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70화 (770/956)

대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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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일련의 화재 사건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조직이 있다는 거군요.”

“네. 경찰 쪽에서는 아직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저희가 따로 얻은 정보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불법 조직인가요?”

“···흔히 말하기로는 폭력 조직이라고 부르죠. 그쪽 세계에서 부르는 이름으로는 ‘신화파’라고 불립니다. 대략 10년 전, 서울에서 가장 큰 폭력 조직이 일망타진된 일이 있었는데, 그 조직이 붕괴 후 서울에 많은 군소조직들이 생겨났습니다. 사자가 자리를 비우니 그···.”

“하이에나요?”

“네, 맞습니다.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나타난 겁니다.”

“신화파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 주시죠.”

“그러니까 그때 생겨난 조직인데, 처음에는 별로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조직이었습니다. 다른 약소조직들이 그렇듯 저절로 사라질 조직으로 보였죠. 그러나 3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7년 전부터 신화파는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

사무실을 나온 사내 앞으로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운전석 쪽 유리창이 내려가더니 얼굴을 드러낸 이가 사내를 불렀다.

“형님.”

“응? 아, 병식이냐? 왜?”

“타십시오.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안 바쁘냐?”

“괜찮습니다.”

“차 새로 뽑았냐?”

“···2년 전에 뽑았습니다.”

“아, 그래? 새 찬 줄 알았네.”

사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뒷자리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곧 차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나가기 시작했다.

사내는 뒷좌석의 가죽을 툭툭 두드리며 감탄사를 뱉었다.

“야, 차 좋다? 돈 좀 벌었나 봐?”

“···형님 덕이죠.”

“내 덕은. 큰 형님 덕이지.”

병식은 룸미러로 사내를 힐끗 쳐다보았다. 사내의 말처럼 조직이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큰 형님의 역할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니, 꽤 큰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야 그저 주먹이나 잘 쓰고, 힘만 좋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직 생활을 하는 동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10년 전 신화파를 결성할 때 들어왔었던 병식은 그 사실을 절감했다. 신화파도 나름 주먹을 잘 쓰기로 소문난 이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타 조직처럼 영역을 제대로 넓히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처음에 선점했던 큰 업소들도 타 조직에 빼앗기거나 공권력의 견제에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워 포기한 곳이 많았다.

그러나 7년 전, 뒷자리에 앉은 사내가 조직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너 지금 속으로 내 욕하지?”

룸미러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았던지 사내가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감히 누가 형님을 욕한단 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던 누군가는 예전에 날 담그려 했었지?”

“그때는···형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요.”

그때, 그러니까 7년 전, 사내의 등장은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얼마나 파격적이나 하면, 무려 신화파의 수장을 죽임으로서 얼굴을 알렸다. 당시에도 중간 간부였던 병식은 수장의 복수를 위해 칼을 들었으나, 실패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인 일이었다. 사내에게 덤빈 대가로 고작 오른팔에 작은 화상 자국만을 남겼으니.

“그래?”

“아시잖습니까? 저 사람 보는 눈 없는 거.”

“지금은 잘 보고?”

사내는 수장이 ‘신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표명했다. 신의가 없는 사람은 조직의 수장으로서 어울리지 않다, 는 명분이었으나 실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수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병식은 파악했다. 그 후 사내는 신화파의 부두목급이었던 이를 수장으로 추대했는데, 그가 바로 지금의 큰 형님이었다.

그리고 큰 형님이 신화파를 이끌게 되면서, 그의 능력이 개화되었다고 병식은 보았다. 조직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큰 형님은 굉장히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신화파가 이렇게까지 크게 될 것이라곤 당시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신화파의 하부 조직원들은 잘 모르는 사실. 바로 신화파의 성공에는 사내의 힘이 컸다는 것. 사실 사내의 힘 정도라면 운영? 그런 것도 필요 없을 것처럼 보였다. 서로 비등비등한 수준에서 다투면 사소한 요소가 우위를 판별하겠지만, 사내가 가진 힘처럼 절대적이며 압도적인, 그리고 초월적인 능력이라면 다른 요소들은 무시될 수 있었다.

사내의 능력에 더해, 큰 형님의 조직 운영이 합쳐지자 신화파는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지금도 잘 보진 못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잘 보고 있습니다.”

룸미러로 사내를 바라보는 병식의 시선에, 사내가 떨떠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너 나 좋아하냐?”

병식이 피식 웃었다.

“존경합니다.”

“지랄하네. 그런 말은 큰 형님한테 가서나 하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사고 내지 말고.”

“네.”

****

“···그렇게 화재가 벌어지면, 반드시 타 조직의 중요 간부가 죽거나 혹은 큰 자금줄이 끊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그 빈틈을 신화파는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신화파에서 정확히 누가 불을 질렀는지는 파악이 됐나요?”

“거기까지는 저희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도 딱히 드러난 증거가 없으니, 지금까지도 원인 미상의 화재 등으로 표기되고 있지요. 무엇보다 방화라는 증거는 아직까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유는 불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신화파의 조직원들에 대해서도 조사하면 알 수 있나요?”

“어,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돈이 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저기, 제가 특정인을 지목한다면 조사가 더 빠를까요?”

“따로 찾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신화파, 라는 조직의 사람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진이 있으면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진은 없지만 얼굴은 알고 있습니다.”

“어, 그럼···대충이라도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우선 상대가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래로 관측되었던 부분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긴 타원형입니다. 교근에서 구각하체근에 이르는 부위가 정면 관측 시, 대략 55°의 경사각을 이룹니다. 구각하체근에서 이근, 그러니까 턱 끝까지 대략 40°의 경사각을 이루고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턱이 크고 굵어 보이는 인상입니다. 양쪽 귀 사이가 대략 13㎝에서 15㎝사이로 관측되는데, 상대를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 오차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 주세요. 턱에서 14㎝ 내지 15㎝ 떨어진 위치에 눈이 위치하며, 눈 사이 거리는 동공을 중심으로 할 때, 대략 7㎝ 정도입니다. 평균에서 대략 5% 더 멀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이기 때문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딱히 두 눈 사이가 멀다고 느껴지진 않을 겁니다. 그 점을 감안해 주시고, 코는···.”

“저, 저기 잠시만요.”

“아, 제가 너무 말이 빨랐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 메모하실 게 필요하신가요?”

“아뇨···그게 문제가 아니라, 의뢰인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잘 모릅니다.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네?”

“차라리 그림을 그려주시는 게···.”

“아,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려서요.”

“하아, 그럼 그냥 평범하게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평범하게요?”

단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다 깨서 신경질이 난 얼굴?”

“그건 너무···간단한 것 같고요.”

흥신소 직원은 떫은 열매를 씹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다 말을 이었다.

“얼굴이 타원형인것까진 알겠는데, 뭔가 좀 더 인상적인 것 위주로요. 피부가 검다거나, 눈썹이 두껍다거나, 뭐 그런 거요.”

“그것도 너무 모호하지 않습니까?”

“그래도···그런 식으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음, 우선 앞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모자를 쓰고 있어서 헤어스타일이나 머리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고요. 눈은, 눈꼬리가 아래로 3°정도 올라···그러니까 눈꼬리가 조금 올라간 눈입니다.”

단유는 나름 정성껏 ‘평범하게’ 사내의 얼굴을 묘사해나갔다.

****

“그런데 형님.”

도로변에 설치된 가로등 불빛들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사내가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응?”

“형님은 왜 차를 안 사십니까?”

“왜? 이렇게 운전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귀찮게.”

귀찮은 일이라면 극도로 기피하는 사내였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경우라면 병식처럼 자가용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의 것을 빌려도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지금처럼 동생의 차 뒷좌석에 타거나 혹은 택시를 이용한다.

“요즘 콜택시가 워낙 좋아서 말이야.”

“그냥 밑의 놈들 중에 한 명을 기사로 부리시면 되지 않습니까?”

“···혹시 딴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면 다행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너 큰 실수 한 거야.”

“딴 생각이라뇨? 그런 건 없습니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룸미러를 통해 사내를 훔쳐보는 병식을 보고 사내는 피식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말이 좋아 기사지, 감시자나 마찬가지 아니겠냐?”

“그럴 리가요.”

“그래,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럴 리 없다고 너 장담할 수 있냐? 만약 니가 없다고 장담하면 내 큰맘 먹고 차 한 대 뽑으마. 어때?”

병식은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신화파 내에서 사내의 위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모종의 반란을 일으켰던 주범임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뿐더러, 어떤 이는 그저 많은 중간 간부 중 한 명으로만 아는 이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사유로 암중에 사내를 견제하는 중간 간부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내가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업소도 없었고, 그저 어쩌다 얼굴 한 번 비추며 나타났다가 사라져서는 소식도 들을 수 없는, 그야말로 날건달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이 사내를 견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큰 형님마저도 사내를 견제한다. 물론 티를 내진 않지만.

“······.”

병식은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에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운전에 집중했다. 뒤통수가 너무 간질간질했지만, 룸미러를 통해 엿보는 것마저 할 수 없었다.

“또 물어볼 게 있어?”

“없습니다.”

즉각적인 대답에 사내는 또 한 번 피식 웃음을 짓고는 다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변 매장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간판을 매달고 있어 굳이 가로등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도 드는, 그런 눈부신 야경의 서울이 사내의 눈에 담겼다.

****

단유가 흥신소를 써가며 적극적으로 사내를 찾으려는 것과 달리, 사내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귀찮음을 피하고 싶은 사내였지만, 이번 일은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일이었다.

‘굳이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도 없는 일이고.’

잠깐이었지만, 사내는 단유와 그를 부르던 여자들을 눈에 담았고, 그들의 외양적 특징들을 캐치해 냈다. 단유의 경우, 언뜻 보면 무슨 운동선수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직감적으로 프로 선수는 아니라고 느꼈다. 그리고 여자들의 경우에는 비록 엉망이 된 몰골이었지만, 입고 있는 옷들이 꽤 고급스러운 브랜드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사소한 단서였을 뿐, 진짜 중요한 단서는 그의 이름을 안다는 것.

‘단유···라고 했지?’

피시방도 잘 가지 않는 그였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는 정도는 알았다.

이 일을 조직원들에게 시킬 수는 없는 일이어서, 사내는 개인적으로 그 일을 봐줄 사람을 찾아갔다. 적당히 시킨 일을 성실히 해낼 사람.

“이 이름으로 사람 좀 찾아봐.”

사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컨시어지는 입도 무겁고 일도 잘하는 이였다.

흥신소 직원에게 그가 목격한 사내의 몽타주를 알려준 뒤 2주가 흘렀을 때쯤, 단유는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맞나요?”

그 사내였다. 멀리서 찍은 듯 하지만, 분명 그 얼굴이었다.

“네.”

“신화파의 중간 간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정확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진도 실은 꽤 비싼 값을 치루고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보가 없다니요?”

“비밀에 싸인 사람입니다. 혹자는 그가 그저 신화파 초창기 멤버라 운 좋게 지금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뿐, 실력은 별로라는 사람도 있었고, 혹자는 그가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 신화파에서 일부러 그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감추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단유는 당연히 후자의 의견 쪽에 마음이 쏠렸다.

“혹시 이름은 모르십니까?”

“예. 이름, 나이 등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 그가 사는 곳도 모르는 것입니까?”

흥신소 직원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헛기침을 했다. 그의 얼굴에 슬며시 떠오르는 자신감.

“운이 좋았지만, 어쨌든 알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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