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friend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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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낀 하은은 비명을 질렀다.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울부짖는 하은의 요청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는 천천히 다가올 뿐이었다. 그의 얼굴도, 형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가 다가올수록 진해지는 비릿한 냄새가 그를 두렵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덮친다고 느낀 순간, 하은은 잠에서 깨어났다.
“왜 그러세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아 두근거렸고, 마치 100m 달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호흡이 가라앉지 않아 헉헉대고 있는데,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단유가 눈을 멀뚱멀뚱 뜬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그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안심을 하려는 찰나, 하은은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목격했다.
“그거 뭐니?”
“네? 아,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뭐?”
하은이 눈을 껌뻑거리다 단유가 가리고 있던 부엌 쪽을 향해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바라보았다. 정말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던 것인지, 한동안 쓰지 않았던 인덕션 위에 냄비가 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냄비에서 비롯된 게 분명한 냄새까지 인지하게 되었다.
“도, 도대체 뭘 만드는데 이런 냄새가 나니?”
“좀 그렇죠? 그렇지 않아도 거실 창을 좀 열까 하고 가던 길이었어요.”
단유는 태연히 거실을 가로질러 거실 창을 열었다. 시원한 공기가 밀려들어오니 그제야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마디 말을 나누며 정신을 차린 하은은 몸을 덮고 있던 담요를 걷어내고 일어났다. 그리고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냄새를 뿜어내는 음식을 향해 다가갔다.
“너무 걱정 끼쳐 드렸던 것도 미안하고 그래서, 아침을 준비해드리고 싶었어요.”
단유의 변명(?)을 흘려들으며 하은은 인상을 쓴 채로 부엌엘 들어갔다. 거품 문 거북이처럼 들썩거리던 냄비뚜껑을 들어 올리니 그나마 슬금슬금 흘러나올 뿐이었던 고약한 냄새가 이때다, 하는 심정으로 뛰쳐나와 하은을 덮쳤다.
“뭐야, 이건?”
저쪽 세계에서 한참 돌아다닐 때, 끼니를 때우기 위해 대충 땅에서 나는 것들을 주워다 끓여 만들었던 스프 요리를 따라 만든 거라고 대답할 순 없었다. 물론 그때 요리를 직접 담당했던 것은 주로 사울른이었고, 솔직히 그의 요리는 나쁘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가 만든 요리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조미료가 없어 맛은 심심했지만, 그래도 먹기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리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아 보였고, 그래서 에강위를 나와 피스토피 성으로 가는 동안에 그 요리를 혼자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 사울른이 만든 것 만큼의 맛은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먹을 만 했다. 단유에게는.
“훌륭한 맛은 안 나도 대접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서 만든 건데. 그래도 나름 건강식이에요.”
단유는 스스로의 요리가 먹기 힘들었던 게 소금이나 설탕, 간장과 같은 조미료를 제대로 쓰지 못해서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요리는 그런 조미료를 최대한으로 적게 쓰면서 맛을 내기 때문에 충분히 원래 요리의 맛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조미가 안 되면 먹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여기서는 아주 약간의 소금과 아주 미량의 설탕과, 매우 최소한의 간장과, 스푼 끝에 겨우 닿을 정도의 참기름 등을 넣었다. 굉장히 최소량으로 첨가시켰기에 전체적인 맛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넣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나름 신경 써서 요리했다.
“조미료가 문제가 아니라, 뭐로 만든 건데?”
그때도 땅에서 나는 것들을 집어 넣는 것을 본 터라, 대충 비슷한 것을 넣으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식하게 이것저것 다 넣지는 않았다. 영양과 밸런스를 고려하여, 탄수화물인 감자와, 국물요리에 자주 들어가는 대파, 영양에 좋은 양파와,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시원한 맛은 낸다기에 넣어 본 무가 전부였다.
그리고 요리는 정성이라 했다. 계속 저어주면 분명 훌륭한 수프가 될 거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얼마나 이러고 있었는데?”
“2시간 쯤?”
“2시간? 그런데 물이 왜 이렇게 많다고?”
“아, 중간에 물이 너무 없길래 조금 첨가했어요.”
하은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단유의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넌 요리하지 마. 부탁이야, 이런 거 안해도 네 마음 잘 알겠으니까. 알겠지? 하지 마.”
“그래도 맛을 좀 보시죠? 맛은 괜찮을 거예요.”
“넌 맛을 봤니?”
예전에 질리도록 맛을 봤다. 비록 지금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아 맛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비슷한 맛이 나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좋은 맛이 날지도 모르겠다. 조미료를 썼으니까.
하은은 속는 심정으로 스푼을 꺼내 멀건 국물을 조금 떠서는 맛을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싱크대에 스푼을 던져버렸다.
****
“미안하다. 나 때문에.”
“괜찮아. 다음에 나가면 되지.”
결국 명수는 단유의 행방불명 때문에 출전하기로 되어 있던 국제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그 일로 국민적인 지탄을 받아야만 했지만, 명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면서 남은 라면 국물을 마저 들이켰다. 그리고 겉이 살짝 탄 만두를 하나 집어 꾹꾹 씹으며 말을 이었다.
“축구는 내 인생이야. 축구로 성공하지 못하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고 내 인생도 없는 거지. 하지만 그것도 너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잖아?”
“야, 니들! 아침부터 소름 돋게 왜 그래? 그냥 먹던 거나 마저 처먹어라? 응?”
상미가 팔에 돋아난 닭살을 요란하게 비비며 동시에 명수를 향해 눈을 흘겼다.
“얘 또 지는 빼먹었다고 삐친 거지?”
“그래, 삐쳤다. 어쩔래? 아주 아침부터 끝장 볼래?”
“아우, 둘 다 그만해. 아침부터 정신 사나워!”
하은이 식탁을 탕탕 두드리며 두 사람의 말싸움을 초장에 잡았다.
“단유, 넌 오늘 뭐 할 거니?”
“일단은 학교에 가보려고요.”
만약 일이 없었다면 자연히 2학년 1학기 등록을 하고 수강을 하고 있었을 테지만, 납부 기간에 실종이 되어버린 탓에 제 기간에 등록을 하지 못했고 학교로부터 제적예정통지서를 받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이후 하은이 택윤의 도움을 받아 추가등록기간에 등록금 납부를 마친 후, 휴학 신청을 함으로써 제적까지 되진 않았다.
“가기 전에 택윤씨한테 가서 인사부터 하렴.”
“네, 그럴게요.”
“네가 그분을 자산 관리사로 선정해 놓은 건 네가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일 거다.”
“능력 있는 분이시니까요. 그나저나 선생님은 어떡하실래요?”
“나도 할 일 많지. 우선 경찰서에 가서 너 실종 신고했던 거 처리해야 하고···.”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선생님은 그만 신경 쓰셔도 돼요.”
“그럼, 학원에 가서 휴직계부터 처리해야겠네?”
“그거 말인데요, 선생님.”
“왜?”
“학원 대신 다른 일 찾아보시는 건 어때요?”
“응?”
“어제 명수랑도 이야기를 해 봤는데요.”
단유가 명수를 바라보자, 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유의 말을 받았다.
“선생님이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요. 들어보니까 학원 선생님들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라는데, 굳이 선생님이 힘들게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해서요.”
하은은 명수와 단유를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 나이가 이제 겨우 서른인데 벌써 은퇴라도 하라는 거니, 뭐니?”
“은퇴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생님이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실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리고···다시 학원에 돌아갈 수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으실 거고.”
말이 좋아 휴직계였지, 사실 일반 학원에서 휴직계를 낸다고 휴직을 인정해주진 않는다. 단유의 실종으로 휴직계를 낸 지 벌써 3달이 흘렀으니, 이미 하은을 대신할 선생님을 고용해서 운영 중일 테고 그곳에 하은이 갈 자리는 없을 것이다.
“얘들이 무슨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들 있어? 야, 니들 내가 얼마나 이름난 학원 강사인지 몰라서 그래? 나 정도면 이 학원 저 학원에서 서로 스카웃하려고 그런다니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그리고 솔직히 지금 니들이 내 걱정할 때니? 명수, 너야말로 지금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방출 위기 아냐? 이렇게 한가롭게 라면이나 먹고 있는 걸 너희 감독이 알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나, 참. 선생님! 저 명수예요? 대한민국 국가대표 공격수!”
“국가대표는 무슨. 국제 경기에 2번 나갔나? 고작 그거 가지고 무슨 국가대표라고.”
“와, 아침부터 이게 무슨 막말이에요? 선생님, 너무하시네?”
“너야말로 아침부터 선생님보고 은퇴하라니 종용해놓고 무슨 막말이니?”
“야, 상미야. 내가 이 집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해야겠냐?”
“난 할 말 없어.”
“왜? 너도 그래? 너도 내가 국가대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난 이 집에 빌붙어 사는 인생인데. 집주인한테 잘 보여야지.”
“야!”
“그리고 어제 단유가 한 말 못 들었어? 너랑 나, 파혼해도 돌봐주겠다잖아? 그러니까 난 할 말 없음.”
“우와, 미친다, 미쳐.”
“너네 어제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파혼이라는 소리가 나와?”
“그게 있잖아요, 선생님? 얘가요.”
참혹하기 그지없던 단유의 수프는 싱크대에 처박혀 있고, 거실에 배인 고약한 냄새가 빠지도록 거실 창을 열어놓은 탓에 호빵과 패티는 신나게 마당과 거실을 오가며 뛰어노느라 주인들이 벌이는 막말 잔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환영 인사를 겸해서 반 주먹다짐에 온갖 비난과 신경전을 벌이며 지난 밤을 꼴딱 새우다시피 했던 친구들과, 소파 위에서 새우잠을 자느라 몸이 딱딱하게 굳은 하은은 단유의 쓸모없는 성찬 대신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였고, 반목과 비난, 배신과 갈등으로 점철된 화목한 대화와 함께 식사를 마무리했다.
****
단유의 실종으로부터 석 달이나 흘렀지만, 단유 주위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특별히 무언가가 변한 것은 없었다. 집도 그대로였고, 잃어버린 차와 휴대폰도 고스란히 단유의 손에 들어왔다. 간단한 신고 해제만으로 휴대폰은 예전처럼 사용할 수 있었고, 휴대폰을 통해 연락을 기다리던 몇몇 사람들에게 안부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형,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새벽이는 수업 중이라 바로 전화하지 못했다며 이후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단유는 대수롭지 않게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
“···너 우는 거 아니지?”
―아닌데요. 설마 오빠 때문에 제가 울겠어요?
“다행이네.”
―······.
유영의 반응은 조금 신경 쓰였지만, 나중에 새벽과 함께 만나서 밥 사주는 것으로 약속하며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유진은 단유가 행방불명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반응이었다.
―나 지금 영국이잖아.
“영국?”
―나 영화 촬영하지롱?
“영화 찍어?”
―응. 그래서 이번 학기 휴학해야 했잖아. 너한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긴 했는데, 그동안 매번 내가 너한테 연락하기만 하니까 그게 조금 심술이 나서 일부러 연락 안 한 거였거든. 언제 너한테서 연락이 오나, 혹시 내가 먼저 연락 안하면 아예 연락을 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도 들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연락이 오긴 오네? 비록 내가 영국으로 출국한 지 벌써 3달이 흐르고 나서야 왔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그랬구나.”
―그게 다야? 내가 무려 3달이나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는데, 전혀 궁금하지 않았어?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너랑 나의 우정이 고작 그 정도니?
“안 바뻐? 지금이면 거기가 새벽인가?”
―정확히는 아침 7시 반이고, 조금 있다가 조식 먹으러 내려가야 돼. 그리고나서 곧바로 로케이션 장소로 출발해야 하고. 이제 곧 여기 촬영도 마무리되어야 해서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데, 바꿔말하면 내가 꽤 많이 바쁘다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전화를 이렇게 정성껏 받아주는 건 우리의 우정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너에게 이토록 깊은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기도 하지.
“알았어.”
―알면 자주 연락 좀 하고 살자. 응?
“주인공 역할이야?”
―···넌 말이야, 좋은 친구가 되긴 힘들 거 같아. 사람이 똑똑하면 뭘 해? 저렇게 눈치가 없는데? 내가 웬만하면 너 전화비 많이 나올까봐 빨리 끊고 싶었는데, 너 하는 게 너무 얄미워서 일부러 더 전화 붙잡고 있어야겠다.
“바쁘다며?”
―있잖아, 단유야. 너 정말 그렇게 눈치 없이 굴면 여자친구 안 생긴다? 나 없어 봐? 너 여자랑 대화도 못 해. 아니?
바쁘다던 유진은 그 뒤로도 계속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아마 영국에서 촬영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어 속으로만 삭히다가 마침 단유의 전화가 빌미가 돼서 마음껏 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단유는 친구를 위해 기꺼이 욕받이가 되어 주었고, 유진이 불평을 늘어놓으며 베이컨을 씹는 소리도 들어주었다. 결국 그녀가 매니저의 차를 타고 이동할 때까지, 약 한 시간 가량 뜨거워진 핸드폰을 들고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