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71화 (771/956)

대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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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맞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주방의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마시던 사내는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거실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검색을 하던 컨시어지가 사내를 향해 노트북을 돌려주었다.

SNS에 나오는 얼굴은 조금 어려 보이긴 하지만 자신이 봤었던 그 얼굴과 거의 비슷했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면 다 나온다더니, 정말이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이 사람은 한때 SNS에서 유명했던 사람이어서 나온 것 같습니다.”

“유명해?”

컨시어지는 단유에 대해 알려진 몇 가지 일화들을 소개했다. 물론 그 일화도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고,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였다.

“요약하면 어릴 때 사고 좀 쳤던 놈이란 거군.”

뮤직비디오에 출연까지 했던 전력이 있는 이니까 ‘사고’라고 표현해도 무방하겠지만, 컨시어지는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자제했다.

“그래서,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나오나?”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무명 연예인이라도 찾아보려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검색을 도와줬고, 마침 나온 얼굴은 자신이 어렸을 때 어쩌다 한번 봤던 기억도 있는 이의 것이었다.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충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의 자유게시판 글에서나 한번 봤던 게 아닐까 추측하는 정도였다. 자신이 그렇듯, 고객인 사내의 요청도 오래전에 봤던 사람을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아닐까,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하고 도왔다.

그런데 사내가 보이는 집요한 모습이나 어디 사는지, 무엇을 하고 사는지를 묻는 걸 보니, 이건 단순히 슈가맨 찾기 정도로 이해할 문제가 아닌 듯 보였다.

정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경찰서에 가서 물어보지 그러냐, 는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애써 ‘성실과 봉사’의 정신을 되뇌며 마음을 다스린 컨시어지는 이만 자신의 역할이 다했다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잠깐.”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손길에 그는 다시 의자 위에 주저앉았다.

“그 녀석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다 알아봐 달라고.”

차갑고 음침한 시선이 와 닿자, 목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감히 여기서 FM대로 행동했다간 말 그대로 좋지 않은 결과가 뒤따를 것만 같았다. 게다가 사내가 의자를 끌고 와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니 달리 피할 길도 없었다.

****

흥신소 직원이 알아낸 사내에 대한 정보는 모 호텔에 장기 투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 연예인이나 부자들처럼 일박에 몇 백만원 씩 하는 그런 사치스런 장기 투숙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박에 50여만 원 정도 하는 룸에서 장기 투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호텔에서만 계속 머무르는 게 아니라, 몇 달 주기로 호텔을 옮겨 다니며 지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실 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쉽지 않았는데,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다른 업무차 호텔에 들렀던 직원이 우연히 로비에서 사내를 보게 되었고, 호텔 내 정보원으로부터 그가 장기 투숙객임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도 그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그 외 상세한 정보는 얻지 못했습니다. 이름이나 객실 호수 같은 거 말입니다. 하지만 해당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단유는 수고비로 얼마의 보너스를 더한 사례를 지급한 뒤 사무실을 나왔다. 곧장 그 호텔로 갈까, 도 고민했지만 일단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사는 곳까진 확인했지만, 문제는 그가 머무는 곳이 호텔이란 점이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만약 그가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능력을 사용했다간,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될 여지가 있었다.

물론 단유가 법적으로 책임질 문제도 아니었고, 도덕적으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정도의 안타까움은 있겠지만, 아무래도 일이 커져서 소란이 일게 되면 단유 역시 많은 희생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계획을 좀 더 철저하게 세운 뒤에 접근해야 옳을 것 같았다. 최대한 조용히, 사람들의 시선을 덜 끄는 상황으로 말이다.

****

“이 학교 학생이라던데?”

“네? 누구요?”

사진을 보여주면 학생들은 되레 이상하다는 듯 사내를 쳐다보았다. 서울대가 동네 잡화점도 아니고, 수백 혹은 천 단위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인 데다, 설령 같은 과 동기라도 어떤 경우엔 서로의 얼굴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서울대 학생’이라며 얼굴을 보여주면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는가.

대부분 학생이 사내의 질문에 고개를 젓거나 모르겠다며 지나갔다.

“퉤.”

사내는 정문에 가래침을 뱉고 교정 안을 바라보았다. 무려 서울대생이란다. 잘난 놈이란 소리였다. 자신과는 정반대의 환경에서 자란 놈이었다.

‘어느 집 도련님인지, 어디 한번 그 낯짝 한 번 구경해보자고.’

물론 구경만으로 끝내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를 찾기는 해야겠다. 사내는 검은 캡 모자를 눌러쓰고 서울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몰랐던 것은 서울대가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는 사실이었고, 덕분에 그가 그렇게나 귀찮아하는 산책을 강제로, 그것도 무려 30분 이상이나 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를 짜증 나게 한 것은, 이렇게 돌아다녀도 단유를 찾는 건 아침 출근시간대 신도림역에서 한 사람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조급해하지 말자고.”

사내는 생각을 바꿔 그냥 동네 구경이나 하는 셈 치자고 결심했다. 사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서울대라는 곳을 구경할까 싶기도 했다. 한국이란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알려진 애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하니, 과연 어떤 얼굴의 인간들이 이런 곳을 다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먹었더니 또 남는 게 시간뿐인 사내였던지라 여유롭게 교정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치장한 사내의 패션은 그렇다 쳐도, 흉흉한 기세가 엿보이는 시선은 무심코 지나던 학생들이 절로 피하게끔 만들었다. 만약 사내가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했다면 교내에 상주하는 청원경찰을 부르기라도 했겠지만, 그저 눈빛이 무섭다는 이유로 뭔가를 하기는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만약 무슨 일을 저지르면 누군가가 부르겠거니 하며, 제발 그 누군가가 자신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기에 학생들이 스스로 사내를 피했다. 덕분에 사내는 편안한 캠퍼스 구경에 전념할 수 있었다.

‘잘난 놈들이라 해도 별거 없네.’

처음에는 이렇게 자주 올 생각이 없었지만, 그냥 나들이 겸해서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 사내였다. 잘 관리된 조경과 젊은 학생들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도 잘 흘렀다. 첫날에는 몰랐지만 서울대 학생들이 대부분 정문에서 교내 강의동까지 걷는 대신 버스를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도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학생들이 많이 내리는 곳에 따라 내려서 돌아다니니 훨씬 편하고 좋았다. 몇 번 다니다 보니 대충 건물들의 위치도 눈에 익었고, 맛은 그렇게 좋다고 할 수 없는 학내 카페테리아에 들러 커피도 사 마실 정도가 되었다.

별세계로 생각했던 서울대도 결국 사람 사는 동네다 보니 첫 방문 시 자기도 모르게 가졌던 긴장도 슬슬 사라졌다. 물론 그가 출몰하는 곳을 지나던 학생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다녀야 했지만, 사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또 하루, 학생들을 구경하며 다니다 학생들이 대충 빠지는 시간에 맞춰 사내도 하교 버스에 함께 탑승했다. 학생들 중엔 사내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죽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더러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라고 해 봐야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나누는 별 생산성 없는 주제가 대부분이었기에 사내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너 면접 언제야?”

“이번 주에 하나 있고, 다음 주에 두 개.”

“넌 그래도 면접이 많이 잡히나 보다. 난 한 개도 겨우 잡히는데. 어떻게 점점 취업이 힘들어지지?”

“야, 나도 하향 지원해서 이 정도야. 그런데도 안 돼. 지난주에 갔던 곳에서는 나보고 왜 서울대 나와서 자기 회사에 지원했냐고 되묻더라.”

“그런 걸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고?”

“야, 말도 마라. 진짜 세상에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는 걸 요즘 면접관들 보면서 새삼 느끼는 중이니까. 심지어는 여자애한테 집적대는 사람도 있더라.”

“미쳤네?”

“내가 속으로 진짜 미쳤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고소당하는 세상인데 면접관이라고 앉아서는 여성 지원자한테 연애하냐고 묻더라니까? 내가 그 여자였으면 당장 욕하고 나갔을 건데.”

“그 여자는 어떻게 했는데?”

“그냥 참더라고. 내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 무릎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지더라.”

“야, 내가 갔던 회사의 면접관은 내 이력서를 처음 본 것처럼 묻더라. 서울대 나왔냐고. 내가 분명히 졸업 예정이라고 적어놨는데 말이야. 나보고 26살 맞냐고 묻는 건 또 무슨 경우냐? 이력서에 뻔히 나이, 학교, 경력 다 적어놨는데 말이야.”

“그건 네가 겉늙어 보여서 그런 게 아닐까? 푸훗.”

“···말조심해라, 너도. 그 말이 업보가 돼서 너에게 돌아갈 수 있으니까.”

“난 동안이라 좀 늙어 보여도 괜찮아.”

“지랄이다.”

“하아. 아무튼 진짜 요즘 생각이 많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그렇게 미친 듯이 공부했는데, 지금 이러고 있는 거 보면 지금까지 내가 뭐했나 싶고.”

“다 그래. 오히려 서울대 나왔다고 더 취직이 잘 되는 것도 아니잖아. 현실은 그런데, 부모님은 또 그렇게 생각 안 하시니까. 오히려 서울대‘씩’이나 나와서 왜 ‘그런 데’를 가냐고 물으니까 매일 매일이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흙수저라서 그래. 역시 대한민국은 학벌, 혈연 뭐 이딴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금수저만 성공하는 사회잖아. 안 바뀌어, 절대.”

“대학 처음 들어올 때는 내가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퍽이나.”

“그러니까. 정 안 되면 그냥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할까 보다.”

“공무원도 요새는 경쟁률이 어마어마해서 쉽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더 고민이지. 시험은 시험대로 힘들고, 주위 사람들 말도 계속 스트레스고. 정말 요즘 같아서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다야.”

“동감이다.”

“아, 이럴 땐 새벽이가 부럽다.”

“단유 형이 취업자리 소개해 줬다지?”

창밖으로 향하고 있던 사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사내의 시선을 받는 줄도 모르고 학생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난 단유 형이 좀 어려워서 다가가기 어렵던데, 걔는 성격이 좋아서 잘 붙어 다녔잖아. 덕분에 콩고물 좀 많이 얻어 먹는구나 했는데, 취업까지도 단유 형이 해결해줬다는 이야길 듣고는 내가 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반성했다. 내가 성격을 바꿔야 했었어.”

“그런다고 성격이 바뀌냐? 것보다 그게 포인트가 아니잖아?”

“그게 포인트야. 인맥으로 금수저의 능력을 빌리는 것도 능력. 오케이?”

“요는 금수저라는 거구나. 근데 단유 형이 금수저는 아니잖아? 자수성가라고 해야 옳지.”

“난 그 형이 그렇게 부잔 줄 몰랐어. 그 형 타고 다니는 차 있지?”

“너 그 형 원래 타고 다니던 차 못 봤구나? 너 군대 가 있을 때 타고 다녔던 차가 대박이었어. 지금 건 한 단계 내려온 거다.”

“정말?”

“그때 사람들이 하도 쳐다봐서 바꿨다는 말이 있던데, 아무튼 그래.”

“부럽다,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원래 남의 인생이 부러운 법이라잖아?”

학생들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사내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렸다.

잠시 후,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 같이 내린 사내가 그들을 불렀다.

“잠깐.”

두 학생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돌아봤다가 귀신이라도 본 양 움찔거렸다.

“이야기 좀 할까?”

****

“여기 객실에 묵고 있는 투숙객을 만나고 싶은데 혹시 연락 가능한가요?”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단유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머뭇거림에 리셉션에 위치한 호텔 직원은 단유를 수상하게 보았다.

“저희 호텔에 묵으시는 투숙객에 대한 정보는 함부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연락을 원하신다면, 먼저 성함과 방문 사유를 알려주시면 저희가 따로 연락을 취해드리겠습니다, 손님.”

차라리 거짓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런 사소한 경우에도 거짓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게 약간의 불편함이리라. 하지만 단유는 고개를 젓고는 등을 돌렸다. 상대보다 먼저 자신을 노출시키는 건 별로 좋은 전략이 아니라 여긴 탓이었다.

단유는 곧바로 호텔을 빠져나와 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다음 플랜으로 단유가 선택한 방식은 상대를 적당히 미행하다가 인적이 최대한 드문 곳에서 1대 1로 맞닥뜨리는 것이었다. 주변 지형도 잘 고려해야 할 테지만, 다른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절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만 단유가 상정하는 범위 밖의 변수가 발생하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날부터 단유는 멀리서 자리를 잡고 호텔 정문을 주시했다. 너무 가까우면 단유 본인도 그렇지만, 상대 역시 눈치를 챌 수 있으니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야 했다. 얼마나 떨어져야 할지는 알 수 없으니, 단유는 적당한 망원경을 하나 구비해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어울리지 않게 관측수 노릇을 해야 했다. 아니, 어쩌면 잘 어울리는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본래 ‘보는 법’에 대해 통달했던 단유이기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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