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43화 (843/956)

평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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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님 쑥스러워하는 모습 처음 보는 거 같아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은, 평소라면 그저 보기 좋을 광경이나, 지금은 곤혹스러울 따름이다.

어릴 때는 그냥 경험 삼아 해보자, 는 가벼운 마음과 음원 판매로 나는 수익으로 명수와 선생님에게 선물이란 걸 해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음원 제작 제안에 응했다. 단유의 통장에 정산된 수익이 들어온 뒤로는 아예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이후로도 그때의 일이며 노래며 떠올릴 일은 없었다.

10년도 넘은 일. 여기 있는 연습생들 중에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지도 않았던, 바로 그런 시기의 일이니 알 턱이 없다. 세상에는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 개중에 혹시 10년 전 흘려 들었던 노래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거나 혹은 음원사이트에서 억지로 떠올린 제목을 검색하여 곡을 찾아 듣는 사람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찾을 만한 곡이었나 싶기도 하고, 찾더라도 단유의 버전이 아니라 가디스R 버전의 곡을 찾아 듣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 말해, 단유가 부른 노래는 이 세상에 존재했었나 싶을 만큼 기억에서 사라졌을 곡, 이란 게 스스로의 평가였다.

“매니저님, 노래 제목이 뭔데요?”

“노래 제목은, 잘 모르겠고.”

매니저가 슬쩍 단유의 눈치를 살폈다. 곡의 제목을 모르는 게 설마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디스R이라고 검색하면 아마 나올 거야.”

매니저의 설명에, 단유는 새삼스레 ‘가디스R’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부른 곡은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해도, 가디스R은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존재였다. 지금이야 그들과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한때―명수를 제외하고―가장 아끼던 두 사람이 속했던 그룹이었다.

‘아낀다라.’

수련에 대해서는 그렇게 표현해도 크게 무리가 없겠다. 첫 만남의 인상은 별로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이후에는 매일 별 이야기도 아닌 걸로 통화도 하고 메시지도 나눴던 그런 사이가 되었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 나윤에 대해서 만큼은 단순히 아꼈다, 라는 표현으로 그녀를 기억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사실 그녀에 대한 감정은 지금의 단유에게도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풋사랑, 이라고 정의를 해야 할지, 아니면 어설프나마 가족 외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이성, 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보다 거창하게, 한때는 나름 열렬히 사랑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저 미안함이 더 커서 감히 추억하기도 버거운 사랑, 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유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쩌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돼버린 걸까? 문득 ‘잊혀질 권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인터넷에 남아있는 자신의 과거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었는데, 과연 무슨 수로?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며, SNS며 퍼져 있는 잔재들을 깔끔하게 지울 방법이 필요했다.

단순히 해당 사이트를 관리하는 업체에 요청을 한다고 해서 들어줄 리 만무하고, 들어준다 해도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

‘그냥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까?’

자신의 과거를 지우는 프로그램. 꽤나 불법적인 수단이 될 터였지만,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니 그까짓 게 무슨 문제냐는 생각이 불쑥 치민다.

그런 단유의 생각을 모른 채, 경쾌해진 발걸음으로 회사 로비를 지나 연습실로 뛰어 들어간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음원 재생용으로 구비해 둔 노트북으로 달려가 음원사이트를 열고 곡을 검색했다.

“아까 뭐였지?”

“가디스R.”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둔 연습생이 뒤를 힐끔 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투로 작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촌스럽지 않아?”

“응. 만약에 데뷔 그룹 이름이 그런 거면 난 울었을 거야.”

맞장구치는 아이들 속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검색 후에야 가디스, 라는 단어가 ‘여신’을 의미하는 ‘Goddess’라는 걸 알고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들어본 적 있냐는 물음에 다들 도리질을 치는 가운데, 아름이 불쑥 나와 말을 꺼냈다.

“나 초등학교 때 들어본 적 있어.”

“정말요? 우와, 그럼 되게 유명했었나 보네요?”

“들어본 적 있다고 했지, 유명하다고는 안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잠깐이지만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어릴 때의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가요프로에서 가창력 있는 그룹으로 소개되었고, 반 친구들 중 몇몇은 그들의 타이틀 곡을 핸드폰 벨소리로 지정하기도 했었다. 그 때문인지 아름은 매니저가 말한 그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아주 짧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곡을 제대로 들은 적은 없었는지, 아니면 들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잊혔던 것인지 불분명했다.

“어서 틀어봐.”

곧 음원 스트리밍 플레이어로 노래가 재생되었다.

“여자 목소린데?”

“이게 원곡인가 봐. 잠시만.”

다시 검색에 들어간 연습생은 곧 같은 제목으로 ‘김단유’라고 정직하게 이름이 들어간 곡을 찾아냈다.

“야, 야. 여기 이사님!”

단지 이름만 찾았을 뿐인데, 아이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며 소리를 질렀다.

“일단 이거 마저 듣고 틀어봐.”

“됐어, 그냥 그거 들어봐.”

“원곡이 뭔지 알아야 제대로 감상할 거 아냐?”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결정권을 가진 연습생은 몸으로 노트북을 가리며 다른 이들이 조작하지 못하게 막아섰다.

“내가 할 거야,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대부분 연습생들은 연습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괜찮은데?”

가창력으로 승부한다더니, 과연 목소리가 뿜어내는 힘이 장난 아니었다.

“딱 10년 전에 유행했을 노래긴 한데, 그래도 나쁘진 않네.”

이런저런 감상이 나오는 가운데, 노트북을 사수하던 연습생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왜?”

“아니, 아니. 내가 엄청난 걸 발견했거든?”

“뭔데?”

“근데 지금은 말 안 해줄 거야.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뭐야, 그게. 그냥 얘기해.”

“나중에. 일단 다음 노래 간다?”

“이사님 거?”

길게 늘린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마우스를 딸깍, 클릭하자 곧 스피커에서 조금 전 들었던 곡과 같은 전주가 흘러나왔다.

“앞에는 똑같네?”

그러나 곧 도입부의 목소리가 나오자 아이들은 새된 비명을 지르거나 폴짝폴짝 뛰거나 얼굴을 감싸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식으로 자신만의 놀라움을 표현했다.

“대박!”

“이사님 목소리 맞아?”

“뭐야 뭐야? 이거 진짜 맞아?”

단유가 완전히 변성기를 거치기 전의, 미성이 섞인 목소리가 멜로디를 타고 흘러나오자 연습생들은 조금 과장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 이사님 완전 대박 아냐?”

“이사님 노래 엄청 잘 하시는 거 아냐?”

“이거 보정 안 들어간 거 같은데?”

“보정 들어가도 이 정도면 대박인 거 아냐?”

“왜 이걸 몰랐지? 이 정도면 완전 대박났어야 정상인데?”

그때, 노트북을 선점하고 있던 연습생이 들떠있는 다른 연습생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있잖아? 되게 재밌어 보이는 게 있는데, 한 번 볼래?”

“뭔데?”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 이거?”

“원곡 뮤비라는데, 여기에 누가 나오게?”

“설마?”

“자, 다들 모여! 다 모이면 튼다.”

“빨리빨리 틀어봐! 얼른!”

따닥, 더블클릭하는 손놀림이 경쾌하다.

같은 시간, 연습실로 끌고가려는 연습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를 피했던 단유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매니저와도 인사를 나누고 4층의 사무실로 향했다.

닫혀 있는 문을 똑똑 두드리니, 안에서 대답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끝났습니까?”

“벌써라기엔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요?”

“아, 그렇군요. 이렇게 시간이 간 줄 몰랐는데.”

“같이 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제가 가봐야 뭐 압니까? 오히려 다른 사람들한테 폐나 끼칠 텐데.”

서류를 정리하던 택윤은 대수롭지 않게 불참 사유를 이야기하고는 단유에게 빈 자리를 권했다.

“어땠습니까?”

“무탈하게 끝났어요.”

가죽 소파에 몸을 묻으며 숨을 길게 토해냈다. 식사 때까지는 그냥저냥 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가 들춰질 위기에 처하자 괜히 긴장을 했던 모양이었다.

“다행이네요. 대표님이 좋아하셨겠는데요.”

“말 그대로요. 옆에서 보니 약간 감격한 듯도 하더군요.”

“감격할 정도였나요?”

“무대 자체는 솔직히 그렇게 눈을 끌 정도가 아니었지만, 회사의 첫 대형 이벤트였잖아요? 무사히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모습이었어요.”

“대훈 씨 다운 반응이라고 해야 하나?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네요.”

“그런가요?”

“연습생들은요?”

자기가 뭘 알겠냐며 참석을 피했던 사람치곤 꽤 호기심을 드러내는 택윤이었다.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요?”

단유는 아카시아 원목의 소파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경제잡지와 신문들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뭐랄까. 그냥 이것저것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무대였달까요?”

“어떤 생각이었는데요?”

잠시 대답을 미루고 소파 테이블에 달린 서랍을 열어 그곳에 비치되어 있던 티슈를 한 장 뽑아 테이블 위를 쓱쓱 문질렀다.

“미성숙한 아이들이 성숙한 연기를 선보이는 모습이 어쩐지 애달프다고 해야 할까요?”

“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일단 무대에 오른 연습생들은 모두 당찬 모습을 보였어요. 엄연히 무대는 연습생 각자의 실력을 평가하는 자리였고, 사람들은 모두 냉정하게 무대를 분석하고 있었죠. 비록 제가 그 무대 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그 아이들의 심정을 굳이 추측해보면, 여간 떨리는 자리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다들 그런 분위기에 주눅 들지 않고 잘 해줬어요.”

“잘했단 말이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연기가 어설퍼서인지 아이들의 얼굴과 나이가 드문드문 드러나더군요. 성인 연기를 하는 어린 아이들, 혹은 제 나이대의 연기를 하면서도 극이 아닌 실제의 얼굴과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몰입이 조금 힘들었죠.”

“그게 애달프게 느껴졌다고요?”

“억지로 자신을 감추려는 모습이 애달프게 느껴졌어요. 물론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식으로 지금의 자신을 감춰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죠.”

“그런 식으로 보면, 이 세상에 안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먹고 살기 위해 자존심을 낮추는 사람도 애달파 보일 테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밤새워 공부하는 학생들도 애달파 보이겠죠.”

“그렇죠.”

“그런 말이 있더군요.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힘든 삶이라고. 현실이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이 순간을 무사히 견뎌내면 이후에 따를 성공의 과실을 포기할 수도 없으니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그런 면에서 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철이 든 거죠. 자기 삶을 진취적으로 개척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물론 저도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희생을 이후의 성공이 과연 온전히 보상해줄까요?”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겠죠.”

“그렇죠.”

잠시 침묵이 맴돌던 사무실.

“하하하!”

갑자기 택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영문을 몰라 단유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택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럴 때보면 도저히 단유 씨가 20대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요.”

“아.”

“혹시 나이를 속인 건 아닙니까? 아니 나이를 속였다 해도 말이 안 되네요. 그 얼굴에 나이를 속였다면 그게 더 반칙일 테니.”

할 말이 없어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사실 실제로 체감한 시간을 나이로 환산하다 치면, 현재 단유의 나이는 보이는 것 이상일 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정확히는 고등학교 때부터 주위의 또래들이 또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예외라면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명수나 상미, 하은 정도. 그러니 점점 나이가 들수록 더 주위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애써 그런 거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면도 있지만,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나이든 티를 내곤 하니 그저 머쓱해져 입을 꾹 다물 뿐이다. 안 그래도 과묵한 편, 이라는 이미지였지만 그게 점점 더 심화되는 꼴이다.

“목이 마른 데, 혹시 뭐라도 마시겠어요?”

단유는 자리를 피할 요량으로 카페테리아 핑계를 댔다. 택윤은 잔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습니다.”

단유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택윤의 시선이 떨어지질 않으니 단유는 얼른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길을 선택했다.

카페테리아로 향했던 단유는 또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얼굴을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이는 다름 아닌 지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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