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with m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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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뭔가 아쉬운데.”
“사비가 조금 지루한 느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으니까 여기만 조금 더 손보면 좋을 거 같은데.”
“도입부가 조금 더 임팩트있게 진행되면 좋겠어.”
“이건 조금 뻔한 코드라고 해야 하나? 약간만 더 신선한 느낌이 가미된다면 듣기 좋을 거야.”
지난 2주간 지아가 창모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익숙하지 않은 가요의 창작을 처음부터 잘할 수 없을 거라고 예측하긴 했지만, 그래도 매번 마이너스라고 지적받을 때마다 점점 더 자신감이 떨어졌다. 애초에 떨어질 자신감 따위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지난 오디션을 기점으로 소폭 상승했던 자신감은 이후로 점점 바닥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예전처럼 크게 낙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괜찮아.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
창모의 칭찬은 지아를 포기하지 않게끔 도왔다. 실제로 나아지고 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실제 작곡가인 창모가 나아지고 있다니 그의 말을 믿을 뿐이다.
비록 임시라지만, 어렵게 들어와 꿰찬 작곡팀 막내 자리였다. 친구들은 축하해주었지만, 지아 본인도 지금의 자리가 자신에게 버거운 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긴 안 그런 자리가 있을까마는.’
그렇기에 지아는 최선을 다하려 했다. 일전에 대훈이 말했던 것처럼 정직원으로 오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 당장은 자신 없다. 그러나 오르지 못한다 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그것을 체화시킨다면, 자신에겐 미래를 향한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니까.
이미 반쯤 열려 있는 문이다. 열린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에 눈이 멀 정도다. 눈이 멀어도 좋으니 꼭 저 빛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문이 다 안 열려도 억지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건너편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최선을 다해 배우고 익힌다. 그것이 지금 지아의 다짐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지아처럼 열린 문틈으로 쏘아지는 빛에 홀려 건너편을 노리는 또 한 사람, 아름은 솔직히 마음이 심난했다.
앞에서는 친구를 격려하고 결과에 대해 축하해주었지만, 사람인지라 그녀가 얻은 운 좋은 기회와 그녀에게 주어진 보상에 대해 질투가 났다.
‘누군 죽을 힘을 다해서 얻은 기회를, 누구는 저리 쉽게 얻는단 말이야?’
수십 대 일, 혹은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지금 이렇게 거울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자신과 별 수고 없이 회사 고위직과의 만남을 계기로 기회를 얻는 친구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럴 때마다 모두의 박수 속에 지금 지아가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를 자신이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역시 그녀처럼 피아노를 전공했고, 솔직히 그녀가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작곡 능력을 자신도 가지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비록 노래에 자신이 없어 가수 쪽으로 지망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지아 정도의 실력으로 작곡 팀에 임시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면, 자신 역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아름의 발목을 붙잡으니 연습을 하다가도 계속 멈칫거리도록 만든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같이 연습하며 친해진 동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냐, 그냥 조금···생각할 게 있어서.”
“혹시 몸이 안 좋으면 조금 쉬어요.”
“안 되지. 조금 있다가 선생님들 오실 텐데.”
아름은 애써 웃으며 손뼉을 쳤다.
“자, 힘내자. 파이팅!”
하지만 한 시간 후, 집중 못하겠냐며 혼이 난 아름은 다른 동생들 앞에 얼굴을 보이기가 부끄러워 몰래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닦아야 했다.
창피하고 억울했다. 그런 와중에도 차마 다른 누군가 알까봐 입을 틀어막고 억지로 눈물을 참아본다. 얼굴이 붉어진 아름이 거울 앞에 서서 휴지로 눈가를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 들어왔다. 그리고 우연히 거울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낯이 익은 누군가의 모습, 이라고만 생각하며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아름은 곧 그녀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어!”
상대는 아름의 바로 옆으로 다가와 거울을 바라보며 메이크업 상태를 살폈다.
“연습생?”
시선을 거울에 둔 채로 묻는 물음에 아름은 그게 자신을 향한 질문인지 잠깐 헷갈렸다.
“네? 네.”
“많이 힘들어요?”
“아, 아뇨. 그냥···.”
아마 아름이 울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인데, 사실 상대의 정체에 놀란 나머지 아름은 창피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여기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아, 안녕하세요.”
뒤늦은 아름의 인사에 그제야 아름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TV 속에서나 보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저 팬이에요.”
“정말요? 고마워요.”
“진짜 언니 노래 많이 듣거든요.”
“고마워요. 계속 잘 부탁드려요. 이제 한 식구니까.”
아름은 감동과 놀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은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듯 얼떨떨해하는 아름의 반응이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메이크업 점검을 끝내고 손까지 씻은 뒤, 가볍게 인사를 건넨 후―그때에도 여전히 아름은 당황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시은은 휴지를 떼어다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말없이 눈을 한 번 가리켰다. 잘 알아들었겠지, 생각하며 화장실을 나온 시은은 기다리고 있던 매니저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괜찮아?”
시은과 함께 이 회사로 함께 넘어오게 된 매니저는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물었다.
“괜찮네요. 화장실도 깨끗하고. 건물을 아예 새로 지은 탓이겠지만.”
손에 남은 물기를 닦아내려 손을 비비던 시은은 엘리베이터에 붙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다시 또 한번 살피며 대답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매니저의 모습에 시은은 피식 웃었다.
“언니도 핸드폰은 그만 보고 제대로 살펴요. 앞으로 또 한동안은 이 회사에서 함께 하게 될 건데, 자신이 어떤 회사에서 생활하게 될 건지 확인해야 하지 않아요?”
“확인은 무슨. 이미 계약까지 끝낸 마당에. 그리고 건물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특별할 게 있다고. 어느 회사처럼 사무실마다 천장에서 산소가 쏟아져 나오거나 하는 그런 특이한 거 아니고서야, 다 똑같지. 네가 유난스러운 거야. 무슨 화장실을 보고 회사를 판단해?”
“그 집 화장실을 보면 집주인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어요.”
“다 돈 주고 사람 써서 청소하는데 성격은 무슨. 혹시 화장실 바닥에 금이라도 둘렀다면 모를까.”
“어휴, 속물.”
“원래 매니저는 타산적이고 속물이어야 하는 법이야.”
때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이쪽.”
이미 한 번 회사에 와본 적이 있던 매니저의 안내로 시은이 그 뒤를 따랐다. 또각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가 그녀의 존재감을 주변에 알렸다.
파티션 안 쪽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미어캣이 되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지만, 이 역시 익숙한 시은은 당황하지 않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아까 연습생을 대했을 때처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걸음을 계속 이어나갔다.
“어서 오세요, 시은 씨. 우리 회사는 처음이죠?”
“네. 근데 회사가 깨끗하고 좋네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오시기 전에 대청소를 시켰거든요.”
“정말요?”
“농담입니다. 하하.”
“대표님이 부장님 개그를 하시니까 어색하네요.”
“그런가요? 제가 여기 대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매니저 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자리라고 자신을 낮추는 대훈의 말에 시은은 달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대표가 대표다워야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대훈에게는 지금과 같이 격의 없이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어울리기도 했다. 그런 점이 시은의 이적 결정에 점수를 보태기도 했고.
“사실 좀 더 일찍 시은 씨를 불러 회사 안내를 했어야 했는데, 워낙 갑자기 일이 터져서 이제야 겨우 틈을 내게 되었네요.”
“그게 어디 대표님 때문인가요? 저희 유능한 매니저 언니가 워낙 부지런해서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빽빽하게 일을 잡는 바람에 그런 거죠.”
“해외 촬영은 완전히 끝이 난 거죠?”
“네. 오늘 귀국해서 바로 여기로 왔어요.”
“이런, 그럼 많이 피곤하시겠네요. 제가 몸보신 차원에서 괜찮은 장어요리를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조금 있다가 같이 가실래요?”
“괜찮아요, 이 정도는. 저희 유능한 매니저 언니가 늘 제 건강 관리를 알차게 해주어서 피곤한 줄을 모른답니다.”
“거 참, 듣는 매니저 부끄럽게 만드네요, 우리 시은이가. 죄송해요, 대표님.”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가 좋아 보여서 보기 좋네요. 시은씨도 시은씨지만, 저는 장실장님이 저희 회사로 옮기기로 결정한 것도 정말 반갑거든요. 제가 예전에 장실장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기회만 닿는다면 꼭 함께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저도 대표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성실하시고 능력 좋으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갑자기 회사를 나가서 개인 회사를 차린다고 해서 조금 놀라기도 했었거든요? 이렇게 보니 이제는 정말 어엿한 대표님 같으세요.”
“칭찬이죠?”
“물론입니다.”
여자지만, 거의 대장부급의 다부진 모습을 보이는 매니저였다. 대훈은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로 화제를 돌렸다.
“뭐, 일단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우선 급한 일부터 해결하죠.”
“녹음 말이죠?”
“네. 들으셨겠지만, 태원씨가 시은 씨에 맞춘 편곡을 마무리했다고 연락이 왔거든요. 많이 피곤하신 건 알겠지만, 그쪽도 일정이 타이트해서요.”
“저도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는 걸요. 게다가 기대도 많이 되는 곡이기도 하고.”
“잘 됐습니다. 정말 분 단위로 바쁜 분이라 이야기를 오래 끌지도 못하겠네요. 우선 오늘은 간단하게 함께 일하실 분들과 간단하게 인사만 나누고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장어집 이야기는 농담 아니고 진짜니까, 녹음 가시기 전에 제가 사도록 할게요. 장어 못 드시진 않죠?”
“없어서 못 먹죠.”
시은의 대답에 잘 됐다며, 대훈은 웃음을 터뜨린 후 두 사람을 데리고 대표실을 나왔다.
“회사가 참 깨끗하고 보기 좋아요.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쓰신 거 같네요.”
“원래 일터의 분위기가 좋아야 일할 맛이 나지 않겠어요? 비록 저희가 영세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회사 분위기만큼은 대형 기획사 못지않게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말이죠.”
“그렇네요, 확실히.”
“회사 직원들을 위한 편의 공간도 계속 확충하고 있으니까, 시은 씨도 나중에 이용해보도록 하세요. 나쁘진 않을 겁니다.”
“기대할게요.”
“아무튼, 그건 나중에 둘러보시도록 하고, 우선 여기 지원팀 먼저.”
시은이 대훈의 안내에 따라 회사를 돌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단유는 뒤늦게 회사로 출근하고 있었다.
“오셨어요, 이사님?”
이제 1층 로비 데스크에서 단유를 보면 저절로 저런 인사를 건네온다. 이제는 진짜 이사가 된 기분도 드는 단유였다.
윗층으로 올라가니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분위기였는데 달리 물어볼 이가 없어 단유는 곧장 택윤에게로 향했다.
“왔어요?”
“네. 근데 오늘 무슨 일 있어요, 회사에?”
“아, 못 보셨어요? 오늘 시은 씨가 회사에 왔거든요.”
“시은 씨? 아, 그 OST요?”
“네. 지금 회사 직원들이랑 인사한다고 돌고 있던데, 한 번 가보실래요?”
“제가요? 왜요?”
“당연히 이 회사의 이사로서···는 아닌가? 아무튼 온 김에 유명 연예인 얼굴 한 번 보는 거죠.”
“그런 쪽으로 관심 없는 거 아시면서.”
“역시 그런가요?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였습니다.”
“뭐, 나중에 우연히 마주치면 그때나 인사하도록 할게요. 지금 일부러 찾아가서 인사 나누는 것도 어색한 일일 거 같으니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체면 때문에 먼저 가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단유니까 그런 오해는 사지 않을 것이다. 택윤은 그렇게 이해하며 단유와 마주 앉았다.
“그럼 이제 다시 프로그램을 재개하는 겁니까?”
마냥 이득만 볼 것 같던 단유의 투자 프로그램도 시장 전체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불가피하게 손해를 입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투자 정보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 지속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갱신해줘야 하는데, 최근 다른 여러가지 일로 바빠지면서 그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탓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는 크게 부각 되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며칠 전, 갑자기 큰 폭으로 주식이 떨어지면서 손해를 입게 되어 부랴부랴 프로그램을 손보게 되었고, 그 작업 때문에 오전 내내 거기에 매달렸던 단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