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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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의 대답에 어이없어 하던 선생님은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강사의 시선을 느꼈다. 과연 초임 강사의 대답에 어떻게 대꾸할 것인지 궁금해하는 눈빛들. 여기서 잘못 대처했다간 다른 강사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이봐요, 쌤. 지금 내가 한 말이 그 말이 아니잖아요. 말꼬리나 붙잡고 꼬박꼬박 말대답이나 하고 말이야.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몰라요? 애들한테 낮잡아 보이지 말란 거잖아요? 쌤 하나 때문에 여기 전체 쌤들이 우습게 보이면 좋아요? 네?”
단유는 나서려는 하은을 계속 눈짓으로 말리며 차분히 대답했다.
“지위가 권위를 보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권위는 존경에서 비롯됩니다. 상대가 누구든, 존경을 받는 이라면 권위는 자연스럽게 따릅니다. 역으로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권위도 없는 것이지요. 만약 존경이 없는 이가 권위를 조장한다면, 그것은 권위가 아니라 권력이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물론 권력이라 것에 대해 저마다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권력을 계급화된 서열 하에서 아래 계급에게 강제를 가하는 행위로 규정합니다.”
“지, 지금···누굴 가르치려는 거예요, 뭐예요!”
“건방졌다면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저 제가 권위가 없다고 말한 이유를 설명해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저는 이제 갓 학원에 들어와 겨우 2주 정도를 강사로 지냈습니다.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준비도 되지 않았고, 그들이 절 존경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 판단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의 존경을 바탕삼아 발생해야 할 권위가 제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학생들이 저의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통념상으로도 그들과 저는 나이 차이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제 개인적 가치관에서도 학생들을 아래로 보지 않기에 당연히 그들과 저 사이에는 권력구조가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여타 무의미한 요소를 소거하면 학생들과 저 사이엔 오로지 학원이란 공간에서 주어진 의무만이 남습니다. 저는 ‘강사’라는 직함을 달고 학생들에게 교습을 해야 할 의무, 또 학생들은 저의 ‘교습’에 따라 배움을 따를 의무 말이지요.”
“이봐요, 김 쌤. 보자보자하니까···어디서 잘난 척이에요, 지금! 그럼 뭐, 지금 여기 있는 쌤들은 응? 없는 권위를 내세워서 꼰대질이라도 한다는 뭐, 그런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여기 계신 분들이야 오래 교단에 서시며 학생들을 가르쳐 오신 분들이니 분명 권위가 있으실 겁니다. 그저 저 개인에게만 해당 되지 않는다는 걸 말씀드리려던 것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쌤, 그만 진정하세요.”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강사는 피가 마르는 기분을 느끼며 선배 강사를 말려보려 했지만, 이미 선배 강사는 꼬박꼬박 대드는 단유가 괘씸해서 참을 수 없었다. 만약 여기서 먼저 꼬리를 내리면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을 것만 같아 더 멈출 수가 없었다.
“아뇨, 놔봐요. ···이봐요, 쌤. 내가 지금 쌤이랑 네? 말장난이나 하자고 지금 여기 있는 줄 아세요? 쌤 혼자 잘난 척 똑똑한 척 하면 다냐고요? 그리고 설령 쌤 말이 맞다고 쳐도, 애들이 그걸 알아요? 한번 우습게 보이면 계속 우습게 보이는 법이에요! 쌤이 우습게 보이면 우리 전부 다 우습게 보인다고요!”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만, 전 그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멍청하지 않으니까요.”
“하, 나, 참···지금 그걸 말이라고···.”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도,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압니다. 사회 경험이 어른들에 비해 부족하고, 가진 지식이 모자라다 판단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건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 아이들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수준은 될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분 다 그만하세요.”
단유의 차분한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상대에 선 강사의 얼굴이 더 이상 타들어 갈 곳이 없을 정도로 붉어진 탓에 하은이 결국 나섰다. 하은이 중재에 나서자 곧 눈치를 보던 선생님들도 단유와 마주 선 강사를 적극적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김단유 쌤은 앞으로 되도록 선배 강사 분들께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네.”
“그리고 양 쌤도 그만 화 푸세요. 지금 이게 그리 화를 낼 일은 아니죠. 다른 건 다 떠나서 학생들이 쌤들을 우습게 볼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만약 그런 문제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앞으로 저희 학원에 다니지 못할 겁니다. 그런 학생이 아무리 많아도 학원, 무너지지 않습니다. 저희 학원에 오려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들 아시잖아요? 그 말은 이미 여러분들의 실력과 명성이 널리 퍼졌다는 말이고, 김 쌤의 말처럼 여러분의 권위는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란 뜻입니다. 그러니 양 쌤도 진정하세요.”
“그···.”
다시 발끈하려는 선배 강사를 옆에서 제지하는 바람에 결국 입술 밖으로 터져 나오려던 말들을 억지로 삼켜야만 했다. 그녀는 씩씩거리면서도 단유를 노려보는 눈을 떼지 못했다. 단유는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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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다 하니까, 속이 후련해?”
“후련할 게 뭐 있나요. 그냥 제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요.”
단유는 캔커피를 똑 따서는 하은에게 건넸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은 채로 단유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뻣뻣하게 굴면 미움받아.”
빌딩 숲 위로 점차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단유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제가 비록 강사를 하고는 있지만, 전 오래전부터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굉장한 책임감과 의무가 동반되어야만 하고, 그것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만이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가치관을 갑자기 꺾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 교사가 되고 싶은 거니?”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그런 교사가 되지 못할 거예요.”
“왜?”
“전 그런 책임감을 가지기엔 아직 모자란 점이 많아서요. 부담스럽거든요.”
“되고는 싶은 거네?”
눈을 반짝이며 단유를 바라보는 하은을 힐끔 바라본 단유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어두워져 가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한참 뒤, 확고한 의지를 갖게 된다면 생각해보도록 하죠.”
“너라면 분명 학생들도 좋아할 거야. 너 같은 생각을 가진 교사라면 배움을 청할 학생도 많을 거고. 아마 많은 학생들이 따를 거야.”
단유 본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사랑받는 따위의 모습을 굳이 바라지 않음을 알지만, 그래도 하은은 은근히 단유가 그런 평판을 받는 사람이길 바랐다. 그게 어릴 때부터 단유를 지켜봐 온 하은의 솔직한 심정이고 욕심이었다.
“저만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데요? 다 선생님 덕분인데.”
“나?”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교사의 표본이시죠.”
“갑자기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흐르는 거지? 오글거리게?”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훌륭한 교사세요.”
“사족이 붙지만 않았다면 며칠 동안 행복했을 뻔도 했는데 아쉽다.”
하은이 단유의 등을 팡팡 두드려주었다.
“그래도 이제는 선생님들과 마찰이 벌어지지 않게 좀 더 주의해줬으면 해.”
“알겠어요. 걱정 안 끼쳐드리도록 할게요.”
“걱정 안 했어.”
단유는 흐뭇하게 웃는 하은의 미소를 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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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단유에 대한 별다른 소문이 돌지 않았다. 아니 뒤로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단유를 음해하거나 앞에서 방해하는 수준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김 쌤.”
교무실에서 교재를 정리하던 중 한 강사가 다가와 단유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네?”
“같이 커피나 한 잔 할까?”
단유를 데리고 나온 강사는 단유와 마주한 자리에서 단유를 격려하기도 했다.
“난 쌤 이야기 듣고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학원 강사로 처음 발을 들이밀었을 때는 나도 쌤처럼 생각했었더랬지. 그런데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었나 봐. 그래서 어느새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래로 내려갔었음을 새삼 깨달은 거야. 쌤 덕분에. 고마워, 일깨워줘서. ···아냐 아냐. 죄송하다니? 오히려 내가 미안하고 고맙지. 정말이야. 이래서 항상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고 하는 거구나, 라고 느꼈어. 너무 오래 고이면 생각도, 행동도 오래되어 썩을 수밖에 없구나, 라고···. 뭐, 아무튼 난 젊은 생각을 가진 쌤과 함께 해서 좋았어요. 될 수 있으면 더 오래 함께 일하면서 가끔 같이 술도 한잔 하고 그러면 좋겠네. 쌤은 술 잘해요? 못 해? 못 해도 괜찮아. 남자끼리 만취하도록 마실 일도 없는걸. 그냥 수업 다 끝내고 입가심하는 정도면 되는데. 말 나온 김에 오늘 술 한잔 할까요?”
호의적인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불편한 시선으로 단유를 멀리하는 선생님들도 없지 않았다. 단유가 선배 강사를 대하는 태도에 불만을 가진 이도 있었고, 단유가 아직 현실을 모른다고 꼬집는 이도 있었다.
“저 혼자 옳은 척, 바른 척 하는데···난 좀 아니였다고 봐요. 그렇잖아요? 그런 말은 누가 못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그런 생각 하지.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똑똑하다고? 그래서 다 안다고? 그건 정말 아니라고 봐요. 다들 경험해봤잖아요?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죠. 영리한 애들은 영리하죠. 그런데 그 영리함이 좋은 쪽으로 발휘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니까. 그쵸? 그러니까요. ···애들이 그런 쪽으로는 얼마나 머리를 잘 쓰는데. 선생을 선생으로 안 보고 자기 발밑에 두려 한다니까. 게다가 학원 강사라고 무시하는 애들도 있어요. 그쵸? 그래서 특히 학원 강사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잘못하면 애들한테 끌려다니기만 하다가 펜 놓아야 하는 수도 있어. 내가 예전에 얘기 안 했나? 어떤 선생님은 하도 짓궂은 아이들한테 당해서 스트레스로 정신과 진료도 받았다니까? 응! 정말로! 어? 잔이 비었네?”
그러나 그일 이후로 교무실에서 자리를 지키며 선배 강사들에게 예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이니 대놓고 그를 탓하거나 시비를 거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임시’라는 생각도 한몫했을지 모르나, 덕분에 평온한 학원 강사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단유도 조금씩 강의에 보완점을 찾아 수정하는 모습으로 열의를 보이니 학생들 사이에서도 단유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쌤!”
“네?”
“쌤은 왜 방송 안 해요? 쌤 스타일은 딱 인강 스타일인데.”
“제가요?”
“네! 쌤 인강하면 진짜 인기 많을 거예요. 카메라빨도 좋을 거고. 그치?”
“응, 응.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까르르 웃는 여학생들에게 감사의 말로 수습하는 경우도 가끔 생겨나기 시작했고,
“쌤.”
“네?”
“쌤 계속 학원 나오시면 안 돼요? 쌤 덕분에 수학이 재미있어졌어요. 쌤한테 배우면 수학 점수도 많이 올라갈 거 같은데.”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점수는 오를 거예요.”
단유에게 계속 학원엘 나와달라고 조르는 아이들도 더러 있어 흐뭇하게 웃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단유가 마지막 수업을 하게 된 날.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다음 주부터는 김연선 선생님이 다시 나오실 거예요. 그동안 부족한 강의 듣느라 고 많으셨을 텐데 꾹 참고 들어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아니에요, 쌤!”
“가지 마세요, 쌤!”
앞에서 스스럼없이 장난끼 넘치는 말을 건넬 정도로 아이들도 단유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단유도 마음의 부담을 덜고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둘러 보았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도 없는 제가 괜히 나서서 여러분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한달이니까 괜찮겠지, 라고 가볍게 나선 저를 많이 탓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니, 많이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좋았어요, 쌤!”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무사히 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수업을 잘 따라와 준 여러분들 덕택이에요. 부디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하셔서 좋은 성적 거두시길 바랍니다.”
“네!”
단유는 전에 없이 활짝 웃으며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미소를 유지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이니까 조금 더 이야기해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