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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814화 (814/956)

Fall of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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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만났던 지원자의 레벨이 눈을 높인 탓일까. 그 후로는 마음에 드는 지원자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이 심사를 할 때 가장 힘든 점입니다. 음식에 비유하면, 미슐랭 별 3개짜리 요리를 먹은 후, 다른 요리들을 먹으면 이전에 먹었던 요리의 인상이 깊게 남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별 3개짜리 요리만 요리인 건 아니잖아요? 그 뒤에 별 2개짜리 요리가 나와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진짜 심사를 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설명하는 트레이너도 사람인지라, 객관성을 유지하며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지―혹은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인지―이후의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거나 머리를 젓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오디션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도 하나 알게 되었다. 반드시 우수한 실력을 가진 지원자라고 해서 꼭 뽑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감에 찬 한 지원자는 자신감에 걸맞게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지만, 그가 오디션장을 나간 뒤 심사위원들은 모두 아쉬움을 드러냈다.

“저희 회사에서는 무리겠죠?”

“네. 아무래도요.”

심사위원들끼리 나누는 대화에 의문을 느낀 단유가 슬쩍 물었다.

“왜 안 되나요?”

“방금 전의 애는 조금 어중간한 실력이에요.”

“어중간해요?”

“솔로로 내세우기엔 뭔가 아쉽고, 그렇다고 그룹으로 만들자니 지금까지 뽑은 애들과 나란히 세우면 너무 튀는 면이 있어서요.”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곧잘 하는 편이지만 창법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달라요. 트레이닝으로 고치려하면 오히려 개성을 죽이는 셈이라 저 아이한테는 해가 될지도 몰라요.”

“차라리 저 아이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회사로 가는 편이 낫죠. 아쉽게도 저희 회사는 그런 컨셉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사방의 벽을 망치로 두드리는 듯 힘이 넘치는 보컬은 마치 락커를 연상케한다 싶었는데, 나쁘지 않은 실력이지만 그녀의 매력을 살리기엔 회사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저런 아이를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개인적으로는 꼭 잡고 싶은데 말이죠.”

아쉬움을 토로하는 보컬 트레이너의 고백을 뒤로하고 오디션은 계속되었다.

아담한 키에 촉촉한 눈동자. 모니터 속 지원자의 얼굴은 스쳐 지나가다가도 시선을 붙잡고 놓지 못하게 만들, 그런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배우 지망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연기 준비한 거 있으시면 보여주세요.”

“네.”

자신 있게 대답한 지원자는 심호흡을 한 뒤, 카메라를 바라보며 눈빛을 가다듬었다.

“요즘 애들은 셀카를 많이 찍어서 그런지 몰라도 카메라 보는 법이 익숙해요.”

“그렇네요.”

심사위원들은 연기가 시작되기 전에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연기가 시작되자, 모두의 시선은 지원자에게로 고정되었다.

“하아.”

연기가 끝난 후, 호흡을 가다듬으며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지원자.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각자의 채점표를 보며 숙고에 들어갔다.

잠시 정적에 싸인 심사위원석의 분위기에 지원자는 잔뜩 긴장을 한 채로 눈치를 보며 반응을 기다렸다. 얼마 후, A&R팀의 팀장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좋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노래는 잘 부르는 편인가요?”

“그냥 친구들이랑 어울려 노는 정도입니다.”

“여기 보니까, 전공이 클래식 피아노네요? 음악 쪽으로도 소질이 있으신 거 같은데, 왜 배우를 지망하시게 되었나요?”

“제가 춤은 자신이 없거든요. 하지만 연기는 오래 전부터 계속 꿈을 꿨습니다.”

“연기 쪽에 꿈이 있었으면 전공도 그쪽으로 지망했어야 하지 않나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계속 쳤거든요. 주변에서도 실력이 있다고 추켜세워졌고, 그래서 사실 다른 쪽으로 갈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냥 다들 이 길이 너의 길이다, 라고 말하니까 저도 모르게 거기에 휩쓸렸던 것 같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많이 해줬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부모님도 제가 피아노를 계속 전공해서 가시길 바랐고, 예고 다닐 때 친구들도 제가 이쪽으로 성공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시에 합격한 후 잠깐 슬럼프가 왔습니다. 과연 이 길이 제 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지난 날을 돌아보니 제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다닌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새로 시험을 쳐서 전공을 바꾸지 그랬어요?”

“그때는···부모님의 반대가 무서워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럼 지금은요?”

“지금도···사실 부모님은 제가 오디션을 보는지도 모르세요.”

“그럼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합격해도 오지 못하시겠네요?”

“아닙니다! 어떻게든 부모님을 설득하겠습니다.”

“···그럼 연기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겠네요?”

“네. 혼자 방에서 공부하면서 연습했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잠깐 노래를 들어보고 싶은데, 혹시 지금 부를 수 있는 노래 있나요?”

“노래요?”

“수고하셨습니다.”

긴장하지 않은 척 노력했지만 그래도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숨길 수 없었던 지원자는 심사위원들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오디션장을 나갔다.

그리고 다시 긴 휴식 타임을 가지기로 결정한 심사위원단.

“이거 무조건 합격시키는 거죠?”

A&R팀장은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합격은 합격인데···.”

보컬 트레이너가 말끝을 흐리며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애초에 크로스 트레이닝을 염두에 두고 뽑기로 한 거니까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호준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훈의 물음에 연기 파트 트레이너의 고민이 깊어졌다.

“말 그대로 애매하네요. 약간 다듬으면 쓸만한 연기도 보여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기본이 너무 없다는 점도 마음에 걸리고, 나이도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 많다는 생각도 들고요.”

여러 심사위원들이 숙고를 거듭할 때, 단유는 지원서를 들쳐 다시 한번 지원자의 이력을 살폈다.

‘강아름, 23세. 클래식 피아노 전공.’

서울 내 모 대학교에 다니며 콩쿠르에서 입상한 전력도 있는, 그녀 말마따나 그쪽 계통으로 진로를 가는 게 마땅할 이력의 소유자였다.

“스물 셋이 많은 건가요?”

“지금은 많지 않지만, 트레이닝을 받는 시간을 고려하면 데뷔는 좀 더 늦어지겠죠.”

즉시 전력감이 되지 못하기에 불가피하게 소요되는 시간이 발생하고, 그 시간을 고려하면 그녀가 데뷔할 나이는 다른 젊은 연기자들에 비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 트레이너의 설명이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아쉽다고 해야 할까, 아깝다고 해야 할까.”

“네, 제 말이요.”

심사위원들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녀가 보인 또 다른 재능. 바로 보컬이었다.

“왜 저 친구는 자신의 보컬이 가진 재능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어디 저 아이만 그럴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처럼 과소평가하는 이들도 더러 있고 그런 거죠. 이럴 때 참 안타까워요. 만약 자신이 그 재능을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어렸을 때부터 갈고 닦았을 테고, 그럼 이렇게 고민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요.”

“모르죠. 지금 저희가 본 재능 이상으로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건지도.”

“시쳇말로 재능충이라는 거네요.”

대훈이 나서서 입장을 정리했다.

“우선 합격시켜서 데려온 후 살피죠. 일단은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든 충분히 회사에 이익이 될 인재니까요.”

“걱정되는 건, 그녀의 부모님이네요.”

“그건 여기 신입개발팀장님께서 수고해주셔야 할 문제죠.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인센티브 두둑히 받아낼 겁니다.”

“걱정 마세요. 돈 떼먹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강아름이란 지원자에 대한 토론은 마무리되었다.

****

오랜만에 학교엘 갔더니 친구가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일주일 전에 깁스를 풀고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한 탓에 지금은 걷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하니 잘 됐다며 웃음을 짓는 친구였다.

“그런데 너 그 소식 들었어?”

아무래도 ‘그 소식’이란 걸 말하고 싶은 마음에 서두를 그렇게 시작했던 모양이다. 눈빛을 반짝이며 말하고 싶어 안달 난 친구를 보며 예의상 ‘무슨 일인데’라고 물었더니 이내 하는 말이 바로 아름에 대한 이야기였다.

“걔 오디션 붙었대.”

“그래? 그럼 가수 데뷔하는 거야?”

“가수 아니고 배우.”

“배우?”

“당연하지. 그 얼굴로 배우 안 하면 뭘 하겠어?”

배우를 얼굴로 하나? 연기로 하지, 라는 말이 입술을 뚫고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낸 지아는, 역시 예의상 ‘잘 됐네’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절대 관심이 없거나 별로 즐거운 마음이 없더라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치? 오늘 저녁에 축하한다고 같이 한 잔 하기로 했는데, 너도 올래?”

“나? 난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야, 전공 수업 같이 들은 게 몇 갠데 데면데면하게 굴어? 혹시 아니? 나중에 걔가 뜨면 덕 좀 볼지.”

“배우와 친하다고 해서 득이 있을까?”

그러나 몇 시간 후, 지아는 친구와 함께 축하를 핑계로 한 술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다.

“강 배우!”

“배우는 무슨. 이제 겨우 기획사에 들어간 것 뿐인데.”

“그치. 이제 시작이지. 그런 의미에서 건배!”

“건배!”

왁자지끌한 술자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테이블 끝에서 조용히 앉아 인위적인 미소를 지으며 앉은 지아는 왜 자신이 여기에 앉아 있는지를 되묻고 또 되물었다.

이유는 뻔했다.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안 얼마나 외로웠고, 그 외로움이 자신을 어떻게 갉아먹는지를 체험한 지아는 바닥까지 먹혀서 자신이란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게 두려웠다. 눈만 마주치면 못 잡아 먹어 안달 난 어머니와 극에 달한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랬던 이유였는데 막상 이 자리에 오니 정작 외로움은 더 커지고 전에 없던 질투심이 고개를 쳐들고 남은 자리 없나 살피는 기분이었다.

“야, 뭐해?”

“응? 아니,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생각은 무슨. 자, 한 잔 하자.”

“응.”

지아를 데려온 친구는 벌써 불콰해진 얼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건배를 제의했다. 그래, 차라리 술이라도 마시자.

한 잔 두 잔, 맥주 잔이 비워질수록 지아는 조금씩 우울함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사라진다기보다 흐려진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야, 너 취했어?”

“아니, 안 취했어.”

히죽 웃는 지아를 보며 친구가 혀를 찼다.

“혀가 꼬였구만. 왜 자작하고 있어?”

“헤헤.”

“어라? 취했네. 취한 거 맞네.”

친구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지아는 또 잔에 술을 채우고 입에 털어넣길 반복했다. 안주 좀 먹으라며 챙겨주는 친구의 젓가락에 입을 벌리고 넙죽 받아먹고 헤헤 웃는 지아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지아야, 나랑 한 잔 해.”

“응, 응. 응?”

눈앞에 들이 밀어진 잔에 무심코 자신의 잔을 들어 부딪히려는데, 여태 옆에 앉아 있던 친구의 손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이 술자리의 주인공 격인 아름이 생글생글 웃으며 잔을 내밀고 있었다.

“짠, 해.”

청량한 울림, 그리고 한 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는 아름의 젖혀진 고개, 그 아래로 보이는 얇고 긴 목선. 입술을 훔치는 고운 손등과 흐릿하지만 빛이 나는 눈동자, 붉은 입술. 흘러내린 검고 긴 머리카락. 긴 속눈썹과 발그레한 뺨을 가진 아름의 모습에 지아는 잠시 잊고 있었던 질투심과 우울함이 치솟는 걸 느꼈다.

그래서 지아는 입을 열었다.

“축하해.”

“고마워.”

지아의 빈 잔에 술을 채우며 아름이 싱긋 웃었다.

“어떻게 오디션을 보게 된 거야?”

“응? 아, 아까 이야기했었는데 못 들었구나. SNS를 하다가 우연히 신생기획사의 오디션이 열린다는 글을 봤는데, 그냥 그게 운명처럼 느껴졌어.”

“운명?”

“응. 오디션을 알리는 문구가 ‘New start’였거든. 새로운 시작. 너무 단순해서 평소라면 신경도 안 쓸 일이었는데, 그냥 그날따라 그게 너무 가슴에 박히는 거야. 최근에 내가 한참 고민하고 있던 일이 있었는데, 나한테 필요한 게 딱 그 새로운 시작이란 거 같다고,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처음에는 경험 삼아 한번 해 볼까 했던 건데, 운이 좋게도 붙은 거지.”

“잘됐네.”

“그치? 알아보니까, 신생기획사긴 하지만 거기 트레이너 선생님도 꽤 유명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무엇보다 대표가 예전에 유명한 기획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사람이더라고. 뭐, 아무튼 거기 있는 사람들 평판이 대체로 좋다고 하니까 신생이라도 처음 시작하기엔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결정한 거지.”

“그렇구나.”

“왜? 관심 있어?”

“관심은···.”

“관심 있으면 한 번 도전해봐. 못 할 게 뭐 있니? 경험 삼아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마는 건데. 솔직히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이지만, 너나 나나 솔직히 전공으로 먹고 살긴 힘들지 않니?”

하마터면 잔을 들어 던질 뻔했다. 지아는 취기가 도는 와중에도 참아낸 자신을 칭찬하며 아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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