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67화 (767/956)

플레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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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어 달려온 소방차들과 불구경에 나선 사람들로 인해 인근 도로는 혼잡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하늘을 잡아먹을 듯이 거센 기세로 치솟아 오르는 검은 연기 사이로 간간이 붉은 불기둥이 으르렁거리며 나타났다. 소방관들이 노력을 다하지만 최초 진원지였던 빌라는 거의 전소가 확정적이었고, 빌라 옆에 붙어있던 재래시장 쪽으로 옮겨붙은 불길은 새로운 먹잇감들을 빠르게 먹어치우고 있는 중이었다.

“금방이네, 금방이야.”

“처음부터 봤어요?”

“아니, 저는 빌라에 불이 붙은 것만 봤는데 윗층까지 불이 붙는데 10분도 안 걸렸던 거 같아요.”

“그렇게 빨리요?”

“저게 다 외장재 때문이에요. 빌라 건축할 때 시공비 아끼겠다고 값싼 외장재를 써서 그렇거든. 저게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냥 스티로폼이에요. 불붙으면 저리 순식간이야.”

“근데 시장 쪽으로는 어떻게 불이 옮겨 갔대요?”

“저기 보여요? 쓰레기들을 저 밖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으니까 거기에 불이 붙어가지고 옆에까지 불이 붙은 거잖아요. 평소에도 저기에 무단투기 좀 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사람들이 꼭 저기에 쓰레기를 던져놓는 거야. 한두 사람이 쓰레기를 버리니까 전부 다 저기가 쓰레기통인줄 알았던 모양이지. 하여튼 사람들이 문제야, 문제.”

불구경 나온 사람들끼리 안타까운 얼굴로 화재 진화 현장을 바라보며 정보를 공유했다.

“물러나세요. 위험해요.”

“여기 계시면 안 됩니다. 물러나세요.”

원활한 진화 작업을 위해 주변을 통제하려는 소방관들이 관객들을 뒤로 물리는데 힘쓰고,

“아이고, 이를 어째. 망했네, 망했어.”

상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불길에 휩싸인 시장 골목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인덕아! 인덕아!”

경찰들이 막고 있는 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가려 애쓰며 목놓아 우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사람들이 안쓰럽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군중의 뒤편에서 담배를 물고 바라보는 한 사내. 어떤 격정도 드러내지 않는 눈으로 번잡한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던 그의 곁에서 중년 아주머니가 툴툴거렸다.

“거 웬만하면 담배 좀 다른 데서 피우면 안 되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그 중얼거림에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툴툴거리던 아주머니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오싹한 느낌이 드는 눈빛에 기가 죽었다.

헛기침을 하며 슬쩍 몸을 틀어보지만, 그녀의 어깨 위로 두꺼운 손이 턱 올라오니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 반응했다.

“뭐, 뭐예요?”

사내는 담배를 집어 입에서 떨어뜨리며 하얀 연기를 앞으로 뿜어냈다. 연기가 눈을 찌르고 매캐한 냄새에 콧잔등을 찌푸렸지만, 기가 눌린 아주머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내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뒤질래요?”

아주머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신경 꺼요, 아줌마.”

사내의 이죽거림에 아줌마는 무릎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사내는 담배 필터를 신경질적으로 짓이기며 돌아서니, 뒤늦게 출동한 방송국 차량들에서 카메라를 짊어지고 인파를 헤치며 달려오는 모습들이 보였다.

‘고작 이 정도로 요란스럽게 굴긴···.’

****

어두운 상영관.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큰 스크린에 유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니 평소 보던 그녀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생소한 그녀는 익숙하지 않았을 역할이었을 텐데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냈고, 억센 어투로 여주인공과 주고받는 대화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 냈다.

“쟤 웃긴다. 그치?”

단유가 들고 있는 팝콘 통에서 한 웅큼을 집어내며 상미가 물었다.

“영화 잘 만들었네.”

하은도 한 웅큼을 덜어 하나씩 집어 먹었다. 두 여자 사이에 끼어있는 단유는 별다른 대답 없이 화면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는 두 여자와 다르게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명쾌하게 설명을 할 순 없지만, 뭔지 모를 불쾌한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슬금슬금 올라오는 탓이었다.

‘뭐지?’

단유 본인이 느끼는 것임에도 그 감정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다. 묘하게 어긋난 느낌. 혹은 자기 안에서 뭔가가 상충되는 감정.

단유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어? 왜?”

나지막하게 묻는 상미에게 고개를 저어 보인 뒤, 그녀의 뒤를 빠르게 훑었다. 스크린에 반사된 빛에 의지해 흐릿할 뿐이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자세히 살피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위협을 가하려 하거나 위험이 감지되는 부분은 없었다.

다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린 단유. 마침 화면에서는 집안에 사채업자가 쳐들어와 여주인공을 협박하고 있었는데, 친구역을 맡은 유진이 여주인공과 사채업자들 사이에 끼어들어 여주인공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거 불법인 거 몰라? 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신고할 거야!

불량한 표정의 사채업자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한발 다가서지만 유진은 물러서지 않고 강단 있는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오지 마! 오면 바로 신고할 거야! 버튼 하나만 눌러도 신고 되는 거 몰라! 오지 마! 오지 마라고!

관객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장면이 연출되며 상영관 안이 조용해졌다.

“음?”

상영관 내 스피커로 영상에 삽입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음악이 낮게 깔리는 와중에, 스피커가 아닌 더 먼곳에서부터 들리는 작은 소음이 단유의 귀에 들려왔다.

‘비명?’

너무 작은 소리라 그 소리의 정체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상영관 밖에서 나는 소리인지, 아니면 우연히 영상에 들어간 잡음인지. 그러나 그 소리에 맞춰 가슴을 죄여오는 불안감과 불쾌감은 그 소리가 현실의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상영관을 나가 바깥 상황을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왜 그래? 화장실 가고 싶어?”

단유가 얌전히 자리에 있지 못하고 들썩거렸던 것을 하은이 발견했던 모양이었다. 단유는 하은을 잠시 바라보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그래.”

다리를 옆으로 틀면서 단유가 나갈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단유는 옆으로 줄지어 앉은 관객들에게 사과하며 열을 빠져나온 뒤 상영관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 쟤 어디 가는데요?”

“화장실.”

“풋, 나중에 놀려먹어야지.”

“씁. 그러지 마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단유를 놀릴 수 있어요?”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낮게 속삭였지만, 한참 분위기가 고조되던 장면이었기에 가까이 앉아 있던 관객에게 방해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뒤에 앉아 있던 관객 중 한명이 헛기침을 하자, 두 사람은 얼른 몸을 바로 고치며 다시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상영관을 나온 단유는 매표소 쪽으로 돌아 나왔다.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못한 매표소 근처는 여전히 사람으로 붐볐고, 다음 회차 상영관을 예매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다시 귀를 기울여보지만,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았다. 단유는 천천히 주위를 돌며 자신이 들었던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 시도해 보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 무렵 다시 한번 전신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 느껴졌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분명하게 그 느낌을 확인했고, 또 그 느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예민하게 반응했던 외부의 위협, 또는 강한 악의(惡意)가 섞인 기운을 느꼈던 단유였기에 지금 자신을 훑고 지나간 그 기운이 그것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사실 단유가 어느 정도의 힘을 얻고 나서부터는, 웬만한 악의가 아니면 이렇게까지 반응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수준의 위협 정도는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본능적인 위협을 느낀 것은 아주 어릴 때 외에는 없기도 했었다. 바꿔말하면 지금 단유가 느끼는 모종의 위협과 악의는, 단유로서도 쉽게 막을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도대체 뭐지?’

지금이라도 빨리 상미와 하은을 데리고 이 극장 건물을 빠져나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하는데, 이때 아래층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공포에 질려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소리를 듣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단유의 고개가 돌아갔고, 바깥 전경이 훤히 보이는 창 너머로 넘실거리는 불길이 보였다. 현재 단유가 있는 층은 건물의 3층. 불길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저렇게 층 전체를 아우를 정도의 불길이 번지는데 아무런 전조가 없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유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선생님!’

단유는 아직도 정확히 상황을 알아채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4층 상영관으로 뛰어갔다.

****

극장이 서 있는 이곳은 번화가의 중심지역이기도 했다. 옆으로 음식점, 커피숍, 옷 가게 등 많은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거리에는 휴일을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 사람들 틈에서 검은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유유히 걷고 있었다. 사내가 꼬나문 담배 연기에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사내의 눈빛과 마주치면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며 얼른 비켜서며 걸음을 빨리할 뿐이었다.

“봤어? 무서워.”

“무슨 사람이 저래? 조폭인가?”

“재수 없게.”

“말조심해. 들리겠어.”

물론 다 들었지만, 일일이 상대하는 게 귀찮았던 사내는 짧게 째려봐주고 지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잔뜩 어깨를 움츠리며 사내를 피했다.

전화 기본 벨소리가 사내의 주머니에서 울렸다.

“여보세요?”

―어디십니까, 형님?

잔뜩 긴장한 목소리는 사내의 부하 것이었다.

“왜?”

―큰 형님이 찾으십니다.

“왜 또?”

사내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부하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전해질 정도였다.

―그게, 며칠 전에 막내가 경찰서에 붙잡히지 않았습니까?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사내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급히 몸을 틀고 사내에게서 멀리 돌아가는 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게 무슨 문젠데?”

―그게···기강이 많이 흐트러진 것 같다고···.

“기강 같은 소리 하네. 씨발, 여기가 무슨 군대야? 무슨 기강을 찾고 지랄이야.”

―형, 형님. 말씀이 지나···.

“지랄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뭔데?”

―······.

“거기 가면 너부터 죽는다.”

―그게, 호, 혹시 오늘 아침에 화재 사건이···.

그때 부하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그리고 분주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걸걸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나다.

‘큰 형님’이라는 작자의 목소리에 사내가 인상을 썼다.

“뭡니까?”

―새끼, 말본새 봐라. 야.

“네?”

―오늘 불난 거, 네가 그랬냐?

“그러면 어쩔 건데요.”

―내가 적당히 하랬잖냐.

“안 걸렸으니까 걱정마쇼.”

―우리 분명히 약속한 걸로 아는데? 내가 지목하는 대상에게만 하는 걸로?

“난 그런 약속 한 적 없수.”

―지랄 염병 떠는 소리 하네. 새끼야. 그렇게 남발하다가 짭새들이 눈치라도 까봐. 다 죽는 거야.

사내가 담배 필터를 짓이겨 씹어대니 곧 끝이 뚝 떨어지며 담배 앞대가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럴 일 없다고 몇 번을 말했잖수.”

―아우, 이 새끼 진짜. 아무튼 너 어디야? 일단 들어와.

“나도 밥 좀 처먹고 삽시다. 예?”

―밥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염병 떨지 말고 들어와! 얼른.

“아이, 씨발.”

사내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통화를 끊었다. 무식한 새끼들과 어울리려니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순순히 자신의 비밀을 말할 수도 없었고. 솔직히 ‘큰형님’도 한순간에 없앨 수 있었지만, 그리되면 피곤한 일을 떠맡아야 할 거 같아 일부러 적당히 맞춰주고 있는 거였는데, 이게 여간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 아니었다.

사내는 발 앞에 나뒹구는 담배꽁초를 짓뭉갠 뒤, 새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켜고 불을 붙이는데,

“저기요.”

누가 자신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유니폼을 입은 한 여자가 바로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금연구역이라 담배 피우시면 안 되거든요?”

사내는 그 자세 그대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긴장한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다, ‘여기서 피시면 안 돼요’라고 굳이 한 마디를 덧붙인 뒤 돌아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그 여자의 뒷모습을 주시하던 사내는 그대로 여자의 뒤를 쫓았다. 여자는 사내가 뒤쫓는 걸 확인하고는 곧바로 바로 옆에 있던 여자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사내 역시 거리낌 없이 뒤를 쫓았다.

“뭐, 뭐예요?”

화장실에서 나오던 다른 여자가 사내를 보며 물었지만, 사내는 그저 인상을 한 번 쓴 뒤 그녀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꺄악!”

사내가 자신을 쫓아 화장실까지 들어오니 여자는 두려움에 질러 비명을 질렀다.

“시끄러!”

인정 사정 볼 것 없다는 듯 뺨을 올려친 사내. 그리고 거기에 맞아 건너 벽까지 나뒹구는 여자의 모습에 다른 여자들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이봐요! 뭐하는 짓이에요!”

개중 용감한 사람이 있긴 했다. 뒷걸음질 치며 물러서면서도 사내를 향해 바른 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 사내가 흉흉한 눈빛을 던지니, 여자가 핸드폰을 집어 올렸다.

그때였다. 여자가 들고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불타기 시작했다.

“아악!”

갑작스러운 발화현상에 여자는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렸고, 그때 사내는 그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아 사정없이 뒤로 내던졌다. 그 여자 역시 처음의 여자처럼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사내의 무식한 행동에 화장실에 남아 있던 여자들이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사내는 몸을 틀어 입구를 가로 막았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엄지와 중지를 맞댄 그 손이 ‘딱’하고 소리를 냈다.

사내의 눈앞에 불길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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