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25화 (825/956)

Delight(9)-수정(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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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회사의 다른 임직원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연습생들과 접점이 있는 A&R팀이나 지원관리팀 정도가 아니라면 그저 안면만 익힌 수준이고, 데면데면하면서 인사만 겨우 건네는 수준이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재는 그랬다.

그러나 언급된 김이사, 김단유라는 사람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우선 그는, 잘생겼다. 연예인이라고 누가 우겨도 그렇구나, 수긍할 수준의 외모, 라는 평가에 다들 동의했다. 처음 오디션장에 들렀다가 심사위원들 사이에 앉은 그를 보며 순간 설렜노라고 고백한 동기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를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는 어딘지 모르게 미스테리한 면이 있어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킨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가장 보기 힘든 얼굴로 대표님보다 더 보기 어렵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이는 손에 꼽을 정도인 그는 나이도 젊은 편―정확히 몇 살인지는 모르고, 트레이너들에게 슬며시 물어봐도 대답을 듣긴 어려웠다―인데 무려 ‘이사’였다. 거기다 어쩌다 마주쳐 인사를 건네면 항상 정중하게 받아주는 매너까지 있으니 한정적인 정보 속에서 최상의 이미지를 갖춘 이다.

그런데 며칠 전, 미스테리하기만 한 그의 또 다른 면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지금까지 받고 있는 근신 아닌 근신을 감내할만하다. 만약 또 다른 기회가 있다면, 그러니까 밖에서 우연히라도 김 이사님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래서 또다시 근신을 받아야 한다면 기꺼이 받겠노라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그날 돌아오면서 아쉬움을 표시한 연습생이 적지 않았고.

만약 갑작스러운 해프닝만 아니었다면, 그와 함께 오붓하게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표시한 이가 비단 아름만은 아닌 것이다.

그에 대한 호기심은 사춘기 소녀부터 적령기(?) 여성에 이르기까지 한결같다.

그런데, 만인의 연인 같은 이미지의 그에게 여자가 있다고?

아름은 체면도 잊은 채 무릎걸음으로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연습생이 늘어놓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의도치 않게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단유는 오히려 자신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지아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에겐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 안달난 친구가 붙어서 단유의 말마다 사족을 달며 대꾸를 해대니 원하는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자기 소개를 해야 했고, 덕분에 어색한 침묵이 회의실에 내려앉았다.

“저···.”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지아가 입을 열었다.

“전 정말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점이 궁금하신지 모르겠지만, 그냥 평범하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나왔고요. 어떤 사람들은 예체능 고등학교를 나와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을 들어갔으니까 다르지 않겠냐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 같은 건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제 친구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하지만 피아노를 전공하는 시점에서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거 아닌가요?”

“정말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저도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제가 평범하다는 자각이 없었어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우대에 길들여져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후, 더 많은 것을 보게 된 후, 전 제가 얼마나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지를 깨달았어요. 정말 평범하지 않은 친구들은, 단지 건반 위에 손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특별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의 재능에 탄복하기까지 네 마디의 멜로디면 충분하죠. 그것은 어떤 노력으로도 따라잡기 힘든 재능이었고, 질투마저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의 특별함이었어요. 전···사실 전공 첫 시간에 그걸 깨달았어요. 깨달았으면서도 끝내 여기까지 온 것은 분수를 모르는 저의 아집이었고, 제가 이루었다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제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임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했다는 후회만 남았죠.”

의외로 말을 잘한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보며 단유는 다시 물음을 던졌다.

“자신에게 아무런 재능이 없다고 여기시나요?”

“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지난 번에 산에 갔다가 온 후, 그때 그러셨잖아요? 자기 길을 제대로 찾아보라고. 그래서 갔다 온 후로 진지하게 생각해보려 했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제대로 답을 내지 못했어요. 지난 번에 다시 만났을 때는, 정말 죄송했던 일이지만, 너무 혼란스러웠던 때였고 제 기분을 제가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할 때의 일이었어요. 정말 그때는 죄송했어요. 아무튼 그 후로도 다시 생각해보려 했지만, 잘 안 되거든요.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고. 뭘 해도 안 될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고. 뭘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그런 상황이라 그쪽···분을 다시 뵙고 싶었어요.”

마치 이제껏 입을 열지 못하고 있던 이유가 이렇게 한 번에 쏟아내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듯, 그간의 침묵이 무색할 정도다.

“절 왜요?”

“사과도 사과지만, 어쩐지 그쪽 분께서는 제 고민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주시지 않을까 해서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전 달리 해드릴 말이 없는데요.”

그보다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사이였던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그냥 느낌이···.”

이렇게 허술한 답이 나올 줄이야. 단유는 탄식을 하며 허리를 살짝 뒤로 젖혔다. 팔짱을 끼고 앞에 앉은 지아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평범한 사람은 어떨까? 사실 단유가 평범함에 호기심을 가진 건, 자신의 비범했던 과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평범함이라는 분류 아래 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했다. 과연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까.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미래를 꿈꿀까. 평범한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어떤 가치관을 꿈꾸고 어떻게 살아가려 할까?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단유가 궁금해했던 질문들이기도 했다. 도대체 주위의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저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어떤 기준으로 저런 경향성을 보이며, 어떤 논리적 사고를 거쳐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의미 없는 행동과 농담들. 한치 앞도 못 보는 듯한 충동적 행위들과 결과를 승복하지 못해 분노를 터뜨리거나 좌절하는 모습들.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삶을 그리는 것인지 궁금했고, 그 삶을 살며 어떤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같은 것들이 단유는 늘 궁금했다.

단유가 선택했던 길에서 볼 수 있었던 이들 중에는, 적어도 단유가 보기엔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친구와 가족은 물론이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까지도, 예를 들어 중학교 때 만났던 신문배급소 소장님도 평범하진 않았다. 도대체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적어도 평범함이란 특이하지 않아야 하며, 특이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어떤 결정에 있어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선택을 한다는 뜻 아닐까? 쉽게 말해, 논리적, 도덕적, 사회적인 수준에서 용인되는 선택만을 이어가면 그게 평범하다는 것이 아닐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모두 그런 기준을 따르게 된다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선택지만 고르는 것이니 그것이 곧 흔하다고 평할 수준의, 평범하다는 뜻이 아닐까? 요컨대 모두가 1번을 고르는데, 1번을 고르는 선택을 한다면 평범하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눈앞의 이 여자, 스스로 평범하다 말하는 이 여자도 내심 기대했던 것과 달리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아름은 무엇을 보고 이 여자를 ‘평범’하다고 평가했을까.

“제가 보기엔 전혀 평범하지 않은데요.”

“네?”

****

“얼래? 너희들은 또 여기 왜 왔어?”

쿡쿡 웃음소리를 죽여가며 뛰어왔더니 휴게실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회사 임직원 임시 모임이라도 있는 것 마냥 북적대는 휴게실의 모습에 조용히 내달리던 연습생들은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아니, 그게요.”

눈치를 보던 와중에 한 연습생이 주스 디스펜서를 가리키며 ‘저거 마셔도 돼요?’ 라고 소심하게 물었다.

“그게 목적이 아닌 것 같은데.”

의자에 앉아서 히죽대던 직원 한 명의 말에 연습생들의 얼굴이 한껏 달아올랐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또 다른 직원이 처음 말을 꺼낸 직원을 타박했다.

“넌 왜 그러냐. 마셔도 돼요. 마셔요들.”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하곤 쪼르르 달려가는 연습생들과, 이미 우린 너희들이 왜 왔는지 다 알고 있다, 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흘리는 직원들이 섞여 휴게실은 더욱 북적거렸다.

그리고 어린 연습생들과 함께 내달리기엔 차마 자존심이 있어 일부러 조금 늦은 걸음으로 쫓았던 덕에 앞선 무리에 끼지 않았던 아름은 복도가 꺾이는 모퉁이에서 몸을 숨기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뭐해요?”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회사 대표인 대훈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아름이 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아, 그게···그러니까 잠깐 휴게실 가서 음료수를 마실까 했는데, 휴게실에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그래서 조금 끼기가 미안해서.”

“미안할 게 뭐 있어? 너도 우리 회사 식군데. 누가 눈치 주나?”

“아뇨, 아뇨. 절대 그런 거 아니고요.”

“아니면 가서 마셔.”

“감사합니다.”

“뭐 그런 일로 감사까지야. 우리 회사 사람이면 누구나 가서 먹고 마시라고 만든 건데, 연습생이라고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대훈은 아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뒤 턱으로 앞장서라고 일렀다. 아름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모퉁이를 돌아 휴게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닫혀 있는 회의실을 슬쩍 훔쳐 보았지만, 반투명 유리로 가려진 회의실 안은 잘 보일 턱이 없었다.

“어쩐지 너희들만 온다 했어. 언니도 같이 왔네?”

그러나 직원은 곧바로 일어나 아름의 뒤를 따라오는 대훈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언제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였대요?”

지원팀장과 함께 담배를 태우기 위해 잠깐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건데 이렇게 휴게실이 만석이 되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김이사의 파워가 장난 아닌데, 라는 실없는 생각을 잠시 떠올리며 회의실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저기 있는 건가?”

“네, 아직.”

“거 되게 오래 걸리네. 정말 무슨 일인지 궁금해지잖아? 이거 이러다가 회사 기강 다 무너지게 생겼어. 여러분들은 저러지 마세요. 아무리 회사가 자유로운 분위기를 지향한다고 해도, 사적인 일을 회사에까지 끌고 오는 건 좋지 않습니다.”

반 농담조로 웃음을 섞어가며 한 대훈의 말이었지만, 직원들은 결코 우스갯소리로 들을 수 없었다. 뒤에 서 있던 지원팀장이 점심시간 다 끝나가는데, 라고 넌지시 한마디 하자 미어캣 마냥 서 있던 직원들이 급히 휴게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던 연습생들도 눈치를 보며 휴게실을 빠져나가는데, 그때 회의실 문이 달칵 열렸다. 사람들의 걸음이 일순 멈췄다.

****

본래 언어라는 것이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정된 의미를 공유함으로서 소통이 되고, 개념이라 하면 일반적인 지식과 관념을 일컫는 것이니, ‘평범’하다는 단어의 개념을 이야기하자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정의가 있다. 하지만 그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미세한 차이가 생길 수 있으니, 이는 단지 제멋대로 약속을 어기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체화 된 기준이 제대로 설정되지 못한 탓이라 치부할 수 있다.

요컨대,

“제 기준에서 지아씨는 평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죠.”

친절한 단유의 설명에도 지아와 그녀의 친구는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러니까, 지아 씨가 평범하지···, 그냥 예를 들어보죠. 지아 씨는 특별한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평범하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다고 했죠? 저는 이미 그 시점에서 본인이 평범한 다수와 다른 특이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건, 그렇지 않아요. 저보다 훨씬 특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사람들에 비하면···.”

“그러니까 지아씨가 말하는 재능이란, 기준에서 특별한 소수와 비교할 때 평범하다는 의미잖아요. 하지만 광범위한 범주에서 당신의 재능을 타인과 비교하면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거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평범함을 평가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요. 당신은 당신이 속했던 집단 속에서 평범함을 주장하지만, 저는 더 넓은 범주에서 이를테면 대한민국 전체의 구성원 중에서 당신이란 사람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넘어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당신은 평범하다고 할 수 없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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