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60화 (860/956)

추억(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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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가며 들리는 발걸음의 울림이 마치 텅 빈 동굴 속을 탐험하는 느낌이었다. 굳게 닫혀있는 문들과 아무런 반응이 없는 공기는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들었고, 동시에 뭔가 이유 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단유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라 매니저는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지금의 상황, 지금의 분위기에서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보민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저런 것일까? 반대로 매니저는 보민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초조했다.

‘이건 무슨 범죄현장을 쳐들어가는 기분이잖아?’

침을 꿀꺽 삼키고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201호 문 앞에 서 있었다. 살짝 칠이 벗겨진 문 귀퉁이와 식상한 폰트의 ‘201’이라는 숫자가 겸연쩍게 드러난 현관 앞에서 매니저는 불안감을 누르며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공동현관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인터폰. 제대로 누른 건지 불확실해서 다시 한번 버튼을 꾹 눌러본다.

여전히 반응이 없어 매니저는 뒤로 돌아보았다.

“없는 것 같은데요?”

대답 대신 멀뚱멀뚱 매니저를 바라보는 단유의 시선에 매니저는 머쓱해하며 다시 인터폰을 눌러보고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혹시 안쪽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했는데, 문이 너무 두꺼운 건지, 인터폰이 아예 작동을 하지 않는 건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혹시나 하며 단유를 바라보는데, 단유는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덩달아 아래를 보았지만, 딱히 특이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단유는 바닥과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기는 청소를 하는 사람이 딱히 없나 봅니다.”

“네? 왜요?”

“사람들의 발이 닿지 않는 모서리 근처는 먼지가 많이 쌓여 있으니까요.”

“아.”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덕인지 대충은 알 것 같네요.”

“뭐를요?”

“여기를 지나간 사람이 대략 대여섯은 된다는 걸요.”

“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가장 최근에 남은 발자국을 보건대 아마 어제 이 앞을 지난 사람은 넷을 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중 둘은 여기를 지나 저기, 다른 호실로 향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매니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걸 알 수 있습니까?”

“특히 어제는 비가 왔던 탓인지 신발에 물기가 많이 있었겠죠. 그래서인지 바닥에 약간 그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네요.”

“눈이 참 좋으시네요.”

“···그리고 여기 201호 앞에는 두 사람 정도가 매니저님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하진 않네요.”

이미 매니저가 문 앞에서 인터폰을 조작하거나 문에 귀를 기울이는 등으로 움직이는 사이 여기저기 바닥을 비벼댄 바람에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국이 지워졌다.

“아, 죄송합니다.”

이건 마치 범죄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부주의하게 건드려 현장을 망가뜨린 것 같지 않은가.

“사과하실 일은 아니죠. 모르고 하신 일인데.”

매니저는 괜히 무안함을 느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순간 매니저는 단유가 예전에 경찰이었거나 혹은 경찰 시험을 준비했던 게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경찰 시험을 준비하다가 부동산에 관심이 생겨 그쪽으로 투자를 하다가 대박을 터뜨리고 연예계 쪽으로 진로를 틀었다거나.

“아무튼, 남은 자국을 보건대 어젯밤에 누군가 여기 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게 누군데요?”

“글쎄요. 그래도 추측해보면 역시 이 집 주인이겠죠?”

“보민이요?”

“여기 이 발자국은 다른 발자국에 비해 사이즈가 작잖아요? 그런데 여길 지나가는 복도에는 그 발자국이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201호로 향하지 않았을까, 라고 추론해도 무리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경찰을 불러야 할까요?”

“······.”

“어?”

되묻고 만 매니저는 이내 실수를 깨달았다. 계속 단유가 발자국을 살피며 지난 밤의 흔적을 쫓고 있으니 정말로 무슨 범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착각한 것이다.

“근데 이 발자국이 들어간 흔적은 보이는 데 나가는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어쩌면 안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단유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보며 설명을 듣던 매니저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닫혀 있는 201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탕탕탕.

“보민아!”

매니저는 문을 두드려 보민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여전히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열쇠수리점에라도 사람을 불러봐야겠어요.”

단유는 가만히 매니저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무단침입이잖아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정말로 문을 열 생각이시면, 근처 경찰서에 연락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탁해야죠.”

단유의 대답에 매니저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정말로 일이 커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정말 보민이에게 큰 일이 생긴 거면 어떡하나, 라는 불안감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었기에.

****

“언니, 이렇게요.”

“이렇게야? 아, 이거 왜 이렇게 안 되니?”

“연습하면 돼요.”

“연습하면 되겠지?”

“그럼요.”

“오케이.”

“조금 오래 걸리겠지만 되긴 될 거예요.”

“뭐라고?”

까르륵 웃는 소리에 아름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예의 지윤이가 또 우스꽝스러운 짓을 했나보다 이해하고 다시 고갤 돌렸다. 땀에 젖은 얼굴로 거울을 보다 자기 뒤에서, 옆에서 각자 연습하고 있는 이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한 멤버의 부재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며 소극적이었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슬기야 여전히 어수선한 느낌이지만 다른 이들은 어제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속이야 어쩔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그랬다.

‘그래. 하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지.’

설령 보민이 그만둔다 해도 덩달아 그만둘 게 아니라면, 결국 데뷔라는 목표를 향해, 가까이는 다음 월평을 위해 연습에 매진해도 모자랄 시간이다.

그래도 지윤이처럼은 힘들겠다.

그때, 슬기가 또 슬그머니 일어나 휴게실 바깥으로 나가는 모습이 아름의 시야에 잡혔다.

“슬기야.”

아름이 그녀를 부르자, 연습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아름과 슬기에게로 쏠렸다.

“네?”

아름은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 결심한 듯, 한숨을 얕게 뱉은 후 입을 열었다.

“네가 보민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쉬는 시간마다 나가서 핸드폰 사용하는 거 보기 안 좋거든?”

“···네?”

설마 그런 지적을 받을 줄 몰랐다는 듯 슬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럼에도 아름은 꿋꿋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보민이 걱정은 그만하고 그냥 연습에 집중해줬으면 좋겠어.”

“······.”

슬기는 입을 꾹 다물고 아름을 쳐다보았다. 뭔가 일렁이는듯한 눈빛. 그러나 아름도 굽히지 않고 그 눈빛을 받아냈다. 조금 전까지 하하호호 웃던 지윤과 시화를 비롯, 모두가 입을 다물자 연습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랬다. 이제껏 없던 ‘긴장감’이 연습생들 사이, 아름과 슬기 사이에 생겼다. 모두의 시선은 슬기가 어떤 행동을 할지에 초점이 쏠렸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뜻하지 않은 눈싸움이 이어지다, 슬기가 돌아섰다. 그리고 연습실 문고리를 잡자, 아름이 재차 슬기를 불렀다.

“곽슬기!”

슬기는 고개만 돌려 아름의 부름에 답했다.

“네.”

“······.”

무언의 압박이 아름에게서 전해졌을까? 다들 조마조마한 얼굴이 되어 상황을 지켜보는데, 침묵을 깨고 슬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 그냥 보민이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거든요?”

“누군 보민이 걱정 안 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보민이 걱정하거든?”

다소 톤이 올라간 듯한 아름의 모습을 처음 보는 연습생들은 그것만으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워낙 조용조용하고 남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 여겼기에 아름의 외침이 다소 놀라웠다. 지난번, 아름이 연습실 내에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자고 할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단지 연습실 안에서만 쓰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잖아? 쉬는 시간마다 핸드폰을 쓰면, 다른 사람들은?”

슬기의 시선이 구경꾼이 된 연습생들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이 마치 ‘아름 언니의 말대로야?’라고 묻는 시선이었다. 물론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거 언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네가 쉬는 시간마다 왔다갔다하는 거 다른 사람들도 괜히 불안하게 만들거든?”

“네?”

“어쩌면 정말로 보민이한테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 같이 느껴지니까, 아이들이 레슨에 집중을 못 하잖아. 아니, 다른 아이들은 아니라 쳐도 난 그렇거든? 난, 레슨 시간에는 레슨에만 집중하고 싶어. 다른 일로 불안해하면서 집중력 흐트러지는 거 좋지 않다고 봐.”

“언니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에요?”

날선 슬기의 반격에 긴장감은 배가 되었다.

“왜들 그래? 응? 슬기야.”

그리고 그때 지윤이 나섰다.

“언니도 그만 참아요.”

지윤은 우선 아름에게로 향했다. 잰 걸음으로 아름에게 다가간 지윤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만 화를 삭히라는 신호를 보낸 뒤, 슬기에게로 고갤 돌렸다.

“그래, 슬기야. 언니 말도 일리는 있잖아? 그치? 그런 말 있잖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보민이, 별일 없을 거야. 응.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만 걱정하고 잠깐 앉아서 숨 좀 돌려.”

지윤의 말대로 슬기는 저도 모르게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처럼 얼굴도 붉어져 있었다. 지윤은 서 있는 연습생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도움의 신호를 보냈다. 마침 시율이 그 눈빛을 읽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얼른 슬기에게로 향했다.

“괜찮아요, 별일 없을 거예요.”

슬기는 시율의 팔을 뿌리치며 계속 아름을 노려보았다.

“언니, 너무 말이 심하네요.”

“뭐?”

슬기의 말에 울컥한 아름이 한 걸음 내딛으려 할 때 재빨리 그녀를 제지한 지윤.

“언니, 언니.”

다급히 아름을 불렀다. 아름의 시선이 잠깐 지윤에게로 향하자,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니도 알잖아? 슬기랑 보민이 친한 거. 친하니까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야. 알잖아?”

“누군 안 친하니?”

그 말에 슬기는 어이없다는 듯, 헛바람을 뱉으며 눈을 흘겼다.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가까이서 슬기를 말리던 시율의 심장이 쿵 떨어질 정도로 위험한 발언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슬기의 중얼거림은 조용했던 연습실 내에 있던 사람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지 않았다.

“뭐?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응?”

아름의 얼굴도 금방 시뻘겋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붙잡고 있던 지윤을 내치고 성큼성큼 슬기에게로 다가가니,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이번에도 아름은 슬기에게로 다가가지 못했다. 금방 지윤이 달려와 아름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언니, 제발요. 응?”

그리고 슬기에게도 제발 부탁한다는 듯 처연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다들 지금 불안해서 그런 거잖아? 조금만 침착하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잖아? 언니도, 슬기도. 응?”

“반년 동안 함께 한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데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언니 같은 사람은 몰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불안한 게 정상이거든요?”

슬기는 지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더 목소리를 키웠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아름을 자극했다.

“나 같은 사람? 나 같은 사람이 뭔데?”

“언니는 주변 사람들한테 관심 없잖아요? 여기 있는 동생들 챙긴 적 있어요? 아니, 애초에 자기만 아는 사람이 주변을 돌아볼 생각이나 해요?”

그것은 정확히 정곡을 찔렀다. 아름은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을 메우고 있던 여러 가지 것들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오직 분노 뿐이었다.

“너는 이기적이지 않고? 지금 네가 마음대로 규칙을 어기는 건? 쉬는 시간마다 핸드폰 사용하는 거 금지한 거 마음대로 어기는 건 뭔데? 여기 있는 애들은 설마 보민이 연락처를 몰라서 전화 안 하고 있을까? 왜 네 맘대로 행동하는 건데? 허락은 받은 거야? 누가 너한테 규칙을 어겨도 된다고 했어? 그게 이기적인 게 아니면 뭔데?”

“아까 받았잖아요?”

“그건 그때 뿐이었던 거잖아? 쉬는 시간마다 나가서 핸드폰 쓸 수 있도록 허락한 건 아니잖아? 아냐?”

“와, 진짜 개어이없네.”

“뭐?”

어금니가 보이도록 이를 악문 슬기가 독기 서린 눈으로 아름을 쳐다보았다. 아름 역시 마찬가지.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아름의 몸은 지윤 혼자 막기 벅찰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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