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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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비명 소리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다급함을 알리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직면한 사실에 놀람을 금치 못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
매니저가 연습실 근처로 향했던 것은 단지 문단속을 하기 위함이었을 뿐이었고, 그때까지도 연습생들이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때문에 닫혀 있는 연습실 문을 뚫고 흘러나오는 비명 소리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연습실에서, 오히려 놀란 얼굴이 되어 돌아보는 연습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두리번거리는 매니저와 뻘줌한 표정으로 매니저를 바라보는 연습생들, 그리고 연습실 전면 스피커에는 조금 전까지 창모의 작업실에서 들었던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왜들 안 가고 여기 있어?”
“매니저님! 이거 보셨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왁, 소리를 지르며 매니저에게 달려오는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더 화를 내기도 어렵다. 그리고 등장을 예상 못해 놀라긴 했지만 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는 아이들이 이내 굶주린 아기새마냥 꺄악꺄악 거리는 모습에 매니저는 혀를 찼다.
누굴 탓하랴. 자신이 먼저 정보를 제공했던 탓인데.
“그만하고 얼른 집에들 가. 안 피곤해?”
“이거 보면서 쉬는 중인데요?”
어린 소년의 미성이 섞인 보컬라인이 멜로디에 맞춰 흘러나오고, 몇몇은 어깨로 리듬을 타며 하이라이트 부분을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한두 번 들은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뭔데?”
“김 이사님 뮤비요.”
정확히는 가디스R의 뮤직비디오에 단유가 잠깐 출현하는 것이지만, 뭔 상관이랴.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어린 시절의 단유의 모습을 훔쳐보며 팬심을 키워가는 아이들은 질리지도 않다는 듯 화면에 단유가 등장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옆 사람을 때리고 껴안고 난리다.
“나 참. 이렇게 만든 건 내 탓이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들 돌아가. 집에 안 갈 거야?”
“조금 있다가 갈 거예요. 조금만 더 보고요.”
“집에 컴퓨터 없어? 집에 가서 봐.”
“에이.”
집에서 혼자 보는 건 보는 거고,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보는 건 또 다르잖아요, 라고 항변하며 히죽 웃는 아기새들이었다. 한우 대신 비디오를 보여줬어도 저런 표정이었을까 궁금해진다.
또 그 와중에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거리며 재생이 끝난 영상을 다시 플레이시켜 다시 시청하는 아이들의 철없는 모습을 보니, 매니저는 문득 그냥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물론 처음에야 신기하고 놀랐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몇 번이고 볼 이유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막말로 김 이사, 단유가 과거 연예인이었다고 해도, 이 업계에 그런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아역배우 출신의 매니저도 있고, 아이돌 가수였다가 사업가로 전향하여 기획사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전례가 있는데, 무명의 일반인―단지 돈이 좀 많다는 소문과 정식 직함이 아님에도 모두가 이사로 우대하고 있다는 비정상적인 현실은 차치하고―단유가 과거에 무엇을 했던지 이렇게 놀랄 이유까지는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매니저도 가볍게 그 이야기를 언급했던 것이고, 그 노래를 듣고 ‘괜찮구나’ 정도로 여겼을 뿐인데, 눈앞의 아이들 반응은 생각을 넘어선다.
“노래는 어때? 좋아?”
그래서 물어보았다.
“네! 괜찮은데요?”
“10년도 넘은 노래라고 해서 되게 촌스러울 줄 알았는데, 썩 나쁘지도 않고요. 지금 나와도 충분히 역주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노래가?”
요즘 감성인지 아니면 그저 애들이 오버하는 것인지,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사님 목소리가 끝내주잖아요? 완전 섹시한 목소리.”
라며 이유를 설명하는 아이는 대답하는 중에도 노트북 모니터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모양.
“섹시해?”
물으니, 이번에는 또 다른 아이가 대답했다.
“약간 어린 듯 하면서, 또 어른스러운 듯도 하고, 그러면서 맑고 음정도 정확하고, 그렇지 않냐?”
“맞아요. 들으면 들을수록 푹 빠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목소리에요. 왜 평소에는 몰랐을까?”
“평소에 이사님이랑 마주칠 일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왜, 지난번에 예비 평가 때 계속 같이 있었잖아요.”
“그때도 이사님은 딱 할 말만 하고 다른 말은 안 했잖아.”
사실 자주 만나도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라 목소리 듣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매니저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때는 이사님 되게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나도.”
이런저런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아이들에게 단유는 진지하지만 과묵하고 잘생겼지만 어딘지 차가운 느낌의 사내였다, 면 밝혀진 과거의 모습으로 인해 과묵함은 진중함으로, 차가움은 도시적 섹시함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거.
‘애들이라 그런가.’
매니저는 고개를 흔들었다. 같은 남자가 보기에는,
‘······.’
딱히 할 말이 없긴 했다. 매니저는 마침 벽에 붙은 전면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젊었을 적의 자신과 달라진 모습. 나잇살이 붙어 볼은 늘어지고 뱃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른 바지의 헐렁한 허벅지가 눈에 거슬렸다.
“젊었을 땐 나도 꽤 괜찮았어.”
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매니저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다들 빨리 정리하고 집에 돌아가. 월요일에 몸무게 잴 거니까 알아서 준비하고.”
아이들의 야유와 한탄을 들으니 괜히 통쾌해진다. 매니저는 들키지 않게 입꼬리를 실룩이며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
주말을 평온하게 보낸 후 월요일 다시 출근하려 하니, 거실 소파에 앉아 기력 없는 호빵을 품에 안은 채로 잠을 쫓고 있던 하은이 한 마디 건넸다.
“이젠 정말 잘 어울리네. 직장인 같아.”
신발을 신던 단유가 힐끔 하은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보기 좋아요?”
“응. 진심.”
그리고 품에서 가만히 있는 호빵을 쓰다듬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뭔가 이제는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해도 될 거 같다는 느낌이야.”
이완되어 있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 느낌이었다. 단유는 굽혔던 허리를 서서히 펴며 몸을 돌렸다. 하은은 여전히 반쯤 졸린 눈빛으로 호빵의 하얀 털을 쓰다듬고 있었다. 하은의 모습에 단유의 머리는 빠르게 지난 주말을, 지난 일주일을, 지난 한 달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하은이 꺼낸 말의 진의를 추정할 만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무슨 뜻이에요?”
“응? 뭐가?”
“마음의 준비, 라는 말이요.”
“아, 그냥.”
말끝을 흐리다 다시 입술을 꾹 다물고 마는 하은은 단유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잔잔한 웃음을 흘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나도 출근해야겠다고.”
“네?”
“니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이제 곧 출근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한 거야. 오늘따라 괜히 늘어지는 기분인데 이게 월요병인가 싶기도 하고.”
“······.”
나른한 얼굴로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하던 하은은 손등으로 눈을 부볐다. 그리고 호빵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일어났다.
“얼른 출근해. 나도 이제 씻어야겠다.”
“······.”
하은은 단유를 보지 않은 채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은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제자리에서 지켜보던 단유는 그러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깊은 한숨을 뱉은 후 돌아섰다.
집을 나서며 고개를 드니, 조금 전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하은을 비추던 햇살이 단유의 얼굴 위에도 내려앉았다. 차가운 햇살이었다.
그리고 몇 초 후, 뒤숭숭한 마음을 품고 단유는 회사 근처 좁은 골목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볍지 않은 마음만큼이나 무거운 걸음을 옮겨 회사로 들어가니 문득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니 마침 출근하던 직원들이 단유를 슬쩍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는데, 마주 인사를 건네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다 빠르게 지나간다. 인사를 나누지 않은 직원들도 한 번씩은 단유를 힐끔 훔쳐보고 지나가는데 어쩐지 탈출한 희귀생물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혹시라도 빈틈을 보이는 달려와 붙잡을 것만 같은 움찔거림까지도 느껴진다.
‘뭐지’라는 생각을 품으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주위에 선 이들이 노골적으로 단유를 훔쳐보기에 단유도 노골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네?”
“혹시 할 말이 있으신 건 아닌지 해서요.”
“아, 저, 아닙니다.”
말을 아끼는 것인지, 차마 앞에서는 내뱉지 못할 말이었는지 몸을 슬쩍 뒤로 빼는 모습에 단유도 더는 묻지 못했다. 출근길에 이런 긴장감을 느끼리라 전혀 생각지 못한 터라 더 당황스러운 가운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도착하니 그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사무실 안 파티션 너머로 단유를 훔쳐보는 시선과 작은 수군거림까지.
택윤의 사무실로 향하던 도중, 뒤에서 누군가가 단유를 불렀다.
“여어, 수퍼스타 아니십니까?”
뭔가 구수한 발음으로 호명하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갤 돌리니 단유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대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키며,
“네?”
되물으니,
“단유씨, 완전히 슈퍼스타 됐어요.”
“제가요?”
“단유 씨 옛날에 노래 낸 적이 있었다면서요? 그게 소문이 나서 다들 단유 씨 노래를 찾아봤나 봐요.”
단유는 아차하는 마음으로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지난 주말 동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뒤늦은 후회를 가슴 깊이 새기며 물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벌써 이렇게 소문이 난 거죠? 토요일에 평가 끝나고 잠깐 말이 나왔다가 말았는데.”
“소문은 발보다 빠르다 하지 않던가요? 게다가 요즘은 이게 있으니까.”
대훈이 흔들어 보이는 것은 핸드폰. 단유는 또 한 번 혀를 찼다. 그리고 마음 깊이 각오를 새겼다.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지 말자, 고. 당장 지금부터라도 프로그래밍 초안을 잡아야겠노라 생각하며 대훈을 지나 택윤의 사무실로 달아나듯 걸음을 옮겼다.
****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사님, 노래 잘 하시던데요?”
음원 구매 인증까지 보이며 미소를 짓는 사람들 앞에서 야박하게 굴기란 쉽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나중에 노래방 회식 한 번 가시죠?”
단유는 진지하게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마법이 있을까 고민했다.
“자자, 다들 사담은 나중에 나누도록 하고, 우선 회의부터 하시죠.”
팀장이 나서서 주변을 정리했다. 단유는 내심 고맙다는 생각을 가지며 다음에 팀장이 뭔갈 부탁하면 진지하게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회의는 우선 4분기 프로젝트 진행 현황 검토와 그에 따른 추가 예산 집행의 심의 의결, 그리고 지난 주말 있었던 연습생들의 월말 평가 결과 보고 및 이후 추진 계획에 대한 안건이 있습니다.”
이전에 따로 받았던 보고서 이후 그간 추진되었던 상황에 대한 첨언이 있었고, 이에 따라 기존에 책정되었던 예산이 부족하기에 추가 승인이 필요하다는 팀장의 보고가 있었다.
대훈은 저도 모르게 얕은 한숨을 내쉬며, 앞에 놓인 자료철을 뒤적거렸다. 평소에야 속없이 하하 웃으면서 여유로운 척 해도, 결국 이 사업이란 게 돈으로 하는 일이고, 그 돈이란게 노골적으로 화제에 오르면 웃기가 힘든 게 현실이었다. 돈을 벌었다면 또 모를까, 아직 들어오는 수입에 비해 나가는 돈이 훨씬 많으니 빛잔치를 벌인다고 흉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회사의 미래가 밝다, 고 웃으며 장담해도 손에 쥔 데이터는 결코 웃을 수 없게 만든다.
대훈은 조금 전까지 농담을 나눴던 단유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의 힘으로 지금에까지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단유의 돈만으로 이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지금 대훈은, 아니 이 회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이다.
연예 기획사는 제조업과 달라, 망하면 본전은커녕 평생 갚기 힘든 빛에 시달릴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던 기획사 사장이 한순간의 실수로 빚쟁이가 돼버려 공사판을 전전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역시 최대 주주인 단유의 지원은 힘이 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에게 잘 보여야 편하다. 다행인건 그가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고, 말수는 적지만 자신을 향한 신뢰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어 도리어 단유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지금도, 보여지는 수치는 분명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인데도 단유는 여느 때와 비슷한 얼굴로 말없이 자리를 지켜주지 않는가?
“···그리고 다음은 연습생 평가 결과입니다.”
앞에 놓인 프로젝트 빔이 투사한 스크린에 사진 한 장이 걸렸다.
“1등은 양채린 연습생이었습니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 것인지, 아니면 채린이 압도적인 실력, 아니 외모를 보였기 때문인지 결과는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획팀 내부 평가에서도 좋은 평을 들었거니와, 사원들의 평가에서도 좋은 평이 다수였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다행히도 저희가 진행중이었던 광고에도 어울릴 수 있는 이미지라 다행이기도 합니다.”
아마 지금 팀장의 이야기를 다른 연습생들이 들었다면 꽤 섭섭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이란 것은 그런 법이다. 결국 연예인이란 건 돈이 되는 외모를 지닌 이가 대우를 받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