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77화 (777/956)

정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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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빨리 프로그램을 완성 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 5일 만에 대략 작동이 가능한 버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디자인이나 편의성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기능적인 면에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치중했기에 가능했던 면도 있었다. 그래서 보기엔 꽤 조악했으나, 단유는 결과물에 만족했다. 덕분에 5일 동안 하루 1시간도 겨우 잘 정도였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피곤을 전혀 못 느끼는 건 아니어서, 작업이 끝나자 졸음이 밀려왔다. 잠시 새벽을 바라보니, 새벽은 조용히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지금은 병원복과 감아놓은 붕대로 가려져 있지만, 그 아래에 남아 있을 흉터를 생각하면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울 따름이라 절로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사실 그 때문에 단유는 새벽에게 성형 수술을 받자고 제안을 했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피부 성형을 받아서 최대한 흉터가 남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비용적인 측면에서 꽤 많은 돈이 들겠지만, 그건 단유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고되는 리포트에 따르면, 지금도 단유의 투자 프로그램은 부지런히 작동하고 있었고, 꾸준하게 단유의 자산을 늘리는 중이라고 하니 말이다. 거기다 택윤의 효율적인 자산 관리가 더해지니 앞으로도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돈을 물쓰듯 펑펑 써대며 사치스럽게 살지 않는 이상은 평생 걱정이 없을 정도라고 단유는 생각했다. 애초에 더 많은 돈을 욕심내지도 않았고, 그저 필요가 있어 불려놓았던 돈이다.

단유는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래 앉아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간은 규칙적으로 하던 운동도 하지 않고 노트북에만 매달렸다. 그만큼 단유는 최근의 사태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고, 기혁이란 사내를 경계하는 중이었다. 간간이 바람을 쐰다는 명목으로 병실을 나와도, 한남동 자택에 ‘순간 이동’으로 잠시 들러 살펴본 뒤 곧바로 병실로 돌아오는 수준이다 보니 절대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적었다.

한편, 최근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조용히 집중할 시간이 많아진 탓에, 현 상황을 파악하는 데 좀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랬더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기혁이란 사내가 자신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그가 새벽을 납치하는 짓을 감행하면서까지 자신을 알아내려 했다는 점은, 자신에 대한 정보가 걱정할 수준으로 많이 알려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새벽에게서 알아낸 것도 고작해야 단유의 전화번호 정도였으니 그가 단유에 대해 아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문제는 단유가 한남동 자택과 상미, 하은에 대한 걱정을 조금 줄일 수 있게 해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들었다. 그래도 만일의 일이라는 게 있으니까 꾸준히 집에 들르긴 해야 했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는 곳에서 ‘순간 이동’이라는 능력을 사용하니 추적을 당할 위험도 없었다. 따라서 단유는 좀 더 병실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면서 그를 경계할 수 있었고, 그런 선택이 단유의 집중력을 도왔다.

다른 하나는 그가 단유에게 바라는 것이 그가 통화 중에 말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정말 단유와 손을 잡길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그가 자신들의 동료라 할 신화파를 스스로 지웠다는 점에 있었다.

단유도 그렇지만, 능력이 있다고 해서 홀로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사실 단유나 기혁이나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확실히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현대 과학 문명, 군대, 경찰, 무기 체계, 사회 치안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면 말이다. 요컨대,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가나 사회가 지정하는 공적(公敵)이 되거나 타겟이 되어 제재를 받을 수 있음을 고려하면 쉽게 능력을 드러낼 수 없다. 더구나 이런 능력을 가진 이가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더더욱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어렵게 되었다.

단유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신화파라는 조직 내에서 어떤 위치였던가를 고려해보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철저히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활동해왔으니까. 그러면서 신화파라는 조직이 제공하는 돈과 편의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조직을 스스로 지웠다는 건, 그 조직을 대체할 수 있는 단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그렇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단유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진실로 단유와 대화를 원하고, 앞으로에 있어 성실하며 긍정적인 파트너가 되길 원했다면, 애초에 새벽을 납치하여 고문하는 식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건 그가 자기 힘의 우위성을 자신하고 취한 액션으로 해석될 뿐이니, 결코 우호적으로 해석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과거는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단유 본인도 그리 떳떳한 과거만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니까. 그러니 만약, 그가 서로를 인식한 시점에서 우월적인 힘을 과시하려는 생각을 갖거나 적대적인 행위를 취하지 않았다면 단유도 그에 대해 고쳐 생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적대적이었고, 위협적으로 접근했다. 단유가 가진 능력을 알게 된 후에야 단유에 대한 접근의 방향을 틀어 ‘파트너’가 되길 희망했으니 이미 그 시점에 단유의 기혁에 대한 태도의 방향성은 결정된 다음이다.

그러니 그의 호의에 호의로 답할 이유는 없다. 진정한 호의도 아닐뿐더러, 그저 눈을 가리기 위한 속임수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단유가 할 수 있는 건, 꾸준히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의 뒤를 잡아서 그를 제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결국은 단유가 선포했던 것과 동일한 결론이었다. 그를 잡아서 먼저 손을 쓰는 것. 아니, 두루뭉술하게 표현할 것도 없다. 그를 보는 순간 죽여버리겠노라, 단유는 다짐했다.

다만 불안한 한 가지는, 지난 통화 이후로 지금까지 그에게서 또 다른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걸려왔던 번호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고 떴다.

****

새벽의 아침 식사를 도운 후, 미안해하는 새벽을 다독이고 단유는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

“선생님은 언제 오시나요?”

“20분 후면 회진 도실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단유는 화장실에 들어가는 척 하며 순간이동을 했고, 곧 그는 한남동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남동 자택의 뒤에 실험실로 사용하려고 만들어놓은 작은 창고 건물은 상미나 하은이 드나들지 않아 순간이동으로 집에 올 때 이용하기 유용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호빵과 패티가 단유를 먼저 반겼다.

“단유 왔니?”

“네.”

주방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단유는 그쪽으로 이동했다.

“아침 식사하시려고요?”

“응. 너도 먹을래?”

“아니요, 괜찮아요.”

“또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가려고?”

“네.”

“피곤하지 않니?”

“괜찮아요. 선생님은 어때요? 집에만 계시려니 힘드시진 않으세요?”

“솔직히 말하면, 조금 갑갑하다야. 심심하기도 하고, TV만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전화로 업무 지시 내리는 것도 보기 그렇고.”

하은이 털어놓는 이야기에 단유는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하은의 고생도 다 자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참으시면 될 거예요. 죄송해요.”

“일주일 정도 지났잖아? 이 정도면 아무 일 없는 거 아니니? 이제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괜찮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만일의 경우라는 게 있으니까. 선생님, 차라리 이번 기회에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는 건 어때요?”

“여행?”

“전에 그러셨잖아요? 예전에는 여행도 자주 다녔는데, 요즘은 바빠서 여행을 다니지 못해 아쉽다고. 차라리 이 시간에 해외 여행 한 번 하시는 건 어때요?”

“나 혼자? 에이, 싫다. 어렸을 때야 그냥 돌아다니는 게 좋기도 하고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도 있어서 그랬던 거지. 지금은 좀 그렇네. 너희랑 같이 다니면 또 모를까, 혼자서는 그렇다, 야.”

“상미랑 같이 가는 건 어때요?”

“쟤? 요즘 방송 물 올랐다고 하루에 열 몇 시간씩 붙잡고 있는데 여행이나 가려 하겠니?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너나 명수까지 끼어서 다 같이 가야 흥이 나지, 안 그럼 별로 재미없을 거 같아.”

“알겠어요, 그럼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요, 얼른 식사하세요. 상미는요? 자요?”

“그럴걸. 얘들이 이렇게 짖는대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밤새 방송하다 자나 보다. 완전히 밤낮이 뒤바뀌었어.”

단유는 하은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클라우드에서 자신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했다. 그리고 곧바로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애초 프로그래밍을 할 때 여기서 사용할 것도 고려했던지라 프로그램은 빠르게 한남동 주변 CCTV를 관리하는 통합관제센터에 연결되었다.

모니터에서 주변 CCTV에서 송출하는 영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단유는 몇 개의 화면들을 훑으며 주위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했다. 프로그램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이용해 집 주변 상황을 관제할 것이다.

단유는 회진 시간에 늦지 않게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택윤이 언급만 한 것인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힘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실에 들른 의사들은 단유를 단순한 보호자로 보지 않는 듯 보였다. 깍듯하게 인사를 해오는 의사로부터 새벽의 현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 방향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

“네?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저기, 이 친구 상처 말인데요. 듣기로 화상 재건술이라는 게 있던데, 그걸 받으면 흉터가 완전히 없어질까요?”

“기본적으로 화상 재건술은 화상으로 손상된 피부를 원 상태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입니다. 즉 완전히 흉터가 안 보이도록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의 안 보이는 수준으로 재건술을 시도할 순 있겠죠.”

손상부위마다, 그리고 피부 상태에 따라 적절한 수술법이 결정되는데 새벽의 경우에는 아주 심한 어깨 부위의 경우에도 그 범위가 그리 넓지 않기에 이식까지 갈 필요 없이, 결손 부위 주변의 조직을 늘려 상처를 가리는 방식으로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조언이 뒤따랐다.

“주변 피부와 색깔, 질감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미용학적으로도 좋은 방법인 데다, 기능장애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기에 추천드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다만 단점이라면 이 시술을 받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조직확장기로 손상된 피부 안쪽에 넣고 부풀려서 수개월 동안 늘려 손상부위를 덮어야 하기 때문이죠.”

시간이 그만큼 걸린다면 당연히 비용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비용은 단유에게 문제가 되지 않으니 결국 시간이 문제다. 단유의 시간이 아니라 새벽의 시간이니, 그의 의사를 들어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 결정되면 말씀해 주세요. 일단 지금 화상 치료는 몇 주 정도 후면 대충 마무리 될 수 있을 테고, 만약 화상 재건술을 선택하신다면 바로 이어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빨리 결정해서 시술에 들어간다면 그만큼 효과는 올라갈 것입니다.”

단유는 의사와 상담한 내용을 새벽에게 그대로 전해주어 결정을 도왔다. 새벽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한 달 반쯤 지나면 가을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조직확장기를 넣은 상태에서도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니까, 그점은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애. 다만 무리한 활동은 어렵겠지만, 너 어차피 공부만 할 거잖아? 갑자기 운동 선수로 전향할 게 아니면 괜찮을 거야.”

“형한테 너무 신세 지는 거 같아서 미안해요.”

“새벽아, 이번 일은 내가 너한테 평생 미안해 해야 할 일이야.”

“그래도요.”

“됐다. 아무튼 치료 받자.”

단유는 미소를 지으며 새벽을 다독였다.

그때, 화목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단유는 모르는 번호가 뜬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안녕?

새벽에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단유는 등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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