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39화 (839/956)

평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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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연습생들이 다 잘생기고 예쁜 건 아니었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스타일리스트까지 붙였지만 눈에 익지 않은 외모에 스스로 어색함을 자아내는 분위기, 그리고 허술한 무대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추는 바람에 강당에 모인 다수의 사람들은 내심 가졌던 기대감이 조금씩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연예인을 하려면 뭔가 특별한 게 필요하다는 거네.”

TV로 볼 때는 딱히 그런 생각을 갖지 못했는데, 지금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들의 모습을 보니 과연 저런 아이들이 데뷔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을 갖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아직 연습생이고 배운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당장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미약하다보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쩐지 연기가 아니라 그냥 흉내를 내는 느낌이야.”

“역시 경험이 중요하단 건지도.”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거지.”

마치 정의의 사도인양 하는 변호사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고뇌하는 의사나, 사회에 대한 환멸을 이야기하는 죄수를 연기하는 연습생들의 무대는 역량 부족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평가를 위해 모인 직원들 중, 연습생들에게 호의적인 것은 오직 대표와 트레이너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 뿐이었다. 그들도 무대가 이어질수록 무대 아래의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어요. 익숙하지 않은 무대와 설익은 연기를 보며 흥을 내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이런 형태의 관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앉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고역일 수도 있다며 트레이너는 처음과 달리 자신감을 잃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연극에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도 쉽지 않지.”

“아무리 평가를 위해서, 라는 명분이라도 장시간 앉아서 보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연습생들의 평가도 평가지만, 이런 행사를 진행함에 있어 진작에 고려하지 못했던 미숙한 점들이 속속 눈에 띄니 팀장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처져갔다.

“아직 끝이 아니니까,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대훈 역시 무대에 대한 집중력이 옅어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앞으로 이런 행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만약 계속 한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느라 미간 사이의 주름이 깊어만 갔다.

전체적으로 지루함과 따분함으로 지쳐가던 그때, 새로운 연습생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술렁이기 시작하는 사람들.

“야, 야. 쟤 봐봐.”

옆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동기의 팔을 힘차게 두드려 주의를 끌었다.

“알아, 쟤가 내가 말했던 걔야.”

무대 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첫인상의 소감을 나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진짜 예쁘다.”

조명 없이도 빛나는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우스갯소리로 한때 회자되던 ‘형광등 100만개’의 아우라가 연습생에게서 뿜어져 나온다는 느낌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무대 가운데 서 있는 모습만 보고 ‘저 정도면 연기 조금 못해도 문제 없겠는데’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저런 애가 왜 우리 회사에 왔지?”

“우리 회사가 뭐 어때서?”

여태까지의 연습생들 중에도 외모로 열일하는 사람들이 없진 않았지만, 지금 나온 연습생은 단연 최고였다.

대훈을 비롯해 가장 앞줄에 앉은 임원과 트레이너들도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 저렇게 좋았었나?”

“카메라테스트 때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메이크업 받고 헤어스타일까지 만지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거 같네요.”

“스타일리스트가 여태 일을 안 하다가 갑자기 의욕이 생겼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재미없네요, 대표님.”

“좋아서 그래요. 좋아서.”

대훈은 모처럼 미소를 지으며 곁에 앉은 단유에게 물었다.

“저 연습생도 기억해요?”

처음엔 반 장난식으로 물었다. 단유가 워낙 말이 없기도 했고, 예전에 그토록 연습생들 한 번 보러 가자고 할 때마다 거절했던지라, 이번에 이런 연습생이 있노라고 말하고 싶었던 대훈이 지나가는 말투로 ‘저 아이 알아요?’라고 물었던 건데, 단유가 아무렇지 않게 기억한다고 답하면서 무대에 선 연습생들의 신상명세를 줄줄 읊어대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그걸 다 알아요?”

“오디션 때 저도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때, 그 프로필에 나오는 기록들을 고작 한 번 보고 다 외운다고요?”

“딱히 외우려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억 못 할 정도의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잖아요?”

이게 바로 왕년에 전교 1등을 독차지하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전설의 재능인 걸까, 대훈은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에 무대로 연습생들이 등장할 때마다 단유에게 아냐고 물으면 머뭇거림 하나 없이 연습생의 프로필을 줄줄 읽는 것처럼 대답하는 단유였다. 그 모습에 대훈은 물론이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단유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는데, 그 탓일까? 어떤 사람들은 무대에 대한 호기심보다 단유가 과연 얼마나 기억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에 더 큰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냐 물으니,

“네.”

단유는 담담하게 대훈의 물음에 답했다.

“오디션 당시 표정 연기가 좋고 카메라 시선 처리가 좋다고 평가를 받았던 아이죠.”

“우리 김이사님은 모르는 게 없네. 혹시 저 친구는 예뻐서 특별히 기억하고 있었다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없습니다.”

단호한 단유의 대답에 트레이너 한 명이 짓궂게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예쁘죠? 이사님?”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조금 전 말씀하신 것처럼, 메이크업의 영향이 없진 않은 것 같네요. 무대용 메이크업이라 평소보다 진하게 한 탓에 평소보다 밝은 톤의 피부색이고, 좌우가 약간 불균형을 이루고 옅은 색이었던 눈썹도 진하게 그려서인지 이목구비가 훨씬 뚜렷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상 못 했던 답이라 질문을 던졌던 트레이너가 되려 당황하다 되물었다.

“메이크업을 잘 아시나봐요?”

“아뇨, 그건 잘 모르는데 처음에 봤던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분하는 정도로는 알 수 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눈썰미가 좋으세요.”

단유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시작하나 봅니다.”

왠지 모르게 기대감을 갖게 하는 비쥬얼이라 사람들은 앉은 자세를 고치며 무대 위에 홀로 선 연습생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무대에 들리지 않을 리 없으니, 채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17살 양채린이라고 합니다.”

박수가 나왔다. 인사에 대한 화답이며 무대를 잘하라는 격려의 메시지. 채린은 달리 시선 둘 데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다 그냥 사람들이 앉은 곳 너머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카메라 있을 때가 더 시선처리가 자연스럽다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이 무대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소극장 경험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이제 갓 시작한 아이에게는 어려운 거겠죠.”

사소한 시선 처리 하나를 두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건 트레이너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일.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얼굴 예쁜 채린의 무대를 기대할 뿐이었다.

“얼굴이 열일한다는 말이 딱 저 아이를 두고 하는 말 같네.”

시작된 채린의 연기는 발랄한 여고생 역할이었다. 본래 고등학생이었으니 어찌 보면 가장 자연스럽게 연기하기 쉬운 상황. 그러나 연기이기에 오히려 더 어려운 면도 있었다. 고등학생이 고등학생을 연기함에 있어 전형성을 줄이고 개성을 살려야 한다는 숙제가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펼칠 연기의 내용은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학원을 땡땡이치고 친구들과 놀러 간 자리에서 우연히 바람을 피는 아버지를 목격한다는 내용. 목격자로서의 불안감과 사춘기 소녀로서 가정의 파탄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동시에 친구들이 곁에 있는 상황에서 어떤 표정과 행동을 연출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했다.

“···다행인 건 친구들이 우리 아빠를 모른다는 거였죠. 하지만 그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친구들은 우리 아빠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그들은 서슴없이 아빠를 비난했어요. 척 봐도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여자를 꼬셔서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이니까요. 꼴불견이라는 표현은 차라리 얌전한 편이었어요. 가족이 불쌍하다느니, 자기 딸 같은 여자랑 하고 싶냐느니, 이래서 남자들은 믿을 수 없다느니, 변태라느니···정말 듣기 힘든 이야기들이 편의점 과자 고르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왔어요.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제 가슴에 꽂혀 전 쓰러질 것만 같았죠.”

감정 이입이 된 것인지, 눈망울이 촉촉해진 채린의 독백은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주었다.

“너무 리얼한데?”

“그만큼 연기를 잘한다는 이야기 아냐?”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점점 잘하네.”

불안하다 여겼던 시선 처리도 금방 자연스러워져, 이제는 관객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누비는 시선과 표정으로,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느낌을 받는 이도 생겼다.

“연습 때보다 훨씬 잘하네요.”

트레이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채린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고맙습니다.”

마지막 인사가 끝나자 이제와는 차원이 다른 박수가 쏟아졌다.

“쟤가 1등 하겠네.”

“그렇네. 압도적이네.”

“데뷔하면 양학할 수 있겠지?”

“아직 나이도 어린데 저렇게 끼도 많으니까 아마 성공할걸?”

“있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회사에 들어온 게 연예인이랑 가장 가까운 데서 덕질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들어온 거였거든? 근데 오늘부터 나 쟤 덕질하기로 마음먹었다.”

“팀장님한테 이른다?”

“매니저 팀으로 보내 달라고 해볼까?”

당장에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긍정적인 평가가 들리니 알게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던 대훈의 입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잘하네요.”

하지만 대표로서 특정 누군가를 지지한다는 인상을 남기면 안 되니까 최대한 중립적인 선에서 그나마 칭찬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이제까지와 다른 표정과 말투로 보건대 대훈의 속내는 이미 들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흉볼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비슷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나중에 나와봐야 아는 거죠.”

단유의 말에 대훈은 어색한 듯 하하 웃으며 입꼬리를 내렸다.

“단유 씨는 어떻게 봤어요?”

“잘 봤습니다.”

“달리 평가할 말은 없나요?”

단유는 마침 체크하던 평가지를 펜으로 톡톡 두드려 답을 대신했다.

“대표님도 일단은 쓰시죠.”

“흐음. 단유 씨, 생각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재미없어요.”

“재미로 평가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저들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 말에 대훈은 다시 단유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단유 씨는 방금 무대가 별로였나요?”

“굳이 말하자면,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왜요?”

“제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오디션 때 봤던 연기와 지금의 것 사이에 분명한 발전은 있었지만, 그게 그렇게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냐는 의문이 들어서요. 오히려 이미 무대를 치른 연습생 중에 더 뛰어난 성장을 보였다고 여긴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거기까지 답한 단유는 잠시 펜을 들고 생각에 잠기나 싶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평가를 객관적으로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늘의 무대가 처음이니까 오늘의 무대를 기준으로 평가를 하겠죠. 하지만 전 아무래도 처음 오디션에서 봤을 때의 기억과 며칠 전 예비 평가라는 이름으로 봤었던 기억이 섞여 있는 상태라서요.”

“그렇기 때문에 더 확실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당장 오늘의 무대만 놓고 완성도를 평가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보기엔 분명 성장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연습생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연습생의 무대를 두고 도저히 낮은 점수를 주기가 곤란해지네요. 왜냐하면 이들의 무대는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니까요. 앞으로 더 많은 무대에서 자신을 선보일 것이라 생각하면, 역시 성장이라는 요소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들은 기성 연기자도 아니고 개중에는 가수 지망생임에도 통합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연기를 배운 이들도 있다. 그러니 무대의 완성도만이 평가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 단유는 판단했다.

“이야, 이거 오히려 제가 단유씨에게 한 방 먹었네요. 지난 번 오디션 때처럼 연습생들이 무대를 하고, 사람들이 모여 평가를 하면 그것을 충분하다 생각했더니, 역시 회사 내부 평가다 보니 단순히 재능과 실력만을 평가해선 제대로 된 평가가 안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이 모자라다고 해도 언젠가는 성장할 수 있음을 말로는 주장하면서 머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고 할까요? 역시 이번에도 단유 씨께 배웁니다.”

“대표님, 제발 사람들 많은 곳에서 그런 낯간지러운 말은 삼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뭐 어때요, 라며 통 큰 웃음을 보이는 대표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리는 단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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