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83화 (783/956)

정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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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그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었다. 과연 자신이 가진 힘을 영원히, 아무도 모르게 숨겨야 하는가?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굳이 봉투에 담아 버리는 대신 해체 마법을 이용해 완전히 소멸시켜버리면 편리함과 경제적 이득, 그리고 거창하게 포장해서 자연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지금껏 단유가 한 일은 가족들이 보지 못하도록 몰래 쓰레기들을 챙겨 집 뒤에 만들어놓은 ‘실험실’이라는 이름의 창고로 들어가 마법을 사용하는 일이었다.

비록 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은 순간 이동 능력을 되찾기 전의 일이었고, 되찾은 후에는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눈가림용 이상의 의미는 없는 교통수단이 되고 말았다.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으니 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능력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단유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장소를 찾아야 했고, 곳곳에 배치된 CCTV의 범위 밖에서 은밀히 움직여야 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딱 도둑의 그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이제껏 걸리지 않은 것은 단유의 조심성도 있지만, 본인의 생각으로는 그저 운이 좋았던 탓이 컸다.

차라리 능력을 쓰지 않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인에게 노출될까 두려워 힘을 쓰지 않는다? 그것도 단유가 생각하기엔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무엇이 아쉬워서 그래야만 하는가?

그러나 지금 벌어진 일은 단순히 쓰레기를 처리하고 편의성과 효율성을 강조한 이동 수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더위에 지친 명수를 위해 몰래 바람을 일으켜 땀을 씻어주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실제 희생된 사람이 발생한 사건이었다.

단유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그리 도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든 자신은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었고, 그것도 저쪽 세계가 아닌 이곳 지구에서의 일이었다. 저쪽 세계까지 포함하면 단순히 ‘살인자’라는 호칭으로 불리기에 모자란 감이 있다. 대량살상을 자행하며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았던, 감히 희대의 살인자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라고 불릴 만한 이는 없었다. 적어도 단유의 입장에서 대부분은 그와 적대하며 그와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는 이들이었기에 그의 행동은 정당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그 때문에 살인이라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도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이제껏 무고한 희생이 아예 없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저쪽 세계에서 복면을 쓴 비밀 조직이 단유와 사울른, 에밀리아가 머물렀던 마을에 들어와 급습했을 때, 여관 주위에 살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비록 단유네가 그 마을에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벌어진 죽음이라 하더라도 실제 그들을 죽인 것은 단유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강공원에서 있었던 많은 이들의 죽음과 부상에는 분명 단유의 책임이 있었다. 단순히 도의적 책임이 아니라, 단유가 직접 힘을 투사함으로서 벌어진 일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인가. 과연 단유는 그 ‘사고’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다시 처음의 질문을 상기해보면, 단유는 그의 힘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다. 바로 그의 힘이 단순히 편의성과 효율성을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가 그의 적을 상대할 때는 마법을 이용했고, 마법의 힘은 별다른 수고 없이 적을 물리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니 단유가 자신이 마법사임을 들키지 않으려 한 노력은 단순히 구설수에 오르는 것만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그 힘을 통제하기 위한 자기 나름의 판단이었다.

통제는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만약 인내심이 없었다면 이미 이 세계는 수많은 핵미사일들이 머리 위로 떨어지며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단유가 생각하기에 인내심은 이성적 침착함이 동반되어야 한다. 감정적으로 쉽게 흥분하는 이가 앞에 놓인 붉은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있을 수 있을까?

한때는 단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너무 이성적이라 오히려 차갑다 느꼈을 정도였다. 감정의 기복이 다른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 거의 없다시피 했고, 언제나 사물과 상황에 대해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대처했다.

사람들이 쉽게 단유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많은 이들이 단유를 어렵게 대하는 이유, 사무적인 대화는 능숙하지만 일상적이며 가벼운 대화는 어려웠던 이유. 단유가 마음의 벽을 쌓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마음의 벽이란 것도 다시 정의하면 철저히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계산에 따른 거리두기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단유는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애써 성격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깨달은 사실이지만, 단유는 자신의 그러한 성격을 내심 만족하고 살았으며 ‘떳떳하게’ 생각했다. 거기까지라면 자기애가 강한 정도에 불과할 텐데, 단유는 그보다 더 나갔다.

어떤 상황에 닥치더라도 침착하게 냉정을 잃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라도 합리적으로 추론하며 다양한 선택지에 놓이더라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난 오만했다.’

정작 오늘과 같은 상황이 되자, 단유는 결코 이성적이지 못했고, 합리적이지 못했으며, 최악의 선택을 고르고 말았다. 최악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니다. 그것은 최악이었다. 최선이 아닌 모든 선택은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었는데, 단유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오늘의 단유는 감정적이었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무논리적인 선택지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오만했고 거만했으며 자기 반성이 모자랐던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

틱.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검은 화면이 환히 밝아지며 어제 보다 껐던 채널의 영상이 똑같이 재현되었다. 같은 듯 다른 이유는 똑같은 앵글로 비추는 스튜디오에 다른 진행자와 다른 패널들이 나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듯 같은 것은 여전히 진행자가 중재하는 가운데 패널들 끼리 열을 올리며 사건을 정의내리려 애쓰고 있다는 점이었고.

화면 하단에 위치한 타이틀은 밤새 고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정하지 못했던지 ‘초자연현상인가, 폭탄 테러인가’라는 다소 유치한 자막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듯, 패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중이어서 시청자들은 그 자막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도 방송사에서는 해당 뉴스에 대한 특집 편성을 할 정도로 열을 올렸으나, 끝내 사고에 대한 규명은 오로지 추측만이 남았다. 혹자는 초자연현상이라 설명했고, 혹자는 뒤에 이어진 폭발에 초점을 맞추고 방화와 폭탄 테러라는 쪽으로 사건을 설명하려 했다. 어느 쪽이든 사고를 명확히 설명하진 못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뜬 사람들은 혹시라도 간밤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 없는지 궁금해서 뉴스를 켰고, 다행히 밤사이 열심히 뛰어다닌 기자들과 보도에 협조적이었던 서울시 덕분에 눈에 띄는 영상 하나가 TV를 통해 공개될 수 있었다.

영상에는 거리가 조금 있어도 폭발이 일어났던 당시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충격적이었다. 한 남자가 핸드폰을 받는 시늉을 하던 중 폭발이 일어나고 거의 동시에 화면 전체가 하얗게 변해버리는 영상이었다. 실시간 타임으로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영상이었으나 방송사 자체적으로 화면에 슬로우를 걸었기에 짧다고 여기기 어려웠고, 게다가 사고가 일어날 당시의 일을 천천히 보여주며 폭발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어 사람들의 의문을 다소 해소시켜주는 영상이었다. 물론 해소되는 것 이상의 질문들을 쏟아내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사고에 대한 규명은 더욱 복잡해졌다. 온갖 전문가들이 총출동해서 밝혀보려 해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만 가득한 사건이었다.

“명수야, TV 꺼.”

하은이 핼쓱해진 얼굴을 하고 거실로 나와 리모컨을 들고 TV를 시청하고 있던 명수에게 일렀다.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아침부터 정답은 없고, 그저 서로 맞네 틀리네 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명수는 하은의 말대로 TV를 끄며 괜찮냐 물으니, 하은은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는 명수에게 되물었다.

“상미는?”

“아직 자고 있어요. 많이 힘들었나봐요. 게다가 어제 늦게 잠들기도 했고.”

“······.”

“아니, 저 때문이 아니라요. 어제 우리 전부 늦게 잤잖아요. TV보느라. 그래서 피곤한가보다 한거죠.”

“너는? 장시간 비행기 타고 와서 제대로 쉬지 못했을 텐데, 더 자지 그래?”

“밤낮이 바뀌어서 그런가, 새벽이 되니까 괜히 눈이 말똥말똥 떠지네요. 이러다가 아마 한두 시간 지나면 졸려 죽을 지도 몰라요. 그때 자면 되죠. 선생님은요?”

“나? 출근해야지.”

“그냥 오늘 하루는 쉬시죠?”

“어제도 쉬었잖아. 오늘은 나가봐야 돼.”

부엌으로 향한 하은은 물 한잔을 마신 뒤,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명수를 보았다.

“왜?”

“아니에요. 그냥···. 선생님이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해서요. 아마 단유였으면 분명히 선생님이 오늘 하루 쉬어야만 하는 이유를 조리있게 설명해서 선생님을 설득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유는?”

“아직이요.”

“설마 걔 어제부터 계속 방에 있는 거야?”

“그런가 봐요. 걱정은 되는데 어제 선생님이랑 상미가 그냥 쉬게 냅두는 게 좋겠다고 해서 여태 못 올라가고 있네요. 올라가 볼까요?”

“내가 올라가 볼게. 그럼 걔 밥도 안 먹고 지금까지 있었던 거야?”

눈썹을 찡그리며 하은은 컵을 내려놓고 2층 계단으로 향했다. 명수도 잠시 머뭇거리다 하은의 뒤를 따랐다.

“얘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우리는 그래도 저녁을 대충 때웠지만, 단유는 아무것도 안 먹어서 큰일인데. 단유야?”

하은은 조심스럽게 단유의 방문을 두드리며 불렀다.

“단유야, 자니?”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나?”

명수를 한 번 돌아본 하은은 다시 단유의 방문을 두드렸다.

“단유야, 자니? 선생님 문 연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려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보는데, 그때 안쪽에서 헝클어진 머리의 단유가 먼저 문을 열며 모습을 드러냈다.

“안 잤어?”

“아, 생각을 좀 하다보니까요.”

“너 얼굴이 아주 엉망이야.”

단유는 꺼칠해진 손을 들어 마른 세수를 했다.

“안 되겠다. 너 우선 씻고 내려와. 뭐라도 먹고, 그 다음 좀 자라.”

“괜찮아요.”

“난 안 괜찮아.”

결국 하은의 말대로 단유는 부엌으로 향했고, 단유가 씻는 사이 하은은 간단하게 햇반과 마른 반찬, 그리고 빠르게 대운 국을 내어 아침을 차렸다.

“입맛이 없어도 일단 먹어.”

단유는 고개를 숙여 보인 뒤, 힘겹게 숟가락을 들어 밥 한 수저를 퍼 입에 담았다. 느릿하게 턱을 움직여 밥을 먹는 모습을 보던 명수가 ‘맛이 없냐’고 물었다.

“당연히 맛이 있겠니?”

하은이 대신 명수에게 쓸데없는 걸 묻는다는 식으로 타박했다. 명수는 뻘쭘하다는 듯 볼을 긁적이다 금방 진지해진 얼굴로 단유의 앞에 앉아 말했다.

“선생님, 저도요.”

“네가 차려 먹어.”

“해주세요, 선생님. 네?”

하은은 혀를 차며 햇반 하나를 찬장에서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그 사이 명수는 시선을 내린 채로 식사에 몰두하는 단유를 바라보다 물었다.

“너 무슨 일 있어?”

“···아니.”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널 모르냐?”

“내가 어떤데?”

“너, 지금 되게 당황하고 있어.”

당황?

“뭔지 모르겠지만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야.”

“내 얼굴에 그런 게 보여?”

단유가 옅은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이니, 명수는 턱을 괴고 단유를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어릴 때 있잖아? 그때 뒷산에 올라간 적 있지?”

“···한두 번이냐?”

“서동인. 기억나?”

단유의 숟가락이 멈췄다. 아주 오래전,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 평생 떠올리지 않았을 이름. 그러나 명수가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온갖 기억들이 동시에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뒷산에 올라갔던 단유. 그리고 마주 선 남자애. 단유를 죽이겠노라 달려들던 악의와 살기. 그리고 그에 맞서 힘을 사용했던 단유. 죽기 직전까지 갔던 동인, 그리고 그를 살리기 위해 모여든 형과 누나들, 그 속에 서서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명수의 모습. 병원 구급차가 도착해 그를 실어 가는 장면과 그 모습을 창가에서 지켜보던 단유.

“그때 산 정상에서 너 말이야. 바로 지금 같은 모습이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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