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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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희생자가 나온 탓에 대대적인 인원 투입과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던 경찰은 며칠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수사에 대중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고, 초기 수많은 제보와 영상, 그리고 다양한 전문가들을 초빙해 시청률을 끌어올렸던 TV 뉴스쇼는 말 그대로 ‘쇼’로 전락하여 사람들의 호기심만 자극할 뿐 어떤 답도 내놓지 못했다.
사람들은 답을 찾아 뉴스와 신문을 찾아보지만 어디에서도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고, 인터넷에서도 ‘허무맹랑’하다고만 여겨질 각종 음모론만 즐비할 뿐 속을 시원하게 해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몇몇 유튜브 영상은 해외에도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고 평생 들어볼 일 없을 단체의 전문가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와 영상을 분석하고 가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답은 없었다.
한때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온갖 뉴스들이 시간이 지나며 시들해졌던 것처럼, ‘한강공원사건’ 역시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특집 편성되어 줄기차게 보도했던 TV를 비롯, 여러 매체에서 관성처럼 쏟아내던 각종 기사들에 대중은 피로감을 드러냈고 그 영향이 점차 피드백되면서 해당 사건의 보도 꼭지는 점점 뒤로 밀리다 사라지게 되었다.
각 방송사의 탐사 보도팀이 총출동해도 풀어내지 못하는 문제는 마치 그 옛날 ‘개구리 어린이 실종사건’, 혹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시간이 지나며 괴담처럼 변질 되었듯, 한강공원사건도 일종의 괴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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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열심히 인체자연발화를 외치며, 그로 인해 핸드폰이 터져 그런 희생을 낳았다고 주장하던 한 청년은 잠시 미뤘던 취업시험준비를 위해 다시 책을 잡았고, ‘제임스 랜디’를 불러와 현상금을 내걸고 찾아야 한다며 외치던 중년 사내는 TV를 끄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치안 강화를 외치며 탈한국을 주장하던 젊은 여성은 이민 대신 결혼을 준비했고, 여성 피해자가 발생했던 순간에 달아나던 사람들을 찍은 영상을 보고 분노하며 피켓을 들자고 선동하던 여성은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으러 다녔다.
물론 그 모든 이들은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익명으로만 활동했기에 현실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다시 해외 진출 아이돌들의 뉴스가 인터넷 메인 기사로 오르고, 방한하는 해외 스타의 사진이 주목을 받으며, 막말 정치인의 가쉽은 일부 세대의 비난 속에 묻혀버렸으며 가속되는 경제난에 대한 칼럼은 정기예금처럼 때가 되어 돌아왔구나 하는 정도의 인상만 남겼다.
평온하지 않지만 평온한 일상이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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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택윤은 머리를 쓱쓱 긁으며 단유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게요, 참 이상한 거거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때 대부분 기관도 손실이 컸던 일이었단 말이죠. 그런데 단유 씨의 투자 프로그램은 그 상황에서도 수익을 거둬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간 훌륭한 투자수익을 보여주긴 했어도, 그건 대세 상승이라는 분위기를 탔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거든요. 등락이 조금 있어도 장기 투자를 했다면 누구나 이득을 볼 수 있었던 장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만약 갑작스러운 변수가 발생했을 때 과연 단유 씨의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할까 의심스러웠던 게 제 속마음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진짜 이렇게 됐네요.”
“칭찬이라면 감사합니다.”
“단순한 칭찬이 아닙니다. 도대체 어떤 알고리즘으로 투자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급변하는 장에서도 유연성을 보여주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프로그램이 시중에 깔린다면 아마 저 같은 사람은 더 이상 자리를 보존하지 못할 겁니다. 그냥 투자 프로그램에 따라 맡기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도대체 제가 왜 단유 씨로부터 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지난 6개월간 제가 단유 씨 계좌를 관리하며 한 일은 고작 복지단체에 기부금 납입을 결정하는 서류 하나를 작성했던 것 뿐이니까요.”
“그거면 충분하죠. 그리고 아무리 프로그램이라도 결국 언젠가는 실수를 할 겁니다. 모든 변수와 시장을 통제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니까요. 아무리 프로그램이 잘해도 소장님처럼 잘 운영하진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운영한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그 이야기는 그쯤에서 마무리하죠. 민망해지니까요. 그리고 기부금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지요? 흠, 뭐, 다행히 사건이 사건이었던지라 복지재단 측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단유 씨가 원하셨던 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기부금이 돌아갔다고 어제 연락이 왔습니다. 내역서까지 마련해서요. 보시겠습니까?”
“대신 검토하셨을 거 아닌가요?”
“물론 검토는 했습니다. 절차대로, 투명하게, 가 단유 씨가 원했던 조건이니까요.”
“소장님이 확인하셨으면 됐어요.”
“그나저나 덕분에 계좌가 거의 십분의 일로 줄어들었는데, 아쉽지 않으신가요?”
“별로요.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지 않나요? 게다가 소장님 말씀대로 프로그램이 잘 작동한다면 앞으로도 문제는 없겠죠.”
“그러니까 말이죠. 저도··· 사실 단유씨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은 덜었습니다.”
택윤은 그간 관리하던 투자자들, 개인 고객들의 계좌를 모두 부하 직원들에게 위임 승계하고, 오로지 단유의 계좌만을 관리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단유의 계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딱히 손댈 일이 없기도 해서 부담도 적었다. 부담은 적으면서 수익은 오르는, 평생 꿈만 꿔오던 순간을 맞이하여 하루하루가 그저 행복할 뿐인 택윤이었다. 그런 여유 때문에 지난 단유의 기부 때, 자신도 사비로 거들 수 있었다.
‘기부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고, 풍족한 삶의 여유와 미소를 누리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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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죄책감을 덜어보려 애썼던 단유의 다음 행보는 이제 마지막 방문만 남은 병원이었다.
“벌써 마지막이네요.”
“네.”
“요즘은 어떠세요? 잠은 잘 주무시나요?”
“숙면을 취할 정도는 아니지만, 밤을 새진 않아요. 일부러 새지 않는 이상은.”
“일단 그 기억을 트라우마로 간직하지 않게 되었단 점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와 별개로 단유 씨는 다른 사람보다 잠을 적게 자는 편이에요. 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인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죠?”
“네.”
“하긴 단유 씨가 모르는 게 있을까 싶네요. 비꼬는 거 아닙니다? 진심이에요. 아무튼 되도록 잠은 편한 장소에서 푹 자는 게 육체 건강을 위해서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좋습니다. 그것만 잘 지켜도 대부분 사람들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도록 노력할게요.”
의사는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펜을 들고 앞에 놓인 상담록에 뭔가를 체크한 뒤 질문을 던졌다.
“요즘은 어떤 공부를 하시나요?”
“그동안 하던 연구 때문에 조금 지친 감이 없잖아 있어서, 요즘은 번역일을 다시 시작했어요.”
“아, 어릴 때부터 하던 일이란 거요? 아, 맞다. 제가 지난 번에 이야기를 듣고 찾아봤는데, 알고 보니 저도 단유씨가 번역한 책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가만있자, 여기 뒀는데···. 아, 여기 있네요. 이 책 맞죠?”
서랍 아래칸을 뒤져 꺼낸 책을 내밀어 보였는데, 단유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틈을 내어 번역했던 사회학 관련 서적이었다. 기억하기로는 대학 축제 기간이 끝난 뒤 어수선했던 감정을 정리할 겸, 잠깐 쉬어가자는 뜻에서 회사로부터 받았던 의뢰였다. 저명한 여성 문화사회학자의 책으로 ‘자본이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네. 맞네요.”
“제가 이걸 5년 전인가? 그때 샀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때도 번역 참 잘 됐다는 생각은 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책을 읽으면서 번역가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편은 아니다 보니 제가 몰랐던 거죠. 아무튼 나중에 가시기 전에 사인 한 번 해주고 가세요.”
“제가 뭐라고 사인을···. 전 그저 번역만 했을 뿐인 걸요.”
“번역도 하나의 창작이다, 라던데요? 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뭐, 이건 나중에 가시기 전에 꼭 해주시고···그래서 요즘은 어떤 책을 맡으셨어요?”
“「Essential Cognitive Psychology」 라고, 마침 제가 병원도 다니고 있다 보니 그쪽으로 관심이 가 있던 차였는데 회사에서 의뢰가 들어왔더라고요. 그래서 일도 할 겸, 책도 읽을 겸 해서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스털링 교수라고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재직 중이신 분이더군요. 미디어 쪽 전공을 하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나중에 번역본이 나오면 꼭 읽어봐야겠군요.”
“뭐, 그러실 것 까지야. 원하시면 제가 하나 드리겠습니다. 의뢰를 마치면 출판사 쪽에서 책 몇 권을 보내 주거든요?”
“아, 그럼 더 고맙죠. 주실 때 사인도 해 주시면 더 고맙고요.”
“제 사인은 별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설령 아무도 모른다 해도 저한테는 영광일 겁니다.”
“영광이랄 거 까지야···.”
“사실 단유 씨와 상담을 하는 이 시간이 최근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거든요. 단유 씨의 해박한 지식과 이야기를 듣노라면 마치 오래 전 대학 때 강의를 듣던 풋내기 시절 느낌도 나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단유 씨 같은 분이 대학 교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상담을 하는 게 아니라, 상담을 받는 기분이랄까?”
“과찬이시네요.”
단유가 쑥스러워함에도 의사는 손을 내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주시니 정말 교직에 있어야 할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이런 분인 줄 모르고 처음에 제가 너무 잘난 척을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너무 민망해서 고개를 들기 어렵습니다.”
“진짜 단유 씨 때문에라도 앞으로는 환자분들에 대한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래야 망신은 당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아이고,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네.”
상담 초기, 사소한 내용 하나를 이야기하다가 단유가 의사가 한 이야기 중에 잘못 알고 있던 것 하나를 정정해야 한다고 일렀고, 나중에 단유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은 의사는 이후 단유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게 되었다.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고 고집부리기보다 단유의 지적에 순순히 귀를 여는 태도를 보여준 의사의 그것은, 정신과 의사로서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성정 자체가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의사는 다른 환자들처럼 대하는 대신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토의나 혹은 가벼운 수다를 떠는 수준으로 변해갔다. 그렇다고 본래의 목적을 잊은 것은 아니어서 단유도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그와 상담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아무튼, 중년 의사가 얼굴을 붉히는 장면은 참 보기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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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 상담은 이렇게 끝인가요?”
“상담이라기보단 그냥 수다나 떨었다고 해야 맞겠죠? 뭐, 어쨌든 뒤늦게라도 제 직함에 맞게 말씀드려 보자면, 단유 씨는 이제 건강합니다. 원래 건강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이런 볼품없는 사무실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겠죠.”
“저기 걸려 있는 그림을 두고 볼품없다고 평하시면, 선생님께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들 할 겁니다.”
“아, 그런가요? 하하. 나름 분위기 좀 잡자고 거금을 들여 산 그림이 효과를 보는 모양입니다.”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단유는 의사와 악수를 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죠. 그때는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처럼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단유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돌아서 병원을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패티가 헐레벌떡 달려와 단유를 반겼다. 단유는 패티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거실의 한편에 누워서 눈만 껌뻑거리는 호빵에게로 다가갔다.
호빵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인지 점점 기력을 잃고 있었다. 활동성이 대폭 줄어들었으며, 가족들이 와도 자리에서 고개만 들어 끔뻑끔뻑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고개를 뉘고 말았다.
“밥 먹고 쉬어라.”
단유는 사료를 가져다 빈 그릇에 부어 앞에 놓아주었다. 호빵은 힐끔 사료가 담긴 그릇을 보더니, ‘에이, 귀찮아 죽겠네’라는 표정으로 킁킁거리다 한 발 무겁게 내딛어 누워있던 방석에서 몸을 빼낸 뒤 사료 그릇에 고개를 묻었다.
그 모습에 패티가 낮은 소리가 짖어대니 단유는 패티의 사료 그릇에도 사료를 담아주었다. 아직 젊은 패티는 꼬리를 흔들며 사료들을 진공청소기마냥 후르륵 먹어치웠다.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한 공기의 흐름을 느끼던 단유는 핸드폰을 들었다. 지금쯤 명수와 상미는 스튜디오를 오가며 예식용 사진 촬영을 하느라 바쁠 것이다. 처음에 잘 모르고 따라갔다가 혼줄이 났던 단유는, ‘미안하지만 아무리 너라도 여기까지는 내가 도와주기 어렵다’며 발을 빼버렸다.
고생하고 있을 명수에게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괜히 공연한 짓을 해서 자극하는 꼴이 될까 봐 포기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이어졌던 여러 일들이 모두 끝이 난 것을 홀로 기념하며 쉬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좀 쉬어야겠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쉬어야겠다고. 쉬어야 한다고. 거듭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