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59화 (759/956)

Dear my friend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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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강원도에서 어떻게 가족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는 거야?”

“그건 저도 모르죠. 근데 단유 어릴 적 기억이 없다면서요? 그치?”

“응. 단유는 보육원 들어오기 전에 자신이 어디 살았고, 부모님이랑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했거든. 사실 나도 보육원 들어오기 전 기억은 별로 없어. 단유보다 1년 일찍 보육원에 들어왔는데, 그때가 6살 때였을 거야. 그래도 난 부분적으로 기억이 조금 나긴 하는데, 단유는 아예 기억을 못 하더라고.”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전에는 단유가 기억나지 않는다니까 정말 기억이 안 나나보다 했는데, 이번 일을 보니 어쩌면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굳이 이번이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걔가 대학 들어가기 전에도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때 가족을 찾으러 떠난다든가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때는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돈도 많이 벌고 했으니까, 그래서 찾아보려 했던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들어보니까 너희 둘 이야기가 일단 그럴 듯 하긴 하네. 그런데 둘 다 아닐 수도 있잖아? 단유가 대놓고 가족을 찾으려고 했다고 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지만 상미 이야기대로 단유가 뜬금없이 가족을 운운했다면, 그런 쪽으로 추론하는 게 맞는 것처럼 보이긴 하네. 어쩌면 단유 입장에서, 다 털어놓을 순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넌지시 알리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말이야, 단유도 무사히 돌아오고 별일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단유가 직접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우리도 그냥 모른 척 해주는 게 좋겠다.”

“저도 동의해요. 만약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였다면, 단유도 이야기했을 거예요. 적어도 저한테는 말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한테 하지 못하는 이야기라면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다는 거고, 만약 단유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저는 단유를 추궁하듯이 캐묻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요.”

“너 나한테 비밀 있어?”

“있다, 어쩔래?”

“야, 야. 니들은 적당히 좀 해. 니들이 일부러 분위기 좀 쇄신하려고 연기하는 건 알겠는데, 연기도 적당히 해야지.”

“어머? 선생님! 저희가 연기하는 것처럼 보여요?”

“아니야?”

“선생님이 명수 얘가 나한테 했던 말을 들으면 절대 그렇게 생각 못 하실 걸요? 얘 되게 나쁜 애예요.”

“상미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나도 평소에 자주 느끼니까.”

“선생님!”

“그래, 명수가 보통은 착하고 흠이 없지. 조금 멍청하고 단순하고 생각 없이 말을 하는 경향은 있지만, 그래도 악의가 있어서 함부로 사람 상처를 주고 하는 아이는 아니지.”

“와, 진짜 같은 여자라고 서로 편들어주기 있어요?”

“이것 봐라. 여기서 여자를 들먹이는 거 보면 얘가 조금 멍청하긴 해.”

명수는 두 눈을 껌뻑거리며 바라보다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그럼 뭔데요?”

하은은 대답 대신 상미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

“상미야, 라면만 먹었더니 조금 배고픈 거 같은데, 우리 나가서 뭐 좀 더 먹을까?”

상미는 마치 명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명수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럴까요?”

“와, 와.”

명수는 두 사람의 태도에 어이가 없다는 듯 뒷목을 잡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가벼운 차림으로 서로 팔짱을 낀 채 현관으로 나가는 두 사람과, 탄식을 연발하며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명수. 그리고 집주인들의 외출을 배웅하러 총총걸음으로 뒤따르는 두 마리 개들이 아쉬움을 담아 킁킁거렸다.

****

생각나는 대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거니, 단유가 실종되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주로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던 새벽과 유영, 그리고 번역회사의 사람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세계로 가기 전 겨울 동안 자주 들락거리며 만났던 갤럭시즈의 전 멤버이자 현 카페 매니저인 예영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야기 들었어. 너 걱정 많이 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다.”

“별일 없었는데 괜히 미안하네요.”

“미안해 해야지. 얘들이 너 걱정 엄청 하더라.”

“누나도 걱정 많이 했잖아요?”

새벽이 끼어들어 예영의 말을 받았다.

“하은 언니가 너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만, 그래도 3달이나 소식이 없다고 하니 걱정이 안 될 수 있니? 그렇다고 내가 당장 뭘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예영은 아르바이트한테 잠시 가게를 부탁하고 단유네의 테이블로 와서 대화를 나누었다.

“저도 솔직히 그랬어요. 형 그렇게 되고 나서 도와드릴 거 없는지 찾아봤는데, 사실 할 게 없더라고요. 인터넷에라도 글을 올려서 찾아달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그건 좀 오버 같더라고요.”

“당연히 오버지, 멍청아.”

새벽은 유영을 얄밉다는 듯이 쳐다본 후, 계속 말을 이었다.

“그때 깨달았는데, 제 주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막상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예요. 그 사실을 견디는 게 참 힘들고 답답했어요.”

새벽과 유영, 그리고 예영까지 모두 자신을 걱정해줬다는 이야기에 단유는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오늘 커피는 내가 살게.”

“그걸로 되겠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형을 얼마나 걱정했는데. 무사 복귀 신고 겸해서 오늘 저녁 한턱 쏘시죠?”

“야, 이거 반대로 된 거 아냐?”

“나나 너나 고학생 주제에 무슨 돈이 있냐? 돈 있는 사람이 쏴야지. 안 그래요, 형?”

익살맞은 새벽의 대꾸에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려고 온 거기도 하니까.”

“아니지, 네 말대로면 내가 사야 하는 거 아냐? 나 이래 봬도 돈 잘 벌어?”

“에이, 아무리 그래도 누나보단 형이 훨씬··· 윽.”

유영은 새벽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격하여 분위기 맞출 줄 모르는 새벽의 입을 막았다.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경찰들 정말 문제 많은 거 같아요. 어떻게 3달이 지나도록 그렇게 사람을 못 찾는대요?”

유영의 말에 새벽은 통증도 잊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어디서 들었는데, 여자나 아이가 실종되면 바로 수사를 하지만, 성인 남성의 경우에는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번에도 그렇게 접수만 해놓고 수사는 안 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더라고요.”

새벽은 그 이야기를 하은에게도 했었다. 단유의 실종 후 3주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하고 탐색 수사도 종료되는 듯 하니, 새벽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하은에게 그 이야기를 넌지시 건넸다. 하은은 새벽의 말이 신빙성이 있다 여겨, 이후 경찰서로 매일같이, 마치 출근 도장을 찍듯이 나가서 살다시피 했던 것이다.

하은이 그런 수고를 하며 마음을 졸였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터라 단유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라 해도,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고생을 마다치 않고 자기 일처럼 나서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예영이 단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녀를 바라보니 예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하은 언니한테 잘해야 돼. 알겠지?”

“그럴 거예요.”

“그래.”

“그리고, 누나랑 새벽이, 유영이한테도 미안하고 고마워요.”

“저희는 별거 안 했는데요.”

“그 마음이 고마워서 그래.”

“에이, 우리가 아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가깝다면 되게 가까운 사이잖아요. 형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요. 오히려 저희가 미안하죠. 아무런 도움이 못 되어 드려서. 지금 생각해보니까, 누나가 경찰서 갈 때 한 번이라도 같이 따라가 드릴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지?”

“네, 저도요. 지금 생각하니 제가 참 이기적이었네요. 이렇게 말로만 생색내고 정작 한 게 없으니.”

“얘들 봐라? 단유야. 얘들 너무 착하지 않니?”

“알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걸요.”

예전이라면 그저 말로만 주고받는, 형식적인 대화 정도로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말 한마디, 마음 씀씀이가 단유에게 깊이 와서 박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벽과 유영, 예영 이 세 사람도, 비록 자각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넓은 우주 어딘가에 자신만의 세계를 맡아서 키워나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 비록 단유처럼 직접적으로 개입하진 못해도, 그들의 의식과 의지, 마음과 행동이 그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을 테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단유의 세상보다 덜 진화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세상은 그들을 닮아 훨씬 밝고 활기찬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더 생동감이 넘치고 희망에 찬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그때,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한 여자가 카운터를 향해 손을 들며 아르바이트생을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해서 예영이 일어서려던 때, 아르바이트 생이 먼저 달려가 손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이거 잔에 얼룩 뭐예요?”

“아, 죄송합니다. 바로 바꿔드릴게요.”

미안하다는 표정을 얼굴 가득 담아 연신 허리를 숙여 손님에게 사죄하고 얼른 잔을 받아 카운터로 간 아르바이트생은, 그 와중에 매니저에게 눈짓으로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뒤, 새 컵을 꺼내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커피를 내려받았다.

예영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단유에게, 그럴 필요도 없지만, 대화 중간에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 뒤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서비스로 작은 스낵류 디저트 하나를 쟁반에 올려 커피와 같이 나가도록 했다.

그렇게 사소한 일을 처리한 뒤, 예영은 다시 단유 곁으로 와서 앉았다.

“내 주위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 뿐인 거 같아.”

“지은이요?”

유영은 이곳 아르바이트생과도 친분이 있는 듯,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을 거론하며 되물었고, 예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은이도 그렇고, 손님도 그렇고.”

별거 아닌 클레임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르바이트생은 정중하고 세심하게 손님에게 사과를 함으로서 사고를 조용히 무마시켰다. 손님 역시, 개인으로 보면 불쾌할 수 있는 일이기에 마땅히 크게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트집 잡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의 사과를 순순히 받아주었다.

예영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는 새벽과 달리, 유영은 조금 씁쓸하다는 듯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원래는 그게 당연한 일이잖아요? 사과하고, 사과받고. 그런데 그걸 착하다고, 마치 특별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게 조금 슬프네요.”

“그게 무슨 슬픈 일이야?”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새벽이 묻자, 유영이 잠시 뜸을 들이다 대꾸했다.

“요즘 그런 일 많잖아? 괜히 갑질이란 말이 나오는 게 아니라고. 만약에 네가 식당에 들어갔어. 그런데 사용하지도 않은 숟가락에 뭐가 묻어 있어. 너는 어떻게 할래?”

“새 숟가락으로 바꾸면 되지.”

“그런데 안 그런 사람도 있잖아. 인터넷에서 본 건데, 숟가락을 바닥에 집어 던지면서 사장 나오라고 막 소리를 지르더래.”

“술 취한 사람 아니고?”

새벽의 질문에 유영이 눈을 흘겼다.

“···그럴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때 엄마 나이뻘 정도의 아줌마가 나와서는, 뭐 이런 걸 가지고 난리 피우냐면서 맞서 고함을 쳤대. 아줌마가 그렇게 나오니까 또 처음의 아저씨가 언성을 높이고, 그러면서 싸움이 벌어지는 거야. 그게 동영상으로 찍혀서 인터넷에 올라온 거야.”

“그래?”

“무슨 무슨 가게에서 벌어진 갑질, 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는데, 난 좀 그렇더라고. 사실 조금 전처럼 아무 일 아니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인데, 수저를 바닥에 집어 던지면서 소란을 키운 아저씨나,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은 아주머니나 잘못 대응한 거잖아? 게다가 그걸 보면서 조금 마음에 걸렸던 게, 그걸 또 핸드폰으로 찍어서 SNS에 올리는 사람도 있었던 거잖아? 그런 싸움이 벌어졌을 때, 핸드폰을 들고 찍기보단 싸움을 말리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야, 요즘 싸움 말리다가 같이 경찰서 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러니까, 그 ‘세상’이 참 슬프다는 거지. 물론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제3자의 입장에서 그저 관망만 하고 말겠지만.”

“너만 그런 거 아냐. ···형은 어때요? 왠지 형이라면···.”

“나라면?”

“음, 솔직히 형도 다른 사람 일에 잘 끼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그냥 모른 척 했을까요?”

아마도 단유라면, 그런 일이 벌어져도 당장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를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쪽 세상이 어떻게 되든, 자신에게 무슨 책임이 있냐, 고 디에티티에게 항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세상의 흐름에 자신이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는 단유였다.

억지로 비교하자면 그건 갓 태어난 아이를 안아 든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자신의 핏줄인 아이에게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듯, 자신의 영향을 오롯이 받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단유는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책임감의 연장선에서, 단유는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되었다. 자신의 아이가 곧고 바르게 자라길 부모가 바라듯이, 단유 역시 자신이 맡은 세계가 곧고 평화로운 방향으로 성장해나가길 바라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럼 여기는 어떤 신의 영향을 받는 것일까?’

이곳, 지구, 서울은 과연 누구의 영향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까? 그리고 과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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