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60화 (760/956)

Dear my friend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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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의 실종은 현실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 공중파 뉴스, 인터넷의 중소 언론에 소개된 적조차 없었다. 학교는 정상적으로 다음 학기를 진행하고, 학생들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냈다.

당연한 거였다. 7살 어린 꼬마가 실종된 사건도 아니었고, 비록 그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게 많은 부를 가진 단유였으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극소수에 불과했으니 사회적 이목을 끌만한 사건도 아니었다.

바꿔말하면 3개월의 실종 사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단유 본인마저도 마치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나타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았다는 듯 등장하니,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이게 뭔가요?”

“지난 3개월간 자산 수익표입니다.”

택윤은 넥타이를 고쳐 매며 입꼬리를 올렸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미국 방위산업 쪽 특수가 생기면서 관련 산업체의 주가가 올랐습니다. 그런데 마침···단유 씨가 이전에 사놓은 주식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알고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사항이었다. 애초에 단유는 오로지 자신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수학적으로 거래를 해석하고 매매 동향을 예측하여 투자를 결정하도록 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천재지변이 터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경우에 주식 거래는 일정한 패턴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그에 맞춰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은 단유가 자리를 떠난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41%의 수익을 거두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불과 3개월만에! 이건 어마어마한 기록입니다!”

택윤의 호들갑에도 단유는 담담하게 자료 검토를 끝내고 무심히 돌려주었다. 단유의 반응이 너무 없으니 택윤도 흥이 나지 않았다. 이내 표정을 고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별로, 이신가요? 혹시 수익률이 실망스럽다거나···.”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이런 돈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요.”

“역시 그런 것이었습니까? 하긴 제 고객 중의 어떤 분도 비슷한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그분도 단유 씨 못지 않은 자산가이지만, 나이는 훨씬 많으시지요. 하루는 그분이 그러더군요. 자신이 남은 여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많은 돈을 언제 다 쓸 수 있겠냐고. 그러면서 이 이상의 돈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에 그분은 매년 일정 금액을 사회 복지를 위해 쓰길 원한다며 사회 복지 단체에 후원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은 후원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고 계시지요. 돈이란 게 그렇습니다. 적당히 많은 게 좋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지금의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예요. 그 돈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도 있고, 타인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돈은 많이 있으면 좋은 겁니다. 소로스도 그런 말을 했잖아요? 돈이 많을수록 자유롭다고. 가난하면 덜 자유롭다고.”

단유는 그와 돈에 관한 논쟁이나 하려고 온 것이 아니기에,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가족들을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그에게 감사의 뜻으로 그가 원하는 것 이상의 금액을 사례금으로 전달했다. 그는 행복해했다.

****

“죄송합니다.”

“이게 죄송하다고 될 일이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넉살 좋은 명수였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건 거의 무단이탈 급이었어요. 구단 내에서 인 선수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이가 많아요.”

“만회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대되는 신인에서 이제는 주목받는 국내 리그 대표 공격수 중 하나로 성장한 명수였지만, 구단의 입장에서는 그저 3개월간 무단이탈한 선수 중 하나였고, 국가대표 소집에도 불응했던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물론 일이 벌어졌을 당시 명수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구단도 그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고 잠시 그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구단은 명수의 이탈이 너무 과하다는 평가를 하게 되었다.

한 달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더구나 납치사건도 아닌 데다 경찰이 지속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 와중인데 명수가 왜 강원도에서 계속 머무르냐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구단은 명수에게 복귀 요청을 했다. 슬픈 마음은 이해하지만, 남은 일은 경찰에게 맡기라는 것이었고, 구단과 계약한 선수로서 구단을 위해 뛰어야 하지 않겠냐는 설득이 이어졌다. 물론 설득은 먹히지 않았다.

앞으로도 축구 선수로서 살아야 할 명수인데, 여기서 커리어를 그만두고 싶냐는 현실적인 조언도 있었지만, 명수는 이를 들을 생각도 않고 강원도에 머물렀다. 구단은 그가 현실 감각이 없다고 판단했고, 미련하다고 욕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뒤, 구단 측이 예상한 것처럼 단유가 무사히 돌아왔고, 명수는 복귀를 신청했지만, 구단은 명수를 곱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게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이건 선수의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 구단에 대한 헌신에도 의문을 품는 이가 있다는 말이죠.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를 하자면, 인 선수의 평소 품행에 대해서도 그리 좋게 보지 않고 있는 동료들이 많더군요. 아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축구판이란 곳이요 꽤 좁아요. 다른 곳도 물론이겠지만, 특히 여기 이 축구판에서 선배 무시하고 후배를 깔보는 사람은 오래 갈 수 없단 말이죠. 선수 사이의 문제만 그럴까요? 프런트와 사이가 좋지 않은 선수는 더더욱 살아남기 힘들어요.”

명수는 단 한번도 선배나 후배를 무시하거나 경시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말도 용납되지 않을 분위기라 그저 선처해달라는 자세로 묵묵히 들어야만 했다.

평소라면 밝은 성격의 명수가 격의 없이 선배를 대하면서 사이좋게 지냈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을 행동들이 버르장머리없는 후배의 그것으로 인지되었고, 몇 되지 않는 후배들을 향한 악의 없는 장난들이 괴롭힘의 증거로 명수를 공격했다.

한순간에 명수는 구단 내 위계질서와 예절을 무시한 선수, 가 되어버렸다.

“그런 인 선수를 우리는 그래도 그동안 많이 봐줬습니다. 성적이 좋으니까, 성장 가능성이 있으니까, 라는 이유로 말이죠. 감독님도 인 선수가 우리 팀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하셨고, 그래서 저희도 이제까지 인 선수의 행동을 못 본척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보세요. 방자하기 이를 데 없고 무성의하기까지 한 태도로 일관하는 인 선수의 행동에 구단도 더 이상은 용서하고 기다려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냥 그렇게 나갔다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겠다고 하면 저희가 인 선수를 그냥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억울한 마음에 명수가 이를 악물자, 프런트 운영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도 반성을 안 하시는 것 같군요.”

명수는 허리 뒤에 두었던 주먹을 꽉 쥐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구단 자체적으로 인 선수에게 근신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우선 행동에 변화가 생길 때까지, 그러니까 신뢰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와 반성의 자세가 보일 때까지 근신은 풀지 않을 예정입니다. 팀 훈련에도 참가해선 안 되고요. 대신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인 선수를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

무기한 출전 불가라는 이야기에 명수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그리 큰 죄를 지은 겁니까? 제가···.”

“인명수.”

구단 프런트의 일갈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감독이 입을 열었다.

“감독님! 이건 아니잖아요. 감독님, 제가 그렇게 잘못했어요?”

“그만해라.”

감독이 소파에 묻었던 몸을 들어 올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명수의 하소연을 막았다. 그리고 열을 올리며 명수를 압박하던 운영 팀장을 흘겨보며 말했다.

“따라와.”

“감독님!”

“따라오라면 따라와.”

명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감독의 뒤를 따라갔다.

감독은 팀훈련을 코치에게 전담시킨 후, 명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감독님, 제가 잘못한 건 아는데요, 이건 너무한 거 같습니다.”

감독은 호주머니에서 꾸깃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말도 없이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더니 몇 모금도 되지 않아 꽁초가 되고 마는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볐다.

“새끼야.”

나직하게 부르는 감독의 목소리에 명수는 침을 꿀떡 삼키고 대답했다.

“네.”

“그러게 적당히 하고 돌아올 것이지 뭐 때문에 그랬냐.”

“감독님. 감독님은 아시잖아요? 단유, 걔는 저한테 유일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걔 없었으면 오늘 이렇게 축구 선수로 있지도 못했어요. 그런 친군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돌아올 수 있었겠어요?”

“하아. 이 모지리 같은 놈아.”

감독은 새 담배를 다시 꼬나물고 불을 붙였다.

“너 억울한 거 모르진 않아. 그런데 말이다. 이번엔 네가 빌미를 줬어.”

“무슨 빌미를 말입니까?”

명수는 객관적으로 훌륭한 선수임에 분명했다. 프로 데뷔 3년차에 대표 선수로 뽑힐 만큼 인상적인 기록도 남겼다. 그러나 문제는 구단 내에서 명수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명수는 오로지 축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구단 내의 정치에는 무관심했다.

“정치라고요?”

“정치질이란 말이 괜히 있겠냐?”

시즌이 시작될 당시, 구단 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물론 명수는 관심이 없었다. 구단은 지난 시즌의 우수한 성적을 토대로 시즌권 판매와 다양한 이벤트로 관중들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당연히 선수단의 협조가 필요했고, 특히 구단 측에서는 명수를 이용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명수는 그런 계획에 비협조적이었던데다 시즌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구단을 이탈했다.

“축구 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되지,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팬서비스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냐?”

“경기장 위에서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는 게 팬서비스 아닙니까?”

“이 모지리야. 그러니까 니가 모지리란 소리를 듣는 거야.”

“아니, 그럼 감독님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예요? 아니, 정말 제가 그렇게 잘못한 거예요?”

“하아.”

비록 말은 이렇게 하지만, 감독은 그래도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많이 항변했다. 특히 타겟이 된 명수를 위해 여러 번 항변하고 지켜주려 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명수 앞에서 자신이 그런 노력을 했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감독은 명수의 과거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과거에도 불구하고 밝고 씩씩하게 자라 자신의 길을 걸어온 명수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명수가 앞으로도 축구 선수로서 대성하기를 바랐고, 그 연장선에서 감독은 명수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훌륭한 선수가 되는 법, 좋은 선수가 되는 법, 그리고 ‘한국’에서 축구 선수로서 살아남는 법.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하고, 적당히 융통성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

구단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명수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왔다.

“단유야!”

혀가 꼬인 채로 단유를 부르는 명수의 모습에 집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왔다.

“야, 너 왜 이렇게 취했어?”

“단유야, 내 친구야.”

“왜 그래?”

명수가 단유의 어깨를 붙잡고 비틀대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그 모습에 상미가 놀라며 명수를 붙잡았다.

“명수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상미야. 단유야.”

울먹이며 이름을 부르는 명수의 모습에 단유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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