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26화 (826/956)

Delight(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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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요?”

무슨 평범함을 이야기하는데 대한민국이 나오고 동시대의 무슨 무슨이라니.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회사가 어떤 회사라고 생각합니까?”

“네? 그야···.”

“친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회사가 어떤 회사라고 생각합니까?”

설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던 친구는,

“연예인 기획사 아닌가요?”

라고 대답했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공표된 명칭으로는 엔터테인먼트사, 라고 합니다만 의미는 같을 겁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현재 육성되는 연습생들은 여러분들 눈엔 특별한 사람입니까, 평범한 사람입니까?”

“당연히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 아닌가요? 오디션까지 거쳐서 뽑으셨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그들은 평범하지 않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계라는 특수한 범주 내에서 그들을 평가한다면 과연 그들이 특별할까요?”

“그건···아니겠죠.”

당장 생각나는 탑 급의 연예인들과 비교하면 연습생이란 평범함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 하겠다.

그런데 단유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일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 사람들은 오디션을 거쳤고, 오디션에서 뽑는 기준은 단지 현재의 실력만을 두고 뽑는 게 아닙니다. 장래성을 보고 뽑는 것이죠. 그들이 장래에 어떤 특별한 재능을 뽐내며 연예계에서 활약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니, 그들을 특별하다거나 혹은 평범하다거나 평가할 순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아씨는 물론이고 옆에 계신 친구 분도, 절대 평범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게 지금 저의 생각입니다. 당장 지금 시점에서도 평범한 축에 속하지 않은 두 사람인데, 과연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단유의 말을 들으니 뭔가 스스로가 다르게 느껴졌다.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의 정체를 명확히 뭐라고 설명할 순 없었지만, 지아는 그것을 오랫동안 찾고 있었다는 막연한 설렘을 느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로 평범해질 수도 있겠죠. 특별하다 생각했던 재능도 특별하다 여기지 않으면, 또 그 재능을 계속 살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평범하게 되는 수가 있겠죠.”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슬퍼지는 이야기였다. 지아와 그녀의 친구가 입을 틀어막고 있을 때, 단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과연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보죠.”

“네? 뭘요?”

“두 사람, 과연 평범한지 그렇지 않은지요.”

“어떻게요?”

글쎄. 사실 단유로서도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이 회사에는 이런 사람들의 재능을 찾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문을 열고 나온 단유는 휴게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일단의 무리를 보며 살짝 눈을 찡그렸다. 다들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눈치인데, 동물원을 탈출한 희귀동물을 보는 눈들이다.

“왜들 그러세요?”

단유의 물음에 딴청을 피우는 척 하던 중에 무리 가운데 있던 대훈이 나서서 손을 번쩍 들었다.

“김이사 왔었네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어, 근데 뒤에 분들은 누구신지?”

단유는 뒤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는 두 사람을 슬쩍 본 후 대훈에게 소개했다.

“우연히 알게 된 이들인데, 저기 아름 씨의 대학 동기라고 합니다.”

“대학 동기?”

대훈이 뒤를 돌아보니, 얼마나 놀랐는지 평소에도 크다고 생각했던 아름의 눈이 거의 2배 이상 커져 있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이전에 의도치 않게 부딪혔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일을 사과하기 위해서 왔다는군요.”

“아, 그런···그렇군요.”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지만, 몰래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라, 대훈은 물론이고 모여있던 직원들의 들떴던 호기심이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점심 시간 끝났지?”

“끝났네.”

“원래 기대하고 들어간 식당이 별 볼 일 없는 법이죠.”

“이 주변에 괜찮은 식당 없나?”

“다 거기서 거긴데 비교는 무슨.”

궁시렁대며 휴게실을 빠져나가는 직원들은 단유를 지나치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 뒤에 선 두 여인을 흘깃 쳐다보고는 각자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빈 사무실에 오락실이라도 차려야 할까봐.”

“네?”

“아니에요.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아무튼, 그래서 이야기는 잘 끝났어요?”

“아, 그런데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이라고요?”

좀처럼 부탁이라는 걸 하지 않던 이가 돌연 ‘부탁’을 한다고 하니, 그게 ‘부탁’인지 ‘청탁’인지 먼저 궁금해졌다.

****

결론적으로는 청탁성 부탁이었다.

“오디션을 봐달란 이야기인가요?”

“오디션은 아니고요, 단지 이 두 사람이 재능이란 게 있는지 없는지를 봐달란 이야기였습니다.”

대훈은 단유를 끌고 휴게실 안쪽으로 이동했다.

“저 두 사람, 연예인 지망생 들인가요?”

“아뇨,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그런데 무슨 재능을 확인해달란 말씀이죠?”

단유는 조금 전 회의실에서 나눴던 대화를 간추려서 설명하며 저 두 사람이 과연 평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표님이나 여기 트레이너님들은 보는 눈들이 있으시잖아요?”

“말이 안 되는 게, 저희는 연예인 지망생을 뽑는데 전문인 사람이지, 무슨 영재개발단의 박사 같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상관없지 않을까요? 만약 저 사람들이 학문적으로 두드러지는 재능을 가진 이였다면 굳이 대표님께 부탁하지 않고 제가 직접 테스트를 해봤을 겁니다. 하지만 피아노라는 분야를 전공했다하니 그런 예체능 분야에 대해서는 저보단 잘 아실 거 아닌가요?”

“그런 건 저기 무슨 피아노 경연대회 심사위원들이나 할 만한 거 아닌가요?”

“역시 무리인가요?”

단유가 어렵겠냐고 물으니, 괜히 오기가 생기는 대훈이었다. 물론 전문 분야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 오랜 시간 개인이 가진 재능을 평가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해 온 데다, 단유가 말하는 게 단지 피아노 실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니,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말로, 연예인으로서의 재능이 있는지만 살펴줘도 되는 거 아닌가?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뭐.”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대훈이 지원팀장을 바라보니, 지원팀장은 딱히 바쁜 일이 없어 잠깐 시간을 내는 정도는 무리가 없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회사에 상주하는 트레이너들과 작곡가들도 불러 잠깐 살피는 정도라면 괜찮을 거라 했더니, 단유는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긴급 특별 오디션을 열게 되었다. 반드시 뽑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느슨하게 보더라도 별 문제 없을 오디션.

연습실을 비우고 벽 한편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는 순간, 직업병인지 이내 눈빛이 날카로워지는 심사 전문 평가위원들이었다.

연습실 한쪽에 있던 건반을 가운데 놓고 두 사람에 대한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

갑작스럽게 오디션이 시작되기 전, 지아와 그녀의 친구, 그리고 아름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된 거야, 니들?”

“그게 말이야.”

친구의 설명에 아름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장담하는데 니들 절대 안 평범해. 평범한 사람이면 절대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하거든.”

“우리가 하자고 한 거 아냐.”

“어쨌든 하게 됐잖아. 아무튼 그래서 어쩔 건데?”

“모르겠어. 갑자기 오디션이라니.”

“할 마음은 있고?”

친구는 우물쭈물하는데, 지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그런데 굳이 도망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지아야.”

“딱히 잃을 것도 없잖아. 여기서 못한다고 해서 욕먹을 것도 아니고, 불합격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을 거고, 설령 합격이라고 해도 우리가 갑자기 연예인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음. 내 생각엔 그래도 여기서 불합격, 불합격이 맞나? 아무튼 심사위원 분들이 재능 없다고 평가를 내리면 멘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거 같은데? 난 멘탈이 약해서 그런 이야기 들으면 앞으로 2년간은 아무 것도 못 할 거야.”

“보라야.”

“응?”

아름은 보라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첫 번째로 너, 절대 멘탈 약한 애 아냐. 오히려 지아 얘 보다 네 멘탈이 더 강철 같거든? 두 번째로 2년이란 그 애매한 숫자는 뭐야?”

“첫 번째로 나 멘탈 졸라 약하거든? 억지로 강한 척 하는 거지, 실제로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소녀 감성이거든? 두 번째로 2년은, 그냥 졸업하고 1년 동안은 취직도 못하고 백수로 지내게 될 기간인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온 말이야.”

보라의 대답에 한숨을 쉬며 아름은 지아의 어깨에도 팔을 둘러멨다.

“됐고, 이왕 일이 이렇게 됐으니까, 너희 둘, 최선을 다해 봐라.”

“정말? 그래도 돼?”

보라의 물음에 지아는 피식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내 허락이 필요한 일도 아닌데. 그리고 만약 잘 돼서 같이 회사에 다니게 된다면, 나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여기 애들이 다들 나보다 날씬하고 예쁘고 어린데, 너희 두 사람이 들어오면 내가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 거 같단 말이야.”

“뭐니, 그게? 우리가 여기 들어와서 네 시중 노릇이라도 하란 말이야?”

“하라면 할 수는 있고? 됐고, 일단은 그냥 열심히 해 봐. 혹시 알아? 이게 정말 인생에 두 번은 없을 기회가 될지. 그런 말 들어봤지?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지아가 특유의 소심함을 가득 담아 물었다.

“난 전혀 준비가 안 됐는데?”

“그것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무튼 부딪혀 봐. 네 말대로 잃을 거 없잖아?”

아름의 속내야 어쨌든, 일단 친구라 부를 만한 두 사람을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잘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고, 안 된다고 해도 아름에겐 손해가 갈 일이 없었으니까.

처음 예상치 못했던 그녀들의 출현을 보며 복잡해졌던 심사(心思)는 이번 오디션 결과로 말끔히 풀어낼 수 있으리라.

“들어오세요.”

준비가 된 임시 오디션장의 문을 열고 단유가 연습실 바깥 통로에서 기다리던 두 사람을 불렀다.

****

“뭐 할 줄 아세요?”

“피아노 밖에 할 줄 모르는데요.”

“춤이나 노래, 연기 같은 건?”

“못하는데요.”

“개인기는?”

“없는데요.”

“그럼 피아노만?”

“네.”

대훈의 양옆에 앉아 있던 이들이 대훈을 향해 고개를 돌려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라고 입술만 움직여 물었다.

“우선, 거기 건반부터 쳐 보세요. 어쨌든 연주라도 들어본 뒤에 다시 이야기를 하죠.”

“네.”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키보드 건너에 앉는 지아를 보며 사람들은 생각했다. 확실히 오디션에 참가했던 다른 연습생들과 달리, 의욕도 생기도 부족하다고. 건반을 치기 전에 이미 마이너스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지아였다.

그리고 지아가 건반을 올리고 연주를 시작하자, 다시 사람들은 대훈을 바라보았다.

“잠깐만요.”

결국 대훈이 연주를 중단시켰다.

“그건 무슨 곡이죠?”

“어, 그러니까, 프란츠 리스트의 Etude No. 10이라는 연습곡인데요.”

“저기, 혹시 가요 같은, 조금 대중적인 연주곡은 없나요?”

대훈의 요구에 지아는 조금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딱히 평소에 대중가요를 즐겨듣는 편도 아니어서 어떤 곡을 연주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었다. 예전에 듣던 곡이라면 대충 코드에 맞게 연주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능숙하지 않은 곡을 이런 자리에서 선보일 자신도 없었다.

난색을 표하며 시간을 끄는 지아를 보며 심사위원도 곤란해 하고 있을 찰나, 문득 지아는 며칠 전 아르바이트 삼아 연주했던 곡이 떠올랐다. 같은 곡을 몇 번이고 치면서 손에 익기도 했던 터라, 그 정도면 무난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 그럼 다른 거 한 번 연주해 볼게요.”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는 투로 대훈이 손짓을 했다.

드럼이나 기타 현악기는 없지만, 피아노만으로도 충분히 멜로디를 재현해내는 데는 문제가 없는, 미발표된 OST곡이 지아의 손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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