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74화 (774/956)

대적(6)

-------------- 774/952 --------------

계단을 구르며 여러 차례 머리를 바닥과 모서리에 부딪힌 까닭인지 쉽게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완전히 정신을 잃진 않았지만 시야에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머릿속은 어지러웠으며 속은 뒤집히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덩치가 신음을 뱉으며 정신을 차리려는 동안에, 자신을 밀었던 이가 올라간 사무실 층에서는 다양한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같은 조직의 동료들이 내지르는 악다구니와 온갖 기물들이 부서지는 소리들이 복합적으로 들려오는데 그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개새끼!’

이물질이 섞인 침을 퉤 뱉으니 입술에서부터 늘어져 떨어지지 않는 붉고 진득한 타액이 덜렁거렸다. 빨리 정신을 차려서 녀석의 뒤통수를 갈기고 옆구리에 칼침 한 방, 아니 몇 방이라도 연거푸 찔러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덩치였다.

그때 헤드라이트를 켠 차 한 대가 스르륵 다가오더니 덩치 앞에 섰다. 차 문이 열리고 열쇠를 맡겼던 후배 녀석이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멍청한 새끼, 저 위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욕해주고 싶은데 입안이 얼얼하고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덩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어어, 하는 신음뿐이었다. 부축하려는 동생의 멱살을 잡고 손가락을 억지로 들어 위를 가리키자, 그제야 알아챘는지 후배 녀석이 당황한 눈으로 사무실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사무실의 유리창이 깨지며 바깥으로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어?”

이런 상황에서도 멍청하게 위만 바라보는 후배 녀석을 때리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덩치는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도 이때쯤에는 겨우 혀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감각이 돌아왔기에 덩치는 후배 녀석에게 당장 해야 할 일을 시킬 수 있었다.

“큰형님께···연락해.”

“네?”

이런 멍청한 녀석을 봤나.

“빨리!”

얼마 후, 커다란 차들이 줄지어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앞으로 도착했다. 정장을 차려입은 조직원들이 빠르게 차에서 내리고 이어 다른 이들보다 늦게 차에서 여유롭게 내리는 이는 바로 조직의 큰 형님이었다.

“오셨습니까?”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인 덩치를 조금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큰 형님의 시선에 덩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놈은?”

“아직 위에 있을 겁니다.”

“···겁니다?”

질책 섞인 큰 형님의 반문에 덩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더 깊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큰 형님이라 불린 중년인은 짧게 혀를 차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형광등도 켜지 않았는지 컴컴한 위층의 사무실은 너무나 조용해서 옆에 선 조직원들의 숨소리가 더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는 살짝 까닥거렸다. 손짓에 맞춰 기다리던 조직원들이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좁은 계단이 평소에는 타 조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기에 충분했는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원치 않게 줄세우기를 시키고 있었다.

잠시 후, 위층 사무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누구냐’, ‘뭐하는 새끼야’ 같은 상투적인 말들이 깨진 창 너머로 들려오더니 이어 망치로 벽을 부수는 듯한 쿵쾅거림이 주변 공기를 떨게 만들었다.

소란은 줄세우기에 밀려 기다리던 마지막 조직원까지 모두 올라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중년인은 그때까지도 자기 옆에 서서 똑같이 위층을 바라보는 덩치에게 물었다.

“혼자인 거 맞아?”

“네. 분명히 혼자였습니다, 형님.”

혼자서 수십 명의 조직원들을 상대했다는 말인데 그게 가능한 이야기였다고? 영화나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자신의 조직원들이 일당백의 전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주먹 좀 쓴다는 녀석들인데,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하고 그러면서도 제압당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넌 왜 계속 여기 있냐?”

“네? 아, 저, 제가 아까 계단에서 구르는 바람에···.”

“그래서?”

“···올라가 보겠습니다!”

덩치는 과장되게 한쪽 다리를 저는 시늉을 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될진 몰라도, 소동이 끝나면 저 새끼는 진짜로 다리를 절도록 만들어야겠다고 큰형님은 속으로 다짐했다.

소란이 멎었다. 처음처럼 사무실이 조용해졌는데, 아무도 내려와서 상황을 보고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고나니 큰형님은 덜컥 겁이 났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황은 그 설마가 현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형님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자신을 큰형님으로 추대한, 그래놓고 자기는 지 꼴리는 대로 하면서 돌아다니는 사내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큰 형님은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언제 온 건지 몰라도, 잠시 핸드폰 액정에 눈이 팔린 사이에 자기 앞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몸 좋은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살짝 어린 듯이 보이기도 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는 그 나이대의 젊은 녀석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핸드폰을 든 큰 형님의 손가락이 액정을 누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단유가 손을 뻗어 핸드폰을 뺐었다. 힘으로 저항할 수 없었던 큰형님의 핸드폰이 넘어가고, 단유는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왜 전화했소? 나 바쁘다니까.

“···뭐 하느라고 바쁘지?”

―어? 이게 누군가? 흐흐, 당연히 너 찾느라고 바쁘지. 지난 번에는 얼굴도 한 번 안 비쳐주고 사라져서 섭섭하더라고. 그렇다고 기다리고 있자니 찾아올 생각도 않고 해서, 역시 내가 직접 찾아가야 하나보다, 생각해서 찾는 중이었지. 그런데 이렇게 직접 전화를 주네? 큰형님하고 오붓한 시간 보내고 있나 봐?

“보고 싶으면 이곳으로 와.”

―그럴까? 그런데 거긴 혼자 간 거야? 거기 무섭지 않아? 거기 무서운 형들 되게 많은데?

“헛소리.”

―흐흐. 큰형님은?

단유는 눈동자를 굴리며 도망갈 기회를 엿보는 큰형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기 이 사람이 큰형님인가?”

“기혁아! 류기혁!”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큰형님이 소리쳤다.

―어라, 살아계시네? 아직 손 안 본 거야?

“류기혁? 그게 네 이름이야?”

―내 이름도 몰랐어? 섭섭하네. 난 네 이름 진작 알고 있었는데.

“류기혁. 네가 한 짓에 대해 두 배, 세 배로 갚아주겠다.”

―어이쿠, 무서워라. 복수라고요? 아, 그래서 거길 찾아간 거야?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네가 설령 거기 있는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한들 내가 진짜로 무서워하거나 겁이 날 거 같아? 아냐, 안 그래. 나 그런 거로 겁먹는 쫄보가 아니거든.

“너는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린 거야. 그 댓가를 치러야 해.”

―쯧쯧, 요즘 영화가 이렇게 사람을 망쳐놓는다니까.

단유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허리를 살짝 뒤로 젖혔다. 그의 앞으로 느리기만 한 주먹 하나가 휭, 지나갔다. 젊었을 적엔 어땠을지 몰라도 중년이 된 큰형님의 주먹질은 느리고 따분했다. 조금 전까지 상대했던 조직원들의 그것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으니 긴장감도 생기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긴장감이란 있을 수 없었다.

“끄악!”

손가락으로 큰 형님의 어깨를 가리키자, 마법처럼 큰 형님의 어깨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났다. 물론 진짜 마법의 힘을 사용한 것이다. 큰형님이 내지르는 비명이 핸드폰을 타고 사내, 류기혁에게 넘어갔을 텐데 그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엉뚱한 데서 화풀이하시네?

“네가 내 동생에게 한 짓이야.”

―역시 넌 나랑 닮았어. 처음부터 알았다니까. 우리가 같은 동류라는 걸.

“이상한 소리하지 마라.”

어깨를 움켜쥐고 달아나려는 큰 형님의 등으로 초소 6㎧의 바람을 쏘아냈다. 큰 형님은 몇 걸음 달아나지도 못하고 망치에 맞은 것마냥 앞으로 날아가 바닥에 엎어졌다.

―부정하지 마.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린 닮은 점이 꽤 많다는 걸. 난 진심으로 너랑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이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유식하게 말하진 못하겠는데, 어떤 결과를 위해선 때로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들 하잖아? 그런 거야.

“그런 걸 궤변이라고 한다.”

―궤변이니 쾌변이니 하는 건 잘 모르겠고, 내가 아는 건 지금 이렇게 너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거지. 너와 나 사이에 약간의 오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오해를 줄여간다면 너와 나,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파트너?”

―솔직히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친구가 될 순 없잖아? 내가 그 정도로 마음이 넓지는 않아서 말이야.

“너 따위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렇게 벽을 세울 필요 없다니까? 아, 거기 큰 형님 있지? 아직 살아 있나? 만약 네 기분을 불쾌하게 만든다면 죽여도 상관없어. 난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부담 느끼지 말고 마음대로 하길 바랄게.

비정하기만 녀석의 말에 단유는 불쾌감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넌 니 주위의 사람들이 죽어도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는가?”

―뭐야? 설마 그걸 노린 거야? 에이, 그럼 잘 못 짚었네. 그 녀석들, 별로 친하지 않아. 그냥 돈줄이야, 돈줄. 없으면 조금 불편하겠지만, 딱히 지켜줄 마음이 생기는 녀석들은 아니라고. 알잖아? 그 녀석들, 조폭이야.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 차라리 없어지는 게 이 사회를 위해 좋지.

“마치 자신은 아니었던 듯 말하는군.”

―나? 나는 걔네들이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준 것뿐인데? 걔네들이 말하는 의리? 그런 거 없어. 사실 걔네들도 의리같은 건 별로 지키지 않더라고. 우린 그냥 계약 관계 같은 거야. 그쪽은 돈을 주고 내게 청부를 하는 거고, 나는 청부계약에 따라 약간의 수고를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으면 그 돈으로 먹고 사는 거지. 다른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처럼.

“어느 누가 청부를 받아서 대형 화재를 일으키고 무고한 희생자를 만드는 일을 한단 말이지?”

―에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건 그냥 고속도로에서 교통 사고를 당하는 거랑 같은 거야. 피하지 못해 죽은 걸 왜 내 탓으로 돌리나?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가?”

―그러니까 살인이 아니라고. 그냥 사고라니까? 사고에 왜 죄책감을 느끼나?

“사이코패스였군.”

―그러니까, 너랑 동류라니까.

“난···사이코패스가 아니야.”

―에이, 그럴 리가. 난 첫눈에 보자마자 알겠던데? 너랑 나, 같아. 공부만 하느라고 아직 기회가 없었나 보지?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시도해봐. 과연 네가 죄책감을 느낄지 안 느낄지. 내기 할래?

가벼운 언사에 조롱하는 듯한 어투.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의 존재 자체가 불쾌감의 근원이 된다. 그의 목소리를 핸드폰으로 건너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친다.

더 짜증이 나는 건, 저 녀석의 말에 제대로 반론을 펼치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그는 단유가 살인을 저질러 본 경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수차례 살인 전적이 있는 단유다. 대량 학살의 현장에서도 흔들림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적도 있던 단유였고, 대량 학살을 저지른 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내세웠던 합리적이고 타당한 사유가 있었지만, 가끔은 스스로의 결정이 의아했던 적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불과 며칠 전, 단유는 기혁의 손에 붙잡힌 이가 명수나 하은이 아니라는 사실에 몰래 안심하기도 했었으니, 그 사실 자체가 스스로를 되짚어 보게 하였다.

과연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처지에서 같은 생각을 할까? 혹시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가 고장 난 것이 아닐까?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상투적인 원칙대로 따지면 단유의 행동도 비판받아 마땅한 일일 테지만,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유는 기혁의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여기서 기다릴 테니 이곳으로 와라.”

―네가 오는 건 어때? 내가 있는 곳으로.

“···어디냐?”

―진짜 오려고? 여기가, 보자, 진병원? 맞나? 아, 아니다. 성진병원이네. ‘성’자가 가려서 안 보였어.

단유는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시간을 보냈듯, 그 역시 단유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금 그가 말한 병원에는 새벽이 입원해 있었다.

―올래? 아, 천천히 와도 돼. 그동안 나도 내 볼일 좀 보고 있을게. 병문안을 왔는데 인사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꽃도 사 들고 갈 거야. 아니면 마실 거라도 사 들고 가야 하나? 옆에 편의점 있던 데, 거기서 사서 갈까?

단유는 더 머뭇거리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