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with m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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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습실에 합류한 아름은 트레이너에게 죄송하다 사과를 한 후, 같은 동기이자 동생들인 연습생들에게도 눈으로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다시 연습이 재개되었다.
“연주야, 선생님이 카메라라고 생각하고 해봐.”
지목받은 연습생은 강사를 바라보며 자유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시작하고 대사 한 줄을 다 읊기도 전에 강사는 연기를 중지시켰다.
“그만, 연주야. 조금 전에 발성 배운 건 금방 다 잊었어? 목소리가 앞으로 나오질 않잖아? 아무리 마이크가 있어도 그렇게 웅얼거리면 무슨 대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다시.”
볼을 빨갛게 물들인 연습생은 물론이고 그녀를 쳐다보는 다른 연습생들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앉아서 구경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선생님 앞에서 혼이 나는 연주와 일체가 되어 같이 혼나는 기분이었다.
연주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가 뱉으며 다시 연기에 들어갔다.
“이봐요, 둘 다 착하고 똑똑한 아이들이란 말이에요. 혹시 무슨 착각을 한 거 아니에요? 그 아이들이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두 손을 깍지끼고 강사를 향해 애걸하는 듯한 모습으로 대사를 치던 연주의 연기는 곧 자신을 호명하는 강사의 목소리에 중지되었다.
“연주야.”
“···네.”
“지금처럼 대사를 치면 바로 NG야. 발성도 문제지만, 감정이 전혀 전달이 안 되잖아?”
“······.”
“지금 상황이 뭐니? 네 동생들이 억울한 오해를 받은 상황이잖아? 언니인 네가 나서서 동생들을 대변해주는 거지? 그럼 어떤 감정일까? 네가 가장 사랑하는, 지켜줘야 할 동생들이 받는 오해가 마치 자신이 오해를 받는 것 같겠지? 그럼 억울하겠지?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어필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단호하게 선을 그어서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 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대사를 치던지.”
“······.”
“대본에 나온 한 줄의 대사에도 캐릭터가 묻어나야 보는 사람입장에서 몰입을 할 수 있는데, 넌 지금 아예 상황을 이해 못 하고 있잖아?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아니면 감정 이입을 못 하는 거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군 연습생을 바라보던 강사는 고개를 저었다.
“넌 나중에 다시. 들어가.”
첫 연습생부터 혹독한 지적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한 다른 연습생들은 부랴부랴 입술을 달싹거리며 자신이 하기로 배정된 대사를 중얼거렸다.
“다음.”
그러나 강사는 곧 다음 희생자를 불러 세웠다.
“너희들 언제까지 연습만 하고 살 거야? 평생 연습만 하다가 나갈래? 데뷔 안 할 거야?”
이어지던 연습에서도 수월하게 테스트를 통과한 연습생은 나오지 않았다.
“적당히 하다가 보면 회사가 알아서 데뷔시켜줄 거라고 믿는 거야?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 있으면 지금 당장 짐 싸서 나가. 그런 사람이면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연기지도를 맡았던 강사는 본래도 독한 말을 서슴없이 하기로 유명해 연습생들이 마주치기 꺼려하는 강사 중 한명이었으나, 오늘따라 유난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황을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닌 게, 며칠 후 있을 두 번째 월말 평가 때문이었다.
첫 번째 월말 평가 당시, 모든 연습생들이 혹독한 지적을 받고 멘탈이 모래알처럼 부서질 정도였다. 오죽하면 ‘얘는 어떻게 오디션 합격이 됐는지 모르겠는데요’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을 정도였을까?
덩달아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트레이너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진 못해도 나름 자기 실력에 인정을 받아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회사에 영입된 트레이너들이었다. 당연히 본인의 실력과 교습법에 확신과 자신감이 가득한 이들이었는데, 아무리 기간이 짧았다고 해도 두 달을 가르쳤는데 실력이 더 나아지긴커녕 어떻게 합격했는지 모르겠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실력을 성장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이전 수업 때 들어왔던 트레이너는 물론이고 연기 지도를 하는 강사까지, 다들 연습생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연습생들도 지금의 상황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실력이 급성장하는 것은 또 아니라, 오히려 주눅이 들어 제 실력이 나오지 않는 연습생도 없진 않았다.
“한 소리 들었다고 기죽어서 실력이 안 나온다는 핑계는 하지 마. 현장은 이보다 더 심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데 NG가 세 번, 네 번 나면 얼마나 분위기가 험악해지는지 알아? 이 정도는 약과야. 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싶으면 A급 연예인이라도 출연자 교체를 단행하는 게 현장이야. 이 정도 프레셔도 이기지 못해 우는 소리를 하려거든, 집에 가서 엄마 다리나 붙잡고 울어. 다들 착각하나 본데, 여기 학교 아니야. 회사야. 사회라고. 사회는 불쌍하다고 봐주고 그런 거 없어. 실력이 없으면 바로 내쳐지는 거야.”
나이 어린 연습생은 차가운 강사의 설교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무릎을 바짝 끌어안고 눈을 콕콕 찍어 눈물을 닦는 연습생 곁에 있던 아름은 그런 연습생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아내는 강사였지만 여전히 입은 가혹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짜 죽겠다 싶을 정도 연습해. 힘들어 못 하겠다 싶으면 그냥 나가. 나가지 않아도 이번 평가 때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실력이 퇴보하는 것 같다 싶으면 보내줄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던가. 알겠어?”
“······.”
“자기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화려한 것만 찾다가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이 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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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잘 뽑혔다고요?”
“네. 태원 씨나 시은 씨나 모두 만족했다는 후문입니다.”
서류를 뒤적이는 대훈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그려졌다.
“잘됐네. 근데 시은 씨는 모두 정리된 건가요?”
“네. 지난 회사에서 잡았던 스케줄은 지난주에 모두 마무리되었고요, 이제 그쪽은 깔끔하게 끝이 났습니다.”
대훈의 맞은 편에 앉아 질문에 답하는 지원팀장에게도 비슷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채용과 오디션, 그리고 다양한 수익 창출을 위한 루트 개발을 추진하는 와중에 얻은 가장 큰 성과였다. 앞으로 회사가 계속 마주치게 될 다양한 프로젝트들에 비하면 별거 아닌 일일 수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분명 만족스러운 결과였고, 이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두 사람은 충분히 지금의 성과를 음미할 자격이 있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홍보 기사 띄울 거죠?”
“네, 보도자료 배포는 내일 새벽에 한꺼번에 돌릴 거고 아침부터 기사가 나올 겁니다.”
이 바닥에 난립하는 수많은 기획사들 중에 우리도 있다, 라는 것을 당당하게 선포할 준비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발표가 된 뒤에도 여전히 회사는 ‘신생’이라는 꼬리표와 ‘무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겠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포고문을 널리 알림으로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부터가 제대로 된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오케이, 됐어. 이제 좀 제대로 풀리는 기분이네.”
대훈은 몸을 뒤로 젖히며 묵은 신음을 흘려냈다. 회사 창립 이후, 아니 그 전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하하 웃으며 여유로운 척해도, 내심으로는 위태롭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많이 걱정했거든요. 마음이야 이미 최정상급 회사의 대표지만, 너무 서투른 게 아닌가, 라는 걱정도 들고요.”
“대표님은 충분히 잘 해오셨습니다.”
“고맙습니다만, 그런 평가를 받기엔 이르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까이에 있던 저는 알 수 있었어요. 대표님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요. 어느 회사에서도 회사 창립 초반에 이런 성과를 거둔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본래 속했던 전 회사의 연예인을 빼돌린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마침 시기가 맞물려 소속사를 나오게 된 연기자가 있었지만, 같이 하자고 구두약속까지 했다가 회사 설립 직전에 다른 기획사와 계약을 하는 일이 있었다. 대훈은 애써 그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고, 그간의 정을 생각해 부디 성공하길 빈다고 덕담을 건넸지만, 속으로는 앞으로의 일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단유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오디션도 열어서 새 연습생을 받아들이고, 최고의 스태프진을 구성할 수 있게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으니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다크서클과 한 웅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걱정하지 않은 날이 없다.
그래도 대표니까,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웃었고, 늘 여유로운 언행을 구사할 수 있게 노력했다.
그러다 운 좋게도 이런 기회를 잡게 되었다. 시은이라는 가수의 네임벨류를 고려하면 결코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그녀의 영입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친 태원의 곡에까지 참여할 수 있게 된 기회를 얻었으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앞으로도 지금만 같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으니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지금에 안심할 순 없죠. 더 바짝 긴장하고 주의해야만 할 거예요. 이 바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위로 오르는 것이 아니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니까요.”
성공가도를 걷다가도 자칫 실수해서 한순간에 나락에 빠지는 게 연예계의 생리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잠깐 삐끗했다고 휘청거렸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세계라고 보았다간 큰코다친다. 한 번의 실수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회식은 간단하게?”
“뭐, 저야 상관은 없습니다만, 몇 날 며칠을 밤샌 직원들이 섭섭해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농담입니다. 오늘만큼은 그간의 고생을 모두 털어버리겠다는 각오로 놀아야죠. 하하하.”
법인카드 긁을 생각에 행복해진 지원팀장과 그까짓 거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대표 덕에 오후 내내 지원팀엔 훈훈한 바람이 머물렀다.
****
연습이 재개되면서 다시 연습실이 후끈 달아오를 때,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단유가 나타나자 연습생들은 놀란 눈으로 단유를 확인한 후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내질렀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강사가 ‘그렇게 발성을 했으면 벌써 다음으로 넘어갔겠다’며 헛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더운 날 힘들 텐데 이거라도 먹으면서 힘내시라고 사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단유에게 쪼르르 달려와 단유와 택윤이 건네는 음료팩을 건네 받았다. 아이들에게 건네기 전 하나를 빼 강사에게도 건넸더니 자신도 받을 줄 몰랐다는 듯 놀라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잘 마실게요.”
덩달아 아이들도 소리쳤다.
“잘 마시겠습니다!”
“전에 만났을 때 들었던 메뉴대로 시켰는데, 괜찮으시죠?”
“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메뉴대로 사 온 단유의 배려에 깊이 고마워하는 동시에 그때의 일을 기억해줬다는 것에 감격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 잠시만요.”
강사가 단유를 붙잡았다.
“네?”
“오신 김에 애들 연습하는 것도 보고 가시죠.”
테이크아웃 잔을 붙잡고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의 여유를 느끼던 아이들이 순간 얼음이 된 것처럼 얼어붙었다.
“괜히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아뇨. 도움이 될 겁니다.”
“도움이요?”
강사는 단유에게 몸을 기울여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일부러 애들을 압박하고 있는 중인데, 이사님이 계신다면 훨씬 효과가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단유는 시선을 돌려 연습생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촉촉한 눈빛으로 강하게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나가주세요.’
단유는 피식 웃으며 강사를 향해 대답했다.
“부끄럽지만 제가 아는 것이 없어서요.”
아이들의 표정이 화장실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처럼 변했다.
“···그래도 도움이 된다면 도와드려야죠.”
“그냥 보시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강사는 웃으며 대꾸한 후, 연습생들을 향해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이사님께서 직접 관람하시며 평도 해주신다고 하니까 다들 긴장하고 연습하자. 오케이?”
잔인하고 사악한 데다 괴롭힘에 일가견이 있는 강사의 선언에 연습생들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입에 남아 있던 음료의 달콤함은 잊은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