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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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마스토가 돌아보니 ‘잠시 쉬었다 가실래요’라고 묻는 아들이었다. 몸이 완전히 낫지 않은 채로 무리한 탓에 평소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있는 마스토였고, 그 꼴이 어린 아들이 보기에 걱정되어 묻는 것일까 했지만, 뭐 마려운 얼굴로 바라보는 아들의 표정을 보니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마스토는 턱짓으로 주변의 풀숲을 가리켰다.
“멀리 가지 말고.”
타리슬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마스토가 가리킨 방향의 풀숲 너머로 달려가 바지춤을 풀었다.
‘녀석.’
힘들면 진작 말하지, 아버지 눈치 보느라고 끙끙거리며 따라왔나 보다. 그래도 이참에 마스토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까운 바위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숨을 돌렸다.
밤중에 숲을 헤매는 건 위험한 일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때문에 하늘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보통사람이라면 십중팔구 방향을 잃고 헤매다 지쳐 쓰러질 테다. 비록 마스토는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난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기에 길을 잃지 않고는 있으나, 잔뜩 주의를 기울이며, 거기다 어린 아들을 보호하며 어두운 숲을 지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희미한 악취에 마스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바지를 추스르며 풀숲에서 나오는 아들의 것은 아니었다. 방향과 거리를 특정할 수 없어 신경이 더욱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다. 다시 가자꾸나.”
“네.”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마스토가 멈칫하더니 아들을 돌아보았다.
“많이 힘드냐?”
“···괜찮아요.”
“···그래. 조금만 더 가면 쉴 만한 곳이 나올 거다.”
“전 괜찮아요.”
고맙다, 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대견하다는 말도 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지금은 그런 격려를 하며 마음을 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중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안정을 찾으면, 그때는 이전과 달리 조금 더 아들에게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좀 더 살갑게 아들을 대하며 좋은 말을 많이 해주겠노라 다짐했다.
“가자.”
아들의 어깨를 한 번 짚어준 마스토는 다시 어두운 숲속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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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스토가 느꼈던 미약한 악취의 주범과 대면하고 있던 단유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경계하는 몬스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단유를 보며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는 모습이나 주위를 경계하는 태도를 보면 분명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동물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음이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언어를 알아들을 리는 없다. 그러니 죽기 싫으면 돌아가라, 거나 강을 건너면 손을 쓰겠다는 식의 협박도 할 필요가 없이, 그저 지켜보다 위협적인 행동을 취할 때 그에 맞게 반응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괜시리 생각이 많아진 단유였다.
몬스터(Τ?ρα?). 오직 이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 어쩌면 매우 드문 확률로 지구에도 이와 유사한 존재가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수백년, 수천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기에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존재가 바로 눈앞의 몬스터였다.
이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녹스에서 처음 몬스터라는 걸 보았을 때, 몬스터를 앞에 두고 절대 침착할 수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돌봐줬던 은인을 무참히 짓밟던 몬스터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그때의 인상이 계속 남아, 이후로 몬스터는 그냥 죽여야만 하는 존재, 혹은 돈이 되는 부산물을 남기는 사냥감 정도로 인식되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변한 건 아니었지만, 왠지 지금은 저 몬스터라는 존재의 존재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모아도 저기 몬스터만큼 특이한 존재는 없다. 몬스터로 분류되는 종을 제외한 어떤 존재도 저만큼 강한 힘을 가지지 못했고, 질긴 생명력을 부여받지 못했다. 막말로 그냥 터무니없는 존재 그 자체였다.
물론 마법사라는 것도 인간이라는 종의 기준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존재로 여겨지긴 했다. 하지만 단유의 기준에서 마법사는 ‘누구나’ 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몬스터 같은 특이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도, 당장 ‘몬스터’가 되거나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진 않으니까.
몬스터는 그저 천재지변 같은 존재였다. 왜 저런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진화론의 측면에서 살펴도 저건 분명 돌연변이였다. 아니, 과연 돌연변이로라도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에 대해.
몬스터 뿐 아니라 이 땅에 위에 존재하는 그 모든 생명체, 아니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과연 존재하는 이유란 게 있을까? 당장 자신만 해도 어떤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와 같이, 생명은 그저 확률적인 생식 작용의 결과물일 뿐이다. 무슨 대단한 필요성을 가지고 만들어졌다거나, 거창한 사명감을 지닌 채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의 동물들과 식물들이 ‘그냥’ 태어나고 자라서 죽는다.
왜 굳이 몬스터에게만 이유를 묻는단 말인가.
“지금 너란 존재에 대해서 생각 중이야. 내가 손만 까닥하면 넌 죽은 목숨이거든.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자비를 베풀 때 돌아가. 죽고 싶지 않으면.”
이런 말을 할 성격이 아닌 단유이고 보니, 그저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인데, 몬스터는 그런 단유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뒷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너 지금 뛰어오르려고 하지? 너 그러다 죽어.”
라고 경고할 단유도 아니었다. 갑자기 없던 자비심이 생길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몬스터는, 조금 더 신중하지 못했던 탓에,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강을 건너려던 중에 예고도 없이 눈앞에서 터진 섬광에 놀라 발을 허우적거리다 강에 빠져버렸다. 워낙 거대한 덩치여서 넓은 강도 몇 번 팔을 휘젓고 두꺼운 발바닥으로 강바닥을 딛으며 걸으니 금방 단유가 서 있던 강둑에 닿을 수 있었다.
물에 흠뻑 젖은 몬스터를 내려다보던 단유가 그 모습이 처량하다 하여 봐줄 리 없었다. 바람을 쏘아 보내 어깨와 가슴, 턱과 눈에 구멍을 뚫었다. 흐르던 강이 멈칫할 정도로 큰 비명을 질러대는 몬스터가 시끄러워, 녀석이 고개를 쳐들며 우는 틈에 다시 한번 바람을 쏘아 보냈다. 어찌나 두껍고 질긴 가죽인지 목을 가르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쉽게 갈라지지 않았다. 한 번으로 부족하면 두 번을 쏘아 보내지, 라는 생각으로 거듭 마법을 사용했더니, 마침내 목이 반쯤 잘려 피를 쏟아내고 마는 몬스터.
결국 강 위로 올라오지도 못하고 강을 붉게 물들이며 쓰러지고 말았다. 누군가에겐 그저 두려움일 뿐인 몬스터겠지만, 단유에겐 그저 낙엽같은 단상(斷想)에 잠시 젖게 만들 뿐인, 어떤 위협도 되지 못하는 몬스터의 최후였다.
붉은 피가 강을 따라 하류로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스토일까 싶어 고개를 돌리자, 낯선 얼굴이 단유를 보며 생글 웃고 있었다. 작은 키에 곱게 빗은 하얀 머리칼이 허리에 닿아 치렁치렁 흔들리고 있었다.
‘누구?’
라고 생각하는 눈빛을 보내니, 상대가 앙증맞은 손을 들어 인사를 보냈다.
“안녕?”
순간적으로 품었던 생각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 이었다.
“누구시죠?”
“누구게?”
깊어가는 밤, 주위는 어둠에 물들어 달빛 별빛을 끌어모아도 어둡기만 한 숲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도드라지게 하얀 머리카락을 흔들고 있는 낯선 사람을 단유가 어찌 알까, 마는 어쩐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초면은 아니죠?”
“어떻게 알았어?”
머리색도 바꿨는데 용케 알아보네, 같은 말은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때 ‘이레귤러’라는 말을 쓰던가? 변칙적인 존재. 또는.
“당신이 절 이곳으로 데리고 왔나요?”
“여기? 네가 왔잖아?”
내가 손 붙잡고 널 끌고 오진 않았는데, 라는 뒷말이 붙었지만 그건 그저 고약한 농담과도 같은 것이었다. 단유는 농담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당신은 신인가요?”
상대가 싱긋 웃었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지.”
단유는 겁도 없이 그에게 한발 다가섰다.
“날 여기, 이 세계로 데리고 온 것이 당신이죠?”
“그래.”
“전에도.”
“그래.”
“왜죠? 왜 날 지구로, 또 여기로 계속 오가게 만드는 거죠?”
단유의 한 걸음에 상대도 한 걸음 다가서는 걸로 응수했다.
“이유란 게 있겠어?”
“···이유가 없다고요?”
“방금 너도 그렇게 생각했잖아? 이유란 게 있겠냐고.”
몬스터를 앞에 두고 했던 생각을 일컫는 것이리라.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나요?”
“생각을 읽는 정도겠어? 난 너의 모든 걸 다 아는 걸.”
“그럼 답해봐요. 왜 날···.”
“넌 똑똑한 사람이잖아? 멍청한 질문으로 우리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줬으면 해.”
단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하얀 빛을 머금은 상대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시간이 부족한가요?”
“일단은 좋은 질문이야. 답을 하자면, 그래.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법이니까.”
“당신이 신이라면 시간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몇 가지 오해가 있는 듯 하지만, 우선 대답하자면, 설령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해도, 지나간 시간은 되돌리지 못하기에 1분 1초, 혹은 찰나의 순간마저도 소중한 법이야. 그리고 네 식대로 표현하자면 질량적 개념으로서 시간은 한정적이니까 헛되이 보내선 안 되겠지? 효율적이지 못하니까.”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질문이 머릿속에 쌓이는 기분이었다. 단유는 더욱 신중하게 질문을 골라 뱉었다.
“당신은 창조주인가요?”
“창조가 나의 권능이긴 하지만, ‘창조주’라 불릴 정도는 아니야. 사실 너도 ‘창조’라는 범주에서 한정적이지만 권능을 사용하잖아?”
굳이 나누자면 단유는 권능이 아니라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상대의 표현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건 답이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네가 원하는 답을 해 줄 이유는 없지.”
“그렇다면 왜 앞에 나타나신 겁니까? 설마, 이제 다시 지구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같은 말이나 하려고 나온 건가요?”
“진정하라고. 넌 원래 침착한 사람이잖아?”
“······.”
“좋은 태도야. 몇 가지 불필요한 질답들을 생략할 겸, 너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난 분명 창조의 권능을 지녔지만, ‘창조주’란 이름으로 불릴 만큼의 권능은 가지고 있지 않아. 다시 말해서, 인간을 창조한다거나, 이 세계, 우주를 만들지는 않았어. 그건 나 같은 존재가 아니라, 더 큰 뜻을 가진 분의 의지로 만들어진 거니까.”
“당신보다 더 큰 존재가 있다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 그게 아마 네가 생각하는 진짜 ‘신’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럼 당신은 누굽니까?”
“내 소개를 하지. 난 이 세계의 규칙을 주관하는 자, 디애티티라고 해.”
“규칙?”
“응. 규칙. 룰. 법칙. 뭐라 부르든,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규칙이 무너지면 세계가 무너지거든.”
디애티티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규칙들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미 단유가 아는 것도 있었고, 미처 몰랐던 규칙들도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저런 걸 알아도 되는 것인가 싶은 것도 있었다. 그 내용은 평소에도 궁금했던 단유의 호기심을 채우고도 남았지만, 때문에 단유는 그의 말이 의심스러웠다.
“설령 그게 진짜라고 해도, 제게 그걸 다 말해줘도 되는 건가요?”
조금 전까지 한정된 시간 허투루 보내지 말자던 이가 말이다.
“뭐 어때. 어차피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못 할 텐데.”
이제껏 그래왔듯이, 라고 붙는 뒷말에 단유는 뒷머리가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단유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말한 건 사실 일부분에 불과해. 더 중요하고 세부적인 규칙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네게 알려줘도 무방하다고 판단했고, 그 덕에 넌 내 말에 신뢰를 가질 거 아냐. 그것만으로도 내가 너에게 설명하는 이유로선 충분하지.”
“저의 신뢰가 필요한가요?”
“그럼. 대화의 기본은 신뢰, 라고···아마 네가 8살? 9살 때쯤 배우지 않았었나?”
하지만 이런 대화에도 단유는 상대의 의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뭔가 겉도는 기분이 드는 건, 자신이 가지는 의문을 제대로 풀어주지 않기 때문이리라. 단유는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려 상황을 정리하고 가장 궁금한 사항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디애티티, 당신의 대답에도 난 여전히 내가 왜 이런 삶을 살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이건 존재의 이유 따위를 묻는 게 아닙니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저처럼 두 세계를 오가며 생활하지도 않잖아요? 왜 저만 이런 경험을 하는 거죠?”
“네가 특별하기 때문, 이라고 답하면 될까?”
“절 아시겠지만, 그런 농담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 넌 특별해.”
“어떤 점에서요?”
“내가 선택했으니까.”
“네?”
“내가 선택했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너를.”
“왜요?”
“나를 이을 존재로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봤거든.”
태어나 지금까지, 이보다 더한 농담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단유는 자신할 수 있었다.