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32화 (832/956)

Stay with me(6)

-------------- 832/952 --------------

“전반적으로 좀 더 안정성을 높이고 데이터 분석 과정을 최적화시켜 보다 빠르게 결정을 돕도록 시스템을 보완했으니, 일단은 이쪽 프로그램으로 일부 투자금만 운용해서 한달간 상태를 지켜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럴 때 보면 단유씨가 도대체 못 하는 게 뭘까, 라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못하는 거 많아요.”

“세상에 해야 할 일이 100가지가 있는데, 그중 99가지를 못한다고 해도 단 한 가지, 돈 버는 일만 잘하면 다른 일은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단유씨는 돈도 잘 벌면서, 제 기준에서는 기상천외한 프로그램까지 혼자 만들잖아요? 전 단유씨가 가장 부럽고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하하.”

단유는 민망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얼굴을 붉히는 대신 재빨리 화제를 틀었다.

“내년 재무관리 계획은 검토하셨나요?”

“아, 그 부분이라면 준비한 게 있으니 같이 보면서 말씀드리죠. 우선···그전에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내년 상반기까지 ‘D&D Ent.’에서 계획 중인 영입 계획이 모두 마무리될 경우, 그러니까 모든 영입이 성공적일 때, 내년 후반기부터는 지금의 30% 수준까지 적자가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흑자 전환은 어렵다는 건가요?”

“저도 아직 이쪽 업계의 평균치를 정확히 확인해보지 못해서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곤란하지만, 몇몇 알아본 회사들과 비교해봐도 ‘D&D Ent.’의 비용지출은 다른 평균보다 높은 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생회사라서 이래저래 소요되는 비용이 큰 이유도 있고, 대표이사가 비용지출에 둔감한 이유도 있을 것이고, 어느 큰 손 투자자가 워낙 인심이 좋아서 무지막지하게 비용을 투자함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포함되겠죠.”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인가요?”

“뭐 이렇게 투자 계획을 살피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야 할 말이 별로 없···진 않죠, 당연히. 단유씨의 자금 관리를 총괄하는 직책을 맡은 이상 굉장히 신경 쓰이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리 단유씨가 ‘마법의’ 투자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수익을 얻는다 해도, 회사를 통해 빠져나가는 투자금은 그보다 더 큽니다. 빨리 회사가 수익 창출을 해서 흑자 전환하지 않으면, 단유씨의 손해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단유씨의 손해가 커질수록 저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도 점점 사라져갈 겁니다.”

“파마하셨어요?”

“며칠 전에요.”

“보기 좋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좋게 봐주시니. 아무튼, 지난 1, 2분기 예산 집행 실적과 내년 상반기 투자 계획을 토대로 확인해보면, 확실히 회사에서는 좀 더 확실한 캐시카우 역할을 해줄 대상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네. 그리고요?”

“네, 그런데, 마침 오늘 그 캐시카우 역할을 해줄 대상이 나타났죠.”

“시은씨라는 분?”

“네. 기존에 영입 1순위로 꼽긴 했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할 거 같아 수익 반영에 전혀 고려되지 않던 분인데, 이렇게 영입이 되었네요. 조금 전에 자료를 받은 터라 아직 검토가 끝나지 않았지만, 시은이라는 가수 한 사람을 통해 회사가 얻게 될 수익이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하더라고요.”

추정치긴 하지만,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회사의 입장에서 그저 놀라울 뿐인 숫자가 서류에 기입되어 택윤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 정돈가요?”

“네. 계산을 해봐야겠지만, 내년 후반기까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적자폭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거 같네요.”

“흑자는 안 되나요?”

“역시 그 부분은, 다양한 수익 루트를 개척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대훈씨가 나름 열심히 노력하느라고 여기저기 다 건드리고는 있지만, 그리고 거기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있지만, 역시 대형 기획사에서 투자하는 비용만큼은 되지 않으니까요.”

“한 마디로 상대가 안 된다는 말이네요.”

“더 투자하시라는 말은 아니니까, 지금 하고 계신 생각은 일단 접어두시죠. 언제까지 단유씨의 투자금만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회사 스스로가 제대로 수익을 만들어 자립하지 않는다면 결국 망합니다. 단유씨의 돈은 그저 인공호흡기 정도에 지나지 않아요.”

“네, 알겠습니다.”

“이미 충분해요. 이제는 대훈씨와 여기 회사 직원들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린 거니까, 이제 단유씨는 충분히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 ···뭐, 이왕 지켜보는 김에 심심하면 한 자리 맡아서 일도 해 보시고.”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기록된 값은 틀렸네요. 여기 이 부분이 누락된 것 같은데요?”

“아, 그런가요?”

“이렇게 하면 마이너스 15.3%고, 최종 0.4%가 되겠네요.”

“아, 그렇군요.”

어떻게 사람 머리가 컴퓨터보다 좋냐며 택윤이 우스갯소리를 해도 단유는 서류에만 집중해서 따라 웃진 않았다.

그 뒤로도 재무 현황 상태와 예산 집행 실적들을 살피며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검토해나갔다. 총무팀에서 매주 전달하는 리포트들을 비교 분석하며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데만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단유 씨 덕분에 오늘 하루종일 봐야 할 서류를 한 시간만에 다 봤네요. 이 정도면 제대로 명함 박아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셔도···.”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 식사는 하셨어요?”

“아뇨, 아직. 그런데 지금 공 이사님이랑 식사하면 소화가 잘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섭섭한 말씀 마시죠. 우리 사이 좋잖아요?”

단유는 피식 웃으며 택윤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단유씨.”

“네?”

“이 회사, 확실히 기대가 되는 면이 있어요.”

“그래요?”

그간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던 택윤이었다.

“그냥 신생이라 그런 게 아니라, 확실히 젊고 기운이 넘치는 분위기란 게 있어요. 대표이사의 기운이 너무 센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진취적이라고 해야 하나? 뭐 아무튼 이렇게 회사 안을 돌아다니면 저도 모르게 젊은 기운을 받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괜히 공 이사님이 늙어 보이세요.”

“늙은 것 맞죠. 여기 회사에 일하는 사람 중에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까. 어쨌든 저만 그런 분위기를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 회사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괜히 기대가 되요. 사람들의 얼굴도 활기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성공에 대한 열망도 가득하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라서 더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요지는 이겁니다. 단유씨가 투자를 참 잘했다.”

“칭찬인 거죠?”

단유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그래서 조금 걱정인 것도 있습니다.”

“걱정이요?”

“네.”

띵,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 다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택윤은 다시 입을 열었다.

“늙으면 걱정이 많아진다는데, 그 때문인지 모르겠네요. 여태까지는 마치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된 육상 선수처럼 앞만 보고 달리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거든요. 갑자기 예상 못 했던 장애물이 생기거나, 혹은 가까운 곳에 있던 잠재적인 위험을 미처 감지하지 못해 큰일을 당하는 수가. 주식도 그렇잖아요? 세상 모든 일들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세계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고에도 예상치 못했던 영향을 받아 갑자기 폭락하는 수도 있고. 쓸데없는 걱정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인 겁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갓 시작한 회사에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으로 치면 아직 돌도 안 지난 신생아나 마찬가지잖아요? 옹알이나 겨우 할까 싶은 애한테, 천천히 말하라고 주문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저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란다고, 격려나 해주며 지켜보는 게 전부, 라고 택윤은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한편 연습실에서는 연습생들이 잠시 쉬는 시간, 이라는 명목으로 둘러앉아 조금 전 다녀간 시은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 정말 기절할 뻔. 얼굴 진짜 작아. 그쵸, 언니?”

“난 연습실에 들어오는 거 딱 보는 순간,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았잖아.”

“오버하지 마.”

“오버는, 너 보니까 아까 다리가 막 이렇게 흔들리던데?”

과장되게 무릎을 탈탈 터는 시늉을 해 보이자, 모인 연습생들이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제 시은 언니가 우리 회사 선배가 되는 거네요?”

“우리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바보니? 이 바닥은 무조건 데뷔 기준이야.”

“난 연기자 지망이니까 상관없어요.”

“그래서, 관심 없다고?”

“관심 없진 않죠. 무려 시은인데.”

“나중에 다 일러 줄 거다. 시은이라고 반말했다고.”

“언니!”

“걱정 마. 얘가 어떻게 시은 선배한테 말을 걸겠어? 아마 나중에 다시 만나도 쫄아서 한 마디도 못할걸?”

“흥, 내가 반드시 한 달 내로 시은 선배랑 친해지고 말거다.”

“시은 언니가 얼마나 바쁜데, 너랑 얼굴 마주할 시간이 있기나 할까?”

“우리도 나중에 데뷔하면 많이 바빠지겠죠?”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거야.”

“그렇게 되려면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지?”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트레이너의 등장에 연습생들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줄로 서서 발성 연습을 하는 와중에 아름은 수차례 트레이너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컨디션 안 좋아?”

“아니요.”

“그런데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해?”

“죄송합니다.”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왜 이렇게 붕 떠 있어? 집중 안 할래?”

트레이너의 꾸중에 연습생들은 쭈뼛거리며 사과했다. 트레이너는 한숨을 쉬며 이들을 돌아보다가 말했다.

“연예인 처음 보니?”

“시은 선배는 그냥 연예인이 아니잖아요?”

“걔가 부러워?”

“네.”

“걔처럼 성공하고 싶어?”

“네.”

“그럼 지금 이렇게 느슨하게 있으면 되겠니? 걔는 아무 노력 없이 그냥 지금의 자리에 올랐을 거 같애? 시은이도 처음에는 니들처럼 기본기를 닦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겠니? 이렇게 설렁설렁 연습하면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설령 운 좋게 위로 올라가더라도 금방 떨어지고 마는 게 이 바닥이야. 알겠어?”

부디 시은을 보며 마냥 동경만 하지 말고, 그녀의 성공을 동기 부여삼아 연습에 매진하라는 트레이너의 설명에 연습생들은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여 연습에 임하는데, 하지만 아름은 쉽게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 탓인지 평소라면 충분히 낼 수 있었던 발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 계속 좁거나 얕은 소리만 나왔다.

“죄송합니다.”

결국 아름은 또 다시 사과를 했고, 트레이너는 아름의 트레이닝을 중지시켰다.

“몸에 힘을 제대로 쓰질 못하고 있잖아? 목에만 힘주면 목만 상하는 거 모르니? 지금은 더 해봐야 소용없으니까 그만해라.”

“죄송합니다, 선생님. 물 좀 마시고 와서 다시 할게요.”

트레이너는,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 의지를 다지는 아름의 모습에 잠시 나갔다 오라며 허락했다.

복도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목을 적신 아름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 아름아.’

트레이너의 말처럼 성공을 하기 위해 온 자리였다. 누군가의 성공을 마냥 동경할 생각도, 누군가의 행운을 마냥 질투할 시간도 없다.

하지만 생각과 마음은 불협화음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하니, 귀가 아니라 마음이 어지럽고 불편하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에 아름은 창가로 향했다. 복도 끝에 있는 틸트형 창을 밀어 보지만, 공기를 쐬기가 쉽지 않았다.

잠깐 연습실 쪽을 한 번 살핀 아름은 바로 옆에 있는 비상구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연습복이 땀에 젖지 않아서 다른 사람 눈에 띄어도 부끄럽진 않을 것 같았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1층으로 내려와 로비로 나온 아름은 로비를 가로질러 회사 밖으로 잠깐 나가려는데,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단유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아름이 허리를 꾸벅 숙여 단유에게 인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