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27화 (827/956)

Stay with 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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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전에 연주했던 클래식 곡과는 다른 분위기의 곡이라는 것은 알겠다. 가요, 라고 확언할 수 있는 곡은 아니지만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연주곡, 정도로 이해하는 대훈과 달리 작곡가 팀에서 차출되어 자리한 임시 심사위원은 흠칫 놀라며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현재 나와 있는 모든 가요를 섭렵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러나 아주 세련된 형식을 따르는 분위기 있는 음악이란 생각이 들었다.

‘설마 자작곡은 아니겠지?’

기대 없이 찾아와 자리하고 있다가 이렇게 망치로 두드려 맞는 기분을 느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편, 1분여 정도 연주가 이어질 때, 대훈이 손을 들고 지아를 불렀다.

“저기요?”

작곡가 소속의 심사위원은 연주가 멈추고 마지막 코드의 잔향이 옅어지자 하마터면 벌떡 일어나 연주를 계속하라고 소리칠 뻔했다.

“혹시 노래는 없나요?”

“···어, 예. 그냥 이것만 연주할 줄 알아서요.”

“자작곡인가요?”

“아니요.”

지아의 대답에 놀란 눈으로 입을 여는 작곡가의 질문.

“그럼 누구 곡이죠?”

“어, 그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 때문에 지아는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손에 익은 곡이 이거 뿐이라···.”

“그래서 누구 곡입니까?”

지아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다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이 있고서야 작곡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럼 그렇지, 라는 반응을 보였고 의아해하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감상과 곡을 작곡했다는 태원에 대해 설명했다.

“태원 씨야 잘 알죠.”

대훈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심사위원들이 보이는 뜻밖의 리액션에 놀란 주아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지켜만 보는데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그 소리가 앞에 앉은 이들에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지아씨.”

“네.”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이니까 묻는 건데, 혹시 그 곡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잘 모르는데요?”

한순간에 오디션장이 취조실이 된 듯한 분위기를 느끼며 잔뜩 위축된 지아의 목소리가 가늘게 흘러나왔다. 대훈은 오해하지 말라고 다독이며 할 수 있는 한 가장 포근한 목소리로 지아를 채근했다.

“그냥 그 곡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뭐 그런 내용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지아는 용돈을 벌기 위해 참여한 세션 아르바이트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자신은 절대 그 곡을 개인적으로 이용하려 했다거나 속이려는 생각이 없었음을 강조했다.

“저희끼리 잠시만 이야기 좀 할게요.”

그제야 겨우 어색한 자리에서 달아날 수 있게 된 지아는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인 후, 얼른 연습실을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지아를 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지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만 흔들었다.

그리고 지아가 나간 사이, 연습실 안에서 대훈이 심중에 품었던 말을 꺼냈다.

“창모 씨, 그 곡 괜찮은 거 맞죠?”

“들으셨잖아요? 저 아니라도 다들 노래가 굉장했다고 느끼신 거 같은데.”

“대박 조짐이 나는 곡인거 같다는 거죠?”

“그거까지야···. 대중의 반응이 어떨지는 나와보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멜로디만 따서 들은 건데도 괜찮다고 느낄 정도라면, 분명 풀 밴드로 연주했을 때 명곡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기대되는 곡임은 분명합니다.”

본명보다 예명으로 더 유명한 창모는 나름 이 바닥에서 유명한 작곡가였다. 센스가 발군이라 소문난 그는 비록 대표작이라 할 만한 곡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아직 기회를 잡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가 좋은 기회를 얻는다면, 혹은 자신에게 딱 맞는 가창자를 찾아 곡을 완성한다면 분명 성공할 작곡자라고 입을 모을 정도였다.

그런 이를 신생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전속 계약까지 이끌어 내며 얻은 것은 순전히 대훈의 역량이라 할 수 있고, 창모의 도전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동료와 주변으로부터 고평가를 받는 창모가 감탄할 정도의 수작이라면 높은 확률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곡이리라, 대훈은 판단했다. 정상적인 루트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제작 중인 곡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것은 이 또한 기회라 아니 할 수 없으니, 대훈은 반드시 이 기회를 잡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혹시 개인적인 연락이 가능한가요?”

“태원 형님이랑요? 아뇨, 그건 좀. 건너건너 연락이 가능할지는 알아봐야겠지만, 직통은 좀 어려운데요.”

“그건 좀 아쉽네요. 건너건너 연락하는 거라면 저도 어렵진 않으니까요. 아무튼 말이죠···, 이 곡, 우리가 참여할 수 있다면 굉장한 기회가 되겠죠?”

“근데 저희가 낄 가능성이 있나요?”

“그건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까, 뭐라도 해보자는 거예요.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그런데 대표님, 우리 애들이 아직 그 정도 실력은 안 될 텐데.”

“아, 그건요.”

대훈이 히죽 웃었다.

지원팀장이 대훈의 연락을 받고 오디션장으로 쓰는 연습실로 달려왔다. 연습실 앞 장의자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토닥이고 있는 아름 등을 힐끗 보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이번에 영입하기로 한 시은씨한테 선물을 줄 수도 있을 거 같아서요.”

“시은이요?”

놀란 건 비단 지원팀장 뿐만이 아니었다. 여태 시은을 영입하려 한다는 걸 몰랐던 창모를 비롯한 심사위원들 모두가 놀란 얼굴이 되어 대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됐습니다.”

현재 가요계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이돌 판이라, 대형 솔로 가수가 나오기 힘들고 나온다 한들 성공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특히나 여성 솔로 가수는 더더욱 보기 힘들었고. 그런 와중에도 대중의 지지를 얻으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몇몇이 아예 없지는 않으니, 시은은 그중의 한 명이었다.

“스웰링 엔터의 시은이요?”

“네.”

“걔가 우리 회사로 와요?”

“최종 계약을 조율 중이긴 한데 거의 확실하죠? 팀장님?”

“네. 아마도요. 이미 가장 힘든 수익 정산 비율은 조정이 끝났으니까 나머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래. 걔가 왜 우리 회사로 와요?”

절대 회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공감했다. 시은이 현 소속사를 떠난다는 사실도 여태 몰랐지만, 설령 떠난다 해도 굳이 옮긴다면 대형 기획사나 명성 있는 중대형급 기획사로 가는 게 정상적이라고 보지, 생긴 지 1년도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소속 연예인 하나 없는, 이런 신생 기획사로 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고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제가 능력이 좋아 그렇습니다.”

대훈은 자화자찬으로 사람들의 추측을 잠재우고, 다시 원래의 화제로 돌아갔다.

“우선 태원씨한테 연락해서 보컬이 정해졌는지를 먼저 물어봐야겠네요. 만약 운이 좋아서 우리 쪽 보컬을 쓸 수 있게 허락을 받는다면, 당연히 시은 씨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테고, 회사 입장에서도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꼴이 되겠죠?”

대훈의 말에 팀장은 올 때만큼이나 빠르게 연습실을 나갔다. 이제는 말 그대로 시간 싸움이 될 테니까.

“그럼, 다시 아까 그분을 모셔 볼까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건 아닌가 모르겠네.”

좋은 소식을 물고 온 까치 같은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 때다.

****

그런 회사의 사정은 모른 채, 바깥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지아의 속마음은 변장한 지명수배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자고.’

손에 익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직 발표도 되지 않은 타인의 저작물을 함부로 연주했다. 그것도 타 기획사의 요직들 앞에서.

게다가 그 연주곡 세션으로 참여했을 당시 원작자인 태원이 자신에게 했던 신랄한 비평을 잊었던가?

‘앞으로도 그렇게 연주하면 세션으로도 쓰기 힘들 거야.’

그런 소리를 들은 주제에 잘도 연주했다. 이건 부주의를 넘어 무신경 그 자체라 탓해도 할 말이 없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발을 들인 마당에 가장 신랄한 비평을 받았던 연주를 재현하는 멍청이가 또 어디 있을까?

‘손에 익었다고?’

다시 생각하면 그야말로 멍청한 핑계다.

‘결국 또 이런 식이야.’

뭘 해도 안 되는 녀석은 단지 운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자신에게 있는데 누굴 탓할까? 이런 식이니 자신을 몰라준다고 사회를 욕하지도 못하고, 매일 잔소리만 하는 어머니를 탓하지도 못하고, 재능 많은 친구를 질투할 수도 없다. 그냥 스스로가 안 되는 것이다.

귀를 닫고 눈을 감은 채 떨고 있는 지아의 속마음을 모른 채, 곁에 앉은 두 친구가 열심히 토닥여 주던 그때, 연습실에서 단유가 나왔다.

“들어오세요.”

단유의 목소리에도 지아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단유가 시선을 비껴 옮기니 눈빛으로 지목받은 아름이 흠칫하다 이내 무언의 질문에 답했다.

“지아가 많이 힘들어해서요.”

“왜요?”

단유도 지켜보았지만, 지아는 그저 연습실에서 건반만 쳤고 대답만 했다. 딱히 험상궂은 분위기가 연출되지도 않았고,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상황에서도 윽박지르거나 강압적인 질문은 전혀 없었기에 지아가 힘들어할 만한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아무 말 않고 있는 지아였기에 옆에 앉은 두 사람도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들어오기 힘든가요?”

어떡하지, 란 표정으로 지아에게 괜찮냐 물어보는 친구의 질문에 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오죽 답답해 보여 결국 단유가 지아 앞에 섰다.

“지아씨.”

지아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니, 단유는 대충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무엇이 두려운 거죠? 아직 저분들은 당신에게 한 마디의 평가도 하지 않았는데. 평가를 받기가 두려운가요?”

“···제가 실수를 했어요.”

“어떤 실수요?”

“아까 그건 연주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제멋대로 하는 바람에···.”

“실수는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게, 제가 멋대로 연주해버리는 바람에 원작자분께 피해를 끼친 것인지도 모르고···.”

“그 문제는 해당 원작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겠지만, 안의 분위기를 봐선 당장 문제가 될 것 같진 않네요. 하지만 그쪽으로는 제가 잘 모르니까 나중에 그분을 뵈면 제대로 사과하시면 될 거예요. 오늘 저한테 와서 한 것처럼요.”

“전 안 될 거예요.”

“되는지 안 되는지, 타인의 시선에서 평가받고자 시작한 자리 아닌가요? 그렇다면 지금은 안에 계신 분들이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지 귀를 기울여야 할 때지, 혼자 망상에 빠져 두려워할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만약에 다들 저를 비난한다면요?”

“다들, 이라고 해봐야 겨우 다섯 사람입니다. 이 나라에만 수천 만의 사람이 있고, 이 세계에는 수십 억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당신을 비난할 일은 없어요. 고작해야 다섯입니다. 그 다섯이 당신을 비난한다고 당신이 두려워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이 당신을 싫어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 말이 있죠? 오히려 무관심이 무섭다고. 당신은 당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고 토로했어요. 그리고 전 당신에게 재능이란 게 과연 없는 것인지, 그걸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자 한 거고요. 지금 저 안에는 당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을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겁니다. 정체도 불분명한 망상 속에서 두려워하며 피하지 말아야 하는 때라는 겁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지아를 보며 다시 단유가 입을 열었다.

“같이 들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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