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808화 (808/956)

Fall off(2)

-------------- 808/952 --------------

지아의 원래 계획은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여 14시간여가 걸린다는 등산 코스를 완주해내는 것이었다. 새벽 3시, 입산이 허가되는 시간에 맞춰 출발하려던 지아는 매표소 주위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다소 위로를 받았다. 사전 조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벽 산행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등산인들이 몰려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들만 따라가면 되려나?’

가방끈을 다시 한번 조이며 지아는 입구에 내 걸린 LED시계를 바라보았다. 곧 새벽 3시 정각을 알리는 시계의 표시와 함께 입구에 서 있던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팀으로 구성되었는지 지아처럼 홀로 가려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지아는 적당히 가운데 끼어서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가씨는 혼자야?”

앞서 걷던 한 아저씨가 지아를 보며 물었다.

“네.”

“어이구, 혼자는 쉽지 않을 텐데. 젊은 사람이 용감하네.”

“네.”

“자주 와봤어요?”

“아뇨, 처음인데요.”

“처음이면 많이 힘들지 않아?”

“이제 시작이라서 잘 모르겠네요.”

“그런가. 아무튼 아가씨, 힘내.”

“고맙습니다.”

베이지색 등산바지에 빨간 자켓, 초록색 모자에 검은색 백, 은색 스틱까지 완벽하게 갖춘 아저씨는 가볍게 응원을 하고는 앞서 나갔다. 연세도 있으신 분 같은데, 앞으로 쑥쑥 나서는 모습을 보니 생각처럼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고작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앞서 걷던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고, 뒤에서 ‘먼저 갈게요’라며 지나가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위해 길옆으로 비켜서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지아를 보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전혀 그럴 일이 아님에도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금방 가빠져 온 숨을 정리하며 지아는 주변을 살폈다.

이제 출발한 지 고작 30분여가 지났을 뿐인데,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의지라는 게 고작 30여 분의 제한 시간을 가졌던 것일까?

1시간 쯤 지났음에도 주위는 여전히 어두웠고, 주위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출발할 땐 중간 쯤에서 시작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벌써 포기할 순 없었다. 어떤 마음으로 시작한 새벽 산행인데 포기한단 말인가. 자신의 젊음과 미래를 걸고 시작한 미션이다. 만약 지금 포기하면 이제껏 바쳐온 자신의 과거가 모조리 부정당할 것만 같았다.

어두운 산속 어딘가에 있는 지아의 모습이 바로 현재 지아가 처한 현실 속 모습인 것만 같았다.

2시간 여가 지났다. 분명 시계는 두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는데, 지아의 몸은 이틀, 아니 2주를 걸었던 것 마냥 힘이 다 빠지고 무기력했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벅지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무릎을 붙잡으면 붙잡은 손까지 같이 흔들렸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산이 흔들릴 까닭도 없는데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아 나무며 바위며 짚지 않고서는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앞서 간 사람들의 뒤를 조금이라도 쫓아보려 무리하게 페이스를 올렸던 게 패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안 되겠어.’

무성하게 펼쳐진 나무 사이로 보이는, 여전히 어둑한 하늘.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보니 5시 32분. 이제 얼마 안 있어 곧 해가 뜨기 시작할 테지만, 해가 뜬다고 해도 계속 산을 탈 자신이 없어졌다. 이 페이스로 가다간 돌아오기도 애매한 지점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되버릴까 두려웠다.

두려움. 지아가 이번 산행을 통해 반드시 극복하고자 했던 진실한 목표였다. 만약 이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면, 더 이상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리란 희망을 안고 시작한 걸음이건만 끝내 지아는 한 걸음 더 내딛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언제까지 꿈만 꾸고 살 거야?”

가장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엄마! 그게 딸한테 할 소리야? 자식한테 꿈도 갖지 말라고 말하는 엄마는 세상에서 엄마뿐일 거야.”

“꿈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건 꿈이 아니라 현실도피라고 하는 거야, 이것아. 너 돈 없이 살 수 있어? 돈 없으면 결혼도 못 하는 세상이야. 너처럼 생각 없이 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평생 혼자 살아야 돼. 벌어놓은 돈도 없고, 남편도 없고, 애도 없고. 너 뉴스 못 봤어? 집세도 못 내서 죽는 애들이 딴 사람 이야기 같지? 응? 정신 차려. 그게 네 미래야.”

“엄마!”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챙기고 살아. 언제까지 엄마가 챙겨줄 거 같애? 이건 몸만 컸지, 머리는 완전 애다, 애야.”

모녀간의 대화에서 지아는 늘 지는 쪽이었다. 이길 수 없었던 것은 목소리가 작기 때문도 아니었고, 논리적으로 부족한 말빨 때문도 아니었다. 엄마의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어렸을 때, 다른 애들이 그렇듯, 지아는 부모님이 등록해 준 학원을 다녀야 했다. 대한민국의 부모님들이 다들 그렇듯이 지아의 부모님도 자녀의 학구열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여러 학원을 다닐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자신의 자녀가 얼마나 넘치는 학구열을 지녔는지에 대한 고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부모이기에, 자녀에 대해서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의 자녀가 세상 어느 누구보다 학구열과 재능이 넘치는 아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보습학원은 기본이고, 피아노 학원과 체조 학원 등을 추가로 등록하여 바쁜 유년시절을 보낸 지아는 그 중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다. 아니, 지금에 와서는 그게 진짜 재능이었는지 의심스럽지만, 당시 지아는 피아노가 꽤 잘 맞았다. 학원 선생님도 지아에게 재능이 있다고 칭찬을 했고―그게 다른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소위 립서비스인지는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겠지만―어머니도 학원 선생님의 칭찬에 들떠서 본래 1, 2년만 다니다 그만둘 계획이었던 학원을 4년이나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 때도 나름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로 인식이 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로 인해 지아는 단지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즐거움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음으로서 얻는 기쁨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그녀의 진로를 이른 나이에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껏 느꼈던 그녀의 소소한 행복은 예체능계로 진학을 하면서 삭풍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말라 비틀어졌다. 세상에는 그녀 이상으로 재능이 넘치는 이들이 많았고, 단지 많을 뿐 아니라 ‘진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눈을 돌릴 정도로 자신의 재능은 볼품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도 그 사실을 아주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 천재의 영역에 들어선 피아니스트는 많이 보았다. TV에서, 콩쿠르에서, CD 표지에서, 잡지에서, 라디오에서, 인터넷에서 숱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천재들은 자신이 가려는 길 위에 서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다른 세계에서 활약하는 무리들이었고, 지아가 가려는 곳은 그저 비슷비슷한 수준의 아이들끼리 경쟁하는 영역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지아 본인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피아노로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보통 교수나 강사, 또는 선생님 등이 될 것이다. 운이 좋아 교향악단 같은 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도 대만족. 교향악단 출신 경력자라면 교수, 강사, 선생님은 좀 더 쉽게 선택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니까.

그러나 현실은 꽤 힘겹고 무서운 것이었다. 같이 입학한 친구가 갑자기 모리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Gaspard de la nuit’를 실수 없이 연주하고 있고, ‘라 캄파넬라 La Campanella’를 치는 후배들을 보며 자신의 손을 저주하기도 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몇 번의 절망과 좌절, 두려움을 느껴야 했는지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지아는 운이 좋았는지 재수를 하지 않고도 대학에 입학하는 저력을 보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또다시 좌절과 절망을 겪어야 했으니, 동기생들 중 가장 피아노를 못 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대학 4년을 어영부영 보낸 지아는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은 시간 동안 과연 피아노를 끝까지 전공으로 가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가?

고등학교 때는 희미했던 자신의 미래가, 대학에 들어오고 나니 조금 선명해졌다. 좋지 않은 의미로서 말이다.

주변에 그런 선배들이 많이 보였다. 이도저도 아니게 시간만 끌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돈 한 푼 되지 못할 졸업장만 끌어안고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며 이력서를 넣는 선배들. 그도 아니면 아예 새로 직업 학원을 다니며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전산세무회계 따위를 배운다며 손톱을 기르고 다니는 선배들.

지아의 어머니도 지아가 처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자식에 대해 잘 아는 어머니였다. 자신감도 부족하고 의지박약에 재능도 부족하면서 헛된 꿈만 키우며 살아온 딸 아이를 꾸짖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기에, 아침마다 그리고 저녁마다, 혹은 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충고와 조언을 서슴지 않았다.

****

지아가 산행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미래를 결정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쉽게 포기하지 말자는 의지를 어머니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어머니 말대로 재능 없는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눈을 돌려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입학 후 3년여 동안 계속 이 길을 갔던 것은 그것이 어린 시절 처음 피아노를 접한 이후로 가졌던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숱하게 포기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할까 봐 차마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앓던 것이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건, ‘꿈’ 속에서 지아는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지금 걸음을 멈추고 다른 길을 찾아간다면 더 이상 그녀의 인생에 ‘행복’은 없을 것 같았고, 그런 예지가 ‘포기’를 미루도록 하였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두드려대는 어머니의 잔소리,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암울한 미래의 모습들을 관찰하며 지아는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의외의 산행. 한 번도 이토록 심하게 몸을 혹사한 적도 없고, 산행의 경험은 없지만 낯선 모험에 도전하여 이겨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안고 시작했다.

물론 이제는 그 기대마저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

겨우 숨을 정리한 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섰다. 원래 가기로 한 코스의 반의 반도 가지 못했고, 사전 조사한 바로는 앞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것 이상의 경사와 난이도를 가진 코스가 이어질 텐데 도저히 지금 몸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되돌아 내려오는 길을 선택한 지아. 그러나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더욱 힘들었다.

“아악!”

의지와 상관없이 무릎이 꺾이며 쓰러진 지아는 무심결에 손을 뻗어 지탱할 만한 것을 잡으려 했으나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울퉁불퉁한 바닥을 구르며 여기저기 찍히고 찢어질 따름이었다. 입으로 흙이 들어가고 발목이 꺾이는 와중에 눈도 뜨지 못하는 상황. 자기 몸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 정신없던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붙잡았다.

눈앞이 핑핑 돌고 사물이 제대로 분간되지 않는데 눈앞에 처음 보는 사내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네? 네.”

솔직히 무엇을 묻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뭔가 말을 건다는 느낌이었고, 지아는 습관적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119에 신고하세요.”

“네, 네.”

바보같이 땅을 구른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얼른 일어나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아는 무심코 일어서려 했다.

“아악!”

또 의지와 상관없이 내지른 비명이 산속에서 작은 잔향을 남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