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op of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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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덩치의 얼굴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헛되이 허공을 가른 주먹질의 여파로 치밀어오른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돈은 둘째고 우선은 눈앞의 떨거지를 바닥에 쓰러뜨려야 속이 후련할 것만 같은 기분에 재차 주먹을 휘두르려는 그때.
“이 새끼 뭐야?”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덩치의 팔이 들어 올려지다 말았다.
“너 괜찮냐?”
허겁지겁 달려오는 녀석은 바로 덩치와 손발을 맞추기로 한 동료였다.
‘이 새끼는 어디 있다 이제 튀어 나오는 거야!’
덩치는 뒤늦게 튀어나온 얼빠진 동료를 향해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그보다 앞서 사내는 덩치의 팔을 붙들며 외쳤다.
“광덕아, 많이 다친 거 아냐?”
입으로는 덩치에 대한 걱정을 내세우면서 눈짓으로는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아주머니를 의식하라고 주의를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덩치는 이미 어그러진 판이라 생각했기에 사내의 손을 뿌리쳤다.
“놔, 이 새끼야. 어디 있다가 이제 와서 지랄이야!”
본래 계획대로라면 덩치, 광덕이 작업을 시작하고 혹시 혼자서 진행이 어려워지는 경우에 뒤에서 기회를 엿보던 동료, 우석이 바람을 잡으면서 목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눈이 많으면 목표물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고, 그러면 거래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기에 불가피한 경우에나 나오기로 약속이 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불청객이 등장하면서 우석은 나올 타이밍을 놓쳤고, 상황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말았다. 광덕이 워낙 다혈질이라 부디 실수만 하지 말라고 빌었건만, 목표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청객을 자극하는 형세로 상황이 변하자 더는 지켜볼 수 없어 튀어나온 우석이었다.
“잠깐 볼일 보는 사이에 뭔 일이냐, 이게. 팔은? 괜찮냐? 저 차에 부딪혔다며?”
“이 새끼가···.”
우석은 눈썹을 위아래를 격하게 움직이며 신호를 보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단유에게 등을 돌린 채였기에 열심히 입술을 달싹거렸더니 다행히 광덕이 그 신호를 읽은 모양이었다.
“아우, 팔이야. 너무 흥분했나보다, 팔을 들 수가 없네.”
우석은 광덕의 어깨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는 아주머니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확인했다.
“이봐요, 아줌마! 거기서 계속 지켜만 볼 거예요?”
“네? 아니, 그게···.”
“아니, 애가 지금 아줌마 때문에 날벼락을 당했는데, 어디 불구경해요? 정말 경찰서 불러요?”
“아니, 그러니까···.”
“내가 저 뒤에서 다 봤거든? 여차하면 정말 경찰서 같이 가?”
“저기요, 잠시만요. 제가 저기 지금 돈이 없어서···.”
“설마 지금 뺑소니라도 칠 생각이야? 아줌마? 나 아줌마 차 번호 외웠어! 이대로 병원 가서 입원하고 경찰에 신고 때리면 어떻게 되는 줄 몰라? 야, 많이 아파?”
“어? ···아이고, 아이고.”
팔꿈치를 부여잡고 곡을 하는 덩치.
단유는 기도 차지 않는다는 얼굴로 두 사람의 연극을 지켜보았다. 아니 세 사람. 두 사람은 전문 배우인데, 한 사람은 관객 참여로 무대에 오른 일반인. 이런 어설픈 연극에도 속아 넘어가는 걸 보면 저 아주머니도 참 갑갑하다.
“여보세요?”
단유는 지루한 연극에 함께 어울리고픈 마음이 없었기에 다시 통화를 걸었다.
―112, 경찰입니다.
“여기 보험사기를 치려는 일당이 있어서요.”
“야, 이 새끼야! 전화 안 꺼?”
“들리시나요?”
―장소가 어떻게 되시나요?
“장암 아파트 앞인데요.”
단유는 가볍게 물러서며 자신을 덮치려는 덩치의 주먹을 피했다. 그 와중에도 핸드폰으로는 주변의 건물과 눈에 띄는 가게 상호명을 언급하여 장소를 알렸다.
“개새끼야!”
어느새 엄살 피우는 것도 그만둔 덩치가 다시 단유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물론 느려터진 주먹에 맞아줄 단유는 아니었다. 굳이 맞상대할 필요도 없어 가볍게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주먹을 피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일방적인 공격, 그러나 맞지 않으면 소용없으니 결국 힘만 빼는 덩치였다. 그러나 이번엔 덩치 혼자가 아니었다.
“잡아!”
덩치가 내지르는 고함에 노란 머리 우석도 결국 참전을 결정했다.
“에이 씨!”
우석이 단유의 허리를 껴안으려 팔을 벌리고 달려드는데 단순히 뒤로 물러서는 것만으로는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전후좌우가 모두 트인 이곳에서 피할 곳이 어디 뒤만 있을까? 팔을 쳐내며 옆으로 몇 스텝 걷는 것만으로 우석의 태클을 피해낸 단유는 마치 준비되었던 것처럼 허리를 숙여 머리 높이로 날아오는 주먹도 피해냈다.
힘은 좋을지 몰라도 그저 힘만 믿고 붕붕 주먹을 날리는 덩치의 느린 주먹은 물론이고, 태클 실패로 바닥을 구른 우석이 뒤늦게 일어나 날리는 발길질도 피하려고 마음 먹으면 못 피하는 게 힘든 위협들이었다.
사실 맞상대를 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굳이 맞부딪히지 않아도 될 일에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곧 경찰이 올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다만 이 사태를 바라보던 아주머니의 다음 행동만큼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부웅.
‘응?’
갑자기 들려오는 차의 엔진 배기음에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어? 도망간다?”
우석의 말이 없더라도 급하게 가속 페달을 밟아 큰길로 빠져 나가는 자동차의 뒷모습은 분명 도망이었다. 아무래도 곧 경찰이 들이닥칠 거란 사실과 ‘보험 사기’라고 줄창 외쳐댄 단유의 말 때문에 상황을 모면하려 도주하는 것이리라.
“아, 씨발. 별 미친 새끼 때문에 헛짓했네.”
“안 되겠다. 내가 곧 죽어도 너는 한 따까리 하고 죽을란다.”
악기가 가득 찬 눈으로 단유를 돌아보며 다시 달려들려는 덩치가 첫 발을 떼려는 그 순간.
―쾅!
큰길 쪽에서 커다란 충돌음이 들려와 또 다시 세 사람이 움직임이 멎었고. 동시에 아주머니가 차를 몰고 사라졌던 방향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흰색 중형차는, 멀쩡하게 달아났던 것과 반대로 도로 위를 구르며 등장했다. 차량 앞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진 채로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아주머니의 차량에서 깨진 유리 조각들이 흩뿌려졌다.
당장 눈앞에서 두어 번을 구른 승용차는 위아래가 완전히 바뀐 채로 도로 위에 멈춰섰다. 마치 뒤집힌 거북이마냥, 바퀴 네 짝이 모두 하늘을 향한 채로 말이다.
“씨발.”
거의 습관화 된 욕지거리를 입에 담으며 두 사람은 사고가 벌어진 곳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단유는 그런 그들을 그대로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어딜.”
단유는 가까운 곳에 있던 광덕의 뒤를 잡았다.
“이거 놔!”
목덜미의 옷깃을 붙잡은 단유의 손을 뿌리치려 광덕이 팔을 휘두르는데, 단유는 그 팔을 빈손으로 붙잡은 뒤 힘껏 잡아당겼다.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는 광덕. 바닥에 널브러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지만 단유는 똑같이 힘으로 상대를 흔들어 그가 일어서지 못하게 막았다. 팔을 꺾어 광덕을 바닥에 엎어놓자 광덕은 버둥거리며 악을 썼다.
“놔, 놓으라고! 새끼야! 죽여버리기 전에 놔, 이 새끼야!”
무릎으로 상대의 허리를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한 뒤 바라보니, 덩치의 동료란 녀석이 있는 힘껏 팔을 저으며 달아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지만, 그도 달아나게 둘 생각이 없었다.
우석이 ‘엿 됐다’고 생각하며 발을 놀리던 그때, 뒤로부터 불어닥친 광풍에 몸이 살짝 밀리나 싶더니 이내 시멘트로 포장된 바닥 위로 엎어지고 말았고, 그 와중에 무릎을 바닥에 심하게 찧으며 우석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단유는 다시 바람의 방향을 바꿔,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도록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우석은 그저 욕과 비명을 섞어 밤의 정적을 방해했지만 단유는 개의치 않았다.
다행이라면 단유가 신고했던 경찰이 이른 시간에 도착했고, 단유는 경찰이 바닥에 쓰러진 우석에게 다가갈 무렵에 바람의 마법을 해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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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내가 일방적으로 맞았다니까!”
덩치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단유를 손가락질하며 파출소가 떠나가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광덕 옆에 앉은 우석도 씩씩거리며 자신도 당했다고, 억울하다며 조서를 받는 경찰에게 하소연을 하느라 밤늦은 파출소 안은 떠들썩했다.
“거 좀 조용히 해요.”
단유와 마주하고 있던 경찰이 책상을 두드리며 두 사람을 조용히 시켜보지만,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면 정말 억울한 이들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신고를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요, 일단 저쪽 이야기도 있으니까 일단 폭행 쪽으로 처리를 해야 될 것 같네요.”
“폭행이요?”
“저희가 출동했을 때, 한 사람은 바닥에 넘어져서 움직이질 못하고 계셨고 한 사람은 선생님이 위에서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게 왜 폭행이 됩니까?”
“때려서든, 밀어서든 상처를 입히면 폭행이에요. 뭐, 일단은 이렇게 입건을 해도 정확한 사실관계는 위에서 다시 따져볼 겁니다. 그런데 진술하신 대로면 일단 선생님은 맞지는 않으셨다는 거잖아요?”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때린 게 아니라 제압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건 지금 바로 확인이 어려우니까 서에서 정확하게 조사를 할 거거든요?”
“그럼 지금 경위님 말씀으로는 제가 보험 사기를 치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그냥 지나갔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뇨, 저 사람들이 진짜로 보험 사기를 친 거라면 그 자리에서 신고를 주신 건 당연히 옳은 행동이시죠. 하지만 지금 상황이 좀 묘하잖아요? 사기를 쳤다고 하지만, 정작 피해자라고 지목된 사람은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간 상황이라 증언이 안 되고요. 저 사람들도 일단은 그 사실은 부정하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사실 확인이 안 되죠. 그리고 현장에서 목격된 바로는 세 분만 계셨던 데다가 그쪽 분은 맞은 적이 없다고 하시고, 저쪽 분들은 맞았다고 주장하시니까요.”
“······.”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조사해서 밝혀지는 대로 혐의없음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 당장은 피해자랑 가해자가 나뉘어져 있는 데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나오니까요. 저희들로서도 일단은 그렇게 처리해서 넘겨야 하거든요. 법이 좀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
“요컨대 저 사람들이 보험사기를 하려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네요?”
“아뇨, 저분들도 일단 보험 사기로 입건은 할 겁니다. 제 말은 저희 파출소에서 당장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뜻이죠. 일단 서로 가서 다시 조사에 응해주시면 아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처리가 될 겁니다.”
단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전화 한 통 해도 되나요?”
“네, 그러시죠.”
여전히 적반하장으로 악다구니를 쓰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덩치와 그의 동료를 흘깃 바라본 단유는 핸드폰에서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네. 제가 좀 난처한 상황에 처해서요. 지금 파출소에 있는데, 경찰서로 가야 한다네요. 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단유의 통화는 몇 마디 말만 이어진 후 바로 끝이 났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간단한 조서를 정리하던 경위가 힐끔 단유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기에는 그저 주변에서 보기 흔한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과연 누구에게 전화를 한 것일까?
그 의문은 얼마 후 금방 풀렸다.
정장을 갖춰 입은 세 사람이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단유를 보더니 그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단유가 먼저 일어서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해요, 늦은 시간에.”
“아닙니다. 고객이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올 준비가 되어 있어야죠.”
단유와 정장을 입은 세 남자의 만남은 파출소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참 시끄럽던 파출소가 잠시 조용해진 틈에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파출소장을 찾아 명함을 건넸다.
“변호사?”
그것도 꽤나 유명한 로펌 변호사였다. 전혀 변호사를 부를 것 같지 않은 복장의 단유였는데, 이 늦은 시간에 이렇게 빠르게 달려와 줄 수 있는 정도의 변호인, 아니 변호단을 거느린 사람이었다니. 파출소장은 새삼 그의 신분이 궁금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변호인단의 대표, 라고 생각되는 중년의 변호사가 물었다.
“저희 고객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어, 그러니까···.”
파출소장이 눈짓으로 단유의 조서를 받던 경위를 불렀다. 경위는 난감하다는 듯 단유와 파출소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