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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833화 (833/956)

Stay with m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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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가 너무 먹고 싶어서 감옥을 탈출했다는 무기징역수의 회고록에나 오를 법한 사정이 아니고서야, 대중의 관심을 단번에 끌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혹은 여유가 넘쳐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 년에도 수십, 아니 수백 명씩 데뷔하는 연예인들을 일일이 살피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홍보가 중요해.”

수십, 수백 명의 신인 연기자들 중에 우리 아이가 가장 눈여겨볼 만한 인재입니다, 라고 소개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 이유고, 때문에 홍보팀이 매일매일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고 토의하며 야근도 밥 먹듯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요는 임팩트를 줘야 한다는 건데.”

그렇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사람들의 주목도를 크게 이끌 스토리를 가지고 성장한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고, 더구나 이 바닥에 데뷔하는 아이들 나이가 대부분 10대에서 20대인데, 고작 그 나이에 무슨 특별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었겠어.”

그러니 입사 지원 이력서에 써내려가는 자소서가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말장난에 가까운 과장만 섞이니까 신뢰도가 점점 떨어진다고 말들을 하는 이유일 테다. 연예인 데뷔를 꿈꾸는 이는 더 하다. 오히려 다른 평범한 이들이 흔하게 겪는 경험도 쌓지 못한 채, 트레이닝룸 안에서 레슨만을 반복하며 살게 된다.

“그나마 회사 차원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지원해 준다면 모를까, 거의 대부분은 차라리 수능 공부하는 고3보다 못한 경험치를 쌓으며 사회와 격리되지.”

차갑고 냉정한 분석에 연습생들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열중쉬어 자세로 경청했다.

“그러니 봐봐, 이런저런 사정들을 다 소거하고 나면 남는 게 뭐야? 결국은 실력, 하나밖에 안 남는 거야. 달리 우위를 판가름할 게 없으니 실력, 이라는 결론이지만 그러니 실력이 기본이고, 실력이 장점이고, 실력이 셀링포인트가 되는 거야. 너희들이 지금 여기서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라는 거지. 만약 나는 실력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 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나가서 쉬어도 돼.”

역시 이번에도 연습생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기다렸다.

“발성도 안 돼, 자기 팔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늠도 못 해, 시선 처리 하나도 제대로 안 되는데 이래 가지고 이번 달 평가는 어떻게 볼래? 아무리 못 해도, 지난달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할 거 아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나한테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죄송하면 누가 너희들 평가 때 좋은 점수 준다든? 응?”

“······.”

“나도 지금 니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딱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지. 고비야. 지금을 잘 넘겨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딱 이쯤에서 포기해. 왜? 그냥 하루하루 똑같은 것만 연습하는 데, 제대로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거지. 그러니까 맨날 혼나기만 하고, 거울 앞에 서면 꿈꿨던 화려한 연예인의 모습 대신, 땀에 젖어서 엉망인 얼굴에 초라한 연습복만 걸친 자신의 모습이 보이니까.”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희망이 꺾인다.

“우스운 이야기야. 고작 몇 달이나 했다고 벌써 미래가 보이니 마니.”

연습실에 있는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하루 하루 같은 커리큘럼을 소화해나가다 보니 점점 초심을 잃게 된다.

“그래서 다들, 초심, 초심 하는 거야. 처음 오디션 들어올 때 너희들 생각해 봐. 다들 분명히 꿈도 있고 희망도 있고 각오도 되었을 거야. 몇 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데뷔해서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지? 데뷔하기 위해서 뼈를 깎는 수고도 아끼지 않겠다고 각오했었지? 그런데 지금 니들 솔직히 말해봐. 그 각오가 무뎌지지 않았는지.”

연습생들은 운 좋게(?) 먼저 나간 아름을 잠시 부러워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

“아, 예. 안녕하세요.”

단유는 허리 숙여 인사하는 아름을 알아보고 정중히 인사를 받아주었다. 옆에 있던 택윤은 아름이 누군지 몰라 그저 회사 직원인가보다 하고 넘어가려다, 복장이 남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

“연습생?”

“네.”

“아, 그렇군요. 고생이 많아요.”

“감사합니다.”

“어디 나가는 길인가 봐요?”

“아, 예. 잠깐 바람 좀 쐬려고···.”

“그래요, 힘들 때는 잠깐 쉬었다 가는 것도 좋죠.”

조금 전 젊은 사람들을 보며 기운을 얻는다던 택윤의 말은 진심이었던지 아름을 바라보는 택윤의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름은 계속 단유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단유는 처음 인사를 받아준 후로, 택윤이 걸음을 떼지 않아 마지못해 서 있는 다는 느낌일 뿐 딱히 아름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택윤은 문득 자신이 너무 주책없이 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만 가죠.”

“네.”

단답형으로 대답한 단유는 아름에게 목례를 보낸 후, 고개를 돌렸다. 회사 밖으로 나가는 단유와 택윤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아름은, 그들이 나갈 때까지 로비에서 멈춰 서 있었다.

“저 친구, 혹시 따로 아는 사이입니까?”

“아니요. 왜요?”

단유는 소매를 걷으며 대답했다. 최근 날이 조금 선선해졌다 싶었는데, 오늘은 유독 날이 더운 것 같았다. 소매를 걷는다고 해서 더위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손목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열기가 조금은 빠지는 기분이다.

“단유씨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서요. 계속 단유씨를 신경 쓰는 거 같던데.”

“우연히 밖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친밀하게 사담을 나눌 정도의 사이는 아닙니다. 아마 제가 ‘이사’라고 불리니까 그 때문에 신경을 쓰는 거겠죠.”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단유였지만, 택윤은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듯 대꾸했다.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닌 거 같은데.”

택윤이 의심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았다. 주제와 다른 생각이지만, 단유는 요즘 들어 하은이나 택윤이 부쩍 단유의 주변을 신경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단유는 담담하게 생각을 밝혔다.

“굳이 추측해 보자면, ‘이사’인 데다가 최근에 그녀의 친구에게 ‘기회’를 줄 정도의 파워를 가진 사람, 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겠죠.”

“파워요?”

정교한 의미로 규정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힘에 끌리는 것은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편한 우열관계는 없잖아요? 갑을 보면 저절로 을이 먼저 머리를 숙이는 세상이라고 하니까요.”

파워 게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누구의 힘이 더 강한가. 그리고 강한 자에게 약한 자가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세상. 더러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지지 않으려 싸우면 언더독이라 불리는 세상. 허나 일반에겐 그저 특별한 경우에 그치니, 이제 세상은 파워게임을 갑을이라 변칭하여 관계성을 정의한다. 진화된 원시 세계,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지금의 경우도 그런 경우라고 단유는 설명했다. 단지 아름이―당사자의 동의 없이―단유를 갑으로 정의하고 스스로를 낮춘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하니 택윤은 고개를 흔들었다.

“동의가 필요한 문제는 아니죠.”

택윤은 단유의 설명에 어폐가 있음을 지적했다. 연습생이라도 결국은 회사 직원. 그리고 회사는 수직적 계급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니, 직원이 상사에게 먼저 인사를 하거나 눈치를 살피는 것은 당연하다. 상사는 갑이니까. 조직 자체가 그런 식으로 구성된 상태니 상대의 동의가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전 회사의 고위층이 아닌데요.”

“이사님이라고 불리고 있으면 오해를 한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해라 하더라도 아까 그 아이의 잘못은 아니죠.”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이사님도 이제 왜 그녀가 제 눈칠 살폈던 것인지를 이해하신 것 같네요.”

“어?”

말문이 막힌 택윤이 잠깐 얼이 나간 듯 단유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젊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직급 상의 차이로 생긴 상황이었다는 단유의 직설에 택윤 스스로가 말려든 셈이라.

“이런 한방 먹었네요.”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만, 어쨌든 이해하셨다니 됐습니다.”

택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뭐, 아무튼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비굴하지 않게 의지할 수 있다면 현명한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만약 원시의 약육강식의 시대라면 말이죠.”

현실적 논의를 차치하고 원론적으로 따질 때,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이 한 목소리로 합의한 헌법에 의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법과 정의, 도덕을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이 사회의 본질은 약육강식이죠.”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전 갑을이라는 관계가 마냥 힘의 우열로만 판단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을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과하게 자신을 낮추는 경향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곳에 가서 제가 이런 말을 한다면 과하게 욕먹을 이야기 같지만, 그래도 해보자면 말이죠. 을이 스스로를 굽히는 것은 그저 부득이한 갈등과 마찰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아까처럼 직원과 상사가 우연히 마주치는 자리에서 직원이 상사를 무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택윤의 말도 일리는 있다고 동의하며 단유는 대꾸했다.

“하지만 그건 갑을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의 문제로 봐야죠.”

“갑을 간의 예의 문제입니다.”

“과례는 비례라는 말이 있죠? 현재의 갑을 관계는 과례를 만들어내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 보기에 불편합니다.”

“그게 을의 탓은 아니죠.”

“을의 탓만은 아니죠. 깊이 파고들면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우선 저는 을이 너무 스스로를 낮추려는 의식부터 고쳐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단유씨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시네요.”

“어떤 모습인데요?”

“누구에게나 자신감이 넘치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한 모습이랄까요. 처음 볼 때도 느꼈지만, 그 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이라. 혹시 말인데요, 예전에, 그러니까 단유씨가 어렸을 때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자주 부딪혔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나요?”

“주위 사람과 갈등이 많았냐고 묻는 것이라면, 빈도수를 측정할 특정 기준점이 없기 때문에 많고 적음을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없진 않았다는 말이죠?”

“네.”

“어쩌면 그런 성격과 자신감이 지금의 단유씨를 만든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글쎄요, 제 성격과 지금 현 상태를 결부시켜 어떤 관계성을 부각시키기엔 인과가 부족하다 싶습니다.”

“이거 참. 단유씨랑 이야기하다 보면 말이죠, 내가 정말 여태 뭘하고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도저히 나이 어린 사람과 나누는 대화라는 생각이 안 드니까.”

“너그럽게 봐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죠.”

“너그럽게 봐주는 이유는 역시 제가 을이기 때문일까요?”

“이사님은 보통 을이면서 동시에 갑이기도 하시죠.”

“제가요?”

“최근에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거든요. 이사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거 같고, 이사님도 계속 저에게 무언가를 시키시려는 것만 같고. 이사님 뒤에 더 큰 갑이 숨어 있는 것 같지만, 모른 척 해야만 할 거 같고. 그렇네요, 요즘은.”

“하하하.”

택윤이 웃음을 터뜨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깃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래도 택윤은 웃음을 쉽게 멈추지 못했다. 잠깐 걸음이 느려진 틈에 주위를 살피니, 마침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보였다. 택윤에게 어떠냐고 물어보니 택윤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거 참, 저는 매일 단유씨의 눈치를 살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단유씨도 제 눈치를 많이 살피시나 봅니다.”

“많이 살필 수밖에요.”

“수렴 뒤에 계신 분 때문에?”

“인정하시는 건가요?”

“아,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제 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없는 셈 치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순두부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택윤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 솔직히 단유씨 덕분에 저도 이 자리까지 오고 보니, 저는 제가 단유씨의 눈치를 많이 살피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솔직히 조금 전 갑을 이야기가 나왔지만, 저는 제가 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유씨가 을이 스스로를 너무 낮추려 하는 게 아니냐고 할 때, 내가 그랬었던가 반성하게 되더군요.”

“이사님은 저를 만나기 전에 이미 자리를 잡으신 분 아닙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저에게 의지했다기보다는 스스로의 능력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이를 스스로 인지하고 계셨으니 언제나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가득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이요. 전 그런 이사님이 존경스럽고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네요. 오늘 식사는 제가 꼭 대접해야겠는데요?”

“사주시기로 하고 나오신 거 아닌가요?”

단유의 대답에 립서비스였던 거냐며 웃음을 터뜨리는 택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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