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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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을 거친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이라 새것처럼 깨끗하다는 이미지가 단유의 첫인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건물 매입에 도움을 줬음에도 직접 와 본 것은 처음이었던 단유였다.
“깨끗하지?”
“네. 그렇네요.”
“신경을 많이 쓰거든.”
“선생님 방도 이만큼만 신경 쓰면···.”
“쓸데없는 소린 하지 말고. 따라와.”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앞장서고 그 뒤를 단유가 묵묵히 따랐다.
“처음에 네가 학원 운영해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는 내가 원장 일도 하면서 동시에 반 하나는 전담해서 강의도 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단유가 어렵게 기회를 준 학원인데, 자신이 잘못 운영해서 망하는 꼴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며 과거를 회상하는 하은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유는 로비를 가로질렀다. 바깥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깨끗한 로비는 마치 학원이 아니라 대기업 본사 사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갈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FRP 화분에 식재된 인도고무나무와 폴리셔스, 뱅갈고무나무 같은 식물들이 좀 더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운영에만 몰빵하다가 조금 여유가 생기면 그때 반을 하나 맡아야지, 라고 했는데 끝내 그 여유란 게 생기지 않아. 이게 다 너 때문인 거지.”
“제가 왜요?”
“이렇게 부담스러운 자리를 만들어서 앉힌 게 누군데?”
“억지란 건 아시죠?”
“아우, 내가 무슨 말을 못해. 솔직히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아니? 사단장 검열 받는 기분이야.”
“군대도 안 가보셨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도 안 갔으면서 꼬치꼬치 따지기 있어?”
“그럼 제대로 지적해 볼까요?”
“됐어. 입장은 분명히 하자. 지금은 내가 고용주야.”
가슴을 탕탕 치며 말하는 하은의 모습에 단유는 그저 미소를 머금었다.
강사들이 모인 교무실에서 임시 교사라고 소개된 단유는 간단하게 인사를 한 뒤, 수업이 진행될 교실로 안내받았다.
“선생님들이 꽤 의심스러운 눈치던 데요?”
“자랑 같지만, 여기 선생님들 모두 나름 명성을 떨치는 분들이야. 실력적으로나 받는 연봉을 봐서나. 그러다 보니 자연히 동료들도 그와 비슷한 수준이길 바라는 거지. 좋게 표현하면 자부심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뭐, 굳이 나쁘게 표현할 거까지는 없지?”
“제가 억지로 섞일 필요는 없겠죠?”
“이왕이면 친하게 지내는 게 좋지.”
하은은 어깨를 으쓱거려 보이고는 어느새 도착한 교실의 문을 열었다. 텅 빈 교실은 대략 30명 가량의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잘 정리된 책상과 방금 막 설치한 것처럼 깨끗한 칠판.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교실은 단유를 조금 들뜨게(?) 했다.
“깨끗해서 좋네요.”
“그렇지?”
하은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단유의 어깨를 두드렸다.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부탁했던 결과가 만족스러워 하은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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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의까지 남은 시간 동안 단유는 교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강의 준비를 할까 생각했었지만, 히터를 너무 세게 틀었는지 되려 졸리기만 했다. 다른 강사들은 익숙해서인지 별말이 없었지만, 단유는 평소에도 약간 서늘한 정도를 즐기는 터라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가르쳐야 할 것들은 자기 머릿속에 있었고, 일부러 어색한 공기 가득한 교무실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기는 싫었기에 단유는 조용히 일어나 교무실을 나왔다.
‘어색하다고?’
제발 자신을 속이지 말자. 단유는 그저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기가 불편할 뿐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 기억이 생생했다.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정신과 의사의 상담은 끝이 났지만, 그건 철저히 연기했던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돈과 시간을 들였던 상담이 무소용이었냐 하면 또 그렇진 않았다. 단유의 과거와 생각에 대해,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단유가 고르지 않았던 선택지에 대한 의견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의사는 자신이 무엇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단유에겐 나름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하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내가 과연 서른 명 이상의 학생이 한 공간에 있는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언제까지 집에서 두문불출하듯 지낼 수는 없으니, 이건 단유 나름의 도전이었다. 앞으로 세상을 원만하게 살아가기 위한 도전. 교무실을 나온 순간, 도전의 의미가 많이 꺾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니 로비에 있던 상담 직원이 단유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단유도 가볍게 마주 인사하고 건물을 나왔다. 오전 중에 학원으로 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먹구름이 하늘에 잔뜩 낀 게 보였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오후 3시. 자신이 맡아야 할 수업까지 두 시간 정도가 남았다. 액정에 뜬 시계 위로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몇 개 있음을 발견한 단유는 손가락을 쓸어서 그것들을 확인했다.
―화이팅해라.
정말 단촐하지만 사족이 없어 의미가 더욱 확실한 명수의 메시지.
―우리 선생님 맨날 과외만 하다가 드디어 학원까지 접수하는 거야? 수고해!
장난스럽게 쓴 상미의 메시지도 단유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러고보니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 중 가장 점수가 좋지 않았던 학생은 상미였다. 학교가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 당시의 상미는 생각이 딴 곳에 가 있었다. 그런 애를 억지로 멱살 잡고 끌어서 중위권에까지 오르게 했으니, 상미의 부모님이 단유를 많이 아끼고 잘 대해 주셨다. 그 반작용으로 명수를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잘난 사위라 치켜세우며 엉덩이를 토닥여주는 분들이다. 명수로선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여 얻은 인정이니 많이 뿌듯해하기도 했고.
그리고 메시지가 없었다.
한때 자주 연락하던―정확히는 일방적으로 연락이 오던 편이었던―새벽이나 유영, 예영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그들에게 학원 선생으로 데뷔(?)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지난 몇 달간 단유가 거의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지내듯 하다 보니 점점 메시지나 전화가 오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아예 연락이 없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오늘은 앞의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연락이 없다는 것. 어느새 화면이 나간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주머니에 쑤셔 놓고 단유는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단유의 앞머리를 쓸고 지나갔다.
어쩌면 저녁에라도 눈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쯤, 한 학생이 단유를 향해 다가왔다. 정확히는 단유 뒤편의 학원 정문을 향해 오는 것이겠지만. 단발의 여학생은 무감정한 시선으로 단유를 흘깃 바라보았다가 금방 시선을 옆으로 떨어뜨리며 단유를 지나갔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단유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무슨 음악을 듣는 걸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단유는 그동안 TV도 켜지 않고 거의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구나, 라는 걸 새삼 느꼈다. 돌이켜보니 그 전에는 예영이 매니저로 있는 카페에 있으면서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곤 했었다. 전직 아이돌이라서, 라는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예영이 매니저로 있는 동안에는 카페에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수준의 좋은 가요들이 많이 흘러나왔다. 클래식 같은 음악은 분위기는 좋지만 자칫 지루할 수 있어, 되도록 피한다는 예영은 대신 고르고 고른 최신의 가요들로 카페의 백그라운드를 채워 젊은 고객들의 호감을 이끌어 냈다.
“저기요.”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틈에, 누군가가 단유를 불렀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드물게 키가 작은 남학생이 단유를 수줍게(?) 쳐다보고 있었다. 딱 봐도 공부 좀 하게 생겼다, 고 보이는데 대신 어딘가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저요?”
단유보다 어린 게 분명하지만, 처음 보는 이가 말을 걸어오니 단유는 괜히 긴장이 되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저기, 누구 기다리시는 거예요?”
단신의 남학생이 손가락으로 학원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뇨. 그냥 바람 쐬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요? 혹시 여기 일하시는 분이세요?”
다른 곳 다 놔두고 굳이 학원 정문 앞에서 바람을 쐰다는 단유의 대답에 학생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오늘부터 한동안. 네.”
단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학생이 힐끔 단유의 뒤를 쳐다보는 게 보였다. 단유가 그 학생의 시선을 따라 돌아보니, 학원 로비에 두 명의 여학생이 팔짱을 끼고 이쪽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는 게 보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대답하고 떠나려는 남학생을 붙잡으려다 말았다. 그리고 남학생이 향하는 뒤를 눈으로 쫓았다. 남학생은 학원 안으로 들어가더니 역시 기다리고 있던 여학생들에게로 향했다. 여학생들에게 뭔가를 말하는 듯하더니 단유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남학생. 설마 단유가 자신을 쳐다보는 줄 모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눈동자에 놀람이라는 감정을 띄우며 얼른 고개를 돌리고는 여학생들을 지나 엘리베이터로 달려간다. 두 여학생도 단유를 힐끔거리며 서로 뭔가 이야기를 나누듯 조잘거리더니 남학생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이내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사라졌다.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 혹은 경계심. 한때 익숙하게 느꼈던 감정이라 단유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점점 학원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것도 아닌데 멀뚱히 서 있기가 민망해져서 단유는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다시 교무실로 돌아가는 선택지는 제외했다. 어색함, 불편함을 떠나 아직까지는 좀 더 신선한 공기를 맡고 싶었다.
학원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옆 건물과 사이에 난 작은 골목이 보였다. 골목이라기보다는 그냥 좁은 통로라 해야 옳겠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인데, 단유는 그곳을 보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 해도 몰래 담배를 피우는 불량 청소년마냥 구석에 숨어들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구차하게 말이지.’
게다가 이미 그 통로의 가장 안쪽에는 선객들이 있었다. 구차함을 무릅쓰고 안으로 들어간 이들은 큰길 쪽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제대로 숨고 싶었다면 허공 중에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마저 깔끔히 숨기지 그랬냐고 충고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몰래 담배피는 학생들의 존재를 몰랐던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어른이랍시고 선도해보겠다는 의지가 생기지도 않아, 단유는 그냥 쓱 고개를 돌렸다. 이왕 걸어 나온 김에 학원 주변이 어떤지 살펴나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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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니?
“저 잠깐 밖에 나왔어요.”
―이제 곧 수업인데, 준비 안 하니?
“준비랄게 뭐 있나요? 일단은 수업에 들어가서 학생들이 어떤지부터 살피고 난 뒤에야 제대로 교습계획을 세울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나 너 믿는 거 알지?
“그럼요.”
―그래. 하긴, 내가 널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그런 것 치고는 걱정이 많으신 목소리에요.”
―너 때문은 아냐. ···아주 조금 너 때문인 것 같지만, 지방 확장 문제 때문에 조금 전까지 골치 아픈 일이 있었거든. 그것 때문에 그래. 절대 너 때문‘만’은 아냐.
“많이 위로가 되네요.”
―바람 그만 쐬고 들어와.
“네. 이제 들어가요.”
짧은 시간 꽤 멀리까지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던 단유는 다시 몸을 돌려 학원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은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거리가 채워져 있었고, 대부분은 학원으로 향하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제부터 한 달간은 저런 애들과 부대껴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다시금 마음이 복잡해지는 게 솔직한 심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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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김연선 선생님을 대신해서 앞으로 한 달간 여러분들게 수학을 가르칠 김단유라고 합니다.”
단유의 담담한 소개에 학생들이 머뭇대다 박수를 쳤다. 일부는 젊은 선생님의 등장에 당황하고, 일부는 볼을 붉히기도 했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아직까지 이름을 모르니, 그저 반 학생 중 하나라고만 여겨질 뿐이다.
“여기 오시기 전에 어느 학원에서 가르치셨어요?”
여간 냉정한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