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88화 (788/956)

HI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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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기 때문인지 학생들의 옷차림은 대체로 사복을 입고 있었는데, 다들 앉은 자리 뒤쪽에 두꺼운 패딩을 걸어놓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텁텁한 공기가 느껴져 창문을 조금 열까 고민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옷을 조금 얇게 오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네.’

속으로 다짐하며 단유는 교단 앞에 섰다.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마치자 이내 학생들로부터 반응이 돌아왔다.

“선생님은 어느 학원에서 근무하셨어요?”

단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기가 처음이에요.”

아이들은 실제로 있지도 않은 지진이라도 느낀 것마냥 들썩거렸다. 단순히 단유의 기분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들썩거렸다. 앞뒤좌우를 돌아보며 자신이 느끼는 황당함이 오로지 자신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는 듯 서로를 마주 보고 서로의 감정을 교감한 뒤, 이 사태를 조장한 단유를 비난이라도 하고 싶다는 듯 날선 시선을 단유에게로 돌렸다.

“아니 경험도 없으신 분의 수업을 저희가 왜 들어야 하죠?”

그래도 저 학생은 ‘없으신 분’이라고 존대라도 해주니 다행이랄까. 들리지 않게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목소리 속에는 ‘저거’, ‘저기’와 같은 지시대명사와, ‘놈’, ‘녀석’ 같이 얕잡아 부르는 단어들을 쓰는 이도 있었다. 차라리 들리지 않게나 속삭일 것이지.

“글쎄요. 듣는 건 여러분의 선택, 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로서는 그저 여러분들의 학습 진도가 늦춰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만 있거든요.”

아이들의 벙찐 얼굴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어디까지 수업을 진행했는지 봐야 할 거 같은데.”

“인수인계도 안 하고 들어오신 건가요?”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 대범한 학생들을 상대해야 한다고는 들은 바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들어오기 전에 하은으로부터 받은 주의사항이 하나 있었다.

“조심해야 한다.”

“뭘요?”

“말이든, 행동이든, 뭐든.”

“조심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전 그냥 가르치기만 하면 되잖아요?”

“요즘 아이들은 생각보다 까칠하거든. 그리고 사소한 말실수로도 트집이 잡힐 수도 있어. 학생들도 학생들이지만, 그 애들 뒤에 있는 어른들도 항상 주의해야 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냐.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된 부모님들이니까.”

피땀 흘려 번 돈을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학원에 쓰는 부모님들이다. 돈이 넘쳐나서 그 정도 쯤이야 하는 사람들도, 아이들을 위해 사용된 돈에 대해서는 여간 깐깐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 허투루 사용되는 꼴을 용납하지 않는다.

“시설이 부실하다거나, 선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학원에 달려와 클레임을 걸 테니까. 뭐, 거기까지 신경은 안 써도 좋아. 그래도 사소한 말이나 행동은 주의해야 돼.”

“알았어요. 언제는 절 믿는다면서요?”

“믿지. 믿는데, 또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야. 야, 나도 이런 마음인데, 학부모들은 오죽할까?”

‘하은’과 ‘학부모’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모르진 않는다. 단유는 미소를 지으며 하은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하은은 ‘내가 명수니’, 피식거리며 단유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가져다 댔다.

말과 행동을 주의하라. 지금까지 뭐라고 했더라? 자기 소개하고 수업 시작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이니, 지금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단유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교재에서 눈을 뗐다.

“여러분이 어디까지 수업했는지는 들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어디까지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으니까.”

또다시 벙찐 아이들의 표정.

“그럼 테스트를 해볼게요. 지난 시간까지 수열의 극한(lim)을 배웠다고 들었거든요?”

단유는 칠판에 간단한 문제 하나를 썼다.

“응용 문제도 아니고 단순히 계산만 하면 되는 문제에요. 누가 나와서 풀어보실 분?”

몇몇 아이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그냥 풀어주시면 안 돼요?”

“원래 풀이해주셔야 하는 거거든요?”

“저희 지금 진도 빨리 나가야 하는데요?”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긴 이런 간단한 문제는 나와서 풀 필요도 없겠죠? 그냥 답이 뭔지만 말해봐요.”

교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음, 이 문제를 푸는 속도에 맞춰서 제가 여러분의 난이도를 조정해 볼 텐데, 누구 답해볼 사람 없어요?”

“아, 씨 뭐야.”

“몰라, 짜증 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니 단유는 결국 기다림을 포기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그냥 가보죠. 우선 이 문제 같은 경우에는 간단히 미분만 하면 간단하죠? 에프 프라임 에이가 이렇게 되니까 답은 간단히 7. 그렇죠? 이 문제는 이렇게 간단히 식을 전개해서 풀어나가면 됩니다.”

이후로는 단유의 일방적인 교습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지 말고, 싫어할 말도 하지 말라니 그것만 피하면서 하면 문제가 없으리라.

“수열의 극한이란, 다음과 같이 수열이 한없이 커질 때, 이 일반항이 어디로 나아가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이에요. 이런 항등식이 있다고 가정하죠. 이때, 이 알파값이 이렇게 점점 나아가죠? 이렇게 수열이 진행될 때, 이런 기호로 표시하고···.”

“저기요.”

“네?”

“그건 다 아는 건데요.”

“그런 건 작년에 다 배운 거거든요.”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학생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학생들을 바라본 뒤, 어깨를 으쓱거렸다.

“교재에는 이렇게···.”

“그건 그냥 나와 있는 거고요. 저희는 그냥 문제 풀이만 하면 되거든요?”

“흠.”

단유는 짧게 침음을 흘렸다. 나름 준비를 했다고 여겼지만, 자신이 너무 자만하며 학생들을 쉽게 보았던 모양이었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벌써 태클이 걸리니, 이건 분명 태만의 증거였다. 단유는 속으로 반성하며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그럼 바로 문제 풀이로 넘어갈게요.”

“이렇게 생긴 다항식은 종종 문제로 나오죠? 이런 규칙성을 가지고 무한히 항을 더하는 식을 일러 테일러 급수라고 말합니다. 테일러 급수란···.”

빼곡했던 칠판은 빠르게 채워졌다가 지워지고 채워졌다가 지워졌다.

“다음 문제 볼게요. 조금 전에 설명했던 내용을 약간 응용한 건데 암산으로도 풀 수 있는 문제죠?”

단유의 풀이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다음 문제는 현재 교과 과정에서는 이렇게 풀이해야만 맞는 것으로 인정합니다.”

불만 섞인 표정을 짓던 아이나 시큰둥하게 수업을 듣기 시작했던 아이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펜을 놀려 공책을 채워나갔다. 처음에는.

그러나 칠판이 세 번, 네 번 지워질 때쯤에는 하나 둘씩 펜을 놓기 시작했다.

“저기요.”

단유는 문제 풀이를 적다 말고 고개를 돌려 손을 든 학생을 바라보았다.

“네? 왜 그러시죠?”

“너무 빠른데요?”

“이게요?”

단유가 칠판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칠판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세게 틀어놓은 히터 때문인지 볼을 빨갛게 부풀린 학생들이 더러 보였다.

“저기요.”

“네?”

“테일러 급수 같은 건 안 배우거든요?”

“이걸 안 배워요? 어, 이상하네. 난 고1 때였나 배웠던 거 같은데.”

단유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학생들을 둘러보다 물었다.

“테일러 급수 모르는 사람 있어요?”

학생들 여럿이 손을 들어 올렸다.

“아는 사람?”

개중에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잘난 척’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지, 아니면 눈치가 없던지 둘 중 하나일 학생들에게 단유가 물었다.

“언제 배웠어요?”

“고급Ⅱ에서 배웠는데요.”

“배운다네요?”

“저희는 안 배우거든요?”

단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래서 여러분들의 학습 난이도를 파악했어야 하는 건데. 그럼 잠시만요.”

단유는 교재를 들어 문제들을 바라보았다.

“여기 12번 문제 같은 삼각 함수는 테일러 급수를 사용해서 풀이해야 하는데. 15번 문제는 슈톨츠-체사로 정리를 사용하면 되고. 이런 거 다 배우지 않았나요?”

“네?”

****

“아주 성공적인 데뷔를 하셨더구만.”

하은의 말에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도대체 거기서 테일러가 왜 나오고 슈톨츠는 왜 나오니?”

“그게 이상한 게, 전 고등학교 때 그걸 배운 기억이 있고, 그걸로 문제를 풀었잖아요.”

“야, 니가 다른 애들이랑 같니? 너 명수한테 가르칠 때 그렇게 가르쳐줬어?”

“아니요. 하지만 쟤들이 명수보다는 똑똑할 거잖아요. 다이아 반인가, 뭐 아무튼 똑똑한 애들이라면서요?”

“와, 얘가 한 번에 여러 사람 물 먹이네. 명수가 방금 네가 한 말을 들었으면 뒷목 잡았을 거다.”

하은은 뒷목 대신 목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뒤, 된장에 푹 찍어 입안에 넣었다. 하은은 삼겹살보다 기름이 적다는 이유로 목살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아닐 걸요. 걔도 지가 공부머리가 없다는 건 잘 아는데요, 뭘.”

잠깐 할 말을 잊은 듯 보였던 하은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꾸했다.

“···그건 그렇다 쳐도 평범한 고등학생은 그런 거 안 배우거든?.”

“에이, 설마요.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단유는 고기 대신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올렸다. 이런 고기집에 오면 항상 물컵 위에 티슈 한 장을 덮어놓는 단유였다. 그래야 고기를 구울 때 튀는 기름이 물컵에 묻지 않는다.

“도대체 네 수준에서 대단한 건 어느 정도가 돼야 하는데?”

목을 축인 단유가 하은의 질문에 답했다.

“제 수준이 아니라 고등학생 수준에서 봐야죠. 게다가 쟤들은 학원 다니는 애들이잖아요? 그럼 저보다 더 많이 공부했을 거 아닌가요?”

“···그게 무슨 논리야?”

“저야 학교 수업만 듣다 보니 테일러 급수나 겨우 알 정도였죠. 만약 그때 학원을 다녔으면 저도 매클로린 급수 정도는 배우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도대체 어떤 애들이 매클로린 급수를 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운대?”

“대학교 때 보니까 다들 알던데요?”

단유의 대답에 하은은 고기 씹던 입을 벌린 채 단유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이후, 하은의 특명으로 EBS에서 하는 수학 강좌를 살핀 단유는 바로 다음 날, 학생들 앞에서 사과했다.

“일단 어제는 죄송해요. 제가 너무 제 위주로 수업 난이도를 설정했던 탓에 여러분께 피해를 입혔던 것 같네요.”

“근데요.”

또 한 학생이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단유를 불렀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 아이들이 자신을 단 한 번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 같지만, 별로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니라고 느꼈다.

“네.”

“대학은 나오신 거 맞죠?”

“네.”

“어느 대학 나왔어요?”

“서울대요.”

“···서울대 수학과예요?”

“아니요.”

“그럼요?”

“물리학과요.”

“서울대 물리학과는 들어가기 쉬워요?”

“어렵진 않아요.”

단유는 전날 살핀 EBS 강좌의 난이도를 고려하며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그러나 또 한번 아이들이 단유의 풀이를 저지했다.

“저기요.”

“네?”

“너무 빠른데요?”

둘러보니 비슷한 불만을 가진 아이들이 많은 듯 보였다.

“빨라요?”

“풀이 좀 제대로 해주시면 안 돼요? 저기서 어떻게 바로 저 답이 나와요?”

“아, 여기요? 여기는 암산하면 금방 나오잖아요.”

“······.”

아이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런 것도 풀이해줘야 하나, 싶은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단유는 따로 풀이를 해줘야 했다.

“여기는 간단히 이렇게 나누고, 나누면, 이렇게 나오죠? 그러니까 최대공약수가 38이 되죠?”

아이들은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걸 왜 그렇게 푸는데요?”

단유가 뜬금없다는 듯 오히려 질문한 학생에게 되물었다.

“유클리드 호제법 몰라요?”

****

“그러니까, 유클리드도 교과 과정이 아니라니까.”

“이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거잖아요?”

“야, 그건···너니까 가르쳐줬던 거지.”

“이상하네. 이건 중학교 때 배운 거로 기억하는데.”

“야, 아무튼 네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라니까.”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네요.”

“널 믿는다는 게 쉽지 않다.”

하은은 오늘도 술을 마셨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든다.”

“뭐가요?”

“초짜 선생님들은 보통 학생들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혹은 너무 흥분해서 분위기를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에 반해서 넌 차분하게 잘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 와중에도 칭찬할 거리를 찾아주시네요. 기죽지 말라고.”

“훗, 나 원 참. 네가 기죽을 일이 있어? 천하의 김단유가?”

“그런가요? 뭐, 어쨌든 빨리 고쳐나가도록 할게요.”

“그래. 알지? 나 너 믿는다?”

“믿는 건 좋은데, 이제 그만 마셔요.”

“운전 대신해 줄 사람도 있는데, 뭐 어때? 너도 한잔해. 대리 부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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