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friends(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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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감독을 대신해 단유가 먼저 계산을 치뤘다.
“데려다 드릴게요.”
“괜찮아, 괜찮아. 안 취했어. 나는 조금 더 걷고 싶어서 그러니까.”
“집에 들어가시지 않고요?”
“사무실에서 잠시 일 좀 보고 퇴근할 생각이야. 괜찮다니까, 정말. 몇 걸음 걷다 보면 금방 깨. 많이 마시지도 않았잖아. ···셋, 넷. 네 병 마셨네. 둘이 나눠 마셨으니 고작 2병밖에 안 되는구만. 금방이야. 금방.”
단유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손만 휘휘 젓는 감독이었다.
“다음에는 내가 사도록 하지.”
갈지자로 걸어가는 감독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감독의 뒤를 멀리서 지켜보며 따라갔다. 다행히 감독은 구단 사무실로 잘 찾아갔다. 단지 훈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경비원과 조그만 마찰이 있어 보였지만, 경비원이 직접 감독을 부축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단유는 돌아섰다.
술을 마셨으니 차는 두고 가야겠지만,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었다. 건물을 돌아서며 그림자 짙게 드리워진 곳에서 능력을 사용한 단유는 순식간에 자신의 집 근처로 이동했다. 골목을 나와 집으로 향하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단유냐?”
돌아보니 슬리퍼를 질질 끌며 검은 봉투를 들고 오르막을 오르며 집으로 돌아가던 명수였다.
“오, 김단유? 오늘 소개팅이라도 했냐? 갑자기 웬 정장이야?”
“그러는 너는 영락없이 백수다?”
명수는 자신의 꼴을 내려다보더니 히죽 웃었다.
“별 수 있냐? 경기 안 나가면 백수지.”
단유는 명수가 올라오는 걸 기다려주며 물었다.
“그건 뭔데?”
“아, 집에 반찬이 떨어져서 참치 좀 사왔어.”
“반찬이 떨어졌으면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반찬들을 사올 일이지, 고작 참치통조림이야?”
“난 백반에 참치 비벼 먹는 게 제일 좋더라. 질리지도 않고.”
윙크를 해 보이는 명수의 말에 단유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고추장이랑 기름장 섞어서?”
“그거지! 야, 생각만 해도 군침 돈다. 가서 해 먹을까?”
“그래.”
“근데 너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온 거 아냐?”
“아냐, 그런 거.”
“어딜 갔었길래 그렇게 쫙 빼입고 갔던 거야? 차는?”
“감독님 뵙고 왔어. 술도 좀 마시고.”
명수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오물이었던 양 서서히 사라져갔다. 단유에게 머물렀던 시선이 민들레 홀씨마냥 흔들리다 슬그머니 벗어났다. 환한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을 향해 다시 걸음을 뗀 명수는 굳은 얼굴로 말없이 걷기 시작했고, 단유도 그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뗐다.
“뭐라시든?”
“철 좀 들라시더라.”
“응?”
“어른이 되라고 하시더라. 그냥 나이 든 어른 말고, 진짜 어른.”
“···그렇구나.”
명수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먼저 들어가기를 기다려주는 명수의 모습을 힐끗 본 후, 단유가 먼저 들어가고 이어 명수가 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호빵과 패티가 달려와 마중나와 단유의 다리 밑에서 헥헥거렸다.
“상미는?”
“아까 낮에 집에 볼 일이 있다면서 나갔어. 선생님도 약속이 있다며 나가셨고.”
집에서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다 보니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참치 통조림을 사러 갔었던 모양이었다. 구두를 벗고 거실로 들어선 단유는 걸치고 있던 재킷만 벗어 소파 위에 두고 부엌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참치밥이나 먹어보자.”
간단한 조리 후, 두 사람은 식탁 위에 붉고 기름진 참치 밥 한 그릇씩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참기름의 고소한 향내와 고추장의 매운 향이 섞여 코를 자극하니 없던 식욕도 자극되는 모양이라, 명수는 굳었던 표정을 풀며 히죽거렸다.
“먹자.”
“그래.”
김치도 없이, 그저 밥 한 그릇과 물 한 컵을 두고 식사를 시작했다.
“진짜 옛날생각 난다. 그치?”
“응.”
보육원 앞마당에서 한참을 뛰어놀다 허기를 느껴 남들 모르게 식당으로 가면, 나이든 위생 선생님이 못 말리겠다며 혀를 차면서도 작은 밥그릇에 지금과 같은 참치 밥을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조그만 참치캔이 아니라 점심 때 쓰고 남은 업소용 3㎏ 통조림의 바닥을 긁어 나온 참치에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한숟갈 씩 퍼서 비벼주는 것이었지만,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다며 명수는 추억을 회상했다.
“위생 선생님이 널 되게 귀여워하셨지.”
“아냐. 위생 선생님은 내가 아니라 널 좋아하셨어. 그래서 내가 맨날 널 데리고 갔었던 거야. 나만 가면 무슨 조그만 놈이 걸신이라도 들렸냐며 흉을 봤단 말이야. 근데 너만 데리고 가면 흉도 안 보고 그냥 그렇게 밥을 만들어주더라니까.”
“니가 그래서 눈치가 없는 거야.”
“내가 뭐?”
어릴 때 명수는 단유가 보기에도 꽤 귀여운 아이였고, 선생님들은 비록 혼을 낼지언정 명수를 싫어하진 않았다. 다만 명수만 그걸 몰랐을 뿐. 밤마다 침대에 누워서 오늘은 어느 선생님이 자신을 혼내더라며 툴툴거렸지만, 사실 보육원 내의 대부분 선생님들은 명수를 아꼈다. 설령 사소한 장난으로 말썽을 부리더라도, 어린아이이기에 저지를 수 있었던 일이라 치부하며 명수를 용서했다. 그렇게 명수를 잘 챙겨주었건만, 어린 명수는 그런 것보다 혼이 났던 기억을 더 크게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럼에도 꿋꿋이 장난치고 사고치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걸 보면 명수도 보통 아이는 아니었다.
단유의 입에도 참치밥은 맛있었다. 그때 그 시간만큼은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익숙하지 않은 시선들과 감정들에 괴로워하지 않았던 때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마주 앉아 다른 아이들 모르게 배를 불릴 수 있었다는 기억이 꽤 유쾌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과거를 잠시 떠올리는 동안 둘 모두 말없이 숟가락만 움직였다. 그러다 명수의 숟가락이 멎었다.
“단유야.”
“응.”
“어른이 뭘까.”
“······.”
“생각해보니까,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 덩치만 커졌지, 정말 변한 게 없는 것 같긴 하다. 어쩌면, 감독님 말씀처럼, 난 아직 어린애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비슷해.”
“넌, 야. 넌 아니지. 넌 그때도 어른스러웠는데, 그때보다 더 어른스러워지면 넌 아주 늙은이 소리 듣는 거야. 20대에 늙은 꼰대 소리 듣고 싶어 그러냐?”
“···정말 넌 존경스럽다. 1초도 안 돼서 분위기가 그렇게 바뀌냐?”
“뭐, 그게 나니까.”
“그래. 그게 너지.”
명수는 숟가락으로 밥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철이 들어야지, 라는 생각은 해. 상미도 나보고 철 좀 들라고 맨날 잔소리하니까. 그런데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철이 드는 건지.”
“난 조금 생각이 달라.”
“응?”
“네가 장난기가 많고 웃음이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애들처럼 사고치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 말을 가볍게 하는 편도 아니고 배려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저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 뿐이잖아.”
“넌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이제 그만 죽···.”
“적당히 해라.”
“네.”
풀 죽은 시늉을 하는 명수를 보며 한 번 웃어준 단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난 지금의 네 모습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해.”
“하지만,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사실이지.”
“바뀐다면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데?”
“어, 그게···”
말을 고르던 명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모르겠어. 아직은. 구단이 시키는 대로, 매니지먼트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은 건지···.”
“넌 구속받지 않고 싶은 거야.”
“구속?”
어렸을 때부터 명수, 더불어 단유까지 두 사람은 보육원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통제를 받아왔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받는 통제와 더불어 보육원에서도 통제를 받으니,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통제와 감시 속에서 살아온 셈이다. 엄격히 따지면 자는 시간도 통제받긴 마찬가지다.
혹 너희만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일반 가정에서도 부모의 통제 아래,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숙제와 과외 공부를 하며 하루를 보냈던 동시기 아이들의 생활이 다 그렇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보육원 생활과 일반 가정에서 자라온 아이들의 삶은 엄연히 구별된다. 단체 생활을 하다 보니 작은 어리광도 쉬이 용납되지 않는다. 배고프다고 몰래 식당에 찾아가 밥을 구걸하는 행위가 큰 일탈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남들이 쉽게 군것질하는 것도 어려웠던 시기를 거치며 살았기에 어린 명수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는 운 좋게 후원인이 생겼다. 돌봐주시는 선생님이 있었지만, 확실히 전과 달리 통제와 감시의 시선은 줄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명수는 일탈을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는 이미 일탈 따위에 유혹당할 틈이 없던 명수였다. 이미 초등학교 졸업 시점에 축구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게 되었고, 축구를 통해 자기 삶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가슴에 새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명수의 삶의 방향은 명확했다. 오로지 축구로서 성공하는 것. 그 외의 것에는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기껏해야 게임 정도랄까. 그마저도 프로에 들어선 뒤부터는 손을 떼었으니 어찌보면 참 재미없는 삶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명수에게 축구 이외의 것에도 시선을 돌리라니 명수로선 난감할 수 밖에. 축구선수로서의 평판을 신경 써라? 구단에 협조적이어야 하고, 특별한 지시에 적당히 협조하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라?
“그래, 어쩌면 감독님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거야. 그리고 명수 너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라.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일 거야.”
“니가 왜?”
“우리 둘 다, 나쁘게 말하면 사회성이 떨어진달까?”
두 사람 다 무난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조직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꽤 불편한 모습이다. 명수가 현재 구단과 갈등을 빚은 것과 같이, 단유는 이미 이전에 ‘학교’라는 조직과 갈등을 겪었던 경험이 있었다.
“결국 사회 역시 커다란 조직이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그런 조직 문화나 규칙들에 순응해야만 하는 건데, 우리 둘 다 그게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는 거니까.”
“나는 그렇다쳐도, 단유 넌 아닌 거 같은데.”
“나도 너랑 다르지 않아.”
“하아. 그래서, 너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단유는 명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감독님 말씀처럼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순응하며 사는 게 편한 방법일지도 몰라.”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살더라도 한두 사람쯤은 조금 다르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무슨 말이야?”
“어차피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테니까.”
“응?”
단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가만히 응시하다 다시 시선을 내려, 도대체 이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명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 문신 하나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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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웬 문신이냐며 묻는 명수에게 기분 전환용으로, 하나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단유는 진심이었다.
감독님이 그랬다. 구단은 대체제를 찾을 수 있고, 가성비 좋은 대체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바꿔말하면 대체제가 없으면 결코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세계의 수많은 축구 선수들 중에서도 유달리 두드러지는 몇몇 네임드라 불리는 선수들은 대체제가 없고, 그래서 그들은 독보적이었다. 축구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매우 뛰어난 인물은 여러 기업에서 스카우트를 하려고 전쟁을 벌일 정도다. 그리고 이런 이들은 다른 범인(凡人)들에 비해 월등히 ‘자유’로운 포지션을 획득할 수 있다.
완벽히 ‘자유’롭진 못해도, 적어도 지금과 같이 ‘길들임’을 당하는 수모를 겪진 않을 것이다.
며칠 후, 엄살을 부리는 명수를 데리고 수소문해서 찾아간 타투이스트에게 단유는 도안 하나를 내밀었다. 왼쪽 쇄골 아래, 심장의 위쪽 언저리에 작게 문신을 새긴 명수는 울상을 지었다.
“아파.”
“아파도 참아.”
단유 본인의 힘은 아니고, 다른 신의 언어를 빌린 힘이기에 그리 파괴적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신의 힘이 깃든 것이니 명수에겐 조금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조금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