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with m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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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름은 뭔가 모르게 아쉽고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또는 상처받은 기분. 눈치챌 새도 없이 날아온 탄환에 찢겨 자기도 모르게 넝마가 되어 버려진 기분. 그의 눈빛은 차가운 탄환이었고, 그의 한 마디는 폐정을 알리는 판사봉이었다.
남겨진 아름은 뒤늦게 회사 밖으로 나왔지만, 이미 두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고 유난히 따가운 햇살만이 아름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뿐이었다.
“아름아?”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니, 행운의 여신이 점지라도 한 것인지 전혀 예상도 못 했던 기회를 잡아 들어온 그녀의 ‘친구’였다.
“어, 지아야.”
“뭐해?”
잠깐 바람 쐬러 나왔다고 말하려다 보니 어쩐지 궁색한 핑계처럼 들릴 것 같았다. 괜히 연습하기 싫어 도망 나온 사람처럼 비치면 어쩌지?
“그냥, 뭐···. 너는?”
“난 심부름.”
그러고 보니 손에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넌 어렵게 들어가서 고작 심부름이냐, 는 비아냥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교된다.
“일은, 할 만해?”
“어, 뭐. 조금···.”
그냥 지나가는 인사 정도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질문이었는데 지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풀이 죽는 모습이라 아름은 괜히 안심이 되었다.
‘안심?’
스스로가 느낀 기분에 아름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느껴져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나 그만 들어갈게.”
“응, 그래. 먼저 들어가.”
“수고해.”
“너도.”
지아가 어색한 손인사를 건네고는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던 아름은 참아왔던 한숨을 깊이 토해냈다. 그리고 빌딩에 가려 손바닥만한 하늘의 푸르름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모자란 마음을 다스릴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아마도 이 회사에 있는 동안 아름은 지아를 볼 때마다 그녀에 대한 질투와 그러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못마땅함,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품은 마음들에 대한 혐오감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할 테다. 대학에 다닐 때도 그랬다.
예쁘다, 귀엽다 온갖 칭찬과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던 시절에도 그녀는 그녀보다 못생기고, 패션 센스도 없고, 남자 친구도 없던 애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연주 실력을 뽐내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러워하고 욕했다. 물론 겉으로는 축하해주고 함께 기뻐해 주며 ‘좋은 사람’인 척을 했지만, 진심으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름은 안다. 자신이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니란 것을. 어릴 때는 억지로라도 바꿔보려 했지만,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런 부분을 드러내지도 않거니와, 언제나 그림과 같은 미소로 SNS를 도배하니 그녀의 고민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언제나 아름의 안에서는 착한 사람이고픈 소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못된 자신이 공존했다.
밖에서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디저트를 나눠 먹으며 웃음을 나눴지만, 집에 들어와 욕실 앞에 서서 얼굴 위를 두껍게 가리고 있던 화장을 지울 때면 언제나 슬픈 눈이 되어 있었다. 슬픈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더더욱 슬퍼지고 괴로워졌다.
‘별수 없잖아.’
결국 자신이 남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유아기적 심리다.
그래서 아름은 선택했다. 남들보다 잘나면 되지 않겠냐고. 지금까지 자신은 제대로 된 길을 걷지 않고 있었다. 비록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더 좋아했던 것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의 재능은 음악 쪽이 아니라 바로 얼굴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잘못 선정된 재능을 두고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니 언제나 슬펐던 것이리라. 제대로 자신의 재능을 찾아가면 더는 슬플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택했다. 연예인이 되기로.
‘이제 시작인 거야.’
한눈팔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회사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SNS를 끊을 작정이었다. 과거의 자신은 완전히 지운다. 제대로 붙으면 절대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늦게 시작했다는 불안감도 인정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노력하고 땀을 흘리면 되지 않겠냐는 믿음도 있었다.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아름에게 익숙했다.
‘그러니까, 헷갈리지 말자.’
이미 이 회사에 들어온 순간, 자신의 길은 이것, 이라고 정했다. 지아가 잡은 기회는 분명 부럽고 질투 나는 일이지만, 그걸로 또다시 자신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지금 나는 미완성이야.’
그래, 다 두고 보자. 완벽한 아름으로서 재탄생하여 만인의 시선을 받는 위치에 섰을 때, 그때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슬프게 했던, 못된 마음을 품게 했던 것들을 비웃으리라.
특히, 그 사람. 누구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누구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로 취급하던 그를 비웃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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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
밥을 먹다 말고 목 뒤를 주무르는 단유였다.
“왜 그래요?”
“아, 갑자기 목 뒤가 서늘한 기분이 들어서요.”
“갑자기? 왜요? 혹시 요즘 몸이 좋아요? 보양식이라도 먹으러 갈 걸 그랬나?”
별일 아닐 거라며 단유는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여기도 괜찮은데요.”
“귀한 몸이니까 소중히 해야죠.”
“제가 무슨 귀한 몸이라고.”
이제는 마냥 우습지도 않은 택윤의 농에 단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갑이지 않습니까?”
“하아.”
괜히 갑이니 뭐니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한동안 갑이라는 소릴 들어야 할 거 같다는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옆에 놓인 휴지로 입술을 훔치고 있으니, 택윤이 일어나 먼저 계산대로 향했다.
“우리 갑님 덕분에 돈도 잘 버는데, 좀 비싼 걸 먹으러 갈 걸 그랬나 봅니다.”
“비싼 건 나중에 사모님께나 대접해드리시죠.”
그 대답에 택윤이 아, 탄성을 뱉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아, 맞다. 요즘 뭔갈 계속 깜빡깜빡했는데, 그걸 잊었네요.”
“뭔데요?”
“집사람이 나중에 같이 식사하자고 하더라고요. 원장님이랑 단유 씨한테 식사 대접해주고 싶다고.”
“식사요?”
“지난 달에 이사를 했는데, 아직 집들이를 못 했거든요. 그런데 집사람이 단유 씨랑 원장님은 꼭 모셔서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오실 수 있죠?”
영수증을 챙기며 식당을 나가는 택윤의 뒤에서 단유가 대답했다.
“저는 상관이 없는데, 선생님이 바쁘셔서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원장님 스케줄 맞춰서 모셔야죠. 그럼 조만간 일정 잡아서 말씀드리죠.”
커피는 자신이 사겠다고 대답한 단유가 앞장서며 물었다.
“혹시 필요한 거 있으세요?”
“필요한 거요?”
“집들이 갈 때 선물 사 들고 가잖아요? 기왕이면 이사님께 필요한 걸 선물로 사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됐어요. 이미 받은 게 많아서 더 받아야 부담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드리려고요. 더 부담스럽게 해드려야 이사님이 절 보기 어려워하실 것 같아서.”
“제가 단유 씨를 어렵게 보길 원하세요?”
“어떤 의미로는, 네. 보실 때마다 계속 이사직을 맡으라고 닦달하시니까. 좀 보기 어려워지면 그 말을 더 듣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아, 그런 의미에서? 하하하. 단유 씨 센스는 못 따라가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싫으십니까?”
“싫다기보다는 부담스럽죠. 제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마침 말이 나온 김에 이때다 싶었는지, 택윤이 단유 곁에 바짝 붙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 모르십니까? 처음에는 어색해도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또 시간이 지나면 노련해지고 그런 겁니다. 저라고 이런 엔터쪽 회사의 이사가 어울렸겠습니까?”
혹시 단유가 이사 임명을 받아들이면 하은에게서 뭔갈 받기로 약속이라도 된 건가 싶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사님은 어딜 가도 어울릴 것 같은데요?”
“아무튼, 요즘 보니까 점점 익숙해지시고 있는 것 같아 보이던데, 아니었어요?”
“익숙해지는 건 맞지만, 익숙함과 제가 있어야 할 자리는 다르니까요. 지금이야 제가 직책도 없이 그저 투자자라는 이점을 가지고 도움을 받고 있으니 대훈 씨에게도 부담이 덜하겠지만, 만약 제가 이사가 된다면 대표이사에겐 큰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 이유라면, 어느 회사나 투자자가 이사가 되는 경우는 흔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대표이사는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회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거고요. 괜히 CEO라고 부르는 게 아니죠.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듯 사내 정치로 갈등이 생겨 회사 일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갈등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제가 본 대훈씬 그런 사내 정치 때문에 회사일에 집중을 못 할 캐릭터는 아닌 것처럼 보이고요. 오히려 사내 정치에 소홀하다보니 손해를 볼까 걱정될 정도니까요.”
“처음 대훈 씨에게 투자를 결정했을 때도 경영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 했습니다만, 제가 이사가 된다면 대훈 씨에게 분명 영향을 줄 거고 그건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되도록 대훈 씨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경영하여 회사를 성장시키길 바라는 마음이고, 전 옆에서 그저 지켜보고 싶을 뿐입니다. 책임 없이.”
“결국 요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거군요. 그런데 이사가 된다는 가정을 하는 거 보면, 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자면, 확실히 회사가 운영되는 흐름이 눈에 익으면서 뭔갈 맡아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번 지아의 일을 겪으며 생각을 다시 고쳐먹게 된 것은, 분명 그것은 인사권에 관련된 문제이고 단유가 멋대로 벌인 일인데, 대훈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지만 단유는 그런 식으로 간섭하는게 대훈은 물론이고, 회사 내부의 직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지나가듯 언급했지만, 분명 사내에 대훈을 중심으로 통합되는 분위기를 단유가 해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분명 있었다.
이번에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는 듯 하니, 택윤은 그저 안타까움에 혀를 차고는 단유가 먼저 들어간 카페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커피는 그저 잠을 쫓기 위한 수단으로서, 식후에 입안을 가볍게 씻어낸다는 정도의 개념으로서 마실 뿐인지라 확고한 자기 취향이란 게 없던 택윤은 아메리카노를 선택했다.
단유는 잠깐 메뉴판을 바라보다가 앞에서 기다리는 아르바이트 생에게 주문을 넣었다.
“아메리카노 4잔,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 두 개, 자몽 스무디 하나, 블루 요거트 스무디 3개,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택윤이 놀라서 물었다.
“아니 왜 그렇게 많이 시켜요? 누구 주려고요?”
“네, 아까 아름 씨 봤던 게 생각나서, 생각난 김에 연습생들한테 힘내라고 주면 좋아할 거 같아서요.”
“아름 씨? 아, 아까 연습생. 그런데 주문이 뭔가 구체적이네요?”
“지난 번에 우연히 밖에서 만났을 때도 제가 음료수를 사줬었거든요. 그때 아이들이 시켰던 메뉴입니다.”
“그걸 기억해요?”
“기억하는 게 뭐 어렵다고요.”
“혹시···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단유는 눈썹을 찡그리는 것으로 질문에 답한 뒤, 몇가지 디저트용 케익도 주문했다. 역시 지난번 쇼핑몰 근처 카페에서 연습생들이 시켰던 메뉴였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점수 따기 좋은 전략입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럼 사는 김에 대훈 씨 것도 사시지 그래요?”
“대훈씨는 사내 카페에서 마시는 걸 좋아하시는 거 같던데요.”
단유는 어깨를 으쓱대며 주문한 음료가 나오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