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24화 (824/956)

Delight(8)-수정(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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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회사를 만들 때의 목표를 잊지 않겠다고, 자신이 대표로 있는 동안에는 절대 권위적인 대표가 되지 않겠다고 그렇게 누차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몰아치듯 쏟아지던 선택, 고민 그리고 결정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회사의 외형에만 너무 신경을 쏟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는 반성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 설립 초기이기에 일이 많은 것은 모두가 감수해야 할 일이고, 제대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약간의 희생과 불평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래도 회사를 위해서 희생하는 직원들의 노고를 잊지 말고, 그들이 고생하는 만큼 보상해 주자라고 다짐했던 것은 잊지 말았어야 했다, 고 대훈은 생각하며 자책했다.

고작 탕비실을 없애고, 각종 주스 디스펜서를 구비한 ‘카페’식 휴게실을 구비 했다고 직원들의 복지가 완벽히 마련되는 것도 아니건만 괜히 휴게실에 들러 ‘대표님’께 인사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즐겼다. 그리고 설령 그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다 해도 복지편의시설과 별개로, 과중한 업무로 인해 직원들이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한다면 그건 다르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 문제는 단순히 회사 내부에 대한 고민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예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앞으로 활동하게 될 소속 연기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도 관리에 대한 인식으로도 연결된다.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기획사들에서 실수를 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방송계 혹은 영화계에서 소속 연기자들의 실적과 급을 올리기 위한 작업에만 몰두하다 보면 자칫 대중들의 반응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있고, 인기가 많은 배우가 있다면 당연히 대훈은 인기가 많은 배우를 선택할 것이다. 인기가 많지만 실력이 모자라다면―실력이 아예 성장을 하지 않거나 배우가 노력을 하지 않는 문제는 차치하면―트레이닝으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연기는 잘하는데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면 이것은 회사 자체적으로 손쉽게 해결하기가 어렵다. 대중의 호응이란 그렇다. 어떤 때는 그저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어떤 때는 도대체 어떤 원리와 이치를 따르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게 대중의 호응, 민심, 인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훈은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생각했다.

‘회사의 직원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회사를 만들자.’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끼며 전력을 다해 함께 앞으로 나아갈 회사를 만들자, 고 다짐했었다. 그로 인해 다소 이익이 줄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방향성은 이후 소속 연기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심산이었다.

배신과 의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많은 연기자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만들 회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자고, 그들 역시 회사의 직원으로서 회사를 위해 스스로 함께 할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만들자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이 바닥에 깔려야, 이후 대중들을 상대할 때도 긍정적인 호응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아할 수 있을까. 목표가 정해졌으니 다음은 방향에 맞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 대훈이 나름 긍정적이라고 판단하는 길을 단유가 보여주고 있었다.

회사에 정식으로 소속되지 않은 단유가, 비록 투자자라는 복잡한 관계로 연루되어 있지만, 처음과 달리 조금씩 회사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적인 모습을 보이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대훈은 자신이 크게 어긋난 길을 걷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단유에게 그랬듯 다른 직원들과도 상하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율적인 분위기를 만들며 함께 노력한다면, 단유가 그렇게 변하듯 직원들도 그렇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일에서, 정말 별거 아닌 사소한 사건에서 대훈은 자신의 회사가 아직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이대로 모른 체 지나갔다면, 이후 회사가 나름 궤도에 올랐을 때, 그저 수치상으로 보이는 회사의 외형에 시선이 팔려 마냥 만족하며 지나가지 않았을까?

괜히 경각심을 가지자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특히 대표라는 특수한 자리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아래에서 보고 겪는 풍경과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들어갔어요, 김이사?”

“어, 대충 20분 정도 된 거 같은데요?”

지원팀장의 대답을 들으며 대훈은 나중에 단유에게 맛있는 식사라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택윤이나 하은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단유를 회사에 매어두게 만들고 계속 도움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가 의도하든 안 하든, 단유는 대훈에게 어디서도 구하지 못할 좋은 거울이었다.

****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것마냥 환한 단유의 얼굴은 누구라도 한 번 보면 쉽게 반해버릴 것만 같은 남자의 얼굴, 이라고 친구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그와 반대로 어둠을 잔뜩 끌어모은 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파고 들어갈 듯이 웅크리고 있던 지아는 입안에서 맴도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나 고민에 휩싸였다.

점점 더 소심해져 가는 지아. 겨우 용기 내어 찾아와, 겨우 용기 내어 허리도 숙였지만, 그래도 마지막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먹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보던 단유. 어색함을 풀고자 단유가 입을 열었다.

“지아씨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고개를 쳐든 지아를 담담히 쳐다보며 단유는 말을 이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24살 여대생, 이라는 평이었습니다.”

딱히 부정하기 힘든 말이었다. 평범하지 않노라고 화를 낼 수도 없고, 평범하다고 억울해할 수도 없는 평가. 딱히 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그 평가대로라면 자신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렇다. 평범하다는 것은 지금 시대에 있어 들을 수 있는 최저의 평가가 아닐까? 이력서 특이사항란에 써넣을 수 있는 거라곤 열심히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말곤 거론할 게 없는 인생. 하다못해 취미란, 특기란에 뭔가 특이한 걸 적어야만 눈에 띌 것 같다는 압박감에 수차례 펜을 떨어뜨리고 마는 인생. 자소서 500자, 1000자의 긴 공백을 채우기 위해 머리를 굴려도 한 줄을 채우지 못해 중언부언하다 결국 포기하고 마는 인생.

“사실 전 그런 평범한 인생을 꿈꿨지요.”

이어지는 단유의 말에 지아의 눈이 단유의 눈에 맞춰졌지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검고 깊은 눈동자에 또다시 마음이 흔들려 그의 콧망울로 떨어졌다가 붉은 입술과 좁지 않은 턱을 지나 넓은 어깨를 훑다가, 자신의 적나라한 시선을 눈치챌까 두려워 다시 바닥으로 향한다.

그리고 정수리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스스로 파란만장하다고 평하기엔 부끄럽지만, 역시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던 탓일까, 지아씨처럼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단유의 호기심이 향했던 그곳에 지아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단유 주위로 과연 평범한 사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다들 굴곡 많은 사연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지냈던 하은과 명수, 상미와 같은 친구들의 경우,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리는 이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단유의 매우 주관적인 눈으로 볼 때, 거의 분열증에 가까운 감정의 극과 극을 오가는 지아의 모습은 주위에서 쉽게 보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처음 그녀를 산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다리를 다쳐 신음을 흘리면서 토해내던 방황의 이유와 고백은 고등학교나 대학 때도 종종 보았던 일이라 특이하다 여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두 번째 만남에서 지아가 보여준 놀라운(?) 극단성은 단유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아름에게서 들은 그녀에 대한 평가는 지아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욕망을 충동질했다.

그리고 오늘, 무턱대고 찾아와 사과를 하겠다는 지아를 보며 단유는,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괜히 즐거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 않아요?”

“글쎄요, 이제껏 지내 온 삶을 돌아보면 그리 평범하진 않았던 것 같아서 말이죠.”

“뭐, 확실히 그쪽 분은 평범하지 않으신 것 같지만 말이죠. 하지만 얘나 저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다 평범하거든요.”

“평범하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꼬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니까.”

이건 뭐 버스 요금이 얼만지, 지하철은 어떻게 타는지 모르는 사람이나 할 법한 질문 아닌가.

“혹시 금수저예요? 비아냥거리는 거 아니고, 진심 궁금하니까.”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은 질문에 단유는 대답했다.

“고아입니다.”

****

전에 연습복 구매를 핑계로 외출을 나갔다가 약속된 시간보다 늦게 돌아왔던 탓에 한 소리를 들었던 연습생들은, 이후 점심시간이어도 밖에서 머무르며 쉬기보다는 식사만 마치고 곧장 회사로 돌아와 관리직원들의 눈도장을 받으며 근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딱히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회사 내에 있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했다.

“단 게 너무 땡기지 않아요, 언니?”

혀짧은 소리를 내며 아름에게 애교를 부리는 이는 연습생들 중 가장 막내인 혜수라는 아인데, 겨우 16살, 6개월만 지나면 고등학교에 입학할 아이였는데, 아름과 8살이 차이다.

“난 안 돼.”

나이가 많다는 이유 말고라도, 어린 연습생들과 비교해 비교적 관리받지 않고 살아온 지난 날들 때문에 생긴 뱃살과 흐느적거리는 팔뚝살은 언제나 아름의 고민이었다. 티도 안나요, 라고 다들 말하지만, 거울 앞에만 서면 너무도 선명하게, 마치 그곳에만 따로 색을 칠한 것처럼 눈에 띄었다.

회사에서 따로 다이어트를 주문하지 않았지만, 늦게 시작했기에 느끼는 조급함과 애초에 이쪽의 훈련을 받지 않았던 탓에 생기는 실력의 격차를 느끼며 조금이라도 더 마르고 어려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을 매일 매 순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아름이라도 이제 겨우 24살. 당장 회사를 나가면 어느 곳에서도 어린 축에 속할 나이였다. 친구들과 동기들은 SNS에 맛집을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자랑하고 있을 나이였고, 한껏 물오른 외모를 여기저기 뽐내며 화려한 청춘을 불태울 나이였다. 물론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아름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아름은 좀 더 후의 미래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매일매일 업데이트하던 SNS도 끊고 오로지 성공만을 바라며 연습실 거울 앞에서 굵은 땀방울로 바닥을 적시는 중이다.

“과자 같이 먹지 않을래요?”

혜수의 시선이 계속 연습실 구석에 놓아둔 가방을 향하는 걸 보니, 아마도 출근 전에 과자를 사다가 가방에 넣어둔 모양이었다. 혜수의 나이를 생각하면 한참 과자를 좋아할 나이긴 했다. 물론 아름도 마찬가지다.

추측컨대, 큰 언니가 있는데 자기만, 혹은 자기들만 과자를 먹기가 곤란하니 언니인 아름을 끌어들이려는 속셈인 듯 한데, 그래도 언니라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갸륵하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데 마음씨까지 좋으니,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아이다. 애초에 혜수를 보며 질투심보다는 마냥 귀엽다고만 느끼긴 했지만.

“난 괜찮으니까, 먹고 싶으면 먹어. 정말 난 괜찮아.”

“언니 놔두고 저희만 먹으면 좀 그렇잖아요.”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괜찮아. 대신 먹고 나서 바닥에 흘리는 것만 없게 해야 돼.”

곧 아이들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둘러 앉아 과자 몇 봉지를 뜯어 늘어놓았다. 같이 먹어요, 라는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아름은 핸드폰만 들여다보는데, 화장실에 들렀다 온 또 다른 연습생이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들었어, 들었어?”

그리고 이어진 말에 아름의 시선이 절로 돌아갔다.

“김이사님한테 여자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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