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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828화 (828/956)

Stay with m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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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습실로 들어온 지아에게 심사위원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너무 기가 죽어 있네요.”

“자신감이 부족하네요.”

“조금 더 적극적이면 좋겠습니다.”

덧붙인 살을 빼면 거의 같은 이야기였다. 오죽하면 연습실 뒤에 걸린 거울로 비쳐진 지아의 뒷모습마처 처량해 보인다는 말이 나올까? 물론 그것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만약 여기서 카메라 테스트까지 했다면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심사위원들 사이에 오고 갔다.

다른 심사위원들의 간략한 평이 이어진 뒤에 대훈이 입을 열었다.

“비단 여기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지아씨. 어딜 가더라도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거예요.”

아래로 푹 꺼진 지아의 어깨를 보며 작곡팀의 창모가 말을 보탰다.

“당신의 연주 실력에 대해선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없어요. 우리가 그쪽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니까. 그나마 전공이 전공인지라 저는 지아씨의 실력이 썩 나쁘지 않다는 정도로 평가하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지아씨가 보여준 실력의 우열을 평가하지 못합니다. 애초에 그게 평가의 대상도 아니었지만요.”

그렇다고 아주 실력이 형편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전공자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면, 이미 그 전에 연주를 멈추게 했을 테니까. 단지 전공자의 연주 실력을 특정 기준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다만 그래도 이쪽 계통에서 귀를 열고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인지, 우리는 당신이 완전히 마음을 닫은 채로 연주하는 것임은 알 수 있었어요. 우리가 놀랐던 것은 당신이 연주한 곡 그 자체였지, 당신의 연주가 뛰어나서는 아니었습니다.”

창모의 설명에 지아는 질끈 눈을 감았다. 결국, 또 같은 말을 들었다. 지난번 세션 알바 때도 태원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맥이 같은 평가였다. 건조하기만한 연주.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연주라는 평은 연주자에게 가장 최악인 평가가 아닐까?

‘과연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걸까? 전공 평가 때도 평가를 좋게 받지 못했던 이유가···.’

어쩌면 자신의 연주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주가 나쁘지는 않지만, 다시 듣고 싶어지지 않는 연주. 만약 이런 실력으로 우연히 악단에라도 들어간다면 그 악단은 망할지도 모르겠다. 연주회 참석 인원이 점차 줄 테니까. 그러니 교수님도 감히 추천해주겠다는 말을 못할 테다. 낙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천도 못 할 학생인 것이다. 교수님 아래 스쳐 지나간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 같은 것일 테다. 엑스트라A.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한 존재감 없는 학생.

눈앞에 놓여있는 건반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차라리 비난을 하면 좋을 테다. 친절한 목소리로 이토록 냉정한 평가를 듣는 건 두려워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고 괴로웠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대훈의 질문이 훅 들어왔다. 잘 못 들었다고 죄송하다고 더듬거리며 말하니, 대훈이 웃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아씨는 어떤 마음으로 연주하나요?”

‘어떤 마음일까?’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지아에게 대훈이 말했다.

“사실 이 자리가 오디션의 형식을 갖추긴 했지만, 실제 오디션은 아니죠. 더구나 지아씨도 딱히 저희 회사를 지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일까요? 저희는 지아씨에게서 어떤 간절함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대훈의 지적 또한 옳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연주 이후에 나올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며 연주했을 뿐이니까.

“피아노는 잘 모르지만, 비슷한 예를 들어볼 수는 있겠네요. 가끔 연습생들, 혹은 이미 데뷔한 친구들 중에도 지아씨와 비슷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거든요. 기계적으로 연기하는 친구, 또는 연습 때 배운 기교만 충실히 재현해내려 노래하는 친구들이 조금 전 지아씨의 경우와 비슷해요. 그리고 그들이 지적받는 경우가 거의 대동소이하죠. 감정이 없다, 무미건조하다, 감동이 없다 같은 반응들이 나오니까요.”

마치 아침에 들른 빵집 사장님이 갓 나온 빵을 추천하는 듯한 대훈의 목소리였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차갑고 날카로워 가슴은 더욱 조여들었다.

“왜 그럴까요? 답은 뻔해요. 마음가짐이죠. 혹자는 그 부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도 해요. 연기야 감정을 표출하는 행위니 그렇다 쳐도 노래에 감정을 싣는다는 게 객관적으로 느껴지냐고.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어요. 그 부분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듣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요. 아무튼, 제 말의 요지는 그거예요. 마음을 담으라는 거. 쉬운 답이죠? 그런데 이 쉬운 걸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왜일까요?”

그 점이 지아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했다.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가끔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아주 미숙한 사람들. 또 때로는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절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상대가 쉽게 느낄 정도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무슨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더라고요.”

대훈은 심리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아마 지금의 상황에서 더 위로 오르긴 힘들 거라고 충고했다. 더 많은 충고와 조언이 이어지는 것 같지만, 지아는 계속 집중력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난 안돼.’

대충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마무리를 짓기 위해 대훈이 단유를 돌아보며 소리 없이 물었다.

“됐죠?”

단유는 대답 대신 지아를 돌아보며 그녀를 불렀다.

“지아씨?”

“···네?”

갑작스런 부름에 놀란 눈을 하고 단유를 바라보는데, 그 순간 눈에 맺혀있던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만족해요?”

“네?”

단유의 물음이 무슨 뜻인지 곧장 이해하지 못한 지아가 되물었다.

“본인의 연주에 만족하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아니요.”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고, 다시 단유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걸 무대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 자리는 말했다시피 지아씨가 과연 본인이 느낀 것처럼 평범한 사람인지, 아니면 제가 본 것처럼 평범하지 않은 사람인지를 알려주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사위원님들께 되묻고 싶네요. 지아씨는 평범한 사람인가요?”

과연 저 사람이 평범한가, 라는 단순한 질문에 심사위원들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

“팀장님 어떻게 됐어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대훈은 지원팀장을 불러 상황을 물었다.

“일단 좋은 소식은 아직 보컬이 정해지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요?”

“일단 보컬을 제외한 믹싱이 거의 다 된 모양입니다만, 태원씨가 마음에 드는 보컬을 정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왜요? 어지간해선 부르면 누구라도 다 올 텐데?”

“그게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번 곡이 드라마 OST라서 그런지, 드라마 제작을 맡은 쪽과 약간 실랑이 같은 게 있었나 보더라고요.”

말하자면 드라마 제작을 맡은 쪽에서 미는 가수가 있는데, 원작자인 태원이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요? 그럼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진 않은 거군요? 양쪽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말이죠.”

“그게 말입니다···.”

지원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나쁜 소식이 하나 있는데요.”

“뭔데요?”

“저희가 이걸 알아보는 과정에서 태원씨가 언짢았던 모양입니다.”

의도와 상관없이 곡이 외부로 유출된 상황이니 정중하게 표현해서 언짢은 것이었고, 실제로는 뭔갈 집어던질 정도로 불쾌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대훈에게 거기까지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대훈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그런가요.”

대훈은 소파에 등을 묻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일이 술술 풀리면야 좋겠지만,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 나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걸 두고 억지를 쓸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두고 볼 일도 아니었다. 조금 전 2층 연습실에서도 설교하듯 뱉은 말이지만, 기회란 건 그냥 가만히 오기만을 기다려선 안 된다. 부지런히 쫓아가서 꼬리라도 붙잡고 최선을 다해 어필 해야 한다. 기회의 주인이 다름 아닌 나라고.

“말이 나온 김에 가봅시다.”

직접 간다는 말에 지원팀장은 역시나, 라는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젊고 정열적인 신생회사의 대표는 언제나 적극적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발로 뛰던 매니저였음을 잊지 않겠다는 듯이. 그동안 이바닥에서 여러 사람을 상대하며 쌓은 노하우가 절대 허투루 얻은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이.

“무턱대고 찾아가기보다는 조금 더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게 어떨까요?”

“아이디어라도 있으세요?”

“대표님 올라오실 때까지 고민을 해봤는데, 이왕 찾아가는 거 시은씨도 함께 데리고 가는 게 어떨까 해서요.”

“계약이 완전히 된 것도 아닌데요?”

“이번에 두 가지를 모두 잡아보는 거죠. 두 마리 토끼는 잡는 게 아니라지만, 능력만 된다면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를 잡아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런 능력이 됩니까?”

“대표님은 가능하시지 않을까요?”

“팀장님이 절 너무 추켜세우시네요. 그런데 좋은 생각인 것도 같습니다. 원래 작곡자에게 찾아갈 땐 가수도 함께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는 법이죠. 예비긴 하지만 이럴 때 눈도장 찍고 곡을 얻으면 시은씨도 좋은 일일 테니까. 전화 해보셨어요?”

“대표님 허락을 받아야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지금 하세요.”

“네.”

****

“수고하셨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잠시 자리를 내줬던 연습생들이 돌아와 연습실의 정리를 하는 사이, 아름은 두 친구와 인사를 나눴다.

“수고했어.”

아름이 지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지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에서 뭔가를 내뱉는 순간, 참아왔던 것들이 폭발할 것 같았고, 그 모습을 차마 더는 친구들 앞에서 보이기가 싫었다. 이미 추한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여줬으니까.

연습실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모르는 아름과 친구는 그저 힘들었겠거니 생각하며 그녀를 위로해줄 뿐이었지만, 지아는 위로 정도로 도움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친구의 모습에 차마 결과가 궁금함에도 물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지아를 둘러 싸고 있을 때였다.

“지아씨.”

심사를 맡았던 이들과 함께 사라졌던 창모가 돌아와 지아를 불렀다.

“네, 네.”

창모는 옆에 선 두 사람을 잠시 살핀 후 용건을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 괜찮죠?”

“네.”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두 친구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방금 스케줄 표 확인하니까, 오전 11시부터면 될 거 같아요. 우선 그때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아직 인사는 이른 거 같고, 아무튼 그날 다시 만나서 이야길 나눠요.”

“알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두 친구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던져놓고 사라지는 창모를 계속 지켜보다가 아름이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뭔데? 뭔데?”

지아는 가슴께에 얹은 주먹을 꽉 쥐고 가슴이 진정되길 빌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몇십 분 전.

단유가 지아에 대해 평범한지를 심사위원들에게 묻고, 심사위원들이 쉽게 말을 열지 못할 때, 단유는 다시 지아를 바라보았다. 다시 시선이 돌아오자 지아는 발끝을 잔뜩 오므리며 긴장했다.

“지아씨는, 여기 들어온 후로 자신에 대한 소개를 제대로 한 적이 없잖아요? 한번 해 보실래요?”

지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르며, 그 열기 때문에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가 되어버렸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질 정도.

“순서가 뒤죽박죽이지만, 한번 소개해 보실래요?”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듯한 지아가 당황으로 우물쭈물했고, 심사위원들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저 자신감 부족의 여자 아이가 과연 어떻게 자신을 소개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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