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with me(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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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연습생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이번 월말 평가는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월말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연습생은 곧바로 실전 투입할 생각이에요.”
입사한 지 겨우 4달, 실제로 연습한 기간만을 따지면 고작 3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슨 데뷔냐고 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의 주조연급 데뷔는 아니더라도 실제 현장에 투입하여 본격적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의 데뷔라 하겠다.
“비록 크지 않은 광고인 데다 거의 배경 취급일 배역이지만, 그래도 일은 일이니까요.”
수익도 별로 없는 일이라, 굳이 기획사 차원에서 이런 일을 잡아야 하냐는 의문도 있었지만, 대훈은 기어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건 노출이거든. 어떤 식으로든 얼굴을 알리는 게 중요해요.”
단유는 대훈의 설명에 의아함을 표시했다.
“말씀하신 대로면 그 광고를 보더라도 사람들이 기억을 못 하지 않을까요?”
“광고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일반 대중들도 있지만 광고 업계에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새로운 광고모델들을 찾는 수많은 광고 업계 사람들이 타겟팅이 된다. 물론 그 사람들이 시중에 나오는 모든 광고들을 다 찾아보는 것은 아니니 그들의 눈에 띌 확률도 낮을 테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맡으며 얼굴을 알려야 ‘기회’라는 것이 찾아온다.
“취지는 알겠는데, 만약 기회가 오더라도 문제 아닌가요? 현재 연습생들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기회가 오더라도 실망만 줄 수 있지 않나요?”
대훈은 단유의 지적이 타당하다며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거기부터는 저희의 역할이 아니에요. 저희는 연습생들, 아니 저희 소속 연기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거고, 그 기회를 잡아 실력을 보여야 하는 건 연기자들의 몫이죠. 저희가 없는 실력까지 만들어낼 순 없잖아요. 그러니 기회를 잡고 안 잡고는 연기자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에요. 그렇게 기회를 줬음에도 잡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건 기획사의 잘못이 아니라 본인의 잘못인 거죠.”
어찌 들으면 냉정하기만 한 이야기지만, 그게 또 현실일 것이다. 거기서 더 나가, 수차례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회사로서도 그 연습생을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어지니 바로 계약 종료다.
“저희와 함께 가고 싶다면, 스스로도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죠. 우리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까.”
아무리 회사 내 직원들을 위한 복지에 신경 쓰고, 연습생들에 대한 처우 관리에도 타 회사에 비교해 나은 수준이라 해도, 본질은 엔터테인먼트회사. 소속 연기자들의 스케줄을 관리하거나,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는 대신 그에 따른 수익을 얻는 것이다.
회사에 들어왔다는 것으로 그들의 미래가 확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회사가 모든 것을 해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가는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내쳐질 수 있음을 현재의 연습생들은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모두가 성공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죠.”
끝이 극도로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세계가 바로 연예계. 누군가의 성공은 누군가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세계. 적당한 각오로는 위로 오르기는커녕 제 위치에 머무르기도 힘든 곳임을 연습생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의 첫 장이 이제 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연습생들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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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앉아서 보시면 돼요.”
“고맙습니다.”
강사가 직접 접이식 의자를 펼쳐 단유가 앉을 곳을 정해 주었다. 채점을 하거나 평가서를 작성할 필요는 없으니 단유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 전면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텅 비어 있는 저 앞의 작은 공간이 임시 무대가 되고, 연습생들은 한 명씩 차례로 나서게 될 것이다.
“누구부터 할래? 자신 있는 사람부터 자발적으로 나와서 테스트하자.”
단유 옆에 마찬가지로 의자를 놓고 앉은 강사가 다리 한쪽을 꼰 채로 한쪽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연습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단유가 들어오기 전까지 강사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던 상황인데 자진해서 나올 이는 없었다.
결국 강사는 비스듬히 눈을 피하거나 노골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연습생들의 정수리를 바라보다가 한 사람을 찍었다.
“시율이부터 하자.”
지목을 받은 시율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에 앉은 동기들의 처연한 눈빛을 받으며 연습실 한가운데 선 시율은 양갈래 머리를 한번 매만진 후,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19살 정시율이라고 합니다.”
단유는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었다.
“네, 기억해요.”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지난 오디션 때 앞에 선 시율이 교복을 입고 등장해 춤을 추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떤 노래인지는 모르지만, 꽤 발랄한 분위기를 자아냈었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또 기억하기로는,
“가수 지망이었죠?”
“네, 맞아요.”
자신을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기쁜 건지 놀란 건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단유를 바라보는 시율에게 단유는 기대하겠노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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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은 연기라고 생각해요.”
대훈은 트레이너들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가수라 하더라도 결국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기본적으로 감성을 발산하는 연기와 무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줄창 콘서트형 무대만 돌아다닐 것도 아니고, 결국 카메라 앞에서 무대를 선보여야 성공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려면 표정 연기는 기본이죠.”
요는 노래와 춤이라는 기본기 외에도 카메라 앞에서 표정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해내는 사람이 없진 않다. 특히 요즘 세대는 카메라가 익숙하다. 셀카니 뭐니 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니 약간의 훈련만 있으면 누구나 능숙하게 연기를 해낸다.
“능숙하기만 할 게 아니라, 예뻐 보여야죠. 잘나 보여야죠. 그래야 셀링이 되죠.”
트레이너들도 그 부분에 공감을 했다.
“아무리 예쁜 얼굴이라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는 게 다 표정 연기가 어색해서 그런 거니까요.”
“맞아요.”
대훈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그러니 일단 지망대로 분반하기 전에 기본기를 위한 통합 훈련을 한 후, 다음 단계로 가도 되겠다 싶으면 분반 트레이닝을 실시하는 커리큘럼이 어떨까 싶습니다.”
문제는 이런 커리큘럼을 시행했을 때, 트레이너별 스케줄 조정과 서로 간의 협조가 필수였다. 해서 대훈은 트레이너들을 한자리에 모아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다행히 트레이너들 역시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지만, 대표의 취지에 공감하며 함께 커리큘럼 작성에 협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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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는 지정된 대본에 따른 연기를 선보이는 것이었는데, 이미 이번 월말 평가를 대비하여 각자 연습 중에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자유 연기는 각자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에 따른 연기를 하는 것으로 유나가 했던 ‘누명 쓴 동생들을 구명하는’ 연기는 자유연기였다.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작은 창으로 햇살이 들어왔지만 주위의 사물은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고, 방문 너머에서는 TV 소리가 들렸어요.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리지만 도저히 무슨 내용이 방송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몸을 움직이려고 했는데, 몸이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팔을 들어보려 했지만, 마치 팔 위에 무거운 쇳덩이라도 올려놓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아요. 그래서 깨달았죠. 아, 내가 가위에 눌렸구나. 가위에 눌리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더라? 아, 그래! 몸 끝에서부터 조금씩 움직이려고 힘을 주다 보면 풀린다고 했었지? 그래서 모든 신경을 발끝으로 보냈어요. 우선 발가락부터 움직이자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발가락이 움직인다는 느낌은 없어요. 그때, 문득 밖에서 들리던 TV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위가 너무 조용하니까 덜컥 겁이 났어요.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전 소리를 지르려 했어요. 엄마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질러보려 하지만, 제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어요. 고개를 돌려보고 싶은데, 고개도 돌아가질 않아요. 무서워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은데, 그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끼이익. 지금 내 몸에서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단 한가지가 눈동자라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어요. 전 최대한 옆을 보려고 눈을 돌렸어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 실루엣이 제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어요. 그 검은 실루엣은 조심스럽게 제게 다가오고 있었어요.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올수록 제 목은 점점 조여오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어요. 차라리 눈을 감자. 감으면 보이지 않겠지. 그래서 눈을 질끈 감았어요. 그것이 제게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요.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끈적한 소리가 들려요. 더 이상 느긋하게 깨길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어요. 온몸에 잔뜩 힘을 주었어요. 일어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그런데 다시 소리가 사라졌어요. 정적만이 주위에 남았는데, 그럴수록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가요. 차라리 잠이나 들지, 깨어 있는 제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어요. 눈을 감은 사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확인하지 않으면 이대로 당할 것만 같다는 두려움에 전 결국 눈을 뜨고 말았어요. 그리고 눈을 뜬 순간!”
1인극 형식으로 혼자 독백을 이어가며 문장마다 다양한 표정들을 이어가는 형식의 연기였다. 최대한 극적인 감정을 연출하기 위해 공포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도 있지만, 초보자라도 비교적 연기하기에 어렵지 않다는 점 때문에 고르게 된 스토리였다. 하지만 또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닌 게, 공포라는 장르에서 보여줘야 할 감정은 기본적으로 공포지만, 그 속에서 혼자기에 느껴질 외로움과 그리움이 함께 섞여야 하고,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와 용기가 묻어나야 했다. 물론 이후, 그 감정이 연출된 상황 속에서 무너져 내리며 소심하게 좌절하는 표정도 보여야 하니, 결코 단순하게 표현될 연기는 아니었다.
이런 내용을 강사로부터 들으며 어떤 부분을 주의해서 보면 좋을지 조언받은 단유는 손뼉을 치며 시율의 연기에 대해 화답했다.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시율은 연기를 끝낸 후에도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단유와 강사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 연습할 때 보면 너무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라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역시 그게 연기할 때 그대로 보여.”
역시나 강사의 한 마디 혹평에 곧바로 ‘죄송합니다’라는 답변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보셨어요?”
“그냥 보면 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이왕 본 건데 한 마디 정도는 해 주는 게 어때요? 이사님이 전문가도 아니시니까 세세하게 평은 못해도, 일반 시청자의 관점에서 평가는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만약 이 연기를 대한다면 어떻게 느끼겠느냐, 는 거죠?”
“얘들이 앞으로 상대할 사람들은 연기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취미로 드라마를 보고, 주말에 극장에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할 테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아름은 그게 아니잖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무려 이사님인데, 이사님의 눈에 좋지 않다 평가되면 결코 좋지 않을 게 뻔하지 않은가? 이사님을 일반 대중 정도로 치환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곧 시율이 서 있는 자리에 자신도 오르게 될 터다.
“그런 차원에서 평가를 하자면, 아니 감상을 하자면.”
단유가 말끝을 늘리자, 시율이 바짝 긴장하며 단유를 바라보았다. 단유는 볼을 긁적이다가 강사를 보며, ‘솔직하게요?’라고 물었고, 강사는 ‘네’라고 대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었어요. 딱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도 아니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설명을 잘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느낌은, 연기가 아니라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예상치 못했던 혹평에 깜짝 놀란 시율에게 단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연기라고 하면, 역시 감정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방금 강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면 무서운 상황에 처해서 공포에 질려 있는 사람을 연기하는 건데, 글쎄요? 제가 보기엔 별로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 보이던데요.”
앉아 있던 연습생들은 앞으로 남은 시간, 결코 순탄하지 않으리란 걱정과 불안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래도 계속 연습하면 나아지겠죠?”
단유는 강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자기 하기 나름이겠죠.”
역시나 월말까지의 컨셉이 압박인지라, 듣기 좋은 소리는 일부러 피하는 강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