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53화 (753/956)

귀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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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뜻이죠?”

“이봐, 너에 관한 내 점수는 굉장히 후한 편이거든? 그런데 단 한 부분에서 점수가 좋지 않아. 그게 뭐냐면 바로 시도 때도 없이 진지해지기만 하는 그 성격. 조금쯤은 부드럽게···.”

“아니요. 그런 식으로 말 돌리지 마세요.”

“딱딱하긴.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어느새 두 사람 앞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탁 테이블이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을 살린 디자인에 고급가죽을 덧대어 착석감을 높인 의자를 톡톡 두드려 보이며 ‘어때?’라고 묻는 디애티티의 태도에 단유는 그저 혼란스럽고 답답하기만 했다. 이 얼마나 어색한 상황이란 말인가. 이곳은 지붕이 있는 곳도 아니고 그저 강 옆에 위치한, 잡초들이 아무렇게나 자라나 있는 강둑에 불과한데. 작은 조약돌이 발 밑에서 구르고, 불과 3m도 안 되는 거리에서는 피에 젖은 강이 소리 내며 흐르고 있는데.

“앉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먼저 의자에 앉은 디애티티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역시 고급스런운 문양이 새겨진 하얀 도자기를 기울여 잔을 채웠다.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라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여전히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는 혈향과 숲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은 현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유는 심호흡을 하며 냉정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목이나 축이면서 이야기하자고. 어차피 오늘 모두 털어버릴 작정으로 준비한 자리니까.”

“경청할 테니 이야기해보세요.”

“쯧.”

디애티티는 홀로 채운 잔을 들어 한 번에 들이킨 뒤, 만족감을 드러내는 표정으로 단유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 ‘세계’에는 유일한 ‘절대자’가 존재한다. 이에 앞서 ‘세계’란 것에 대해 정의해 볼까?”

본디 ‘세계’라 하면, 자신이 살아가는 영역 전체를 의미하지만, 그 범위는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함께 늘어난다. 요컨대 오래전 인간이 인지하는 범위는 고작해야 눈에 담을 수 있는 범위가 전부였고, 그것만이 ‘세계’라 지칭되었다.

더 시간이 흐르면 생명체가 존재하는 항성 전체를 ‘세계’로 인식하고, 더 지난 뒤에는 ‘우주’, 그리고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관측하지 못하지만 이론적으로 인지하는 영역까지 ‘세계’라 부르게 된다.

“‘세계’라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인지하는 범위가 확장될 뿐이라는 거지.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다르다는 걸 알겠지?”

하지만 디애티티에게도 세계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이다. 절대자.

“여기서 조금 감이 오나? 절대자란 상대성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하며 절대적인 존재라는 거야.”

철학적인 해석을 곁들일 필요도 없이, ‘절대자’는 말 그대로의 의미이다. 유일하며, 절대적인 존재. 대체할 수 없으며, 비교할 수 없는 존재. 어떤 형태로도 묘사할 수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할 수 없는 존재.

“증명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가 존재하는지 알 수 있나요?”

디애티티는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알아야지.”

“왜요?”

“너는 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라티오?”

“그래. 라티오는 그의 권능이 시작된 세계지. 모든 유일한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 절대자의 창조로 빚어진 세계, 바로 라티오야.”

디애티티가 창조의 권능을 가지고 있지만, 라티오와 같은 세계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절대적이며 유일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일하지 않다고요?”

“디애티티란 이름은 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한 세계의 법칙을 주관하는 신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 쉽게 말하면, 우리는 또 다른 우리의 복제이며, 권능에 의해 정체성을 가진 개별적 주체이기도 해.”

“전혀 쉽지 않은 말인데요.”

“이해하지 못하는 건 네가 아직 우리의 수준에 미치지 못해서 그래. 네 수준에 맞춰 설명하자면, 네가 마법사가 될 수 있었듯, 다른 사람들도 마법사가 될 수 있어. 하지만 누구도 너처럼 마법사가 되지 못했지. 왜 그럴까? 그 쉬운 방법을?”

“······.”

“마찬가지야. 너도 내 수준의 지성을 갖추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야. 그러니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야 돼. 알겠어?”

“계속 이야기 해 보세요.”

“뭐,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하며 허송세월 보낼 건 아니니 간단히 요약하자면.”

절대자가 세계를 창조했다.

“잠시만요.”

단유가 손을 들어 디애티티의 말을 막았다.

“뭐?”

“세계를 창조했다니, 그럼 창조하기 전의 절대자는 어디에 있었는데요?”

디애티티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

“일단 듣고 나서 이야기하라고. 그래도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처음 창조한 세계는 불안했다. 왜냐하면 규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 그래서 절대자는 규칙을 만들었다. 규칙은 세계를 안정화시키는 듯 보였지만, 세계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안정을 위해 더 많은 규칙이 요구되었다. 절대자는 규칙을 거듭 만들어 세계가 안정화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어. 완벽한 세계를 만들고 싶었지. 그런데 완벽하지가 않아. 그래서 규칙을 만들었어. 규칙을 만들어 적용했더니, 또 다른 불완전함이 보여. 또 다른 불완전함을 수정하기 위해 또 규칙을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어. 그랬더니 규칙들끼리 부딪혀서 모순을 만들거나, 오류를 일으켜. 그럼 어떻게 돼?”

디애티티는 볼을 부풀리며 손을 크게 저었다.

“쾅!”

처음에 만들었던 세계가 부서졌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 절대자는 고민했고, 다시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과 다른 방식의 세계를 만들었다.

“바로 복제라는 방식을 택한 거지.”

본래의 세계를 두고, 그 세계와 닮은 세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본래의 세계와 복제된 세계에 서로 다른 규칙을 적용했다. 그리고 그 규칙들이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테스트하고 어떤 규칙을 유용하고 어떤 규칙이 불합리한지를 따졌다.

앞서와 같은 이유로, 규칙은 또 다른 규칙을 낳고, 더 많은 규칙들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같은 세계에 중첩된 규칙을 적용하지 않고, 대신 그와 닮은 세계를 만들어 규칙을 적용하고 테스트했다. 규칙이 많아질수록 복제된 세계도 많아졌다.

“결국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세계들이 만들어졌지.”

어마어마한 숫자들의 세계와 그 세계들에 적용된 수많은 규칙들을 절대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규칙들을 관리하고 주관하는 존재가 나오게 되었어.”

자신의 가슴을 엄지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설명하는 디애티티였다.

“전혀 요약이 아니군요.”

“넌 인내심이 많잖아? 끝까지 들어봐.”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불필요하게 낭비하기 싫다고···. 나 참.”

디애티티는 절대자의 권능까지도 빌려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거.”

두 손을 벌리며 입 모양으로 짜잔, 이라고 말하는 디애티티의 모습이 연극배우의 그것처럼 과장되어 보였다.

그는 무표정한 단유의 반응에 곧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수많은 복제품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졌어. 관리가 필요했고, 나와 같은 ‘관리자’들이 존재하게 되었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이 모든 세계의 공통적으로, 불변하는 법칙이 하나 있어. 그게 뭘까?”

“모르죠.”

“···조금 생각해보고 말을 해봐.”

“전혀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으셨잖아요.”

“쯧. 힌트를 주자면 지금 내가 널 찾아온 이유와 같아.”

“모르겠는데요.”

“또 힌트를 주자면, 날 대신할 능력을 갖췄는지 알아보기 위해 널 선택했다고 했잖아.”

사실 디애티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답답함이 치솟아 짜증이 나던 단유였다. 그가 이야기하는 태도도, 단유가 보기엔, 그저 가볍고 농담이라도 던지는 듯한 태도여서 신뢰가 잘 가지 않는 판이었는데, 무턱대고 질문을 던지니 답을 하기가 싫었다.

그보다는 다른 질문들, 예를 들어 왜 절대자란 녀석은 명색이 절대자라면서 완벽한 세계를 만들지 못했는지 같은 걸 묻고 싶었다. 또 복제품을 만들어서 실험을 했다면 실험에 성공한 것과 실패한 것으로 구분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성공한 경우는 어떤 케이스이며, 실패한 경우는 또 어떤 케이스인지, 또 실패한 세계의 경우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긴 가장 처음 물었던 질문, 왜 절대자는 세계를 만들었는가, 에 대한 답도 아직 듣지 못한 마당에 다른 질문에 제대로 답이나 해줄까. 그저 자기 이야기만 구구절절 늘어놓는 수다꾼인데.

그래도 답을 하지 않으면 저 부담스러운 눈빛을 계속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긴 싫었다.

“시간인가요?”

“비슷해! 정확히 말하면, 유한하다는 것.”

그가 불멸의 존재가 아니란 것쯤은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유한해. 나도 거기에 포함되지. 단지 ‘신’이라고 불지만, 인간에게는 놀라울 ‘권능’을 가졌다는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세계와 모든 생명은 유한한 존재야. 그런 이유로, 모든 디애티티는 자신의 뒤를 이을 디애티티를 찾아 나서게 되었고, 내가 너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해. 만약 네가 디애티티가 된다면, 나중에 너 역시 다음 디애티티를 찾게 되겠지.”

“안 찾으면요?”

“그럼 디애티티가 없어지는 거고, 디애티티가 없어진 세계는 곧 사라지겠지. 사실 전 우주를 통틀어보자면 디애티티가 없어서 사라진 세계는 적지 않은 편이야. 적당한 디애티티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없어진 세계는 어떻게 되나요?”

“모든 것이 근원의 상태로 돌아가겠지. 그건 알지? 이 드넓은 우주에 가득 찬 근원의 에너지들. 사실 그것들이 규칙에 따라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게 바로 이 땅이고, 생명이라는 건.”

모르지 않았다. 당장 해체 마법을 사용해 봐도, 모든 것이 최초의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을 단유는 인지할 수 있었기에, 디애티티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디애티티라고 별거 없어. 무책임한 녀석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존속시킬 다음 후보를 구하지 않아서 망하게 하지만,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어차피 자신이 죽는 마당에 세계가 존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항변하기도 하니까.”

“맞는 말 아닌가요?”

디애티티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구를 봐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지구가, 그 긴 시간 단 한 번의 위태로움도 없었다면 거짓이지만, 그래도 오늘날까지 꿋꿋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나 같은 책임감이 강한 디애티티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들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나나 네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지구인이었나요?”

“본래 그 세계의 디애티티는 그 세계의 존재들 중에서 선택하는 법이야. 그래야 더 책임감을 느끼지.”

혈족 같은 개념이지, 라고 하는 말은 분위기를 유하게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단유는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다가 디애티티를 향해 물었다.

“왜 저인가요?”

“네가 자질을 보이니까.”

대답이 곧바로 나왔다.

“자질이요?”

디애티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너에게 충분히 한 세계를 관리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어.”

“언제부터요?”

“네가···어릴 때부터? 특별한 자질이란 건 어린 시절부터 발현되기 마련이거든?”

그는 사람의 잠재력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이 개화하는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서도 질릴 정도로 지루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드물게 어린 시절부터 잠재력이 폭발하는 경우는 너도 많이 알지?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 말이야.”

5살 때 작곡을 시작했다거나, 3살 때 3개 국어를 했다거나, 7살에 대학 수학을 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단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거야. 디애티티란 것도, 그 권능이란 걸 얻기가 힘들지만, 자격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 인간이라면 말이야.”

누구나 디애티티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다. 분명 누군가에겐 동기부여가 될 말이겠지만, 지금 단유에겐 통하지 않았다.

단유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며 물었다.

“어릴 때부터 절 보았나요?”

“그랬지.”

“전, 그저 빈촌에서 뛰어놀 줄만 알던 어린아이였어요.”

긴 이야기를 하는 내내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전 저의 어머니와 동생을 잃어버렸어요.”

“······.”

“그들이 어디 있는지, 당신은 알고 있나요?”

디애티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있죠?”

이제는 완전히 굳어버린 얼굴로 단유를 응시하던 디애티티. 잠시 후 그는 손가락을 들어 단유를 가리켰다.

“무슨 뜻인가요?”

“너의 가족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가 있어.”

“말씀하세요.”

“넌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지?”

“여기요?”

“그래, 여기. 지금 네가 숨을 쉬고 있는 공간. 숲이 있고, 강이 흐르는 이곳, 이 세계. 네가 오랜 시간에 걸쳐 헤매고 돌아다녔던 이 세계.”

“그쪽이 말한, 복제된 세계 중 하나 아닌가요? 우주의 어디쯤엔가 존재할 세계.”

“틀린 말은 아닌데, 한 가지만 더 하자면.”

디애티티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여긴 네가 만든 세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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