질지 몰라 괜히 눈물이 나려 했다.

‘울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또 눈물이 나려 한다. 왜 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실 슬기로부터 들어야 했던 수모도 수모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스스로에게 있다, 고 아름은 생각했다. 만약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연습생이 되기 전의 자신이었다면 결코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 전처럼 그리 어이없게 발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전의 자신은 늘 자신감이 넘쳐 흘렀고, 여유가 많았으며,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위에 발산하고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싶어했고, 다가온 친구들은 언제나 최고의 친구라고 손꼽아 주었다.

‘쌩얼’에, 땀에 절은 연습복을 걸치고 레슨에 허덕이는 자신의 모습은 예전의 자신이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래,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야지, 라고 각오했던 것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때의 풋내나는 객기였다.

풋내기. 그건 정말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어려서는 주위 친구들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었고, 미숙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남몰래 연습하며 겉으로는 그저 능숙한 척을 해보이고 싶어했다. 싶어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일찍 철이 들었다느니, 못하는 게 없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그랬던 아름이 지금, 미리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왜일까?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

친구인 지아와 자신을 비교하면서부터 뭔가 마음속에 세웠던 단단한 탑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늘에 도전하려 했던 옛이야기 속 바벨탑의 그것처럼 높게 지으려했건만 건물을 쌓기도 전에 바닥에 균열이 생긴 것마냥 마음 속 단단한 각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힘든 오디션을 거치지도 않았고, 땀내 나는 연습복을 입지 않아도 되고, 아침엔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폼나는 사무실에서 폼나는 음악을 창작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니 자꾸 비교가 된다.

불안한 미래와, 그보다 더 불안한 현재의 실력.

그렇다고 그녀를 탓할 수 있을까. 사실 처음에는 속좁게 그녀를 질투하기도 했지만, 그리고 지금도 그녀를 조금은 질투하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건만, 그때 생긴 균열은 조금씩 마음 속에서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정말 갈 곳이 없었을까? 굳이 이런 냄새나는 화장실 구석으로 자신을 몰고 갔어야만 하는가?

‘촌스러워. 유치해. 쪽팔려.’

여기 온 것도, 여기 앉은 것도, 앉아서 궁상을 떠는 것도 어느 하나 부끄럽지 않은 것이 없다. 나중에 누구에게라도 말 못할 일이다.

아름은 괜히 물을 내리고, 휴지를 둘둘 말아 눈가를 찍어 말린 뒤,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아와 마주쳤다.

****

사면에 달린 모니터링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멎고도 한참 동안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불편하다기보다는 단지 조심스러운 입장. 특히 이 곡의 주인이 될 이의 눈치를 살피느라 쉽게 열지 못한다. 그러니 이럴 때는 대표가 나서야 했다.

“잘 나왔는데? 어때요?”

대훈은 반응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여태 눈을 감고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던 시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훨씬 좋네요. 솔직히 이런 템포의 음악이 어울릴까 싶어 걱정이 많았는데, 되게 세련된 느낌도 들고, 좋아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감사합니다.”

며칠 밤을 샌 탓에 눈 밑이 거뭇해진 작곡팀의 리더 창모가 웃음을 흘리며 두 사람의 반응에 기뻐했다.

사실 시은의 다음 앨범은 이미 기획된 바와 같이 미니 앨범으로 준비되고 있었고, 그에 맞춘 곡들도 모두 선정이 되었던 상황이었다. 총 4개의 곡이 수록될 예정이었던 미니 앨범에서 한 곡은 지아가 발설하는 바람에 대훈이 기회를 얻어 태훈에게 허락을 구하고 시은이 노래를 부르게 된 OST 곡이었고, 다른 세 곡은 온전히 창모를 비롯한 작곡팀이 협동하여 만든 곡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그랬는데, 마스터링까지 끝낸 후 문제가 생겼다. 드라마 OST로 쓰일 예정이었던 곡의 수록이 어렵게 된 탓이었다. 이유는 드라마 제작사 쪽에서 따로 음원으로 출시하게 될 예정이니 삼가 달라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요구가 들어왔고, 이에 대해 따로 협의를 했지만 지지부진한 협상이 이어지면서 새 앨범 출시에 따른 스케줄에도 영향을 미칠 듯 하니 시은이 먼저 곡의 수록을 포기하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새 앨범 컨셉에 맞지 않잖아요?”

시은도 새 미니 앨범이니만큼 OST 곡이 아닌 오리지널 곡이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새롭게 제시하는 바람에 작곡팀에서 부랴부랴 새 곡을 만들게 되었다.

솔직히, 현재 작곡팀, 아니 창모의 컴퓨터에만 기존에 만들어두기만 해 놓고 쓰지 않은, 그렇지만 괜찮은 수준의 곡들이 수두룩했다. 시일이 급박하고 새 곡을 만들기가 쉽지 않으니, 그 곡들 중에서 컨셉과 어울리는 곡을 선정해 편곡만 적당히 해서 내놓으면 쉽게 일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공장이 되기보다 음악장인이 되자.”

는 창모의 고집에 작곡팀은 빠듯한 시간 속에서 새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존의 곡들이 절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장의 트렌드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데, 이미 만들어진 트렌드에 따라 곡을 사용하기 보다 새 트렌드를 만들어 나가자는 게 이번 앨범의 컨셉 아니겠습니까? 새 출발. 그러니 우리도 지금껏 만든 것과 다른 곡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겁니다.”

작곡팀은 창모의 진두지휘 아래 에너지드링크로 배를 채우고, 눈이 시뻘겋다 못해 절로 눈물이 나와 고드름같은 눈꼽이 끼도록 밤을 새워가며 작업에 열중했다. 흔히들 공대 출신의 기술자들이 ‘갈린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곳에서도 그 의미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영혼과 체중과 멘탈을 모두 갈아서 만들어낸 작품은, 다행히 결정권자인 대훈과 시은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고 창모를 비롯한 작곡팀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짝, 대훈이 두 손바닥을 마주치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럼 이걸로 진행합시다. 일정에 맞추려면 조금 빡빡하긴 하겠지만, 내일부터 스케줄 비워놓고 녹음 시작하면 얼추 시간에 맞춰 내는 건 가능하겠죠?”

“그럼요, 가능하죠.”

“역시 시은 씨는 프로네. 오케이, 그럼 그렇게 가는 거로 하고, 창모씨 수고 많았어요.”

“아닙니다. 이걸로 무슨···.”

“이걸로 오늘 회식 좀 하고, 내일은 좀 늦게 출근하던지, 아니면 아예 하루 푹 쉬던지 해요. 쉬지 않으면 앞으로 창모 씨 얼굴 보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말이죠.”

대훈이 건네는 카드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드는 창모는 길게 입꼬리를 늘렸다.

“저도 가도 돼요?”

불쑥 끼어드는 시은.

“그럼 안 오려고 하셨어요? 당연히 시은 씨가 함께 하시는 줄 알았는데?”

실은 정반대였지만, 워낙 바쁜 분이라 누추한 회식 자리에 함께 할 리가 있겠냐는 생각을 그대로 말로 뱉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창모의 대꾸에 시은은 눈웃음을 지으며 ‘오늘 밤 열심히 달려봐요’라고 흥을 돋웠다. 접대성 멘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번 미니 앨범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던지라 시은 역시 일이 무사히 진행된 것에 대해 자축하고픈 마음이었고, 새로 나온 곡도 꽤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냐면,

“근데, 이 곡 타이틀로 해도 괜찮지 않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대훈이 주춤거리며 시은을 쳐다보았다.

“이걸로요?”

“너무 좋잖아요? 가사도 잘 뽑혔고. 가사는 누가 썼어요?”

“아, 그게 이 친구가 썼습니다.”

창모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처음 인사할 때 이후로 있는 듯 없는 듯, 숨을 쉬는지 안쉬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옅었던 여자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그래요? 가사가 참 좋네요.”

“···고맙습니다.”

“애틋한 사랑을 해봤나봐요?”

“실은 사랑이 아니라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시시하기만 했던 존재. 어느 것 하나 잘난 것이 없고, 자신의 부족함만을 24시간 자책하던 그 시절. 그러다 우연히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뒤로, 창모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배우고 응원받고 격려를 받으며 조금씩 자신감을 얻게 되면서 변해가기 시작한 자신의 모습을 관조하며 써내려간 일기같은 가사.

스스로를 타자화시켜 한때는 미웠지만, 결국 하나가 될 수밖에 없던 운명,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 모습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려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연애담처럼 써내려간 가사. 상투적이지 않고 새로운 관점에서 사랑과 연인을 바라보는 듯해 노래에도 썩 어울리는 편이었다.

“전 그냥 경험삼아 한 번 써보라고 한 건데, 이렇게 괜찮은 가사를 써낼 줄은 몰랐죠. 작곡보다 가사에 더 재능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웃으며 말하는 창모의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손을 격하게 내저었다.

“운이 좋았어요. 이런 가사는 앞으로도 쓰지 못할 거예요.”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걸 배웠잖아?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가사를 쓰게 될지도 모르고. 가사도 음악의 하나야. 음악에 말로 리듬감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넌 그런 리듬감을 느끼는 재능이 있는 거니까, 계속 그 재능을 살려보라고.”

“이야, 뜻밖에 인재를 얻은 셈이었군요, 우리?”

대훈의 너털웃음 속에 더더욱 얼굴을 들기 힘들어하는 지아였다.

부담스러운 칭찬 세례에 볼일을 핑계로 작업실을 나온 지아는 달뜬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름과 마주쳤다.

회사에 들어온지 두어 달 동안 어쩐 일인지 서로 마주칠 일 없던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이 순간 맞닥뜨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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