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41화 (841/956)

평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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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대 후, 이번 행사를 책임졌던 기획팀장이 무대 위로 올라와 클로징 멘트를 남겼다.

“오늘 마지막까지 자리 지켜주신 임직원 일동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준 연습생들은 아직 3개월차 밖에 되지 않은 병아리 같은 아이들입니다. 그러니 약간은 어설픈 면도 있고,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연습생도 있을 테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봐주시길 바라며 그들이 꼭 데뷔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우리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짧은 시간임에도 최선을 다해 무대를 준비해준 연습생들에게 박수로 격려해주시길 바랍니다.”

강당을 채운 직원들의 박수와 몇몇의 흥이 넘치는 외침이 대기실에까지 울렸다.

“수고했습니다, 다들.”

매니저는 대기실을 꽉 채운 17명의 연습생들, 그리고 그들을 케어하기 위해 모인 스태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몇몇 연습생은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서로에게 수고했노라고 말을 전했다.

“아쉬움이 남는 친구도 있겠지만, 결코 이게 마지막이 아니란 거 알지? 생각외로 커졌지만, 이건 그냥 월말 평가야. 앞으로도 계속 너희들이 마주치게 될 일들. 부담스럽기도 할 거야. 하지만 이를 부담스럽다고 외면하려 하지 말고 이겨내려고 노력하길 바란다. 오늘, 다들 수고 많았고 고생했다.”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고, 해방감에 웃음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스태프를 도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짐과 도구들을 챙기는 이도 있었고, 우는 연습생을 달래는 이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잠시 지켜보며 매니저는 괜히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속에 쌓이던 것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긴장을 풀기엔 일렀던 것일까?

“하하, 수고 많았어요.”

“아! 대표님.”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히 예정되었던 방문일 텐데, 다 끝났다고 안심하던 차라 너무 놀라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는 매니저. 그가 보인 우스꽝스러운 표정에도 대훈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다만 수고 많았다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연습생들도 부랴부랴 자세를 갖추고 대훈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했다.

“편히들 쉬어요.”

아름은 비록 군대를 가지 않았지만, 대학 동기들에게서 들은 바, 사단장이 불시 방문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말로는 어떻게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다 싶을 정도로 여러분들이 정말 열심히 해줘서, 오늘 정말 기뻤습니다. 짧은 기간에도 이렇게나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역시 3개월간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는 방증일 겁니다. 그런 여러분들이기에 저를 포함한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여러분들의 꿈을 위해 함께 달릴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저런 공치사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연습생들을 평가하는 자리였고,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이 안에서 순위가 나뉠 테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이는 앞서 공지된 바와 같이 데뷔―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일회성 이벤트에 참여할 기회 정도로 봐야 할지 아직 알 수 없는 행사―를 하게 된다. 설령 일회성이라 할지라도 분명 기회일 것은 분명하니 누구도 가볍게 생각하거나 포기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손에서 배어 나오는 축축한 땀을 허벅지에 문지르며 아름은 대훈을 바라보았다.

“진 매니저?”

“네.”

“오늘은 다들 고생했으니, 회식해도 되겠죠?”

매니저는 뒤에 선 아이들을 흘깃 바라본 뒤,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늘 먹은 만큼 뺄 자신이 있는 아이들만 참석하도록 하죠?”

“아아!”

매니저의 얄미운 농담에 투정 섞인 탄식을 뱉어내는 연습생들. 그들을 바라보며 대훈은 또 한번 크게 웃으며, 동시에 품에서 카드를 꺼냈다.

“법카다!”

“법카! 법카!”

연습생들의 환호 속에 카드가 건네졌고, 대훈은 오늘만큼은 마음껏 즐기라, 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대표님은 같이 안 가세요?”

“내가 끼면 여러분들이 제대로 못 놀 텐데? 어쨌든, 예의상이라도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안 물어봤으면 섭섭할 뻔 했어.”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춤거리는 연습생 들 사이에서 한 연습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사님도 안 가시나요?”

이 자리에서 ‘이사님’이란 호칭을 들을 이는 대훈이 억지로 끌고 와 뒤에 세운 단유 밖에 없었다.

“저요?”

대훈은 왠지 정말 섭섭해졌다는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단유 씨는 애들이랑 많이 친해졌나 봐요?”

“글쎄요.”

“연습생들과 얼굴 마주한 횟수도 나보다 적을 텐데, 무슨 수로 이렇게 친해졌대?”

단유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 뇌물 때문인 것 같네요.”

“뇌물이요?”

단유는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연습생들을 일별하고 말했다.

“음료수를 사줬거든요.”

“회사 안에 근사한 카페테리아가 있는데도 음료수를 사줬다고요? 정말 의미 없네, 의미 없어.”

대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단유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괜찮으면 시간 좀 내줘요. 다들 저렇게 원하는 것 같으니.”

“그게···.”

단유가 사양의 말을 내뱉기 전에 대훈이 선수를 쳤다.

“오늘 같은 날, 이사 다운 일도 좀 하고 그래야죠.”

“제가요?”

단유는 ‘진짜 이사도 아닌’ 자신이 왜 그래야 하냐는 투로 되물었는데, 대훈은 별 거 아닌 일로 그러지 말라며 단유의 등을 툭툭 밀었다.

“아, 뭐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만나 이야기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이 친구 빌려드립니다. 잘 쓰고 돌려주세요.”

도대체 어떤 유머 센스를 장착하였길래 저런 말을 하나 싶은 와중에 어린 연습생들이 대놓고 좋아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우와!”

이게 뭔 짓인가 싶어, 단유는 그저 볼을 긁적이며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비싼 카페테리아도 다 소용없는 건가 봐요.”

“카페테리아가 문제가 아니죠.”

팀장이 단호히 고개를 젓기에, 대훈이 그럼 뭐 때문이냐고 되물었더니,

“젊고 잘생겼잖아요.”

라고 답을 내놓았다. 달리 반박의 여지가 없는 답이었다.

“나도 몇 년만 더 젊었으면.”

“나이 든 아저씨들이 늘 하는 말이죠. 하지만 몇 년이 아니라 몇 십년이어도 아마 힘들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팀장님이랑 저랑 하나로 묶이는 겁니까?”

“전 그래도 나름 거울을 보고 삽니다.”

“무슨 소리예요?”

“자기 객관화가 된다는 뜻이죠.”

“전 안 된다는 뜻입니까?”

“전 여기 남아서 뒷정리하는 거 보고 갈 테니, 대표님 먼저 회사로 들어가십시오.”

“오늘따라 외롭네요. 외로워.”

****

미리 예약한 곳이 없어 대인원을 끌고 들어갈 만한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미성년자도 있는데 회식이랍시고 술집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말 애들처럼 피자가게나 수제 햄버거 가게를 갈 수도 없었다. 그때 단유가 마침 눈에 띄는 가게 하나를 골랐다.

“저기 가죠.”

예전에 대훈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던 곳인데, 썩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 게다가 안쪽에 단체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룸도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매니저에게 제안했더니, 매니저는 난색을 표했다.

“저기 가면 한도 초과 될 거 같은데요? ”

“돈 걱정은 마세요. 제가 사면 되니까.”

“이사님, 멋있어요!”

뒤에서 졸졸 따라오다가 그 이야기를 들은 연습생 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치어리더라도 된 양 두 팔을 흔들며 ‘이사님’을 연호했다.

그리하여 아이들과 함께 단유가 향한 곳은 한우구이 전문점이었다.

“우와! 나 이런 데 처음 와봐요.”

다행히 비어있는 룸이 있었고, 예약 손님도 없어 전 인원을 모두 수용할 수 있었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방을 나눠야 했는데, 단유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 물었다. 회식이라면 모름지기 다 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서 주문을 받으러 온 점원에게 매니저가 주문을 하려고 보니 가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절로 단유의 눈치를 살피는데, 단유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무제한으로 시켜도 돼요.”

“애들 많이 먹습니다.”

“괜찮아요. 돈은 문제가 아니니까.”

각 방에서 지르는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왔다.

“이사님이랑 같이 오길 잘했네요. 애들이 이사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뉘앙스가 왠지 호구라는 느낌인데요?”

“아이구, 절대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습니다.”

“농담입니다.”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농담하시면 듣는 사람은 간 떨어집니다.”

역시 이 회사에는 대훈 식의 농담만이 먹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며 단유는 마주 앉은 연습생들을 바라보았다. 공교롭게도 앞에 앉은 이는, 이번 평가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으리라 예상되는 채린과 묘하게 자주 얽히는 아름, 그리고 지난 예비 평가 당시 단유가 가장 혹평을 했던 시율, 이렇게 세명이었다.

처음 셋이 단유, 매니저가 앉은 자리 맞은 편에 앉게 되었을 때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고 말도 잘 못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잠시 시간이 흐르고, 가장 어린 축인 채린이 아름, 시율에게 애교를 부리며 자기들끼리―흔히 하는 말로―‘꽁냥꽁냥’거리더니 나중엔 대화 소재가 떨어져 멀뚱멀뚱 앞만 보는 단유와 매니저의 시선에 아랑곳않고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니들만 웃지 말고 재미있는 이야기 있으면 좀 들려줘라.”

매니저의 말에 채린이 입을 가리며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그냥 아까 대기실에서 있었던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시율이가요.”

“아아! 언니! 하지 마요!”

어설프게 투정을 부리는 시율은 무대 위에서 당찬 역할을 보일 때와 달리 꽤 귀여운 모습이었다. 지금 메이크업을 받은 상태라 외모가 조금 성숙해보이는 면이 있지만, 아직 19살. 당연히 귀여워보이기 마련인 나이다.

“시율이가 왜?”

“무대 끝나고 들어오자마자 막 울었잖아요. 그때 되게 못생겨보였다고 했더니, 채린이도 만만치 않았다며 서로 디스하잖아요. 그런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도대체 어디가 재미있고, 어디에서 웃음을 터뜨렸던 것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이야기여서 단유는 괜히 고개를 돌려 다른 테이블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눈이 빨간 아이도 있었고, 더러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한 것 같은 아이도 있었지만, 대체로 다들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시율이 넌 지난 월말 평가 때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다들 칭찬하더라.”

“정말요?”

그렇게 되물으면서도 시율은 단유의 눈치를 살폈다. 예비 평가 당시 단유에게 ‘연기가 아니라 설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혹평을 받은 바가 있어 내심 이번에 단유가 어떻게 자신의 연기를 봤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다를 바 없다, 라는 평을 들을까 두려운 마음에 차마 묻지는 못하고 그저 눈치를 살필 뿐인데, 눈치 없는 매니저는 그런 속내를 모르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너 뿐만 아니라 다들 좋아졌다고 아까 윤쌤이 귀뜸해주더라. 나도 이 회사 들어오기 전에 다른 회사에서 있어봐서 아는데, 여기 선생님들도 다들 좋고 실력이 좋으신 분인건 맞지만, 너희도 내가 아는 중에선 가장 독한 녀석들이다 싶어.”

‘독하다’는 평이 그리 나쁘지 않았는지 채린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뭐, 그렇다고 앞으로도 느슨하게 해줄 생각은 없지만, 소원이 있다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초심을 잃지말고 계속 노력해줬으면 한다. 그런 말 있잖아?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겐 노력만큼의 보상이 뒤따르는 법이니까, 게을러지지 말고 계속 노력하도록 해.”

“네!”

힘차게 대답하는 채린, 시율, 그리고 아름. 단유는 마치 아저씨처럼 훈계를 늘어놓고 스스로 뿌듯해하는 매니저를 흘깃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이들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단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지, 슬쩍 고개를 저었던 것 뿐인데도 금방 눈치를 챘다.

“매니저님 말씀이 참 좋은 말씀이긴 한데, 조금 의문이 들어서요.”

“뭐가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는 말이요. 물론 이끼가 낄 틈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구르지 않는 돌에 이끼가 끼는 것도 아니잖아요?”

“네?”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위해 노력하라, 는 의미로 격언을 사용하신 것은 알겠지만, 예로 드신 격언이 조금···뭐랄까? 그냥 비논리적인? 그런 느낌이어서요.”

매니저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가끔 우리가 사용하는 예들 중에는 논리적이지 않은 예시들이 종종 있잖아요? 힘들 때 같이 있는 친구가 진짜라거나.”

“그건 또 왜요?”

“친구, 라는 건 언제나 함께 있어 든든한 사람을 친구라고 하잖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굳이 나 자신이 힘든 처지에 처하지 않고도 알 수 있어야죠. 만약 내가 힘들고 나서야 그 친구가 진짜, 라는 걸 안다면 그건 그 친구를 평가할 게 아니라, 그 친구가 진짜임을 몰랐던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어, 음.”

매니저는 괜히 곤란해졌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고, 역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살피는 세 연습생들을 보며 단유는 앞에 놓인 물잔을 들었다. 자기 역시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아무 이야기나 떠드는 게 매니저 못지 않다고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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