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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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한(!) 실수는 있었지만, 대체로 단유의 수업은 딱히 불만을 가질만한 요소가 없는, 그냥 매끄럽게 흘러가는 수업이었다.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조금은 딱딱하다고 여겨지는 말투. 여느 학원 강사들처럼 웅변조로 혹은 맥베스의 대사를 읊는 연극배우처럼 말하지 않고 조용조용히 이야기할 뿐이었지만, 달리 지루함은 느껴지지 않는 수업.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첫 수업 첫 문제 이후 브레이크 고장 난 기차처럼, 새마을 같은 기차도 아닌 KTX처럼 질주하듯 문제를 풀어나가니 지루할 새가 없었다.
답안지를 그대로 줄줄 외우고 푸는 것도 아니면서 죽죽 풀이해나가는 그의 수업을 듣노라면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학생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기절할 정도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급강하나 스크류, 또는 360도 회전 트랙을 달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계산식 하나 없이 답이 툭 튀어나오는 경우라도 생기면 아찔함을 느끼며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 몇몇은 호흡곤란을 느끼는 사람처럼 질린 얼굴로 손을 들어 외쳤다.
“너무 빠른데요.”
운전을 하는 당사자는 전혀 속도감을 못 느낀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고객이 빠르다고 하니 또 별말 없이 거기에 맞춰주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 후에는 어느 지점에서 속도가 빨라질 것인지 예고해주는 친절도 보였다.
“자, 여기서 미분하면 1차 방정식에 상수만 남게 되니까, 남은 건 암산만 하면 됩니다.”
단유가 ‘암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이제 학생들도 아, 여기는 그냥 빨리 지나가는 구간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답을 다 외워서 설명하는 걸까, 라는 의구심도 있었는데 루트4.2를 암산으로 2.04939015···라고,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줄줄 읊어대는 단유의 모습에 아이들은 어리벙벙한 얼굴로 칠판을 바라볼 뿐이었다. 몇몇이 핸드폰 계산기로 실제 답을 맞춰보고 단유의 답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음은 물론이다.
어떤 학생은 단유가 마치 1시간 짜리 대본을 미리 달달 외워서 수업하는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만큼 단유는 수업을 하는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기 위해 멈추거나 쓸데없는 말들을 하며 시간을 지체하는 행위 혹은 말을 아예 하지 않았다. 설령 학생 중 누군가가 갑자기 질문을 던져도 그는 마치 준비된 것처럼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고, 마치 그것마저 미리 준비된 것이었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다음 진도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의심스러울 뿐이었던 단유의 수업은, 이제 따라가기 조금 벅차다고 여길 정도로 빡빡하고 알찬(?) 수업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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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 뵙도록 하죠.”
수업종료를 알리는 말까지 조곤조곤. 특별한 감정을 보이지 않으며 교재를 정리한 뒤 교실을 나서는 단유의 뒤에서 긴장 풀린 학생들의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여기 왜 이렇게 덥니?”
“현승아, 창문 좀 열자.”
뒷자리에 앉아서 공책 필기를 정리하던 현승이 성욱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을 열었다.
“야, 다 열면 춥잖아! 조금만 열라고.”
현승은 다영의 지적에 멋쩍어하며 지시대로 움직였다.
“쟤는 눈치가 없어.”
라며 피식 웃음을 흘리는 무리의 반응에도 다수의 학생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당연히 현승이 받는 처우 따위에도 관심이 없었다. 이미 한 시간 동안 이어진 롤러코스터에 녹초가 된 아이들이었다.
서른 명, 사실 그리 많지 않은 학생 수였지만 다들 학교도 다르고 같은 반이라 해도 모두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 비싼 수업료를 내고 들어온 터라 친구들과의 우정 쌓기 놀이에 시간을 쓸 여유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같은 반이 되어 한 교실에 모인 것도 11월 이후이니,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이다. 다영과 성욱처럼, 더러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경우에는 친목을 쌓기도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그저 자기 공부에만 몰두하는 게 현재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에도 다소 서먹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누구도 그 분위기를 깨려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분위기가 수업에 집중하기에는 좋았다.
“이래야 공부하기가 편하지.”
진주의 말에 같은 학교 친구인 한나도 동의했다.
“확실히 비슷한 애들끼리 모여야 분위기가 잘 잡혀. 학교에서는 딴짓하는 애들 때문에 되게 신경 쓰이는데 말이야.”
“내 말이.”
“그나저나, 수학쌤 말이야. 왜 이렇게 시크해?”
눈을 반짝이는 한나의 말에 진주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바라보았다.
“반했어?”
“반하긴. 그냥 시크하다는 거지.”
“너 시크한 남자 좋아하잖아. 나쁜 남자 스타일.”
한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흔들었다.
“으음, 솔직히 수학쌤이 나쁜 남자 스타일은 아니지. 세상에 서울대 물리학과 나온 나쁜 남자가 어딨냐?”
한나의 주장에 진주는 어이없다는 듯, 헛바람 소리를 내며 따졌다.
“편견이다, 그거? 원래 똑똑한 애들 중에 머리가 이상한 애들이 더 많은 법이거든? 혹시 모르지. 수학쌤도 밖에서는 변태짓하고 다닐지 누가 알겠어?”
단유와 ‘변태’를 연결지을 수 없다는 듯 한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야아! 소름 끼치잖아! 제발 나의 환상을 깨지 말아줄래?”
“요것 봐라. 역시 반했구나?”
“너도 솔직히 말해봐. 수학쌤, 솔직히 말하면 잘 생겼잖아?”
은근히 묻는 한나의 질문에 진주가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뭐, 얼굴만 보면.”
“다음에 한 번 물어봐봐. 나이가 몇 살인지.”
“네가 물어봐.”
“야, 난 못 해. 지난번에도 네가 먼저 물어봤으니까, 네가 물어봐.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
“미쳤네, 미쳤어. 조금 전까지 공부하기 좋은 분위기라고 해놓구선, 아주 연애를 하려고 작정을 했네, 했어.”
진주의 타박에도 한나는 깍지 낀 손을 들어 올리며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런 쌤한테 과외받으면 서울대도 껌이겠다.”
“퍽이나. 아주 눈이 돌아가서 삼류 지잡대도 못 갈 거다.”
“아무튼 물어봐 줘라. 지난 번처럼. 응? 난 용기가 없어서 못 하겠더라.”
“아서라. 응?”
두 사람의 소곤거리는 소리에 짜증 난다는 듯 돌아보며 눈치를 주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서로 친하지도 않은데 말을 꺼내기는 어려웠는지 그저 눈치만 줄 뿐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대화에 빠져든 탓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먼저 포기한 것은 앞에 앉아 있던 여학생.
은희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공책에 적은 필기들을 살폈다. 보통 교재에 나온 수학 문제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푸는지 눈으로 대충 살피고 따로 자신이 한 번 더 풀어보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단유의 문제 풀이는 그런 일반적인 풀이와 남다르다고 느꼈다.
쉬운 문제든, 어려운 문제든 손쉽게 풀이해내는 능력과 계산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굳이 목소릴 높이지 않고서도 정확하게 집어내는 그의 교수법은 학생의 입장에서 감사할 뿐이었다.
‘저런 무식한 애들은 쌤이 얼마나 대단한 지 모를 거야.’
수업이 끝난 후 바로 내용을 되짚어보는 게 얼마나 효율적인지도 모르고 뒤에서 잡담이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애들을 속으로 욕하는 은희. 첫 수업 당시 단유에게 강사로서의 커리어를 물었던 당사자였으며, 처음 하는 수업이라는 말에 코웃음을 쳤었지만, 그 기억은 이미 노트 맨 앞장으로 밀려나 버리고 없었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던 성욱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잠시 노트에서 떨어졌었던 현승은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성욱과 다영을 흘끔거리며 살핀 뒤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창문 바로 옆자리라 차가운 공기를 바로 맞아야 하는 처지라 의자 등받이에 걸쳐뒀던 패딩을 집어 들었다.
“좀 조용히 좀 해줄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자형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면박을 줬다.
“어, 미안.”
몸을 트느라 책상과 의자에서 난 작은 소음이 거슬렸던 모양이라, 현승은 얼굴을 붉히며 사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팔을 뒤로 돌려 패딩을 집어 올렸다. 패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끝내 자형이 고개를 돌려 현승을 날카롭게 흘겨보았다.
“미안.”
현승은 느릿느릿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며 패딩을 걸쳤지만, 그렇게 입느라고 길어진 시간 동안 계속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니 더 짜증이 솟구쳤던 모양이다. 자형이 책상을 탁 치며 일어나더니 돌아서서 현승을 한 번 째려보고는 그대로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 소란에 교실에 남아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현승에게로 모아졌다. 자형이 빠져나가고 빈자리 너머 앉아 있던 다영과 성욱의 한심하다는 눈빛이 그대로 전달되니, 더욱 고개를 들기 어려운 현승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책상에 머리를 박듯이 조아렸다.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보지 않고도 누구의 비웃음 소리인지 현승은 알 수 있었다.
****
“수업 끝나셨나 보네요.”
인포 데스크를 지날 때 그 뒤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단유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단유가 이 학원엘 오간 지 일주일이 넘어가니 낯이 익었다고 싹싹한 미소로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네는 여직원이었다.
단유는 대답 대신 마주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데스크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일주일 전보다 더 차가워진 바람이 달아올랐던 단유의 뺨을 식히며 지나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차분하게 수업할 뿐인 단유였지만, 나름 열과 성을 다해 수업에 임하기에 한 타임을 소화하고 나면 더운 열기를 식히지 않고서는 답답해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교실 창문을 열자니 다른 학생들도 있는데 너무 이기적일 것 같아서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참았다가 수업이 끝난 후 이렇게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는 단유였다.
“그냥 안에서 쉬지, 뭣하러 매번 이렇게 나오니?”
목소리에 돌아보니 하은이 따뜻한 음료수를 들고 있었다. 단유는 웃으며 캔을 건네 받은 뒤 대답했다.
“시원해서 좋은 걸요.”
처음 며칠은 1층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가곤 했는데, 하은이 이를 알고 옥상 문을 열어주었다. 학생들 때문에 옥상 출입을 금하고 있었지만, 단유가 매번 거리로 나가 바람을 쐬는 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딸깍.
캔을 따고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하는 단유를 보며 하은이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적응이 되니?”
단유는 옥상 너머 펼쳐진 도시 전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적응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요?”
하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다행이야. 일주일 만에 전화기가 조용해져서.”
그동안 간간이 단유의 수업에 대해 클레임을 걸어오는 학부모들 때문에 몰래, 아니 티나게 고생했던 하은이었다. 전화가 걸려오면 일단 사과하고 이후 단유에게 가서 이러이러한 점을 고쳐줬으면 좋겠다고 일러주면, 단유는 곧바로 이를 시정해서 수업에 반영했다.
말하자면, 지금의 자리는 초보 강사 단유의 교수법에 대한 피드백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 무섭진 않니?”
“걔들이 왜 무서워요?”
“대부분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 무섭다는 이야기를 뉴스에 나오는 비행 관련한 이야기로만 아는데, 사실 정말 애들이 무서운 건 걔네들의 사고방식이거든. 정말 니가 학생일 때 만해도 안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은 말이지, 너무 차갑고 냉정해. 그래서 뭐 하나 실수라도 하면 절대 봐주질 않아. 관용이 없어. 그래서 선생님들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런 말이 나와. 요즘 아이들 무섭다고. 어떤 선생님은 그런다? 수업 중에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이 자기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지금 잘 가르치고 있는지 아닌지를 심사하는 것 같다고.”
단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단유는 하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전혀요.”
“응? 무슨 말이야?”
“전혀 변한 게 없다고요. 애초에 제가 학교를 졸업한 것도 겨우 10 여년 정도? 그것밖에 지나지 않았고요.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똑같아요.”
“너희 때도 그랬다고?”
“네. 똑같아요. 그냥···아이들이에요.”
“가끔 보면 말이야, 넌 정말 다른 사람이랑 생각이나 시야가 다른 게 아닌가 싶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선생님이 아이들을 다르게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되묻는 하은의 말에 단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다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10년. 짧지 않은 시간이기도 하고 길지 않은 시간이기도 하다. 혹자는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라지만, 지금 바라보는 도시는 10년 전에도 이랬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물론 기술적으로 진보를 했으니 그에 맞춰 변한 부분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모두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도 반항적인 아이들은 반항적이었고, 소극적인 아이들, 적극적인 아이들은 존재했다. 어른의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아이, 나이에 맞지 않게 미성숙한 아이, 평범한 아이, 독특한 아이, 잘난 녀석들과 못난 놈들이 뒤섞여 있었다. 과거에나 지금에나.
다만 다르게 보는 것은 보는 사람의 위치가 변한 때문이 아닐까? 어른이 되고, 선생님이 되면서 저도 모르게 ‘권위’라는 의식을 탑재하고 바라보니 어렸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뭐, 아닐 수도 있고.’
사실 애들이 다르다고 해도 ‘그게 뭐’, 라고 생각하는 게 진짜 단유의 속마음이었다. 달라졌다고 꾸중을 할 것도 아니고, 위험하다고 말릴 것도 아니니까. 자신은 그저 공부를 하겠다는 목적으로 들어온 아이들에 맞춰서 지식을 전수할 따름이다. 그 이상의 것을 판단하고 분석하는 것은 자기 일도 아닐뿐더러, 설령 속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 판단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며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그저 감정을 소모할 뿐인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