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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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적으로는 여러분이 지금껏 배운 것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집합과 확률, 함수, 극한, 급수의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조금만 공부하면 얼마든지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개념 공부를 하기도 좋고 응용력도 키울 수 있겠죠. 응용이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수능에선 이런 응용력을 시험하는 문제들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러니 이 정도 응용력은 연습해둔다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겠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싶어 안달 난 학생들의 시선만 가득한 가운데, 단유는 초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수학 그 자체에 대한 문제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지금 제게 수학을 배우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도대체 왜 저런 걸 배워야 하는 거지? 단지 수능에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배우는 건 아닐까? 어차피 나중에 취업을 하게 되면, 수학과가 아닌 이상은 이런 난이도의 수식은 볼 일도 없을 텐데, 라고 말이죠. 확실히 주변의 어른들 중에는 이런 무슨 정리, 무슨 가설 이러면서 수학 공식을 줄줄 외고 다니는 분들이 없겠죠.”
확실히 그렇다, 고 아이들은 생각했다. 수학이라고 해봐야 결국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의 사칙연산 정도만 알면 살아가면서 불편함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급수, 극한, 사인, 코사인, 탄젠트와 같은 삼각함수 따위 알아서 어디에 쓸까? 설령 건축과나 경제학 쪽을 가더라도 계산기와 컴퓨터가 있는데 노트를 펼치고 머리를 쓸 이는 없을 것이다. 수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우지만 굳이 몰라도 상관없을 과목, 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귀에 단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수학이 얼마나 많이 이용되는지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단적으로 방금처럼 제가 가정했던 일들, 그런 일상적인 상황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계산해서 풀이하는 일들이 수없이 많이 반복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쉽게 아시게 될 겁니다. 사실 우리 행동의 전반에, 수학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단지 스스로가 그것을 수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체감을 못 하는 거죠. 혹은, 예시로 든 그 정도는 방금 제가 말한 수식을 모르더라도 본능적인 감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고 반론을 펼칠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당장 공부를 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알고 푸는 문제와 감으로 푸는 문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요.”
“쌤!”
한 남학생이 단유를 불렀다.
“굳이 그렇게 머리 아프게 계산하며 살아야 하나요?”
“물론, 그러지 않아도 되죠. 그럼 똑같이 묻죠. 굳이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나요? 대학이 중요하다고요?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요?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기업에 취직해야 한다고요? 그래야 삶이 풍족해진다고요?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앞서 말씀드린 내용 또한 중요합니다. 삶은 수많은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라고 하죠? 어떤 선택지를 고르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고들 하죠? 선택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런 선택을 감으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철저히 계산하고 정확한 답을 찾아 선택하시겠습니까?”
돌아보니, 몇몇은 단유의 이야기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몇몇은 흥미가 없다는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그것까진 단유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죠. 이 학원엘 다니는 목적. 당연히 수학만을 공부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닐 겁니다. 여러 과목을 배워 공교육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 넣기 위함이지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요. 이것 역시 제 식대로 표현하면 미지항에 들어갈 임의값의 분포도를 줄여 확정값의 추정치를 높이는 것이지요.”
단유는 교탁 위에 두 손을 올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요약하면, 수학은 논리입니다. 여러분은 수학을 배우는 게 아니라 논리를 배우는 것이고, 그 논리가 여러분의 수학적 능력을 고양할 뿐 아니라 다른 학문의 배움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길게 보면 여러분의 삶과 인생 전반에 걸쳐 수없이 겪을 선택지 앞에서도 빛을 발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저는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 어떤 외적 이슈들은 무의미합니다. 전 그저 제가 가진 지식과 논리의 가치를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그것이 여러분들의 시험, 더 나아가 삶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삶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절대 저처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바도 아닙니다. 다만 이건 공부입니다. 궁리하고 추구하여 삶의 보탬이 되길 바라는 공부입니다. 거기서 무엇을 얻어가느냐는 취사선택이죠. 그리고 저는 임시라도 교사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단 하나의 지식이라도 올곧게 전달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주는 힐끗 옆자리에 앉은 한나를 바라보았다.
‘쯧쯧.’
그새 또 뻑이 간 얼굴이었다. 짐작컨대 분명 교탁에 선 단유의 말 중 반도 이해 못 했을 건데도 말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런 애니까.
진주가 팔꿈치를 툭툭 건드리자 한나가 진주를 돌아보더니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멋있지 않니’라고 말하는 웃음이었다. 모자란 친구다.
“더 질문 있나요?”
장황하게 이어진 단유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지쳐버린 학생들에게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성욱의 달아올랐던 치기도 시간이 지나며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으니 더 이상 소란은 없었다.
“그럼 이야기 나온 김에 베이즈 정리를 한 번 증명해보고 갈까요? 꽤 재미있을 겁니다.”
단유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다시 분필을 집어 들었다. 등돌린 단유의 뒤에서 몇몇 아이들이 성욱을 향해 비난의 시선을 날렸다.
‘너 때문이야!’
조용해진 교실에는, 어쩐지 신이 난 단유의 목소리만이 유쾌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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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 얼굴 되게 신나 보인다? 누구는 하루가 다르게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오는데.”
모처럼 네 사람이 함께 주방 식탁에 둘러앉아 맥주를 나눠 마셨다.
“야, 무슨 뜻이야? 마치 억지로 결혼하는 사람 같다, 너?”
상미가 명수의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내니, 명수가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아니긴, 뭐가 아냐? 싫으면 지금이라도 때려치워.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랬는데, 관둬. 우리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
명수는 누명 쓴 사람처럼 억울한 표정이 되어 상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또 왜 그래? 아이, 참.”
“너만 스트레스 받니? 나도 스트레스 받아. 피곤하다고.”
어깨를 흔들어 명수의 손을 뿌리친 상미가 짐짓 토라진 척 시늉을 하니, 하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이제 그만 싸울 때도 됐잖니? 도대체 왜 그러니? 내가 꼭 한 소리를 해야 그만 둘래? 응?”
“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선생님.”
하은은 부리부리한 눈을 만들어 노려보는 시늉을 하고 으름장을 놓으니 금방 사과가 튀어나왔다.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하은.
“조금만 참아. 이제 얼마 안 남았잖니? 끝까지 마무리 잘하자. 응? 그리고 친구처럼 지내는 건 좋지만, 그래도 서로 배려하고 지내자고.”
“넵! 알겠습니다!”
명수가 씩씩하게 외치며 잔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건배하죠? 자, 단유 너도.”
단유는 씩 웃음을 지으며 명수의 너스레에 어울려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은도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학원에 나오기 전보다 이후가 훨씬 보기 좋았다.
그래서 더 근심이었다. 과연 학원에서 퍼지고 있는 소문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야기를 하는 게 옳은 것일까?
“선생님, 무슨 걱정 있으세요?”
마카다미아를 하나를 집어 먹으려던 상미가 하은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고 물었다.
“응? 별일 아냐.”
하은은 손을 내저어 보이며 대신 잔을 들어 건배를 유도했다.
“자, 건배!”
피곤하다며 먼저 자러 들어간 두 사람을 뒤로 하고 단유와 하은만 주방에 남았다.
“제가 정리할게요.”
“아냐, 잠깐만 단유야.”
“네?”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하은이 알아서 처리해도 될 문제가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역시 당사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다른 사람들에게 뒷이야기를 듣게 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도 모른 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당하지 않은 대우를 받는 것도 옳지 않고.
“그래서 아까 계속 고민하고 계셨던 거네요.”
“음. 넌 어떨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요즘의 넌 꽤 생기가 넘쳐나 보이거든. 그래서 욕심 같아서는 그런 소문 따위 무시하고 계속 일할 수 있게 하고 싶지만···.”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사실 오늘 그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요.”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단유는 다이아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하은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맥주 한 캔을 더 따서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애들도 다 안다는 이야기네.”
“선생님이 말한 거랑은 조금 다르지만, 대충 학원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겠죠. 저 때문에.”
“그게 어떻게 너 때문이야? 뒷담화나 까는 사람들이 문제고, 그걸 또 애들한테 들킨 사람이 문제지. 들켰는지, 일부러 알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에휴.”
하은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튼, 넌 어떡할래? 불편하면 그만둬도 괜찮아.”
“아니요. 계속할게요.”
“그래? 그럼 내일 교무회의 때 선생님들한테 이야기할게. 뒤에서 소문 만들어 내지 말라고.”
****
다음 날, 단유까지 참여한 교무회의에서 학원 내에서 다뤄야 할 주요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마지막 즈음에 하은이 나서서 단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입니다. 그러니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이야기는 삼가시기 바랍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내 거론하는 하은의 말에 이해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요, 쌤. 아무리 임시직이라도 그렇지만 여기 선배 강사들이 많은데 겉도는 건 좀 문제 아닌가요? 오해가 생긴 부분이야 어떻게 한다 쳐도 애초에 이런 문제를 만든 건 저 쌤 때문인 거 아닌가요?”
옆에 앉은 강사의 만류에도 한소리 해야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은 이의 목소리는 그대로 모두에게 전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뒷자리에 앉아 있던 단유에게 쏠리자, 하은이 얼른 나섰다.
“그건···.”
그러나 단유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하은의 말을 막았다.
“죄송합니다.”
단유는 교무실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을 향해 허리 숙여 사과했다. 선생님들과 어울리기 싫어서가 아니라, 실은 답답한 공기를 참기 힘들었던 탓이라는 변명은 하질 않았다. 어떤 이유로 몇 달 동안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인지를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 더 이상 하은이 자신을 위해 변명하지 않도록 만들고 싶었다.
“제가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아 여러 선생님들께 불편을 끼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흠흠, 뭐, 일단은 알겠는데요. 그래도 말 나온 김에 한마디만 더 할게요. 들어보니 어제는 쌤이 들어갔던 반에서 싸움이 날 뻔도 했다던데 맞나요? 도대체 오죽하면 아이들이 교사가 있는 곳에서 싸움을 벌이려고 했겠어요? 그건 쌤이 교사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세우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죄송합니다.”
“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자칫하면 여기 계신 쌤들 모두의 권위가 아이들한테 우습게 여겨질 수 있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부디 주의해주세요.”
선배로서의 충고를 건넸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강사는 턱을 치켜들고 단유의 대답을 기다렸다.
단유는 강사에게서 시선을 떼고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강사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비슷하게, 마치 자신의 권위가 위협받았던 것처럼 느끼며 이에 대해 사과를 독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이런 집단의 이해와 감성은 비교적 정확히 집어내는 단유였으니.
“여기 계신 분들이야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으시는 분들이시니 분명 그런 권위가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런 권위가 없습니다.”
단유의 대답을 기다리던 강사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서렸다.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지금?”
앞서 단유를 질책했던 강사가 일어서서 따졌다.
“지금 그게 교사로서 할 소리예요? 아니면 자신이 고작 학원 강사라서 권위가 없다는 소리예요, 뭐예요?”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 말은 저라는 개인에게 그런 권위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단유의 담담한 고백에도 강사는 어이없다는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지금 쌤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 본데, 물론 쌤이 우리랑 같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서 교단에 섰으면 적어도 학생들에게 우습게 보이지는 말아야죠! 그건 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사 전부의 위신이 걸린 문제란 말이에요! 게다가, 지금 개인의 문제니까 아이들이 싸움을 일으킨 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란 거예요, 뭐예요?”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언쟁이 있었지만, 그걸 싸움으로 몰고 가선 안 됩니다.”
“저기요, 쌤. 지금 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요? 지금 쌤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그냥 회피하는 거예요. 아무리 초보 운전자라도 사고를 내면 운전자 책임이에요. 학원 강사직이 초보라도 교단에 서면 그 순간 교실의 일들은 모두 쌤의 책임인 걸 몰라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그렇지···.”
힐난의 눈초리에도 단유는 꿋꿋이 대답을 이어갔다.
“제 책임이 아니란 말이 아닙니다. 교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질 테지만, 적어도 사실 관계는 분명히 하자는 뜻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것은 분명 언쟁이었고, 몇 학생 간에 갈등이 있었지만 그건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다툼에 불과했습니다. 만약 선생님의 말처럼 그게 싸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격했다면, 해당 학생에 대한 징계가 따라야겠지요. 저는 그런 징계가 있어야 할 정도의 다툼이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