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90화 (790/956)

HIS(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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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적응 좀 한 거 같은데, 다른 수업도 맡지 않을래?”

“권유인가요? 권유의 형식을 띤 명령인가요?”

“단유야. 그렇게 깐깐하게 따지지 말자. 응?”

“네. 알겠어요.”

단유 이전에 맡고 있던 선생님이 담당하던 수업은 총 4타임의 수업이었는데, 이 중 1타임만을 단유가 전담했다. 이유는 그 한 타임이 최고 등급 반이었는데, 다른 반을 맡던 강사들이 부담스러워한 탓이었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원체 욕을 먹는 반이라 다른 강사들이 맡길 부담스러워했거든.”

“그런 면이 있다면 확실히 자리를 비운 선생님을 기다릴만 하겠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네가 이대로 쭉 맡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네가 원하지도 않는데 굳이 계속 맡기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죠.”

단유는 쉽게 동의했다. 지금의 일이 딱히 재미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고 단지 하은을 돕기 위한 마음으로 나섰을 뿐인, 그야말로 임시직일 뿐이었다.

“다른 반을 대신 맡아줄래? 지금 대리해주시는 강사분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말이야.”

“4타임 정도면 크게 무리는 없을 거예요.”

“고맙다, 단유야.”

****

일요일을 제외하고 6일을 강의하는 시간표가 한 번 돌면서, 단유는 3타임의 수업을 더 맡게 되었다.

비록 단유가 한 타임만 맡아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학원에 나타난 새로운 강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퍼진 상태였고, 건물 내 복도에서 오가다가 마주치기도 하면서 단유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 있었던 상태였다.

“그 반 애들한테 들었는데, 서울대 물리학과 나온 쌤이래.”

“근데 왜 수학이래?”

“그야 모르지.”

“실력은 좋대?”

“처음엔 되게 의심스러웠는데, 그리 나쁜 편은 아니래. 재미있는 수업은 아니고 대신 수업 내내 문제만 푸는데, 거의 기계 수준이라네?”

“기계? 그 얼굴에?”

“어떤 애들은 사이보그 같다네?”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만 하던 사람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큰 키에 다부진 몸매를 가진 단유를 보면 사실 모범생이나 선생님의 이미지를 가지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그런 첫인상이 처음 맡았던 반의 학생들에게 의심을 사도록 했지만, 일주일간의 수업에서 단유의 실력은 입증이 되었다.

둘째 주부터 스케줄이 확장되며 다이아반 외의 반에도 들어가게 된 단유는, 처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미건조한 인사로 첫마디를 뗀 후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쌤!”

교실 중앙 부근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번쩍 손을 들었다.

“네?”

“몇 살이신데요?”

“27살입니다.”

“동안이시네요?”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오는 교실. 단유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고맙습니다. 그럼 수업 계속 할게요.”

돌아서려는 단유를 누군가가 또 불러 세웠다.

“쌤!”

“네?”

돌아보니 익살 궂게 생긴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대부분이 저런 표정이었다.

“서울대 물리학과 나오셨다면서요?”

“네.”

“거기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공부하면 됩니다.”

―우와.

감탄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감탄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노하우요?”

단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 한 학생을 바라보자, 학생이 되물었다.

“특별히 공부하는 방법 같은 거 없어요?”

“전 교과서만 봐서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학원은 다닌 적 없으세요?”

“없습니다.”

“그럼 왜 학원쌤이 되신 거예요?”

학원도 다녀본 적 없는 사람이 왜 학원 강사가 되었냐는 일차원적 질문에도 단유는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도와달라고 해서 임시로 도와드리는 거예요. 3주 뒤에 김연선 선생님께서 돌아오실 때 까지요. 그럼 수업할게요.”

돌아서는데, 또 어떤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쌤!”

“네?”

“서울대 들어간 후기 같은 거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나는 이렇게 공부했다, 라거나.”

단유는 교재를 내려놓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반이 다르니 분위기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층의 반을 맡았을 때는 업무적(?)으로 건조하게 상대할 수 있어 편했는데, 이 반의 경우에는 상당히 사사로운 질문들이 이어져 수업을 진행하기가 곤란했다. 오늘 진행해야 할 수업의 진도가 있고,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조금 무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입으로는 학생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책을 볼 때, 공부를 할 때는 거기에만 몰두하는 편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다른 것에 신경을 쓰면 기억의 효율이 떨어지니까요.”

다들 바보만 있는 게 아니어서 단유의 답변이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하란 소리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또 얌전히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아이들이 아니었다.

다시 교재를 들어 올리고 돌아서려는 찰나 앞서 질문한 학생이 외치듯 말했다.

“공부 잘하는 비법 좀 알려주세요. 네?”

딱히 수업을 받기 싫어서, 라고 단정 지을 것도 아니다. 일단은 교단에 선 이가 우리 나라 최고 명문대라 일컫는 대학교를 나왔기도 했고, 그것은 현재 수험생이라는 입장인 대다수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에게 공부에 대한 특별한 비법, 노하우를 들을 기회는 그렇게 흔치 않다. 더구나 혹시라도, 정말 만약의 경우지만,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로부터 들은 공부의 비법이 기가 막히게 자신한테 들어맞아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면 기꺼이 시간 내어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생산적인 이유보다는 그저 흥미 위주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를 듣고 싶어하는 이유가 더 큰 게 사실이다. 마치 토크쇼 나온 연예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다들 듣고 싶어요?”

“네!”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한 손에 들고 있던 교재를 교탁 위에 내려놓고 덮었다.

단유는 교탁을 벗어나며 한 걸음 더 가까이 학생들에게로 다가갔다. 교실 전체를 아우르며 바라본 학생들. 저 나이 때 자신의 모습, 친구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얼마 전 하은에게 들었던 ‘요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의 영향인지, 단유는 괜히 변덕을 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가르쳐야 하는 학생이 아니라, 이맘때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당시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잘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친구에게 하듯이.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해왔던 생각이 있어요.”

단유는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편안한 자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사람들은 공부를 어렵다고 생각할까.”

곧장 학생들에게서 웃음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딱딱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는 반항이고, 잘난 척하는 단유에 대한 야유였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전 공부라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공부 잘했냐고 물으면, 글쎄요. 딱히 어렵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일 것 같네요.”

“쌤, 반에서 몇 등 하셨어요?”

“한 번은 2등을 했어요.”

“우와.”

“그 외에는 계속 1등을 했고요.”

우, 하고 야유가 또 터져 나왔다. 단유는 웃음도 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성적이 좋았던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하나는···.”

잠깐 뜸을 들이는 사이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들이 단유에게로 몰려들었다.

“제가 수학을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에이, 뭐야’, ‘결국 수학이네’ 같은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수학 담당 강사이니 일부러 그런 대답을 내놓는 것이란 반응이었다. 그와 상관없이 단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수학이었어요. 제게 수학은 숫자를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눈다는 계산의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언어였어요. 이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

단유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니 일단 들어보자는 태도로 아이들의 주목은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말을 배우듯, 언어를 배우는 겁니다. 지금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세상이 저에게 건네는 말이 제겐 수학이었어요. 예를 들어볼까요? 전 수라는 개념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배웠어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 유치원이나 그 외 미취학아동을 위한 교습기관을 다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처음 수학이란 걸 배울 때 굉장히 생소했어요. 1부터 10까지의 열 개의 숫자를 익히는 게 쉽지 않았죠. 하지만 그게 무엇을 지시하는 지 알게 된 다음부터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물어볼게요. 1이 뭐죠?”

생뚱맞은 단유의 물음에 답을 내놓는 학생들이 없었다. 모르는 게 아니라 어떤 답을 내야 할지를 알지 못한 까닭이다.

“다들 1이 1이잖아, 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저는 1을 저라고 생각했어요. 전 혼자니까요.”

갑자기 무슨 철학적 논쟁거리를 대한 것마냥 아이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얼굴들.

“2는 혼자가 아닌 것, 친구를 의미했죠. 3은 두 친구 사이에 끼어든 다른 친구. 뭐, 그런 식으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돼요.”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 만물, 그 속에 깃든 수의 의미를 풀이하자면 한 시간은 턱도 없으니까.

“숫자 다음에는 사칙 연산을 배우죠.”

단유는 담담한 어조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건 그냥 논리였어요. ‘논리’란 단어는 나중에 배웠지만, 어쨌든 ‘논리’를 배운 거였어요. 집 안에서 밖으로 외출할 때, 문을 열고 나가서 문을 닫은 뒤 나가죠? 그런 개념이에요. 이런 개념으로 수학을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수학은 전혀 어려운 게 없었죠. 여기 있는 학생들이라면 분명 알고 있을 문제겠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한 예제로서 하나 물어보죠. 두 친구에게 5천원 씩을 빌려서 온라인으로 게임타이틀을 하나 샀다고 가정해보죠. 게임은 9,700원입니다. 300원이 남았고, 이를 두 친구에게 100원씩, 그리고 남은 100원은 자신이 가진다고 해보죠. 결국 두 친구는 4,900원을 빌려준 셈이 되죠? 결과적으로 4,900원씩, 9,800원에 자신이 가진 100원을 합하면 9,900원이 됩니다. 그럼 남은 100원은 어디에 있죠?”

몇몇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렸고, 몇몇은 전혀 모른다는 얼굴로 어리둥절해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이들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답을 아냐고 묻기도 했다.

“완전히 엉터리인 질문이죠.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데 논리적인 척하는 문제죠. 제게는 마치 항등식에 부호 하나를 빼놓고서 맞춰 보라고 묻는 것 같은 질문으로 들립니다. 다들 이상하다고 느끼죠?”

일부러 학생들을 동요시킬 목적으로 묻는 질문이 아니었건만. 하지만 이미 자신의 이야기에 취한 단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논리를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쉬웠어요. 교과서 내의 모든 글은 논리적으로 작성됩니다. 이래서 이렇다. 저래서 저렇다. 그건 그냥 1+1은 2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만큼이나 간단한 거였어요. 학년이 올라가고 더 복잡한 논리적 서술이 들어가지만 결국은 가장 기본적인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그것만 잘 쫓으면 되는 거였죠. 일차 함수, 이차 함수를 거쳐, 삼각 함수, 쌍곡선 함수, 복소 함수. 일일이 나누지만 결국은 다 사칙 연산의 응용일 뿐이잖아요? 다른 과목도 아주 간단한 논리학의 응용이었어요. 추론과 논증만 제대로 하면 이해하지 못할 게 없는 거죠.”

길게 늘어놓지만, 학생들의 귀에 들리는 말은 그저 ‘쉬웠다’, ‘간단하다’는 말 한마디. 어디에 그 쉬운 게 있냐는 질문이 입술을 뚫고 나오려 할 때, 단유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죠. 앞서 말한 예시에서 느꼈던 이질감 있죠? 그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 제가 성적이 좋았던 이유.”

“네?”

몇몇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이 나라의 교육, 적어도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 시험에서 풀이했던 문제들은 이런 논리적 오류를 담은 문제들을 시험으로 냈어요. 무엇이 틀렸는지, 맞았는지를 묻는 문제들. 뻔히 틀린 답이 보이는데 틀릴 수가 있나요? 그렇죠?”

몇몇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센 항의를 하고 싶었다. 뻔히 보인다는 그 답이 안 보인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요약하면 수학을 좋아했고, 수학의 논리를 통해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논리적 빈틈을 찾을 수 있는지를 요구하는 문제들로 시험을 치다 보니, 성적이 좋았다, 고 답할 수 있겠네요.”

단유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오래전 친구들에게도 이렇게 이야기를 해줬다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다면 자신을 시기하는 아이들도 줄었을 것이고, 공부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비뚤어져만 가던 아이들도 공부에 흥미를 붙였을 것인데, 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수학을 잘하면 저절로 성적이 오를 겁니다. 아시겠죠? 그럼 더 질문 없으면, 이제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너무 지체했으니, 조금 빠르게 수업을 진행하도록 할게요.”

단유는 다시 교재를 들었다.

얼이 나갔던 학생들은 멍하니 단유를 바라보다가 펜을 들었다. 단유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차라리 수업을 듣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단유에게 질문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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